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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평점 :
이 책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장서가(3만여권)로서 이름높은 장석주의 사물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다. 신용카드(라자라토)에서 부터 시작해서 휴대전화, 자동판매기, 세탁기, 비누, 탁자,병따개, 시계를 거쳐 활, 망치,추(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에 이르기 까지 30개의 사물과 그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언술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사물의 핵심을 찌르며 철학적 사유로 넘어가는 통찰력. 이러한 능력은 시인으로서의 감수성과 문학평론가로서의 예지를 함께 갖춘 저자의 탁월성에 기여한 바 크다. 책을 1년에 1000권씩 사들여 끊임없이 읽고,문장노동자로서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장석주. 그가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편으론 부럽고, 존경스럽기 조차 하다.
저자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종횡무진한 상상력의 결합은 사과편에서 더 돋보이는데,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 이르러 그에 대한 매우 호의적인 평가가 인상적이다. 그는 좋은 삶이란 끊없이 갈망하는 것,자신이 만족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곧 죽을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프라이드,부끄러움,실패 등은 죽음 앞에서 모두 무의미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가를 넘어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보여준 인문학자,방황하는 영혼에게 가야할 길을 가리키는 현대의 구루가 아니었을까?(187쪽)
사물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더불어 이 책에는 저자의 고달프고,힘겨웠던 젊은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데 특히 '탁자'와 '시계' 편이 그러하다.
식탁이 없던 시절, 스무 살의 그는 시립도서관이나 음악감상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점심끼니를 잇는 날보다 건너뛰는 날이 더 많았지만,자장면 한 그릇을 먹고 난 뒤의 포만감에 황홀해 했다. 아직도 식탁이 없었던 시절,스물셋에 결혼하고 이듬해 첫아들을 얻었으나 여전히 가난한 가장이었던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 달랬고, 어쩌다 작은 원고료를 손에 쥐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중화반점에서 자장면을 먹었다. 몇 해전 우연히 방송에 나오는 지오디의 노래 <어머님께>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하지만 어머니는 왠지 드시질 않았어/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를 듣고 아,가난의 풍경은 다 엇비슷하구나(120쪽)하면서 눈물 흘렸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초겨울 그는 청년 백수였고,딱히 살아가는데 시계가 필요없는 사람이었지만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서성이며 자꾸 시간을 묻는다. "지금 몇시예요?" 그날 추위가 밀려오는 거리에서 그는 스스로 무가치한 인간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초조함에 감싸였다. 이후 습작노트를 불에 태우고 일자리를 구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손목시계를 산 것이다. "손목에 시계를 차자 시간의 구획들이 의식과 생활을 분절했다. 나는 자진하여 시간의 포획,즉 시간이라는 촘촘한 그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편,구두에 대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는 고흐의 그림 '끈 달린 낡은 구두'에 관한 묘사에서 뛰어나게 드러난다."닳아빠진 구두 안쪽 어두운 틈새에서 노동자의 고단한 발걸음이 밖을 응시하고 있다.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구두 안에는 황량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한 없이 멀고 단조로운 밭고랑을 수 없이 밟고 지나갔을 그 느릿느릿하고 끈질긴 발걸음이 굳어 있다.가죽 표면에는 흙의 축축함과 비옥함이 어려있다.구두창 밑에는 땅거미 질 무렵 들판의 고독이 납작하게 눌러져있다." 화가의 마음을 흔든것은 구두에 각인된 노동의 흔적들이 증언하는 가난한 삶의 고달픔과 애잔함 이었을 것이다.(228쪽)
또 여행가방편은 보면, "낙타는 죽어 사라졌지만 그 가죽은 여행가방으로 변신했다.트렁크를 감싼 낙타 가죽은 닳고 낡았는데, 이것을 바라볼때 가슴에 아릿한 통증을 느낀다. 늙은 부모를 지켜보듯이, 노인들의 얼굴에는 반점이 생기고 주름은 깊어간다. 삶은 그자체가 하나의 여행이 아닌가! 다시 돌아올수 없는 편도여행. 우린 떠난 곳으로 돌아올수도 없고, 이것을 두번 반복할 수도 없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 그래서 그것이 그토록 감미로운 것이다"(232~237쪽)라고 무척 감성적 표현을 사용하여 서술하는데 다소 사삭스럽게 느껴진다.
저자의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철학적 사유는 이 책 뿐만아니라 모 일간지의 기고문에도 드러나는데 소개된 내용 중 으뜸은 박완서선생의 수필'호미'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묘사인가?'또는 '무릎을 칠 만하다'는 표현은 진부하고도 상투적이다.(그렇다고 혀를 내두른다든지, 눈알이 튀어나온다든지,놀라 엎어졌다든지 하는 과장된 몸개그 언사는 되레 박완서 선생의 인격과 이 아름다운 인용문을 함께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삼가야 할 것인바, 내겐 달리 뭐라 표현할 재주가 없다.)
돈벌이에 급급해 허겁지겁 살아온 나는 도대체 나를 둘러싼 사물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애정을 느끼며 의미를 부여해 왔나? 솔직히 난 뭐, 얼리어답터처럼 새로나온 물건은 커녕, 예전부터 있었던 사물에도 고양이 같은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는 정도의 무관심정도가 아니라 항상 있던 자리의 물건이 없어져도 제대로 인식조차하지 못하는 무심함이랄까 둔감함 같은게 있는 편이다.
이 기회에 나도 주위의 사물들을 둘러본다. 사무실 책상위의 '스테이플러'(일명, 호치키스)...분열을 봉합하는 융화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것 때문에 옆동료와 다투었던 기억이 있어 씁쓸하다.(아마도 내 것, 네 것 하면서 소유관계를 따졌던지, 심(알)이 없었다던지...) 음, 또는 내 지친 육신의 무게를 온몸의 견디며 서서히 닿아지는 '슬리퍼'는 또 어떤가? 이 슬리퍼는 고교시절의 좋지 않는 기억 소환한다. 악질 선생의 손에서 화풀이용 '쓰레빠'로 변신하는 것이다. 쫘~악 찰진 소리.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영어를 담당하던 그 선생은 우리반 담임이기도 했는데 검은얼굴,작은키에 비쩍 마른 체형인데다 볼록한 올챙이 배를 하고 있어 '이티'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이 별명은 상당히 중의성을 띠고 있는데그의 생김새와이름과 담당과목이 여기에 다 포함되어있는 것이다.그의 이름은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영국'이어서 이선생,잉글리쉬티쳐와 함께 외형까지도 아우르는 별명 '이티(E.T)'로 낙착되었던 것인데 누가 처음이라 할 것없이 학생들은 모두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불렀다. 그가 질질 끌고 다니는 합성고무소재의 황갈색 쓰레빠는뒷꿈치가 살짝 벌어져 있고 엄지발가락 부분은 굵은 철사로 꿰맨것인데, 탄력성은 무척 좋았는데 그가 화가날땐 오른발 스냅을 이용해 벗어던지면 3바퀴 공중제비를 한후 어김없이 그의 손아귀에안기는가 싶다가 바로 연속동작으로 싸다귀를 날리면서 학생 뺨에 벌겋게 격자무늬를 새겨넣는 것이다.)
각설하고,
술병따는 '오프너'? 없으면 숟가락을 써도 되고, 최근 막걸리로 주종을 바꾼 후론 애정도가 담뱃불 붙이는 라이터에도 못미친다. 그럼 뭐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사물이 하나 있긴하다. 바로 ATM이라고 불리는 현금지급기. 어두운 건물의 한 구석에서 항상 묵묵하고,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 어둠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밝혀, 손가락 몇번 누르면 내 의도대로 실행하는 기특한 친구. 특히'촤르르르~' 돈세는 소리는 술 마실 생각에 들떠있는 나의 아드레 날린 분비를 촉진하면서 황홀케 한다...게다가 "놓고 간 물건이 없는지~" 인사성도 밝은, 착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