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내가 프랑스에 대해서 생각해봤던 내용들이다. 미
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의 억양이 고급스럽다고 생각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인들 발음을 촌스럽게 생각한다고 어떤 영화에
서 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프랑스인은 좀 거만하고 허위허
식이 강하며 자존심 강한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
다. 게다가 누구의 의견에 의하면 프랑스가 나라에 대한 자부
심이 강해서 약간은 세계속에서 유아독존인 면도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나도 프랑스에 대해서 영 모르는 편은 아니라고 생
각했지만 미미의 프랑스 일기 속에선 프랑스인의 전체적인 특
성과 개개인들의 특성들을 미미의 체험으로 정말 튼실하게 알
수 있었다. 호텔앞에서 긴 생머리 여자만 지나가면 휘파람을
불어대는 앵무새에서부터 시작해 파리 여행기까지 여러가지
에피소드는 웃음과 눈물과 감동의 연속이다. 어떤 부분은 같은
한국인으로써 정말 화가 나는 부분도 있었다.
가령, 미미가 지하철에서 만난 한 부부는 정말 인상도 좋았
고 미미가 짐도 함께 들어주었지만 잠깐 동안 친해졌다고 생각
했었던 부부는 미미에게 불한당 같은 프랑스인이 접근하자 바
로 고개를 숙이고 모른 채 했던 그 인심에서 또 이를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지하철 속 사람들 모두들 딴청을 피우며 무시하던
시선 속에서 미미가 느꼈을 그 분노와 외로움과 뒤섞인 그 밖
의 감정들을 미미와 같은 심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프랑스인들 속에서 외로움과 고독감, 우울증 가까운 심
정으로 견디던 미미에겐 그렇다고 늘 어두운 날들만 있지는 않
았다. 지하철에서 겪었던 그런 불한당과 괘씸한 사람들이 있었
는가 하면, 또 같은 지하철에선 바이올린 하나를 들고 사람들
에게 훌륭한 음악을 선물한 진정한 예술가를 통해 감동을 받기
도 했다. 프랑스를 욕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예술가
가 있었고 그 예술가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있으
며,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외국어를 잘 배우진 않지만 자기
나라에서 나는 것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이기 때
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미가 만났던 사람들 중엔 태권도를 좋아해서 한국을 좋아하
는 패트릭이라는 마음씨 푸근한 아저씨도 있다. 패트릭은 미미
가 프랑스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됐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이
친구는 미미가 낯가림을 하고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
격임에도 불구하고 만난지 얼마 안돼 미미를 편안하게 만든 친
구이다. 말이 많고 남자보다는 아줌마같은 성격과 미미의 눈에
는 약간 철이 덜 든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상
대방을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패트릭은 태권도 광이다.
이론만큼 실력은 따라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이지
않으며 아들을 통해 꿈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패트릭이 가족들
과 직접 개조한 트럭을 끌고 여행을 가는 바람에 약간 심심해
질 때 즈음 미미의 윗층에 새로운 이들이 이사를 온다. 그들의
귀엽지만 미운,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행각들 때문에 한동안
미미의 마음은 쉴 틈이 없다. 미미의 친구 카롤린도 빠뜨릴 수
없다. 카롤린은 정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이며 내가 이 책
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내 자신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 인물을 찾는다
면 그는 바로 이 카롤린이라는 여인이었다. 미미가 전혜린이라
는 한국 작가와 빗댄 이 여인은 자유분방한 사상과 인생의 모
든 것에 가능성을 두는,, 설령,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다른 무엇, 누군가를 위한 타협점을 절대 찾지 않는 그녀.. 그
밖의 여럿 카롤린의 성격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닮아 있었
다. 그래서 가장 정이 가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미에게 '너 마법을 믿니?' 라는 편지와 그림과 책, 연
두색의 마법을 부린 만년펜을 선물한 마르코, 생일날 층층별로
갖가지 다른 맛의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케잌을 선물
해준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줄리앙. 이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런 친구들을 둔 미미가 부러운 정도는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가짐으로써, 미미
가 돼본다. 미미의 프랑스 일기의 매력에서 또 한 가지 빼 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책 사이사이의 일러스트이다. 일러스트가
너무 귀엽고 포근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
분이 든다.
'미미의 프랑스 일기' 요즘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산
뜻하게 읽은 책이다. 미미가 스트레스를 풀면서 만들어 먹었던
바나나와 초코릿 요리 . 똑같이 만들어 먹고는 그녀의 글을 다
시 한 번 음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