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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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이야기는 항상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실제라면 별 구분이 없는 것이 이야기 속에선 확실한 구분이 있는 것이다. 완전 모든 것이 허구일 수가 없다 이야기는. 그러자면 탄생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이 등장하지도 못할 테니까. 실존의 많은 것들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야기다. 아무리 판타지하고 말도 안된다고 말해도. 

 애니 극장판 '브레이브 스토리'를 나름 재밌게 봤던 터였는데 이 작품이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란다. 이 작가의 작품인 '가모우 저택사건'도 있긴 한데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약간 미스테리 스릴러같다. 추리소설, 시대소설, 로맨스, SF등 이 작가는 여러 장르의 작품을 써낸다고 한다. 이런 약력을 제대로 안 읽고 그냥 '영웅의 서'를 짐작할 땐 추리소설인줄 알았다.

 11살의 여자 아이 '유리코'가 친구들과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런 행복을 시기한 운명이 아주 간편하게 악몽으로 변절시킨 사건이 일어나 상황을 뒤바꾸어 놓으면서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간다. 유리코의 오빠는 동급생 두명을 칼로 찌르고 도망가고 칼에 찔린 아이 중 한명이 죽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실감도 나지 않는 유리코와 유리코의 가족들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고 충격에 휩싸인다.

 유리코는 이 일로 인해 몇일간 집에서 휴식한 뒤 학교를 가게 되고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태도가 틀려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멀쩡하던 거울이 땅에 떨어져 쩍.하고 갈라지는 것처럼 유리코의 마음도 갈라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살인자 동생이라 자신의 아이와 함께 나둘 수 없다는 학부모들과 동급생들의 차가운 시선에 이은 괴롭힘들. 유리코에겐 새로운 현실이 앞에 남은 것이다.

 그런 냉대한 현실에 머리가 몽롱해질만큼 기운이 빠진 유리코는 가장 친한 친구들마저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시린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멍하니 있거나 우는 엄마가 있고 아들을 기다리며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 아빠가 있다. 그리고 유리코는 착하고 모범적이며 인기 많은 오빠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안될 뿐더러 믿을 수 없지만 이미 일어난 일의 책임자 오빠에 대한 원망이 솟아오른다.

 오빠의 방에서 그의 물건들을 보며 기운이 빠져 있는 유리코는 설핏 잠에 들고 자신도 모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노랫말을 듣고 누군가 말을 건다. 아무도 없는 방. 그러나 계속 누군가의 소리가 들리고. 깜짝 놀란 유리코는 그것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기겁한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듯 책과 이야기하게 된 유리코는 그 책을 통해 '영웅'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자신이 부른 노랫말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기억속에 언젠가 본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린다. 두루마기를 걸친 한 남자가 있고 오빠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책은 그 자가 '황의를 입은 왕'이며 유리코의 오빠가 그 자의 그릇이 되었다는 말을 한다.  유리코는 오빠를 찾기 위해 책이 이끄는 대로 혹시 오빠가 있을 줄 모른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작은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인 별장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수많은 책들을 보게 된 유리코는 감탄할 것도 잠시, 책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현자는 유리코에게 영웅과 늑대, 올 캐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들을 파리의 고서점에서 사서 온 유리코의 할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유리코는 할아버지가 죽은 사실을 말해준다.


 현자는 유리코에게 선택권을 주며 오빠를 찾으려면 올 캐스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빠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와 현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 보장하지 못한다는 당부와 함께. 유리코는 올 캐스터가 되어 영웅을 찾으러 나서고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책은 마법으로 쥐로 변신해 그녀와 함께 한다.

 유리코는 쥐로 변신한 책 '아쥬'와 함께 오빠를 찾기 위해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의 모험을 시작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지금과 다른 세상에서 그녀는 그녀를 도와줄 '애시'와 무명승들의 세계에서 쫓겨난 무명승 '무'의 존재 '소라'와 함께 영웅을 찾으러 다닌다.

 그러면서 유리코는 오빠의 사건에 대한 놀라운 전말을 알게 되고 비록 오빠가 결과적으로 나쁜 짓은 했지만 원인은 그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슬퍼한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테두리에 판타지를 섞어놓은 '영웅의 서'는 설핏 보면 자아성장에 관한 이야기로만 생각될 수 있다.
 1권 135p
 '아무리 높은 탑이라도 계속 올라가면 언젠가는 정상이 나온다. 아무리 깊은 구멍이라도 비가 계속 내리면 언젠가는 가장자리까지 물이 차올라.'

 하지만 이야기들에 조금씩 의미를 부여해놓은 문장들을 보면 생각보다 진지한 성찰적인 내용이 많다.

1권 219p에 원래 세상에서의 죄업 때문에 수레바퀴를 미는 무명승이 나온다. 이런 문장과 함께.
  "'테두리'안의 어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세상의 끝을 고하는 천사의 나팔 소리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결국 세상에서 사람들이 일으키는 많은 일들은 어딘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사람 또한 신에게 심판을 받는 것처럼 심판의 날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치 이 부분은 '타로카드'들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타로카드는 결국 인간의 운명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에 점치는 것이다.

 그러니 죄를 지은 자는 어떤 식으로든 그 죄업을 갚을 때가 온다. 는 말이 '영웅의 서'에서는 이루어진다.

 또, 사회적 문제들이 있다. 왕따문제, 청소년범죄문제, 교육자들의 비양심적인 문제, 사건은 부각되어도 언제나 외면당하는 살인자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종종 일어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살인자들을 보면 사람들은 그 자가 죽어마땅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종 그 살인자를 가족으로 둔 가족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가족들은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 만으로 사회의 냉정한 시선과 불결하다는 멍에를 둘러써야 하는 일이 있다.

 이런 부조리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잊어선 안 될것이다.

 
 2권 85p -
 "이곳 헤이틀랜드는 이야기 속의 나라다. 가상의 세계다. 당연히 마법이 존재한다. 헤이틀랜드를 창조한 '자아내는 자'가 그렇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자 마자 '잉크하트'가 떠올랐다. 소리 내어 읽으면 책 속의 인물을 현실 세계로 불러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실버통 모'라는 사람이 작가가 만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판타지모험으로 그려낸 책이자 영화이다.

 머리속에 있는 여러 동화들과 이야기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영웅의 서'. 어쩌면 조금 어두운 이야기가 건네는 성찰적 메시지와 그런 분위기를 상쇄시키는 기능을 하는 판타지가 만나 독자들은 무겁지 않은 감상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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