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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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버드대학교 앞 케임브리지 광장.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창소리의 구절이 들려온다. '춘향이 비몽사몽간에 고개를 들어보니,...' 미국의 땅에선 이색적인 소리일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리를 감상한다. 그 사이에 유능한 변호사도 끼어 있다. '이경훈'. 그는 외국인들로 둘러싸여 있는 중심에서 한국의 소리를 구성지고 걸쭉하게 뽑아내는 후배 '수연'을 보고 있다.

 수연의 부탁으로 경훈은 심상치 않은 전화를 대신 받게 되고 우연찮게 그 전화를 건 상대방의 유언을 듣게 된다. 수연이라고 생각하고 유언을 남긴 남자의 이름은 '제럴드 현'. 그의 마지막 유언은 '박대통 비밀, 1026, 하우스'같은  알 수 없는 단어들이다.

 수연을 통해 제럴드 현에 대해 들은 경훈은 그녀 또한 그의 신상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연고자인 제럴드 현. 아무도 없는 불쌍한 노인이라 생각한 수연은 그를 위해 조촐한 장례식이나마 치뤄주고, 마치 착한 일에 대한 보답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노인의 엄청난 유산이 자신에게 남겨졌다는 것을 듣는다.

 아무 혈연관계도 아닌 수연에게 모든 유산을 남긴 것과 그가 기관으로부터 연금을 받는 다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훈은 제럴드 현이 죽기 전에 남긴 그 말들이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죽을 때조차 마치 살해되는 피해자가 증언을 남길때처럼 평범하지 않은 말들을 남긴 것인지 그 진상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수연 또한 잠깐이었지만 제럴드 현과의 짧은 만남들을 통해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고 그가 남긴 말들의 연유를 파악하고자 한다.

 시작에서 한국의 창소리가 나올 때부터 왠지 이 소설이 '한국, 한국인'에 대한 것일것이라고 예상됐다. 그리고 수연과 경훈이 점점 제럴드 현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그저 수박 겉핧기식으로만 알던 한국 역사의 순간들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평소에 늘 생각하지는 않는 내가 한국을 바라보던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항상 한국의 정치가들은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지 시대의 상황들을 똑똑하게 들여다보려고 한 적은 없다. 뉴스, 신문, 사설, 논평, 매체들. 수많은 읽을거리가 있지만 어느 하나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보단 자극적이고 음모론, 편파적인 시선이 많은 데다 모든 시선에는 회의론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는 서민은 생계만으로도 피곤한 이들이 많다. 골치 아프고 생각하면 분노가 이는 일들을 생각하다보면 스트레스 수치가 감당하기 힘드니 학자나 언론계, 작가들 같은 이런 계통과 늘 마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 괜히 열내가며 혈안이 되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이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또한 그 중의 일부이니까. 그런데 김진명작가가 은연중 글 속에서 자신의 많은 내면을 엿보였듯이 한국에서 애국자는 같은 한국인들에게 욕을 듣는다는 말처럼 한국은 애국자를 부드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 어느 땐데 민족주의자처럼 애국을 논할 것인가.. 란 다소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본문중에 이런 말이 있다.  

 '조국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서 그렇소. 비록 과학과 물질문명이 좀 뒤떨어졌다고 하나 왜 한국인들은 5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저력을 생각지 못하는가 말이오' - 218p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으면서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생각한 기회주의자들은 친일파가 되어 원래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굴었고 나중에 미국이 이득을 얻고자 한국에 접근하자 친미자들은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같이 굴었다. 그리고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해 같은 혈통인 한국인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랬으니 수치스런 역사의 상황들을 많이 겪을 수 밖에.. 란 생각을 많이 했던게 사실이다. 
 

  이런 부분적인 역사적 사실 때문에 한국인은 역사에 대해 강한 수치심을 가진다. 한국인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니까. 남들에게 당한 것보다 같은 가족에게 당하는 것이 더 참기 힘든 분노다. 한국에서 애국을 한 자 중에 잘 사는 사람이 많은지, 친일파, 친미파들 중에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지 비율을 따져봐도 자부심을 과연 혼자 붙들고 있을 것인가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달픔이다.

 자본주의 시대니까.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5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저력이란다. 쉽지 않은 것이다. 공룡들도 한때 살았다 사라지고는 이제 우리는 그들의 화석만 보고 그들을 짐작한다. 양육강식의 세계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어도 그들이 모성애가 있었는지, 동물적 감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과학적인 모습은 알 수 있으니 확정적으로 주장하지만 그들의 감성적문화는 알 수 없으니 아예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역사책이 아니라 과학책에 자주 등장하는 걸 보라. 근데 한국은 5천년을 이어오고 지금 계속 살아가고 있다. 신기할 뿐 아니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주 먼 훗날 한국이 과학책에서만 등장할지는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애국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에 나쁜 이념이 끼이면 나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 국가를 스스로 국민이 소홀히 한다면 그 국가가 과연 국가로 남을 수 있을까. 국가를 잃어 떠돌이처럼 떠도는 민족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거만하고 당당한 콧대높은 국가를 가진 강대국을 보라. 부러워할 것이 아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지 말고 다른 국가가 내 나라를 부러워하게끔 만드는 것. 이것만큼 자랑스러울 일이 있을까. 그러자면 먼저 나라안에 여러 개의 턱들에 가려져 있는 것을 걷어낼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제대로 볼 줄 알게만 만든다면 일반 시민들은 잘 따를 것이다. 원래부터 역사에 남은 수치스런 사건들은 일반 시민들보단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많이 일어났으니까.

 [1026]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얽힌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사실 한미문제, 북한과의 문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시제이기도 했다. 이번에 연평도 사건이 터지면서 일어난 문제들을 되짚어보면 한국의 이번 선택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란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된다.

 정세를 점점 악화시키고 불안한 상황을 만들어놓은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북한 또한 정치가들이 문제지 북한 시민들은 무슨 죈가. 또 핵개발. 왜 한국은 미국의 옛날 구식 무기를 사들여야 되고 거기에 국고를 낭비하고 스스로 한국을 지키지 못해야 한단 말일까.. 그리고 북한 정치가들은 왜 한국에 날을 세우는 걸까. 피가 섞인 사람들끼리 생긴 분노는 남보다 더 크니까.

 김진명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유난히 한국의 상황을 돌아다보게 되고 좀더 진지하게 한국인의 태도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자아인식처럼 자국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여러 가지 진실이 얽혀 있고 작가의 가치관의 많은 부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의 소설 속 알맹이 진실과 뜻들은 계속 마음에 남아 요즘 일어나는 국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접할 때마다 자꾸 회자되면서 생각해보게 만들것 같다. 가끔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악이 후에는 풍요를 낳기도 한다. 생각처럼 모두 선으로 이루어진 풍요들이 아닌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시대적 흐름은 단 한번의 선택으로 운명이 변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더 많은 한국인들이 국가적 일에 대해 옳은 길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고 스스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희망의 길 또한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 또한 그런 희망의 염원을 글로 남겼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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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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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이야기는 항상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실제라면 별 구분이 없는 것이 이야기 속에선 확실한 구분이 있는 것이다. 완전 모든 것이 허구일 수가 없다 이야기는. 그러자면 탄생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이 등장하지도 못할 테니까. 실존의 많은 것들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야기다. 아무리 판타지하고 말도 안된다고 말해도. 

 애니 극장판 '브레이브 스토리'를 나름 재밌게 봤던 터였는데 이 작품이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란다. 이 작가의 작품인 '가모우 저택사건'도 있긴 한데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약간 미스테리 스릴러같다. 추리소설, 시대소설, 로맨스, SF등 이 작가는 여러 장르의 작품을 써낸다고 한다. 이런 약력을 제대로 안 읽고 그냥 '영웅의 서'를 짐작할 땐 추리소설인줄 알았다.

 11살의 여자 아이 '유리코'가 친구들과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런 행복을 시기한 운명이 아주 간편하게 악몽으로 변절시킨 사건이 일어나 상황을 뒤바꾸어 놓으면서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간다. 유리코의 오빠는 동급생 두명을 칼로 찌르고 도망가고 칼에 찔린 아이 중 한명이 죽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실감도 나지 않는 유리코와 유리코의 가족들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고 충격에 휩싸인다.

 유리코는 이 일로 인해 몇일간 집에서 휴식한 뒤 학교를 가게 되고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태도가 틀려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멀쩡하던 거울이 땅에 떨어져 쩍.하고 갈라지는 것처럼 유리코의 마음도 갈라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살인자 동생이라 자신의 아이와 함께 나둘 수 없다는 학부모들과 동급생들의 차가운 시선에 이은 괴롭힘들. 유리코에겐 새로운 현실이 앞에 남은 것이다.

 그런 냉대한 현실에 머리가 몽롱해질만큼 기운이 빠진 유리코는 가장 친한 친구들마저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시린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멍하니 있거나 우는 엄마가 있고 아들을 기다리며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 아빠가 있다. 그리고 유리코는 착하고 모범적이며 인기 많은 오빠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안될 뿐더러 믿을 수 없지만 이미 일어난 일의 책임자 오빠에 대한 원망이 솟아오른다.

 오빠의 방에서 그의 물건들을 보며 기운이 빠져 있는 유리코는 설핏 잠에 들고 자신도 모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노랫말을 듣고 누군가 말을 건다. 아무도 없는 방. 그러나 계속 누군가의 소리가 들리고. 깜짝 놀란 유리코는 그것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기겁한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듯 책과 이야기하게 된 유리코는 그 책을 통해 '영웅'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자신이 부른 노랫말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기억속에 언젠가 본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린다. 두루마기를 걸친 한 남자가 있고 오빠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책은 그 자가 '황의를 입은 왕'이며 유리코의 오빠가 그 자의 그릇이 되었다는 말을 한다.  유리코는 오빠를 찾기 위해 책이 이끄는 대로 혹시 오빠가 있을 줄 모른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작은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인 별장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수많은 책들을 보게 된 유리코는 감탄할 것도 잠시, 책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현자는 유리코에게 영웅과 늑대, 올 캐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들을 파리의 고서점에서 사서 온 유리코의 할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유리코는 할아버지가 죽은 사실을 말해준다.


 현자는 유리코에게 선택권을 주며 오빠를 찾으려면 올 캐스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빠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와 현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 보장하지 못한다는 당부와 함께. 유리코는 올 캐스터가 되어 영웅을 찾으러 나서고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책은 마법으로 쥐로 변신해 그녀와 함께 한다.

 유리코는 쥐로 변신한 책 '아쥬'와 함께 오빠를 찾기 위해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의 모험을 시작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지금과 다른 세상에서 그녀는 그녀를 도와줄 '애시'와 무명승들의 세계에서 쫓겨난 무명승 '무'의 존재 '소라'와 함께 영웅을 찾으러 다닌다.

 그러면서 유리코는 오빠의 사건에 대한 놀라운 전말을 알게 되고 비록 오빠가 결과적으로 나쁜 짓은 했지만 원인은 그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슬퍼한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테두리에 판타지를 섞어놓은 '영웅의 서'는 설핏 보면 자아성장에 관한 이야기로만 생각될 수 있다.
 1권 135p
 '아무리 높은 탑이라도 계속 올라가면 언젠가는 정상이 나온다. 아무리 깊은 구멍이라도 비가 계속 내리면 언젠가는 가장자리까지 물이 차올라.'

 하지만 이야기들에 조금씩 의미를 부여해놓은 문장들을 보면 생각보다 진지한 성찰적인 내용이 많다.

1권 219p에 원래 세상에서의 죄업 때문에 수레바퀴를 미는 무명승이 나온다. 이런 문장과 함께.
  "'테두리'안의 어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세상의 끝을 고하는 천사의 나팔 소리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결국 세상에서 사람들이 일으키는 많은 일들은 어딘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사람 또한 신에게 심판을 받는 것처럼 심판의 날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치 이 부분은 '타로카드'들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타로카드는 결국 인간의 운명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에 점치는 것이다.

 그러니 죄를 지은 자는 어떤 식으로든 그 죄업을 갚을 때가 온다. 는 말이 '영웅의 서'에서는 이루어진다.

 또, 사회적 문제들이 있다. 왕따문제, 청소년범죄문제, 교육자들의 비양심적인 문제, 사건은 부각되어도 언제나 외면당하는 살인자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종종 일어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살인자들을 보면 사람들은 그 자가 죽어마땅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종 그 살인자를 가족으로 둔 가족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가족들은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 만으로 사회의 냉정한 시선과 불결하다는 멍에를 둘러써야 하는 일이 있다.

 이런 부조리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잊어선 안 될것이다.

 
 2권 85p -
 "이곳 헤이틀랜드는 이야기 속의 나라다. 가상의 세계다. 당연히 마법이 존재한다. 헤이틀랜드를 창조한 '자아내는 자'가 그렇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자 마자 '잉크하트'가 떠올랐다. 소리 내어 읽으면 책 속의 인물을 현실 세계로 불러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실버통 모'라는 사람이 작가가 만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판타지모험으로 그려낸 책이자 영화이다.

 머리속에 있는 여러 동화들과 이야기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영웅의 서'. 어쩌면 조금 어두운 이야기가 건네는 성찰적 메시지와 그런 분위기를 상쇄시키는 기능을 하는 판타지가 만나 독자들은 무겁지 않은 감상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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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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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대하여 -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거기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뭐니뭐니해도 일단 가장 기본적인 건 남녀의 이상적인 사랑이다. 남녀의 사랑이 성공적이라면 그 자녀들 또한 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올곧게 자라날 것이다. 적당한 물과 햇빛, 정성(여기에 사랑이 스며있다.)만 있다면 식물과 나무들은 풍성하게 자란다. 인간도 자연적인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

 

 

 몇일전에 본 영화에서 칠십이 넘은 노인과 젊은 남자가 나누는 대화가 생각난다.(정확한 대화내용은 아니지만 머리속에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겠다.)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할머닌 오래 사셨으니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 알지 않나요? 제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과 지혜를 가르쳐주세요." 호탕하게 한번 웃은 뒤 노인은 말한다. "난 칠십이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 옳은 길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진 못해. 아마 백살을 더 살아도 모를꺼야."

 

 

 '행복의 조건'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째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리어왕>에서 현명하고 성숙한 에드거는 리어왕에게 이렇게 조언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모름지기 견뎌야 한다. 이 세상을 떠날 때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나. 때가 무르익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254p


 견뎌야하고, 무르익는 것.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 지구가 생성되고 자연이 숨을 쉬기 시작하면서 지구에는 피가 돌기 시작했다. 피가 돌면서 여러 세포들이 깨어나고 사람들이 깨어났다. 사람들은 어떻게 지구가 생성되었는지도 모르고 깨자마자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환경과 싸워야 했지만 견뎌냈다. 그렇게 어리석음이 지혜롭게 될때까지 무르익으며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 본문과 현실을 연결시켜 봤을 때
  

 그렇다면 자식들에게 나이 든 부모를 돌볼 의무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리어왕의 비극도 따지고 보면 자식이 부모를 돌보아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던가. 건강, 적응, 그리고 생물학적 필요성에 비춰보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즉 젊은 사람들을 키우기 위해 나이 든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 경우는 아니라는 말이다. 노예제도나 가부장제가 사회적인 안정은 조성하지만 성인의 발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략.. 물론 중년에 이르면 부모를 돌보아야 한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부모를 도와야지, 자기 자신의 발전을 희생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보살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174p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외국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은 이 문제가 민감하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한국에는 부모공경은 곧 경제적 책임도 포함된다. 굳이 중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무능력한 부모나 문제가 있는 부모 대신 생활 전선에 나가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젊은이도 있다. 성년이 되는 순간 자기실현을 위해서 독립을 하는 사람보다는 경제적 짐부터 안고 출발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물론 반대로 자식이 성인이 되어 자유는 다 누리면서 육칠십이 넘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나같은 경우는 친척과 가족으로부터 제법 경제적 짐의 압박에 시달리는 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고집이 세고 이기적인 면이 있는 편이라 내 자신의 발전과 자기실현을 포기하지 않고 밀고 가는 중이다. 때론 이래서 죄책감과 성취감을 번갈아 느끼기도 한다. [행복의 조건]에서 174p를 발견했을 때 힘을 얻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 주변의 노인들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노년으로 갈수록 완고해지는 것은,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발전시켜 온 결과다. - 208p
 
 가끔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현명한 건 아니야. 40,50 먹어도 젊은 사람보다 못한 사람들이 천지야." 나도 그런 중년들을 몇몇 보았다. 책에서 보는 고상한 노인보다 괴팍하고 자기중심주의적인 별볼일 없이 그저 나이만 먹은 늙은이를 보는 게 흔하다면 흔한 일이다. 그러던 중에도 어쩌다 생각지도 못하게 지하철에서 영자 신문을 읽는 평범하지 않은 머리전체가 온통 하얗게 센 할아버지를 보며 놀라기도 한다. 50대 먹은 아줌마들은 자신은 이제 다 되었으니 뭘 시작해볼 엄두가 안난다고 하며 20대후반 30대 사람들에게 당신네들도 벌써 늦었다. 요새는 십대부터.라고 하며 나이에 대한 한탄을 하는데. [행복의 조건]의 이 부분을 보면 글쎄.. 조금은 조용해지지 않을까.

 


 모네는 76세 이후부터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벤저민 프랭클린은 78세에 2초점 안경을 발명했다. 휴스턴의 심장 전문의인 마이클 드베이키는 90세에도 신기술 특허권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76세 이후부터 그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작품들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는 94세에 계약기간이 6년인 녹음 계약서에 서명했고, 그랜드마 모지즈는 100살에도 그림을 그렸다. - 329p


 

 이 책을 쓴 저자의 서술을 읽어내려가면서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성인발달연구라는 것이 여러 연구자의 주관적 관점을 배제할 수 없는 일반적인 결론을 목표로 둔다는 점에서 1+1=2처럼 떨어지는 의심의 여지없는 논리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인간연구는 항상 예상을 넘어서는 일이나 지속적으로 연구가 쉽지 않은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객관적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미흡하다. 

 

 

  매슬로의 저서 [존재의 심리학]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매슬로가 열거한 자기실현하는 사람들의 특성 중 몇몇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더 크게는 인류와 맺는 관계에 관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결핍욕구를 안정적으로 만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실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즐길 수 있고 그들에게 감사할 수 있지만, 관습적인 의미에서 그들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또, 자기실현하는 유형의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자신의 내적인 본성을 왜곡하거나 억압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 라고 정의했다.
 


 분명 행복한 노년의 길에는 자기실현의 모습이 끼어 있지만 매슬로가 주장한 자기실현하는 유형의 인간은 조지 베일런트가 생각했던 행복의 조건에서벗어난 부분도 있다.

 

 

 

 굿하트는 실험자를 보는 연구자와 객관적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할 수 있는 지 좋은 예인것 같다.

 

 굿하트는 67세에 "대공황을 겪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런 경험 없이도 사회의 패배자, 이유없이 학대 받는 희생자들과 공감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라고 썼다. 그의 과거는 문제가 좀 있었지만, 그는 그 과거를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굿하트는 제때에 맞춰 답변서를 제출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어린 시절의 수동 공격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너무 많이 먹고 마셨으며 담배도 너무 많이 피우다가 결국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 역시 한편으로는 그의 사회적 행동 평가에 F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였다. 데이비트 굿하트는 70세에 사망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부고 기사에서 굿하트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누구보다 앞서 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흥미를 잃고 떠난 뒤에도 그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대의를 위해 헌신했다... 흑인과 백인들이 나란히 함께 번영하는 하나 된 미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 그는 지혜롭고 유능하며 지칠 줄 모르는 지도자였다." 한 굿하트 예찬자는 "굿하트는 기지의 마법사였다. 그는 온정, 사랑, 유머, 기지, 지혜로 나를 비롯한 수백명에게 깊은 우정을 선사했다. 수치심이라곤 모르는 마약중독자와 허세꾼들이 들끓는 이 어리석은 세상에, 그는 이름 없는 성인이었고 유머와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천사였다." - 391p

 

 특정 시간에 아주 우연히 어떤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인생 전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기 마련이다. 


  
 살아온 날이 얼마나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순간에 깨닫는 것만으로도 언제든지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으로 접어들 수 있었으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신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감동스런 부분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이 책에서 나온 일부 사례는 사랑은 고작 2년정도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16살에 처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몇년 뒤 결혼해 그후로 60년동안 사랑하면서 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만 보는 장면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오히려 일부분만을 보여주는 영화에 비해 60년의 시간동안 무르익은 사랑을 증명해준 노인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성인발달연구'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어쩌면 이미 연구로 결론을 낸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되는 주제일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스튜어트를 평가한 이 말은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이 가진 가치를 더욱더 빛내줄 것이라 생각한다.

 

 <스튜어트 리틀> - 스튜어트는, 무언가 찾는 게 있는 사람은 여행에서 서두르는 법이 없고 유년 시절과 작별을 고하지도 않는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유년시절은 이미 훌쩍 지나가버린 과거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훈훈하게 해주니까요. - 4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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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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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들을 위주로 나온 책은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컴퓨터와 친한 아이들이 책을 보기나 할까 싶은데, 그런 중에 어른의 시선으로 지은 책은 더더욱 보지 않을 듯했다. 지루하고 가르치려드는 책보단 아무래도 재밌고 보여지는 식의 책을 읽지 않을까. 친구와의 우정을 쌓는 것보다 유학 가서 미래를 위한 스펙을 쌓는 일이 더 중요시되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책을 통해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분단 문제와 조국에 대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생각됐다.
 

 

 사실, 그런 건 열권의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실전에서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겪는 것보다는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책을 읽지도 않고, 경험적인 일도 없다면 그 어떤 사회적 이슈든 문제의식을 가지기가 힘들것이고 고로, 자신의 일 밖에는 관심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만큼 시야도 좁아질 것이고 마음도 좁아질 것이다.

 

 

 지금 사회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 그런 사회 속에서의 개인들은 사회에 휩쓸려 극적인 이기주의적 행태가 만발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조차도 울타리가 되지 않고 오로지 구성원 개인들의 위주로 각자가 자기밖에 모르는 상태로 자라게끔 알게 모르게 의식이 주입되고 그들은 당연하게 그런 상태로 사회구성원이 된다.

 

 

 아이들도 자기만 알고 어른들도 자기만 안다. 모두 제각기 자기 이익에 맞게 모든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서 구성원끼리 뜻이 맞지 않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이런 다툼은 다소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최소로 마무리지어봤자 서로간의 단절이라는 사회적 문제점을 놓는다.

 

 

 모두가 자기만 알고 자기 이익에 맞게 자기만 편하게 살고, 자기만 알아달라고 할때, 이것이 집단이 된다면 무시무시한 것이다. 개별이기집단. 전혀 타인에 대한 손톱 만큼의 배려나 이해가 없다고 칠 때 사회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타인이 지옥이 될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사건들을 훑어보면 이외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과 소통 결여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혹여 가난해질까, 손해볼까 싶어 비참하기 싫어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겉만 번지리리한 돈이나 명예를 가질 미래의 직업을 구할 스펙 쌓기에 바빠 아무리 뭐라고 해도 타인과의 감성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귀에는 먼나라 남의 일처럼 들려버리는 수가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제로 친구를 사귀면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자신의 의견을 가지면서 고민해본다,고 하면 정말 그 아이는  멋진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1을 택할 때, 2를 택하는 용기와 2의 힘을 아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봉주르, 뚜르'에는 아버지의 일로 인해 프랑스의 파리에서 살다가 다시 '뚜르'라는 도시에 가서 살게 되는 봉주가 나온다. 봉주. 프랑스의 인삿말과 닮았다. 그만큼 왠지 프랑스에서의 봉주는 외국인이지만 낯설지가 않다. 이는 어쩌면 봉주에게는 의미 깊은 일을 겪게 될 도시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사온 첫날, 봉주는 자신의 방 책상에 비스듬하게 고개를 꺽어야만 보이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살아야 한다' 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이 나라에서 보는 한글은 왠지 낯설었고, 글귀가 풍기는 뉘앙스 또한 왠지 심상치 않

다고 생각한 봉주는 이 글을 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글을 쓴 사람을 찾기 위해 홀로 추리도 해보고 집주인 할아버지에게도 묻지만, 그 방에 한국인이 머물 가능성이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봉주는 새로운 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되는데, 노랑머리로 염색한 일본인 아이 토시를 만난다. 토시는 왠지 모르게 퉁명스럽고 봉주의 인사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봉주와 토시의 첫만남은 이랬다. 하지만 토시는 봉주를 처음 보았을 때 분명 반가웠을 것이다. 단지 개인사정 때문에 봉주와 가까워지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토시는 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는 토시는 삼촌이 책상위에 남긴 글귀처럼 조국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도 힘든 나이였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위태로워질수도 있기 때문에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는 비밀을 간직해야 하고 마음껏 사귀고 싶은 친구와 사귈수도 없다. 봉주가 과제로 한국에 대한 발표를 할때 프랑스 아이가 묻는다. 넌 북한과 남한 중 어디에서 온 거냐고. 봉주는 자신있게 자신은 남한에서 왔다고 말하며 북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상황이 못되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토시는 봉주의 말에 반박하며 얼마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실랑이를 한다. 딱딱하고 전투적인 현 분단상황에 대한 시선을 이 책에선 순수한 눈 그대로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보듯이 볼 수 있게 한다.

 

 

 너무 깊게 들어가서 자칫 무거워지지 않고 봉주와 토시의 잔잔한 우정이 시작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계속 만나진 못하지만 여운을 남긴 우정은 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주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고 썼다. 마침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이 선사해주는 재미와 잔잔한 감동, 진정성은 아이들에게만 주는 것은 아닌듯 싶다.
 


 '친구가 되려는 순간,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라는 문장처럼 마지막은 여운을 남기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단지 또다른 토시 같은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단현실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보니 덤덤한 기분이었다.

 

 

 안녕.. 봉주와 토시는 비록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만 이 책 제목의 어감처럼 인사를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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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세트 - 전3권 푸른숲 어린이 문학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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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림)

 

 모든 인공 지능 로봇과 컴퓨터에게는
 반드시 로봇의 3원칙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로봇의 3원칙은 아래와 같다.


 하나,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
 둘, 첫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셋, 첫째와 둘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 로봇에 관한 지구 연방법 제1조 1항

 

 인간은 열등하다. 피부는 부드럽고 근육은 연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활하다.. 책의 본문에 나온 말이다. 왠지 씁쓸한 진실인 듯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버금가는 한국의 SF판타지라는 타이틀을 걸고 당당하게 불모지의 한국의 장르소설에 도전한 [로봇의 별].

 

 해리포터 보다 재미있다고? 처음 이런 소개글을 보고 글쎄.. 과연 그럴까.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해리포터 소설을 읽으면서 성장했고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사랑한다. 미야자키 작품에는 자국의 전통에서 벗어난 세계관 사상이 스며있다. 그가 손댄 하나하나의 작품에 들어있는 주제와 소재의 관심사가 내가 원래 좋아했던 관심사였기도 한 터라 그의 작품이 내 속에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로봇의 별]이 이들 소설에 비교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심 이 작품이 민족주의적인 세계가 아니라 개방적 세계관으로 주제를 살려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책을 마지막으로 덮는 순간. 느낌을 표현하자면, 음. 나쁘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의 장르소설에서도 제법 풀도 나고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별]이 어린이소설이긴 하지만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어른이 읽어도 전혀 유치하지 않을 만큼 책속의 사건들이 어른인간의 비양심적인 면을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이 읽기에 조금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질문명을 비판하고 인간들의 너무나도 교활한 이기심을 비판하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스토리 말이다.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물을 것이다. '도대체 어른들은 왜 저렇게 싸우는 거예요?' '도대체 어른들은 왜 저러는 거예요?' '도대체 어른들은 왜?' 그렇지 않은가. 실제가 그런데 이야기속에서도 아이들이 이해하는 게 쉽나 어디.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인간이 아닌 나로, 아라, 네다. 세 로봇이다. 물론 소수의 인간은 좋은 사람들이라 착한 편에 속해 세 로봇을 돕는다. 나머지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무지하며 불쌍하고 사뭇 병적이고 또, 이기적이다. 이런 인간들이 자신이 신이라 착각하며 인간과 비슷하게 만든 창조물 로봇. 로봇의 3원칙에 따라 그들은 인간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에 관한 법에서 작가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던 듯.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으냐?' -65p

 

 백곰 할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로봇 나로는 자아에 대한 탐색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로봇의 세계를 변하게 하는데 첫번째 계기이다. 이 부분은 윌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영화에서 자아를 깨달은 한 로봇은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Who am I?' 이 순간 나로는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런 나로에게는 멋진 인간 엄마가 옆에 존재한다.

 

 "나로야, 무서운 건 당연해. 엄마도 무서워. 그렇지만 우리는 용감해. 왜인지 알아? 우리의 선택이 용감한 거니까. 두려움을 모르는 게 용기가 아니야. 그건 어리석은 것일 뿐이야. 진짜 용기는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거야. 어려워도, 힘들얻, 두려워도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나로야, 우린 용감해. 그러니까 가! 어서 가!" - 112p

 

 엄마가 불어주는 용기에 힘입어 나로는 로봇의 별로 향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사건은 벌어지고 1권은 나로의 이야기, 2권은 아라의 이야기, 3권은 네다의 이야기. 그러나 세권 모두에는 이 세 로봇의 이야기가 모두 연결된다. 이런 구성 자체가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희생,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 이들을 막아서는 방해물들. 이 모든 것들이 흥미진진했고 마치 꿈을 위해 한발짝 용기 있는 걸음을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그들 각자의 꿈(독자들 각자의 꿈)에 용기를 얻어 동참하게끔 만든다. 

 

 솔직히 그림에 대해 평가하면 너무 한국적으로 그린 것 같아 세계적 다양함이 조금 베여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조금더 모자란 점을 보완하면 [로봇의 별]이 만화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

 

 현실 세계의 여러가지 부분이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는 [로봇의 별]. '은발의 아기토'의 장면들과 비슷한 부분들도 떠오르게 한다. 아직 미야자키작품들 보다 해리포터 보다 더 낫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 나름대로의 탄탄한 구성과 재밌는 스토리는 나름대로의 매력으로 은은히 빛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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