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수사대 2 - 진정한 협객의 귀환!
이충호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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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권 이야기 // 현대와 무림이 공존하는 세계, 무림계의 절대강호들인 오대신군이 차례차례 살해당하고, 모지후가 새로 전근한 마포서의 무림수사대는 이들의 호위를 맡게되지만, 속수무책으로 한번 더 당하게 된다. 궁극의 독을 사용한 것으로 보여지는 용의자는 오리무중인 상태.


1권을 덮으면서, 단순하게는 무림수사대의 본격적인 활약과 오대신군 연쇄살인사건의 내막을 궁금해하는게 앞서긴 하지만, 사실 궁극적으로 더 궁금한 부분은 1권에서 언뜻 보여진 지후와 그의 전 무림수사대 파트너인 이현의 과거였다. 지후가 무림수사대에 처음 배정받고 현과 파트너를 맺었지만 무언가 암울하고 슬퍼보였던 그 과거가 여기 2권에서 드러난다.


고교시절 무술에 대한 기본적인 '끼'가 충만했던 지후에게 현은 우연찮은 계기로 롤모델이 되어버렸다. 이후 지후는 무림수사대에 들어가고, 꿈꿔왔던대로 현의 파트너가 되어 그와 함께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며 전개되는 그들의 균열은 너무 안타까웠다. 지후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현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연우를 알게되고, 셋이서 행복한 시기를 갖지만, 지후는 현과 연우가 함께 투입되는 일에서 배제되는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선망하던 현의 파트너가 되었지만, 결국 그에게 파트너로써 인정/신뢰받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연우에게 품었던 서툰 애정, 결국 섞이지 못하고 신뢰받지 못했다는 괴로움.. 그것들이 지후 앞에 세운 벽은 결국 그들의 운명을 가르게 되는데...


이 지후의 비극적인 과거가 회상되는 반면 현재에는 여전히 신군에 대한 연쇄살인이 진행된다. 이번 타겟은 바로 성질급한 철혈문주, 그의 호위를 맡고있던 모지후는 결국 그 연쇄살인자가 현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현이 사용하는 독이 녹림방 서울채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첩보가 들어온다... 1권은 아직 서막에 불과해서인지 많은 것들이 베일에 쌓여있어서, 시원스럽고 흥미진진한 액션을 따라가며 궁금증이 커졌지만, 2권에서 펼쳐지는 지후, 현의 과거와 철혈문주 대 연쇄살인자 - 현의  대결은 액션 위에 서글픈 감정을 잘 내포시켰다. 


자신이 영웅처럼 선망했던 대상에게 겨우 가까이 가, 그의 파트너가 되었지만, 결국 그에게 파트너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나아가 자신의 존재가 신뢰받지 못했다는 괴로움은 굳이 이런 판타지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테니깐 말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그냥 운명과 인연으로 받아들이지만, 이곳에선 그것이 바로 삶을 옮아매는 크나큰 상처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괴로움과 질투로 인해서 이현과 연우를 사지로 내몰았다고 자책하며 박제된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지후가 죽은줄 알았던 현을 적으로 마주했을때 그 놀라움과 괴로운 감정이 여기 2권에 잘 드러나 있다.


더불어 성질급한 마초로 보여지지만 딸바보였던 철혈문주와 현의 대결 또한 액션과 감성이 잘 어우러져 있어, 지후의 과거와 함께 찡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3>에 이어서 그렇게 담배를 맛있게 그려낸 장면을 또 만나다니.. (직접 확인하시길) 그런 표현들에 있어서 아주 약간은.. 클래식한 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시원한 액션은 건재했고, 감정은 밀도있게 잘 와닿았다. 


현의 존재를 알게된 지후는 과연 이제 어떻게 헤쳐나갈지, 현의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녹림방은 독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펼쳐질 3권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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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수사대 1 - 진정한 협객의 귀환!
이충호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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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이르러 간지 좔좔 흐르는 무기들이 늘 우리의 주변 매체를 채움에도, 무술과 무협인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선보여진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현대무기에서 보여질 수 없는, 사람의 몸으로 펼치는 액션과 (지금은 거의 전설과 기록, 상상력으로만 남아있는) 여러 무술들에 대한 호기심과 선망을 계속해서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미 무협은 하나의 장르로써 기능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무협'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은 피씨방으로 그 바턴이 이어졌지만 한때 만화방에서 무협지를 쌓아두고 읽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협이란 곧 지루한 일상의 청량음료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내게 무협지에 대한 기억은 유년시절에 삼촌들이 보던, 그 만화방에서 빌려온 높이 쌓여진 무협지들로 시작한다. 지금 세대들에겐 무협이란 곧 중국/홍콩영화로 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텍스트가 보단 이미지로 통하는 것이 둘의 특징이자 공통점인 이유는, 텍스트를 통한 상상보다는 그 상상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길 바라는 욕구가 커서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현란한 무술과 빼어난 배경들은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 즐거움이 커질테니깐. 물론 이것은 텍스트로 존재하는 무협의 부족함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현대인들의 이미지 선호도를 말하고자 함이다(가령, 옹박을 텍스트로 읽었을때, 매니아들은 모르겟지만 대중들의 흥미는 뚝 떨어질테니깐. 게다가 내가 아는 예중엔 '치우천왕기' 같은 절대 반대의 예도 있고)



반가운 그 이름, 이충호의 <무림수사대>는 늘 우리가 상상하는 무협의 세계를 현대로 끌어온다. 몸에서 발산하는 현란한 액션과 검술은 그대로지만, 배경은 우리가 사는 빌딩 숲의 세계다. 검을 휘두르면 나뭇잎이 날리는 대신, 차가 반파되고 콘크리트 벽이 뚫린다. 물론 그것은 당연히 그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과 다름없이 과학수사가 범죄해결의 한 축이 된 현대에 무림고수들이 파벌을 형성하여 존재하고, 경찰청에는 무술과 검, 화살들을 사용하여 치안을 담당하는 '무림수사대'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 현대의 기술/과학이 과거의 판타지로 남겨둔 무술/검술들과 크로스 되어 펼치는 이야기는 일단 설정에서부터 구미를 당기기엔 충분하다. 




현대 무림의  세계의 맨 꼭대기, 지배층을 상징하는 오대신군 중 누군가가 목숨이 끊어지려는 직전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강호의 절대고수인 오대신군들이 차례차례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있던 것이다. 한편 경찰인 모지후는 그 껄렁한 행색으로 인해 마포경찰서로의 전근 첫날에 범인으로 붙잡혀 출근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더불어 자신을 범인으로 오인해 잡아들였던 백운에게 파트너로 배정되기까지.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어쨌든 마포서 무림수사대는 그 둘을 포함해 팀을 이루고, 두명이 살해되어 셋만 남은 신군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무림수사대 또한 결코 만만찮은 무림고수들로 편성되어있지만, 강호의 절대고수인 신군들에게 근접호위 할 수 없는 대우를 받는 틈에, 남아있던 세명의 신군중에 청운산인이 살해된다. 흑룡방주가 미리 덫으로 준비해둔 마교출신 일급살수들 또한 그 오대신군 연쇄살인 용의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경찰은 그가 사용하는 치명적인 독의 정체를 찾으며 수사를 진행하는데...


<무림수사대> 1권은 크게 오대신군 연쇄살인의 진행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마포경찰서 무림수사대의 편성, 모지후가 파트너에 대해서 굉장히 베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과거의 파편들로 이루어진다. 오대신군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는 큰 이야기속의 언뜻 언뜻 비치는 모지후의 과거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파트너에 대한 태도에서 유추되는 모지후의 과거에 대한 대략적인 짐작은 어렵지 않다. 그런 설정또한 지금껏 충분히 있어왔으니깐. 하지만 총알과 미사일등으로 꿰뚫어지는 여타의 현대액션물에 찌들어 있다가, 현대에서 펼쳐지는 날카로우면서도 절제된 무술액션들을 보고 있노라니 오래전에 잊었던 무협판타지의 로망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 같다. 




특히, 역시나 출판만화계 전성기 때의 고수답게, 4년전 웹툰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원시원한 컷구성과 과감한 액션, 의도적으로 컬러를 고르고, 극적인 명암의 대비를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스타일리쉬 함은 충분히 이 만화를 무협만화의 '고수'대열에 올리기에 충분하다. 거기다 과거를 상기시키면서도 어딘가 변화한 그의 그림체들도 반갑다.


판타지와 현대의 크로스오버 설정에서 풍겨지는, 둔탁한 콘크리트와 날카로운 충돌, 과감하고 시원한 액션이 때로는 절도있게 표현되는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한 <무림수사대> 아직 1권에서는 많은 것들이 베일에 쌓여있지만, 연쇄살인사건의 연유와 범인이 밝혀지고, 무림수사대가 본격적으로 행동을 펼쳐질 2권이 기대된다. 1권에서 맛봤던 재미도 분명 배가 되리라. 


"왜 우리 경찰들이 혼자 안 다니고 꼭 파트너와 함께 다니는지 모르지? 혼자서 달리면 빨리 지치거든. 생각보다 이 세상이 꽤 넓고 길거든."


모지후가 1권 극후반부에 백선배에게 듣는 저 얘기에서 보여지듯, 모지후의 변화 또한 중요한 키워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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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 도 - 울자, 때로는 너와 우리를 위해
윤미화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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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을 제목으로 차용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질문을 던져주는 책인지라, 이런 제목이 이 책의 성격을 정의하진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는 특별히 서평집이라는 인지를 하진 않고 있었지만, 이것은 분명 서평집이었다. 하지만 이 서평들은 한데 묶여 또 하나의 책으로 완성이 됐다.

 

서평집에 대한 서평을 쓰려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참 막막하다. 좀전까지 칼날같이 날카로운 문장도, 목화솜처럼 부드러운 문장도, 그리고 그것들을 그물처럼 이어놓은 글들을 만나고선, 이런 시장바닥에서 나뒹굴만한 같잖은 글을 쓰려니 말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서평들이 여기 <독과 도>의 저자처럼 여러갈래로 뻗어가며 각각의 사유를 확장시켜나감은 분명할테니, 낯을 두껍게 하고 짧은 글이나마 적어가야겠다.

 

이 책은 세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처음에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어쩐지 내면에 천착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 예상했건만, 실제로 책의 초입부터 역사와 사상의 인식, 정치와 사회에 관한 이야기가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두번째로는 자연과 함께 살아간 이들의 태도를 엿보고, 세번째에 이러서야 비로소 좀 더 내면 안쪽 깊숙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큰 얼개는 분명 이렇게 세가지로 나뉘어 있지만, 반듯하게 자른 면처럼 그렇진 않다. 가령 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을 가지고 이야기 한 부분에서 현 교육세태에 대한 것 대신 공부와 책에 대한 태도를 읽는다면, 그것은 뒤이어 다른 책을 언급한 부분에서도 통할 수 있다. 

 

국가, 애국, 국익, 공익, 진보라는 신념을 맹신할 때 신념은 걷잡을 수 없는 괴물이 된다. 게다가 이런 경우 괴물은 죽어도 괴물성은 쉽게 죽지 않는다. 괴물성이 진정성으로 둔갑하면 비로소 괴물은 부활한다. (257)

 

<독과 도>는 우리가 사는 사회로부터 시작해서, 이런 자본에 잠식된 사회를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가, 결국 자신 속의 이야기까지 들어가는 과정인데, 이 사이에서 다양한 책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것이 <독과 도>의 가장 큰 존재의 이유이며, 특성이다. 그리고 다양한 책들은 각각 저자의 손끝에서 다양한 관점과 담론으로 확장된다. 그 다양한 관점과 관심들이, 여럿이 모이고 모여 세가지 큰 줄기를 이루고, 결국 그것이 <독과 도>라는 하나의 강과 같은 책으로 흐르는 것이다.

 

오지 않을 사람인 줄 알면서도 기린처럼 목을 길게 내밀고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그는 오지 않지만, 다시는 웃는 얼굴로 내게 뛰어오지 않겠지만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요. 기다림은 우리들 사랑의 열병이겠지요. (282)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부분은 날카롭고 명쾌한 논리를 통해 풀어나간다. 사실, 정말로 여러책에서 에둘러 말하는 것들을 한방에 풀어주기도 했다. 이때에 이것은 하나의 서평이 아니라, 하나의 책이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저자인 자신의 생활을 많이 차용하며 자연으로 회기하는, 그러니깐 우리 인간의 존재를 좀먹는 아주 문제많은 체제들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간 이들의 이야기와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혼연일체 되어 표면적으론 자연에 대한 예찬이고, 안으로는 모든 존재들과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세번째에 이르러, 좀 더 안쪽으로 안쪽으로 향해, 이윽고 우리 마음을 이야기 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아마 이 문장으로 그 이유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외부 세계가 마치 무한히 복잡하고 힘든 것처럼 얘기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내적 여행의 미로에 비하면 가벼운 스텝 댄스에 불과하다!' (290) 그러니깐, 처음에는 좀 더 쉬운 접근법으로 시작해서 점차 내면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방법아니려나.

 

(...) 잘 조절된 자기애는 나를 소중히 여김으로써 타자 존엄성을 인지한다. 이럴 경우 우리는 사랑을 체험한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배려와 관용을 보이면서 자신조차 행복할 수 있다. (286)

 

잘 쓰여진 서평은 이미 그 책에 국한되지 않았다. 거의 늘 한가지가 아니라 몇가지 책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은, 하나의 책에서 나온 뿌리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튼튼한 나무처럼 우뚝 섰다. 서평이라고 해서 한 책의 곁다리로 생각해선 안된단 얘기다. 하나의 독립적인 책으로서 충분했다. 이미 책을 읽은 사람에겐 그 책이 가진 바를 토론하고 확장하고,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겐 책에 관한 이야기를 훨씬넘어 하나의 독립적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많은 책들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그것들이 누차 언급되고, 그 본문들이 인용되지만 나는 그것들이 그 해당책의 곁가지라고 생각들지 않았다. 내게 이 <독과 도>는 서평집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인문학 책이 되고, 에세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서평들의 모음이라 각각의 사유가 다른 책들처럼 길게 이어지진 못하고 약간은 단절됨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것들이 놀랍도록 밀접하게 이어지며, 언급된 많은 책들과 별도로, 단일한 주제로 통하게 됨을 목격했다. 그저 책의 형태이기 때문에 책이 아닌, 하나의 책으로서의 가치가 다른 것들에 비견하여 결코 떨어지지 않는단 얘기다.

 

칼바람 같은 글도, 카스테라 같이 달콤한 글이 책을 통한 이야기에서 나와 다시 책을 이루었다. 그 사이에서 정말로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났고, 또 기대한다. 읽는 다는 행위를 어떻게 기록하며 확장해야 하는지 한번 더 고민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흐르고 흘러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제의 길을 돌아보고 내일 갈 길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인연의 발자국을 찍는 일이다. 당신은 무슨 책과 어떤 인연을 맺는 여행을 할 것인가.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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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2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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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2막은, 1막에서 딸을 찾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이시경의 지난 과거가 펼쳐진다.


화담 선생의 아래서 수행을 하다가, 책을 훔치고 그 책의 비결을 이용해 사람들의 점을 봐주고 번 돈으로 제 어미와 동생의 묘를 찾아 제대로 묻어주려 했던 시경은 관가에 붙잡혀 민심을 흉흉하게 했단 죄목으로 온갖 고초를 겪다 결국 양쪽 눈을 다 실명위기에 놓이지만, 스승인 화담 선생의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소경이 될 뻔한 위기도 돌부처상을 도굴꾼으로부터 지키며 깨우침을 얻어, 한쪽 눈을 기적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시경은 자신을 가둔 포교에게 앙심을 품고있던 다른이들에 의해 옥이 불타면서, 죽은 자로 기록되게 된다. 1막에서 이시경을 죽였었다고 고백한 이야기의 내막이 풀리는 것이다.


후에 화담 선생이 죽은 후, 이시경은 화담선생의 제자였던 전우치에게서 거두어져 수행을 쌓게 된다. 같은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던 정희량은 반란을 꾀함에있어 은둔하는 전우치를 찾으려 이시경에게 딸을 해치겠다는 협박을 하고 전우치를 찾아내라 한다. 그로인해 이시경은 딸을 지켜내기 위해 온갖 허망한 소문을 퍼뜨려 스승을 불러내려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시경의 과거와 화담선생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아련한 느낌을 자아낸다.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고 거둔 스승,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재목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끝에서 결국 한쪽 눈을 잃고 깨우침을 얻은 이시경의 옛 과거는 항상 능글맞은 그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겉으로는 자신의 딸을 위해서 아무런 고민없이 스승을 불러내는 듯 보이지만, 그 또한 많은 수를 내다보고 있을 터. 아마도 스승을 찾는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반란이 구체적으로 그려질 것 같은 기대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이 교묘하게 맞물려 가는 이야기, 3막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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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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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대한, 우주에 대한 동경은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있어왔던 인간의 욕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신에 대한 존재 혹은 거처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하늘로 상징되어왔고, 온갖 자연현상 또한 하늘의 뜻으로 통했고, 천체의 변화를 통해서 인간의 앞날을 내다보려는 시도 또한 쭉 있어왔다. 그러므로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결국 하늘 아래 땅 위에 존재함에도 대부분 가 닿을 수 없는 하늘은 늘 어떤 기쁨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었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 지식의 발현을 통해서 우주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현대에도 여전히 하늘과 우주는 동경의 대상이고, 수많은 감성의 원천이다. 하늘과 우주를 떼어 구분할 수 없었던 시대를 지나, 항공기를 통해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관심은 우주라는 명칭을 향해 더 높게 뻗어나간다.


크건 작건 인간이라면 굳이 우주비행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밤하늘을 통해서 우주를 꿈꾸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나 수많은 꿈을 꾸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것들을 상상'하던 유년시절에 특히 그렇다.  어릴적에 항상 공상과학그림을 그리거나 하면 일순위가 우주이고 두번째가 바닷속이지 않을까? 그때의 기억이 남들과 특별날게 없는 것 같으니 차치해도, 이 <오몬 라>를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들은 (비교적) 최근의 기억들 이었다. (희안하게도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쪽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데, 현재까지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들이 모두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 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와 비교해서 지금보다 더 크게 우주를 동경했던 유년시절의 감성이 더 맞아떨어져서인지. 우주에서 벌어지는 2시간 내외의 이야기 (혹은 스타워즈 같은 시리즈 물과 같은 실사) 보다 그 태생부터 가공되어있는 애니메이션이 더 긴 시간, 큰 공간의 우주를 이야기 했기 때문인진 몰라도 그쪽 매체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몇해전엔 우주비행사였던 고산씨가 했던 짧은 강의를 들으며 우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것은 무엇이든, 내가 깊히 기억하는 것들은 모두가 인간이 펼치는 이야기를 하며, 개인의 내면을 농밀하게 묘사해낸 작품들 이었다. 하지만 그것들과 별개로 이 <오몬 라>가 무척 인상깊었던 이유는 단순히 매체의 형태의 차이가 주는 다른 느낌 뿐만 아니라, 결국 그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에 따른 차이였다. 이 작품은 무척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사이를 몽환적으로 풀어내고 있었고, 우리가 아는 우주에 관한 시대적인 부분과 개인의 본질적인 부분을 동시에 그려내면서,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더 높은 주제의식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하늘을 동경했던 오몬 은 유년시절에 미쪽 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고, 둘은 항공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우주비행을 위한 시험에 들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미쪽을 제외한 오몬 과 다른 동료들 만이 꿈꿔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우주비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오몬 라>를 쉽게 표현해보면 외면과 내면의 우주비행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오몬을 둘러싼 외면을 보면, 그는 미소간의 냉전시대에서 우주비행사의 꿈을 꾸었다. 꿈이란 것은 마치 개인의 전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았기도 했을 시대이다. 오몬과 미쪽, 혹은 그들과 같은 꿈을 꾸던 많은 이들은, 순수한 우주탐험의 목적보다는 미사일 개발에 대한 대외적 위협으로 사용되었던 우주에 대한 선전활동에 충분히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다. 아무것도 걸러지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상과 꿈이 아닌, 마치 그 둘이 유년시절에 모형우주선안의 사람을 빼냈다가 받은 벌-방독면을 쓰고선 산소와 공포에 의한 눈물로 자욱한 렌즈너머로 바라본 듯한 모습이었다.


항공학교에 들어간 그들은 전혀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우주비행을 목격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우주개발은 곧 미국과의 긴장관계와 연결된다. 그들은 그곳에 들어가 우주인이 아닌 군인으로써의 대우와 사상검증을 받으며, 우주를 위한 헌신이 아닌, 국가를 위한 헌신을 강요받는다. 이름을 남길수도 없는 비밀요원인 그들은 발들인 그곳에서 빠져나갈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최고 높이까지 날아가서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요원과 다를 바 없던 것이다. 그 시대의 소련은 그것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어떤 협약을 위해서 곰의 탈을 쓴 인물을 사냥감으로 둔갑시키고, 또 그의 희생을 통해서 그 협약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도 할 정도다. 우주뿐만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도, 이데올로기의 증명과 실천, 나아가 국가를 위해서 모든 이들이 어둠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밖에 없던 시대였던 것.


무엇보다 흥미롭고, 실제적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한, 지금까지도 음모론으로 늘 떠오르는 미국의 달착륙 과도 견줄만한, 오몬이 참여한 프로젝트의 '수동성'이다. 그것은 각각 분리되는 로켓면과 달에 착륙해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탐사기계에 모두 사람이 탑승하고선 그것들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곧 탑승자의 희생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잔인한 일이었다. 그것을 아는 최소한의 인원들을 제외한 모든 세계의 사람들이 그것들의 겉모양을 보고선, 소련의 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임또한 분명한 일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사실관계의 증명은 나로서는 아직 요원하다. 더 많은 정보의 검색을 요하기도 하고, 해설을 읽어보았지만 뾰족한 설명이 나와있지 않은 것 같다. 그도 당연한 것이 그것의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극비의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이것의 사실관계증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니, 작가가, 사상과 체제를 존속시켜야하는 국가와 그 속의 소수 대중들의 희생의 관계를 그려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떨어져나갈 부품속에 존재하는 죽음을 뒤집어쓴 대원들처럼 말이다.


마지막 부분인, 우주에서 오몬이 루노호뜨를 벗어나 마지막에 보게되는 환상 혹은 반대로 실제와도 같은, 조작된 것 같은 우주비행선과 발사 중계장면같은 경우를 보면 마치 그런 거짓과 같은 우주 비행을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오몬과 같은 비행사들을 세뇌시킨 것 같은 추측까지 해보게 만든다. 그런 세뇌에 현혹되서 실제 우주를 유영한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이전에 오몬이 보았던 그들의 관을 준비하듯 말이다. 나아가 그것은 사상의 허구, 더 나아가 그런 사상속에서 똬리를 틀 수밖에 없던 한 개인의 가련한 꿈의 허구와 껍데기, 거짓을 위한 일련의 규제와 현상과 희생이 대중이 믿는 진실을 만들어가는 시대적 현상에 대한 비꼼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우주비행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진실인줄 알았던 자동기계가 실은 인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그런 일련의 진실처럼 포장된 사회의 전망이나 이데올로기또한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겉껍데기에 불과함을, 그리고 그 안의 사람과 그 사람의 꿈또한 껍데기처럼 전락할 수 있음을 암시하지만, 그런 가련한 상황에서도 끝끝내 자신의 꿈을 자신의 우주를 탐험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길고긴 사상의 허상위의 선로를 벗어났을때 진정 자신의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는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오몬 라>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시대와 국가, 사상에 대한 테두리를 구축하지만 그 속에서 한 개인이 유년에서부터 가져온 꿈을 통한 존재에 대한 질문, 밖과 안의 충돌과 혼란으로 이루어지는 이 이야기는 사회주의국가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과 국가에서의 역할과 꿈에 대한 일정한 합의와 어긋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안에서 결국 외적으로는 승복한 듯 보이지만, 그 영혼은 결코 무릎꿇지않고 나아가 현실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의 그의 마지막 몸부림은, 끝끝내 그가 자신의 이상을 지배하려햇던 사상을 벗어나 영혼이 정말로 원했던, (그 사상의 지배에 있건 아니건 그 속에서 꿈꾸었던) 순수의 꿈을 계속 이어가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꿈에 대한 열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작가는, 한 시대와 사상, 국가가 어떻게 개인을 침범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꿈꾸는 개인이 어떻게 다시 자신안의 우주로 뻗어나가게 되는지 그려낸다. (사실상 오몬의 외적, 내적 성공에 대한 여부를 결말에 이르러서도 가타부타 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은 확실히, 촘촘하게 시대를 그려내며, 유연하고 몽환적으로 개인을 들여다보는 수작임에 틀림없다. 


모두의 우주에서 시작해 자신의 우주로 이야기를 뻗어나가며 결국 한 개인적 우주의 팽창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이 다시한번 우주와 인간에 대한 동시다발적 탐구열을 가져왔다. 문득,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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