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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연꽃의 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심청에 의한,심청을 위한,심청에 대한,소설이다. 마지막 부분 662쪽 12. '미소'는 가섭에게 보낸 염화미소일 것이다!
"심청은 눈을 감고는 한번 빙긋이 웃었다.오물조물한 입이 조금 움직였을 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그건 아주 희미했다."
채만식 선생이후로 심청에 대한 재해석이 한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황 작가의 심청이 마지막이 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민족인 생존해 있는 동안은 끝없이 심청은 부활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춘향이도 재해석되고, 심청이도 재해석되는 이유는 뭘까? '한'을 기반으로 한 우리 문화의 원형일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민족은 한의 민족. "은근과 끈기"의 민족성으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특히 조선시대 우리 여성들, 남성중심의 유교적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많은 춘향(절개로 상징이)와 얼마나 많은 심청(효도로 대표)이가 희생됐는가!(열녀문을 세워 가문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남편따라 죽기를 강요했다거나,허벅다리를 잘라~등등의 효행과 관련한 얘기들..)
심청의 기구한 운명은 공간적으로 한국에서 중국본토를 거쳐 타이완, 싱가포르, 류쿠, 나가사키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온다.그 과정에서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가 시작된 1840년경(아편전쟁에서부터 동양이 서양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지금 시진핑이 그 옛날의 영광을 찾으려고 한다.)에서 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서 개항한 제물포에 이른다.시간적으로는 심청의 나이 15살부터 80살무렵까지이다.
심청이 일본의 명치유신을 겪는 과정은 자본주의가 팽창할 무렵이다. 제국주의,식민주의는 남성중심의 힘의 세계다. 여기에 대응할수 밖에 없는 심청은 세계의 폭력을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자존심(자존감)까지는 절대로 버리지 않고 참아낸다.또한, 심청이 팔려서 유곽생활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지만...그에게 절대로 복종하거나 의존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근대성에 눈뜨고, 자아를 발견한 심청의 새로운 모습(주체적 여성상)이 엿보인다. 이 소설은 간혹 성애장면의 정밀묘사가 조금은 거슬리기는 한다.(황 작가의 체험이 반영 되었을게 분명하다.) 그러나 리얼리즘과 현장성을 담보한 황석영 작가의 필력과 문체의 힘이고, 그의 매력이라고 해두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웅서사시.. 영웅은 태어날때 부터 다르다. 남성영웅들은 금알이나 금두꺼비에서 태어나듯 화려하지만, 심청은 다들 알다시피, 태어나자마자 죽은 어머니, 봉사 아버지..처절하고 비참한 환경이다. 팔려가서 갖은 고생을 한 이 영웅의 이야기 결말은 모든것을 받아 들이고,베푸는 삶이다. 모성으로의 회귀, 관음보살!
황석영 작가의 우리 구비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손님','바리데기'등에서 부터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제는 동아시아에까지 뻗어 간다. 황 작가의 현란한 야부리는 가공할 만하다. 오죽해서 문단에서 별명이 황 구라.(술자리에서 흥에 나면 혁대 풀어서 좌중을 휘어잡는 뱀장수 흉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한다)
우리 문화 원형질로서 한의 정서는 아마도 시베리아 바이칼에서 왔을 것이다. 동아시아 샤먼의 원류...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류큐(유구국,오키나와)에서의 굿하는 장면이다.(515쪽)
유타 여인이 청이의 두 팔을 잡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게 누구냐...내 딸, 내 딸이 아니냐?
청이는 그네의 손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굿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예 엄마 저 청이어요"
류큐 말도 중국 말도 아닌 낯선 조선 말이 튀어나왔지만 유타는 아랑곳없이 미야코 사투리의 류큐 말로 댓거리를 했다.
"내가 먼저 세상 떠나 저승에 가 있더니 내 딸이 만리타국 우치나에 산다 하여 용왕님의 덕을 빌어 예까지 왔구나. 나 떠난 뒤에 우리 딸아, 아버지 모시고 어찌 살다가 대륙을 건너 바다 나라에까지 왔느냐. 서럽고도 서럽구나."
진흙탕에 핀 연꽃 처럼,이 여자의 일생은 청초하면서도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