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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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미드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과학수사라는 분야까지 함께 인기가 높아졌다. 이전에는 미흡했던 증거 축출 능력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증거들을 모을 수 있는 방법들이 생긴 것이다. 발로 뛰고 직감에 의존하며 추리능력을 발휘해야 했던 옛날 방식에 비해 오늘날은 실험실에서 부검과 검식들을 통해 증거들을 찾아낸다. 이때 경찰의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거나 사인과 사망경위를 밝혀 인권을 도모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학자를 법의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갖가지 능력으로 증거들을 모으는 방식은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범죄를 근절하기 힘든 건 그만큼 범죄 또한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여주인공 '케이'가 말했듯이 증거들은 아무리 많아도 변호사들이 자기들의 이득에 맞춰 어떻게 해석하고 알리느냐에 따라 범죄에 대한 재판의 결과는 달라진다.
 

 

 이런 제도적 시스템 문제에 대한 견제로 법정과 관련된 사람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판단의 기회를 주는 배심원 제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그들을 어떤 절차에 따라 뽑는지 그리 똑똑하지 않는 사람만 모아놓은 오합지졸이라 오히려 재판의 질이 떨어진다. 이런 사실을 비판하는 속내가 케이의 말에서 느껴진다. 결국 증거는 많아도 변호사들이 누구 편에 서서 침발린 입으로 잘도 변호를 하면 그에 따라 증거가 해석되게 되어 버리고 배심원 또한 소신의 판단이 아닌 변호사의 말빨에 의해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케이가 여자가 선택하는 직업으론 생소한 법의관의 자리에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그녀가 맡게 되는 사건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현실감과 생생함을 지니고 있어 캐릭터에게 몰입하게 만든다. 얼마전에 끝난 '싸인'이라는 드라마에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법의관'을 소재로 했다.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실제로 한국엔 법의관이 19명밖에 되지 않고 여자 법의관은 1명이라고 하는 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직업 자체가 한국에선 생소해 보인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법의관들은 외국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법의관의 모습보다 활동하는 범위가 넓은 것 같다. 퍼트리샤 콘웰의 [법의관]에선 그녀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의학적인 소견 말고는 어느 하나에도 참견하지 않는 것에 비해 '싸인'에 등장하는 법의관, 특히 '박신양'과 '김아중'은 수사까지 하고 바디에 있는 증거가 아닌 범인이 가진 증거들을 직접 찾으러 다닌다. 위험을 무릎쓰고 범인과 직접 대면까지 하고 말이다.

 

 

 콘웰의 [법의관]에서 주인공 케이는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불려가 자기가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에 비해 '싸인'의 법의관으로 나오는 박신양과 김아중은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한다. 형사로 나오는 '정겨운'은 정작 별로 하는 일이 없고. 한국에선 법의관들이 정말 드라마처럼 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일까?

 

 

 콘웰의 [법의관]에선 확실히 수사는 경찰청 반장 '마리노'가 다 하고 사건의 치정관계 또한 그가 조사한뒤 케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일러주는 식이다. 케이가 연쇄 살인범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당할 때도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바로 눈치 빠른 경찰 '마리노'였다. 마리노가 그다지 호감가는 스타일은 아니라 법의관인 케이와는 사건 때문에 언제나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늘 껄끄러운 관계다. 개인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그러나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여러 개의 끊어진 실들을 연결하고 매듭짓는 건 마리노였다.

 

 

 케이는 사건에 얽힌 실 몇가닥을 지니고 있을 뿐, 거기까지가 그녀의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래서 확실히 콘웰의 [법의관]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주어진 역할과 임무가 있고 거기에 맞게 제 전문성을 발휘하기에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헛점을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된다. 억지로 이 사람이 이렇게 해야 되고 저기에 있어야 되고 왜 저 사람이 저렇게 해야 되는지 아귀가 안 맞아들어간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에 비해 '싸인'은 왜 국회의원 딸이 저기에 있고, 저 여잔 제 정신인가, 몇번의 연쇄 살인에도 잘도 피해가던 살인범은 뜬금없이 하필 검사 머리를 때려야 했었고 이 살인범이 쓴 게임시나리오를 박신양은 그렇게 몇일동안까지나 읽을 정도로 긴 구성인가 등등 여러 가지 어설픈 부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막방에선 서프라이즈한 편집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 미드가 여러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면, 한국 드라마는 한두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 한 두명이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게 아닐까.
 
 콘웰의 [법의관]은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책이 두꺼운 편인데 그다지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슬슬 읽혀진다. 법의관이라는 전문적 분야라고 해서 어렵다거나 상투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몇가지 전문적 의학적 사실들은 더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인 흥미분야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상세하게 알고 있는 콘웰이 만들어낸 소설이라 그런지 주인공 '케이'가 콘웰과 외형적으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형적으론 내가 그녀를 잘 알지 못하기에 판단할 순 없고. 그래서 어딘가에 케이라는 인물이 정말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이 나오는 다음 편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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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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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영웅열전]에는 19명의 영웅들이 나온다. 주로 영웅이라 함은 한 나라를 지키는 강한 싸움꾼과 비슷한 이미지인데 따지고보면 영웅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사람도 많이 나온다. 특히 2권에는 주로 철학자, 웅변가들이 많이 나오는데 '디오게네스' 가 그 속에 낀 것이 제일 인상 깊다. 


 
 비록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가 '나도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했을지언정, 디오게네스의 영웅적 이미지로써가 아닌 조의조식하는 자신의 삶에서 또한 지조를 잃지 않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 같은 삶'을 산 철학자들이라는 뜻으로 '퀴니코스 철학자'로 불리는 디오게네스는 형편이 구차스러워 값싼 푸성귀를 구해 깨끗이 씻어 먹고는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본 유복한 친구 아리스티포스가 지나가다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고개 수그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을..."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조의조식하는 법을 조금만 알면 고개를 숙이고 알랑방귀는 뀌지 않아도 되는 것을..." 91p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하기 힘든 것은 기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절대 긍정에 이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절대부정이 그들의 기행의 긍정적 의미인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가 바로 앞에 인사를 하러 와도 태양을 가린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부와 명예는 잃을 게 많으니 자유를 누릴 순 없지만 자신은 그런 것 대신 자유를 누리는 걸 택한다는 디오게네스는 촌철살인적인 짧은 명구를 남기며 역사 속에 강한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파르타. 라고 하면 왠지 우락부락하고 무식이 좔좔 흐르는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이외의 스파르타를 책 속에서 볼 수 있다. 스파르타하면 뤼쿠르고스가 빠질 수 없다. 그는 교육의 이점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신체단련을 위해 사람들을 강하게 훈련시켰다. 스파르타인들은 촌철살인의 짧은 문구를 즐겨 썼고 횡성수설하는 긴 말보다는 침묵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체육경기에서는 알몸으로 참가해야 했고 후에는 여성 또한 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참가해야 했다. 그들은 알몸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영화 '300'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아이를 두 세명 놓을 때까지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아이를 놓기 위해 성관계를 하는 것이지 관능적 사랑은 오히려 해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파르타인들은 스파르타에는 간통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스파르타의 헬레나라고 해서 헬레나가 스파르타인이었나.. 하고 조금 헷갈렸는데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정략결혼 상대자였다는 걸 알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헬레나는 스파르타인이 아니었기에 파리스와 눈이 맞았다. 스파르타인은 간통이 있을 시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답은 바로 트로이의 운명을 보면 알수가 있을 것 같다.    

 

 

 금욕적이고 침묵적이며 수사학이 발달되었지만 향략적 예술을 즐기지 않은 민족이 스파르타다. 그러다보니 후손들이 그들이 남긴 유적을 볼 때 다른 선대들이 남긴 문화유산보단 많이 심심한게 사실이다.

 

 

 영웅이미지보다는 철학자 이미지에 어울리는 퓌타고라스는 윤회설을 믿었다. 그는 육체는 한번 없어지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나 영혼은 영혼하며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가 거기에 다시 거한다고 했다. 따라서 살생은 살인이나 다를 바가 없으므로 채식주의를 선호했다. 퓌타고라스는 서아시아,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동방박사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바가 많을 것이다. 인도를 비롯한 동방에서 불교사상이 유행했고 불교사상에서 또한 윤회설과 살생을 금하는 항목이 있다. 이는 퓌타고라스를 통해 서양사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퓌타고라스의 그리스 이름이 '퓌타 고라스', 영어 이름은 '파이테거래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붓다 구루스'인 것을 봐도 왠지 심상치 않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알렉산드로스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서양문화를 동양에, 동양문화를 서양문화에 서로 융합시켜 헬레니즘 문화가 발전한다. 이 문화 다음으로 헤브라이즘 문화가 뒤에 등장하는데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서술은 끝마치지 못한 상태다. 어쨌든 헬레니즘 문화를 통해 서양과 동양에서는 여러가지 중복되는 설화와 전설, 신화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 역사를 중심으로 회자되는 에피소드마다 그와 비슷한 일례의 동양 역사의 중심 인물의 에피소드를 곁들이기도 한다. 


 

 탈레스의 일화는 1권의 솔론의 이야기를 담은 164,165p와 2권의 탈레스의 이야기를 담은 71,72p에 중복 에피소드가 나와 있다.

 

 독신으로 살던 텔레스가 친구인 솔론이 방문해 결혼을 할 것을 종용하자, 하인을 시켜 솔론의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꾸미게 한다. 이말이 거짓인 줄 몰랐던 솔론은 망연자실해 울부짖지만 곧 탈레스를 통해 진실을 전해 듣게 된다. 탈레스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기르지 않는 까닭은 자식의 죽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자식이 있는 한은 항상 염려와 걱정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탈레스는 알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늘을 보며 사유에 잠기며 걷다 물에 빠진 에피소드가 있었던 만큼 탈레스 또한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피라미드에 올라가지도 않고 그 길이를 잰 것으로 유명하다. 막대기를 꽂아 그림자의 길이를 잰 후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보고 피라미드의 길이를 알아낸 것이다.

 

 

 책 속 인물들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그라쿠스 형제였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다 귀족과 보수 원로들에게 맞아 죽었다. 소수인 그들보다 국민들이 다수인데도 그 당시 국민은 그다지 자기 의사를 내비치고 그 의사를 반영하는 사람을 지지할만큼 의지나 의식이 깨어 있지 않았다. 그라쿠스 형제를 다수 국민들이 몸소 지지하고 들고 일어났더라면 자신들도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었을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최고의 보물이 아이들이라고 말하던 그라쿠스 형제의 현명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코르넬리아' 또한 이 시대에 흔하지 않는 훌륭한 여성이자 어머니로 후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 밖에 아리스테이데스, 한니발과 스키피오, 카이사르, 퓌로스 같은 영웅들과 철학자, 현자에 가까운 소크라테스, 플라톤, 키케로, 포키온,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사랑한 남자 알키비아데스가 나온다.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와 내통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자 아테나이인들은 페리클레스를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그를 더욱 신용하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페리클레스가 그런 공작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바로 적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우리가 역사를, 혹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까닭은 이로써 자명해진다'고 말한다.

 

 

 아직도 역사를 재현하는 사태들이 많이 일어난다. 지금 일어나는 어떤 일들을 보면 역사에 일어난 일과 비슷한 사례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는 커녕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는 그저 재미와 흥미거리가 아닌 때로는 교훈과 지혜의 역할도 한다는 것을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료와 그림들로 보는 책을 만들고자 했던 작가가 심장마비로 일찍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완전하게 완성되지 못한 책을 덮을 때쯤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후속작도 궁금해짐은 더할 나위 없다. 운명의 매정함이 얄미워진다. 그러나 작가님의 팬으로써 삼가 고인의 명복을 차분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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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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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서 태어난 악마가 누군가를 쫓는다. 도망치는 남자는 갓난 쌍둥이 아이 두명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뛴다. 쌍둥이 아이들은 한 중년의 여성에게 맡겨진다. 이 중년 여성에게서 간신히 목숨을 구원 받은 쌍둥이에게는 가혹한 운명의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야 이 여성은 결국 이 쌍둥이들을 위해서 이 둘을 생이별을 시킬 수 밖에 없게 된다.

 

 한명은 이 여성의 손에, 다른 한명은 캘커타의 고아원 원장의 손에 키워지게 된다. 여성의 손에 키워진 소녀의 이름은 쉬어, 고아원에서 자라 원장이 붙여준 이름을 가진 소년은 벤. 벤은 인자한 원장 ’카터’의 보호 아래에서 고아원 친구들 이언, 시라지, 이소벨, 마이클, 로샨, 세스와 어울리며 ’차우바 소사이어티’라는 우정으로 똘똘 뭉친 클럽을 결성하고 아지트를 만들어 그 곳을 ’한밤의 궁전’이라고 이름 붙인다.

 

 소설의 진행은 바로 이 한밤의 궁전에서의 추억으로 미래의 이언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소설의 중심부는 벤과 쉬어의 불행한 운명과 그에 맞닿은 슬픈 과거의 이야기이다.

 

  성장소설을 청소년뿐만 아닌 성인도 읽을 수 있게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왜 벤과 쉬어가 결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결말을 만들었을까. 이 소설은 따지고보면 해피엔딩이 아니다. Bad ending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결말은 시원스럽지 않다.

 

 쉬어는 죽음과 키스하고 벤의 행방은 알 수 없다. 게다가 어릴때 비밀결사대를 만들어 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일이 무슨 일이건 간에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고 서로를 지켜주었던 죽마고우들은 흩어져서 제각각 살다가 죽거나, 아니면 벤과 쉬어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 직후부터 현재까지 만난 적 없이 그저 소식으로만 들을 뿐이다.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런데 쉬어와 벤의 아버지가 죽은 뒤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죽어 증오의 껍데기를 둘러싸고 다시 부활하는 경우처럼 어떤 사실은 신화적이다. 불사조의 디도 여신을 언급하는 것 또한 불사조 전설 같은 환상적인 요소와 오묘하게 엮여 있다. 그런 와중에 과거의 진실과 맞닿은 벤이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즈음이면, 충격적인 현실 때문에 혼돈에 빠지게 만든다. 쉬어는 이런 진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어떤 진실은 아예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끝까지 모르는 채로 죽음을 맞게 된다. 
 

 

 어릴 땐 봐도 제대로 몰랐던 것들을 의식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사실과 맞닿게 될때의 기분이란 건 가히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성장하면서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받는 영향과 반응은 벤의 성장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금 아쉬운 건 벤의 경우는 벤이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안타까웠다. 악마의 화신이 된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벤은 약한 모습을 보여줄때의 아버지를 보며 연민을 느낀다.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을래야 무심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조금 옥의 티라면 악마의 화신이 된 아버지가 본래의 자신의 모습 또한 지니고 있었다는 게 조금 엉성한 것 같기도 하다.

 

 죽음에서 증오의 탈만 쓰고 다시 살아난 아버지의 모습에는 비정하고 나쁘다 할지라도 옛날 사랑했던 자신의 아내를 아직도 애틋해하고 마지막엔 벤에게 자신을 해방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 또한 완전 악마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니까 악마의 껍질로 싸여 있어도 예전의 따뜻한 감정은 남아있다. 결국 악마보다는 불안정한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점이 어떤 비극적인 현실 속에 덩그러니 던져진 가족의 비참한 모습을 묘사한 것 같기도 했다. ’한밤의 궁전’에서 벤은 절친한 친구들과 우정동맹을 맺었고 16세가 되서야 처음 만난 또래, 사실은 쌍둥이인 쉬어를 만나며 한 가족사, 나아가 과거의 역사 속의 운명과 만나며 어쩌면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를 미래의 불행을 겪게 된다. 하지만 벤은 어쨌든 현실을 직시하고 도망가지 않았다. 이언이 말한 것처럼 최고의 브레인이었고, 용기 또한 남달랐다.


  보통 소설의 결말에서 모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한밤의 궁전]에서는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식이다. 벤은 행방불명이고. 결말이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할 것이다..라는 암시와 여운이 느껴진다.

 

 제목만 들어보면, 동화같은 환상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야기로 들어가면 전혀 느낌이 다르다. 활발하고 명랑했다가도 어둡고 침침하며 무섭고 섬찟하기도 하다. lahawaj 라하와즈는 벤이 태어날 때 그의 엄마가 붙여준 이름이다. 이 이름을 뒤집으면 jawahal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 이름은 바로 벤과 쉬어의 아버지가 불사조 처럼 악마로 부활했을 때 지닌 이름이었다. 왠지 의미심장하다.  

 ’천사의 게임’이라는 소설의 작가가 [한밤의 궁전]의 작가이기도 한데, 작품을 읽다보면 느낌이 비슷한 경우의 상황이 종종 등장한다.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수수께끼와 책들 말이다.

 

’천사의 게임’에선 한 번도 쓴 적 없는 책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으며 책과 연관이 깊어지고 [한밤의 궁전]에선 벤의 아버지가 과거에 작가였으며 ’시바의 눈물’이라는 책을 쓴 적도 있다라는 장면이 나온다. ’시바의 눈물’이 ’세사르 마요르키’ 작가의 동명소설도 있었기 때문에 헷갈렸는데 한밤의 궁전에서 나온 ’시바의 눈물’의 내용은 ’세사르 마요르키’의 소설 ’시바의 눈물’과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신기한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과 세사르 마요르키는 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루이스 사폰이 세사르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그녀의 소설 제목을 자신의 작품 속에 언급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용은 다르지만. 암튼 이 점은 궁금한 채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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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진영화 옮김 / 책만드는집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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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물도 감정이 있다? 없다?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무언의 의사소통이나 분위기만으로도 그 속의 감정을 읽어낼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이라고 한다. 고양이의 눈을 마주보고 천천히 눈을 깜박였을때 고양이 또한 눈을 깜박이면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주겠다는 의사표시라고도 한다. 고양이 눈 인사법이 정말 인상 깊었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는 평소 내가 생각했던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보다 훨씬 고등적인 상념을 즐기는 고양이가 나온다.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건 사람들이 이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는 것이고 2세 밖에 안됐는데도 불구하고 물독에 빠져 너무 빨리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내가 키우는 베타 물고기는 벌써 3년동안 장수하며 팔팔한데 말이다. 물고기보다도 짧은 생이라니. 인간들을 상세하고 예리하게 관찰한 이름 없는 천재 고양이의 요절이 하필이면 어이없고 허무하게도 물독에서의 익사라. 이로써 고양이가 말하는 인간들의 모습들, 특히 고양이의 주인 구샤미 선생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구샤미 선생이 소세키 작가의 모습을 희화화 했다고 하나 사실 고양이의 사색을 들어봐도 역시 소세키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고양이는 작품 속 인물들이 이야기 하는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기도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가지 사사로운 이야기들. 그다지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말들을 들으며 고양이는 그런 인간들을 낮추어 생각한다. 비록 자신은 신체적으로 약해빠진 고양이로 태어났을지로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행태와 견식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샤미 선생의 주위로 모여드는 사람과의 매일같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많은 학자들과 그리스 영웅들, 작가, 어려운 어구들이 등장하며 말을 꼬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각주를 읽어보는 것도 지칠만큼이나 이 책은 무슨 소설이 아니라 인문서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졸면서도 어려운 책 위에다 얼굴을 처박고 있는 이상에는, 학자나 작가의 동류로 간주해야 한다. 그렇다면 주인의 머리가 벗겨지지 않은 것은 아직 벗겨질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며, 머지않아 벗겨지리라는 게 곧 이 머리 위에 닥칠 운명인 것이다' - 315p

 

 

 소소한 사건임에도 문자를 섞어 안주인이 알아들기 힘들게 말하면서 학자인 티를 내는 구샤미를 보며 고양이는 때때로 비웃기도 하나 그럼에도 다른 가족들에게 천덕꾸러기 신세인 자신을 그나마 거둬준 인성을 보고는 냉정한 시선을 흘기지는 않는다. 마음껏 구샤미 선생을 한심스러워하면서도 그 속에는 정이 있는 것이다. 반면에 주인에게 자신이 잡은 쥐도 뺏기고 몽둥이로 맞았는지 다리까지 절룩이게 된 검둥이 고양이를 보며 그래도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일단 자유로운 영혼으로써 뭐든 생각할 수 있고 굳이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집에 도둑이 들었으나 지켜보기만 했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한 고양이는 안주인으로부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고양이라는 소리를 듣고 쥐를 잡아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 오히려 쥐에게 물리는 신세가 된다. 

 

 

 어쩌면 고양이는 일부분이 주인 구샤미와 많이 닮아있다. 위가 안 좋아 별의별 알려진 바 없는 이상한 민간통치로 자신의 몸을 달래보고자 하지만 늘 실패하고 허접한 구샤미와 고양이 자체로썬 아무래도 허점이 많은 주인공 고양이. 이런 점 때문에 구샤미 또한 고양이를 내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도후군이 말한다. '얼마전에도 제 친구인 소세키라는 사람이 [하룻밤]이라는 단편을 썼습니다만, 누가 읽어도 애매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본인을 만나서 전하고자 하는 게 뭐냐고 따져 물었지만, 본인도 그런 건 모른다며 상대해주질 않는 겁니다. 그런 게 바로 시인의 특색이 아닌가 싶습니다.' -254p 255p

 

 

 예리하게 찾아보면 소세키 자신을 언급하며 타인의 시선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타나있다. 이것 또한 실제 자신을 희화화 하면서 유머를 주는 방식이다. 그저 비평적 어조의 본문을 심각하게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로 작가가 써내려간 문장의 해학적인 요소 때문이다.

 

 

 구샤미가 여러 사람들이 기부금을 얻기 위해 보낸 편지를 받고선.
 '보통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지만, 학자는 알 만한 것을 알기 어렵게 지껄인다. 대학 강의에서도 어려운 말을 지껄이는 사람은 평판이 좋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사람은 인망이 없는 걸 봐도 잘 알 수 있다. 주인이 이 편지에 탄복한 것도 의미가 명료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취지가 어디에 있는지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361p
 
 이라고 고양이가 말하는 부분이 있다. 고양이는 자신의 시각으로 본 지식인의 허위허식에 비아냥거리며 실소를 던진다. 작가의 의식이 느껴진다. 그 밖에도 여성관, 예술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의식도 두드러지게 나온다. 
 


 '나체 신봉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도 나체가 좋다면 딸을 벗거벗기고, 그 참에 자신도 벌거숭이가 되어 우에노 공원을 산책이라도 해보면 어떻겠는가. 못 하겠다고? 못 하는 게 아니라 서양인이 안 하니까 자신도 하지 않는 것이리라. 실제로도 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예복을 입고 뽐내면서 데이코쿠 호텔 같은 곳에 외출하지 않는가? 그 이유를 물어보면 별거 없다. 그냥 서양인이 입으니까 따라서 입었을 뿐이다. 서양인은 강하니까 무리하든 우스꽝스럽든 흉내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양이다.' -279p

 

 

 서양에 대한 이런 관점이
 '니체 시대에는 영웅 같은 사람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지. 나와밨자 아무도 영웅으로 내세워 주지도 않았고, 옛날엔 공자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공자도 활개를 폈지만, 지금은 공자가 한두명이 아니야. ...중략.. 우리는 자유를 원해 자유를 얻었네. 자유를 얻은 결과 부자유를 느껴 곤란을 겪고 있어. 그러니까 서양문명이란건 언뜻 좋아 보여도 결국은 잘못된 것일세.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마음의 수양을 해왔어. 개성이 발달한 결과 모두가 신경쇠약에 걸려서 수습하기 곤란하게 됐을 때, 그때 가서야 '왕자가 다스리는 백성은 평안하도다'라는 시구의 가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될 테니까.' - 501p

 

 그러나 간게쓰군은 이런 말들이 별 감명이 안 생긴다며 염세적이라며 구샤미의 말에 답한다.
 구샤미가 염세적인 니체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서양문화를 비판했지만, 사실 구샤미 또한 염세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서양문명이 잘못된 점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를 다시 없애고 왕자가 다스리는 백성이 평안하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비약적인 말들이 간혹 드러나며 구샤미의 허점이 보이기도 한다.  
 


 '개성의 발전이란 곧 개성의 자유라는 의미겠지. 개성의 자유라는 것은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의미이겠고, 그렇다면 예술 같은 게 존재할 까닭이 없잖아. 예술이 번창하는 것은 예술가와 그 예술을 누리는 사람 사이에 개성의 일치가 있기 때문일거야. 한데 자네가 아무리 신체시인이라고 버티고 나간들 자네 시를 읽고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면, 자네의 신체시도 안됐지만, 자네밖에는 독자가 없다는 말이 되겠지. ... 중략.. 자네가 쓴 것은 내가 이해를 못 하고, 내가 쓴 것은 자네가 이해를 못 하게 되는 날에는, 자네와 나 사이에 예술이고 나발이고 할 게 뭐 있겠어?" 499p

 

 '개성이 발달한 19세기에 기가 죽어서 옆 사람의 시선이 염려돼 마음 놓고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으니' 500p

 

  이 개성의 발달이란 건 오늘날도 통하는 공감적인 말로 이 책이 19세기에 쓰였음에도 21세기에 읽어도 구시대적인 감상이 아니라는 건 어쩐지 조금 서글픈 느낌이 든다.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도 개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을 때까진 자신의 예술을 인정 받지 못하고 고독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니 말이다.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눈으로 글을 이끌어갔다고 해서 가벼운 글은 결코 아니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휴머니즘의 특색이 더 짙게 표현되고 옵션으로 다른 동물들의 감정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소세키의 말장난적인 문장은 더불어 재미를 주고 인간을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봄으로써 인간들의 군상에 대해 함께 실소하고 여러 주제의식에 대해 견식을 넓히는 데 인문서, 심리서 못지 않은 만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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