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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하버드대학교 앞 케임브리지 광장.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창소리의 구절이 들려온다. '춘향이 비몽사몽간에 고개를 들어보니,...' 미국의 땅에선 이색적인 소리일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리를 감상한다. 그 사이에 유능한 변호사도 끼어 있다. '이경훈'. 그는 외국인들로 둘러싸여 있는 중심에서 한국의 소리를 구성지고 걸쭉하게 뽑아내는 후배 '수연'을 보고 있다.
수연의 부탁으로 경훈은 심상치 않은 전화를 대신 받게 되고 우연찮게 그 전화를 건 상대방의 유언을 듣게 된다. 수연이라고 생각하고 유언을 남긴 남자의 이름은 '제럴드 현'. 그의 마지막 유언은 '박대통 비밀, 1026, 하우스'같은 알 수 없는 단어들이다.
수연을 통해 제럴드 현에 대해 들은 경훈은 그녀 또한 그의 신상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연고자인 제럴드 현. 아무도 없는 불쌍한 노인이라 생각한 수연은 그를 위해 조촐한 장례식이나마 치뤄주고, 마치 착한 일에 대한 보답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노인의 엄청난 유산이 자신에게 남겨졌다는 것을 듣는다.
아무 혈연관계도 아닌 수연에게 모든 유산을 남긴 것과 그가 기관으로부터 연금을 받는 다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훈은 제럴드 현이 죽기 전에 남긴 그 말들이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죽을 때조차 마치 살해되는 피해자가 증언을 남길때처럼 평범하지 않은 말들을 남긴 것인지 그 진상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수연 또한 잠깐이었지만 제럴드 현과의 짧은 만남들을 통해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끼고 그가 남긴 말들의 연유를 파악하고자 한다.
시작에서 한국의 창소리가 나올 때부터 왠지 이 소설이 '한국, 한국인'에 대한 것일것이라고 예상됐다. 그리고 수연과 경훈이 점점 제럴드 현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그저 수박 겉핧기식으로만 알던 한국 역사의 순간들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평소에 늘 생각하지는 않는 내가 한국을 바라보던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항상 한국의 정치가들은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지 시대의 상황들을 똑똑하게 들여다보려고 한 적은 없다. 뉴스, 신문, 사설, 논평, 매체들. 수많은 읽을거리가 있지만 어느 하나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보단 자극적이고 음모론, 편파적인 시선이 많은 데다 모든 시선에는 회의론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는 서민은 생계만으로도 피곤한 이들이 많다. 골치 아프고 생각하면 분노가 이는 일들을 생각하다보면 스트레스 수치가 감당하기 힘드니 학자나 언론계, 작가들 같은 이런 계통과 늘 마주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 괜히 열내가며 혈안이 되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이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또한 그 중의 일부이니까. 그런데 김진명작가가 은연중 글 속에서 자신의 많은 내면을 엿보였듯이 한국에서 애국자는 같은 한국인들에게 욕을 듣는다는 말처럼 한국은 애국자를 부드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 어느 땐데 민족주의자처럼 애국을 논할 것인가.. 란 다소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본문중에 이런 말이 있다.
'조국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서 그렇소. 비록 과학과 물질문명이 좀 뒤떨어졌다고 하나 왜 한국인들은 5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저력을 생각지 못하는가 말이오' - 218p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으면서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생각한 기회주의자들은 친일파가 되어 원래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굴었고 나중에 미국이 이득을 얻고자 한국에 접근하자 친미자들은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같이 굴었다. 그리고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해 같은 혈통인 한국인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랬으니 수치스런 역사의 상황들을 많이 겪을 수 밖에.. 란 생각을 많이 했던게 사실이다.
이런 부분적인 역사적 사실 때문에 한국인은 역사에 대해 강한 수치심을 가진다. 한국인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니까. 남들에게 당한 것보다 같은 가족에게 당하는 것이 더 참기 힘든 분노다. 한국에서 애국을 한 자 중에 잘 사는 사람이 많은지, 친일파, 친미파들 중에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지 비율을 따져봐도 자부심을 과연 혼자 붙들고 있을 것인가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달픔이다.
자본주의 시대니까.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5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저력이란다. 쉽지 않은 것이다. 공룡들도 한때 살았다 사라지고는 이제 우리는 그들의 화석만 보고 그들을 짐작한다. 양육강식의 세계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어도 그들이 모성애가 있었는지, 동물적 감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과학적인 모습은 알 수 있으니 확정적으로 주장하지만 그들의 감성적문화는 알 수 없으니 아예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역사책이 아니라 과학책에 자주 등장하는 걸 보라. 근데 한국은 5천년을 이어오고 지금 계속 살아가고 있다. 신기할 뿐 아니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주 먼 훗날 한국이 과학책에서만 등장할지는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애국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에 나쁜 이념이 끼이면 나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 국가를 스스로 국민이 소홀히 한다면 그 국가가 과연 국가로 남을 수 있을까. 국가를 잃어 떠돌이처럼 떠도는 민족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거만하고 당당한 콧대높은 국가를 가진 강대국을 보라. 부러워할 것이 아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지 말고 다른 국가가 내 나라를 부러워하게끔 만드는 것. 이것만큼 자랑스러울 일이 있을까. 그러자면 먼저 나라안에 여러 개의 턱들에 가려져 있는 것을 걷어낼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제대로 볼 줄 알게만 만든다면 일반 시민들은 잘 따를 것이다. 원래부터 역사에 남은 수치스런 사건들은 일반 시민들보단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많이 일어났으니까.
[1026]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얽힌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사실 한미문제, 북한과의 문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시제이기도 했다. 이번에 연평도 사건이 터지면서 일어난 문제들을 되짚어보면 한국의 이번 선택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란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된다.
정세를 점점 악화시키고 불안한 상황을 만들어놓은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북한 또한 정치가들이 문제지 북한 시민들은 무슨 죈가. 또 핵개발. 왜 한국은 미국의 옛날 구식 무기를 사들여야 되고 거기에 국고를 낭비하고 스스로 한국을 지키지 못해야 한단 말일까.. 그리고 북한 정치가들은 왜 한국에 날을 세우는 걸까. 피가 섞인 사람들끼리 생긴 분노는 남보다 더 크니까.
김진명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유난히 한국의 상황을 돌아다보게 되고 좀더 진지하게 한국인의 태도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자아인식처럼 자국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여러 가지 진실이 얽혀 있고 작가의 가치관의 많은 부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의 소설 속 알맹이 진실과 뜻들은 계속 마음에 남아 요즘 일어나는 국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접할 때마다 자꾸 회자되면서 생각해보게 만들것 같다. 가끔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악이 후에는 풍요를 낳기도 한다. 생각처럼 모두 선으로 이루어진 풍요들이 아닌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시대적 흐름은 단 한번의 선택으로 운명이 변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더 많은 한국인들이 국가적 일에 대해 옳은 길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고 스스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희망의 길 또한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 또한 그런 희망의 염원을 글로 남겼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