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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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대한, 우주에 대한 동경은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있어왔던 인간의 욕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신에 대한 존재 혹은 거처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하늘로 상징되어왔고, 온갖 자연현상 또한 하늘의 뜻으로 통했고, 천체의 변화를 통해서 인간의 앞날을 내다보려는 시도 또한 쭉 있어왔다. 그러므로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결국 하늘 아래 땅 위에 존재함에도 대부분 가 닿을 수 없는 하늘은 늘 어떤 기쁨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었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 지식의 발현을 통해서 우주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현대에도 여전히 하늘과 우주는 동경의 대상이고, 수많은 감성의 원천이다. 하늘과 우주를 떼어 구분할 수 없었던 시대를 지나, 항공기를 통해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관심은 우주라는 명칭을 향해 더 높게 뻗어나간다.


크건 작건 인간이라면 굳이 우주비행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밤하늘을 통해서 우주를 꿈꾸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나 수많은 꿈을 꾸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것들을 상상'하던 유년시절에 특히 그렇다.  어릴적에 항상 공상과학그림을 그리거나 하면 일순위가 우주이고 두번째가 바닷속이지 않을까? 그때의 기억이 남들과 특별날게 없는 것 같으니 차치해도, 이 <오몬 라>를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들은 (비교적) 최근의 기억들 이었다. (희안하게도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쪽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데, 현재까지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들이 모두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 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와 비교해서 지금보다 더 크게 우주를 동경했던 유년시절의 감성이 더 맞아떨어져서인지. 우주에서 벌어지는 2시간 내외의 이야기 (혹은 스타워즈 같은 시리즈 물과 같은 실사) 보다 그 태생부터 가공되어있는 애니메이션이 더 긴 시간, 큰 공간의 우주를 이야기 했기 때문인진 몰라도 그쪽 매체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몇해전엔 우주비행사였던 고산씨가 했던 짧은 강의를 들으며 우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것은 무엇이든, 내가 깊히 기억하는 것들은 모두가 인간이 펼치는 이야기를 하며, 개인의 내면을 농밀하게 묘사해낸 작품들 이었다. 하지만 그것들과 별개로 이 <오몬 라>가 무척 인상깊었던 이유는 단순히 매체의 형태의 차이가 주는 다른 느낌 뿐만 아니라, 결국 그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에 따른 차이였다. 이 작품은 무척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사이를 몽환적으로 풀어내고 있었고, 우리가 아는 우주에 관한 시대적인 부분과 개인의 본질적인 부분을 동시에 그려내면서,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더 높은 주제의식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하늘을 동경했던 오몬 은 유년시절에 미쪽 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고, 둘은 항공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우주비행을 위한 시험에 들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미쪽을 제외한 오몬 과 다른 동료들 만이 꿈꿔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우주비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오몬 라>를 쉽게 표현해보면 외면과 내면의 우주비행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오몬을 둘러싼 외면을 보면, 그는 미소간의 냉전시대에서 우주비행사의 꿈을 꾸었다. 꿈이란 것은 마치 개인의 전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았기도 했을 시대이다. 오몬과 미쪽, 혹은 그들과 같은 꿈을 꾸던 많은 이들은, 순수한 우주탐험의 목적보다는 미사일 개발에 대한 대외적 위협으로 사용되었던 우주에 대한 선전활동에 충분히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다. 아무것도 걸러지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상과 꿈이 아닌, 마치 그 둘이 유년시절에 모형우주선안의 사람을 빼냈다가 받은 벌-방독면을 쓰고선 산소와 공포에 의한 눈물로 자욱한 렌즈너머로 바라본 듯한 모습이었다.


항공학교에 들어간 그들은 전혀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우주비행을 목격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우주개발은 곧 미국과의 긴장관계와 연결된다. 그들은 그곳에 들어가 우주인이 아닌 군인으로써의 대우와 사상검증을 받으며, 우주를 위한 헌신이 아닌, 국가를 위한 헌신을 강요받는다. 이름을 남길수도 없는 비밀요원인 그들은 발들인 그곳에서 빠져나갈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최고 높이까지 날아가서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요원과 다를 바 없던 것이다. 그 시대의 소련은 그것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어떤 협약을 위해서 곰의 탈을 쓴 인물을 사냥감으로 둔갑시키고, 또 그의 희생을 통해서 그 협약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도 할 정도다. 우주뿐만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도, 이데올로기의 증명과 실천, 나아가 국가를 위해서 모든 이들이 어둠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밖에 없던 시대였던 것.


무엇보다 흥미롭고, 실제적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한, 지금까지도 음모론으로 늘 떠오르는 미국의 달착륙 과도 견줄만한, 오몬이 참여한 프로젝트의 '수동성'이다. 그것은 각각 분리되는 로켓면과 달에 착륙해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탐사기계에 모두 사람이 탑승하고선 그것들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곧 탑승자의 희생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잔인한 일이었다. 그것을 아는 최소한의 인원들을 제외한 모든 세계의 사람들이 그것들의 겉모양을 보고선, 소련의 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임또한 분명한 일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사실관계의 증명은 나로서는 아직 요원하다. 더 많은 정보의 검색을 요하기도 하고, 해설을 읽어보았지만 뾰족한 설명이 나와있지 않은 것 같다. 그도 당연한 것이 그것의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극비의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이것의 사실관계증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니, 작가가, 사상과 체제를 존속시켜야하는 국가와 그 속의 소수 대중들의 희생의 관계를 그려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떨어져나갈 부품속에 존재하는 죽음을 뒤집어쓴 대원들처럼 말이다.


마지막 부분인, 우주에서 오몬이 루노호뜨를 벗어나 마지막에 보게되는 환상 혹은 반대로 실제와도 같은, 조작된 것 같은 우주비행선과 발사 중계장면같은 경우를 보면 마치 그런 거짓과 같은 우주 비행을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오몬과 같은 비행사들을 세뇌시킨 것 같은 추측까지 해보게 만든다. 그런 세뇌에 현혹되서 실제 우주를 유영한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이전에 오몬이 보았던 그들의 관을 준비하듯 말이다. 나아가 그것은 사상의 허구, 더 나아가 그런 사상속에서 똬리를 틀 수밖에 없던 한 개인의 가련한 꿈의 허구와 껍데기, 거짓을 위한 일련의 규제와 현상과 희생이 대중이 믿는 진실을 만들어가는 시대적 현상에 대한 비꼼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우주비행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진실인줄 알았던 자동기계가 실은 인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그런 일련의 진실처럼 포장된 사회의 전망이나 이데올로기또한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겉껍데기에 불과함을, 그리고 그 안의 사람과 그 사람의 꿈또한 껍데기처럼 전락할 수 있음을 암시하지만, 그런 가련한 상황에서도 끝끝내 자신의 꿈을 자신의 우주를 탐험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길고긴 사상의 허상위의 선로를 벗어났을때 진정 자신의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는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오몬 라>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시대와 국가, 사상에 대한 테두리를 구축하지만 그 속에서 한 개인이 유년에서부터 가져온 꿈을 통한 존재에 대한 질문, 밖과 안의 충돌과 혼란으로 이루어지는 이 이야기는 사회주의국가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과 국가에서의 역할과 꿈에 대한 일정한 합의와 어긋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안에서 결국 외적으로는 승복한 듯 보이지만, 그 영혼은 결코 무릎꿇지않고 나아가 현실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의 그의 마지막 몸부림은, 끝끝내 그가 자신의 이상을 지배하려햇던 사상을 벗어나 영혼이 정말로 원했던, (그 사상의 지배에 있건 아니건 그 속에서 꿈꾸었던) 순수의 꿈을 계속 이어가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꿈에 대한 열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작가는, 한 시대와 사상, 국가가 어떻게 개인을 침범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꿈꾸는 개인이 어떻게 다시 자신안의 우주로 뻗어나가게 되는지 그려낸다. (사실상 오몬의 외적, 내적 성공에 대한 여부를 결말에 이르러서도 가타부타 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은 확실히, 촘촘하게 시대를 그려내며, 유연하고 몽환적으로 개인을 들여다보는 수작임에 틀림없다. 


모두의 우주에서 시작해 자신의 우주로 이야기를 뻗어나가며 결국 한 개인적 우주의 팽창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이 다시한번 우주와 인간에 대한 동시다발적 탐구열을 가져왔다. 문득,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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