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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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날씨가 추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서는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눈들은 곧장 녹지 않고 소복이 쌓이더니 이내 하얀 세상을 만들어낸다. 은희경 작가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가 저절로 연상되는 날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책표지도 흰색을 바탕으로 눈송이들이 반짝거리며 떨어지고 있다. 이 책은 여섯 개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소설마다 인물들이 조금씩 겹치며 하나로 연결된 연작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목에 더욱 고개를 끄덕여 본다. 소설 속 인물들이 각각 단 하나의 눈송이가 아닐까 싶어서. 그리고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면 다시 하나의 눈 오는 풍경이 되고 말이다.
  문득,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과학적 상식 하나가 떠오른다. 눈의 결정은 형성될 당시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크기와 모양은 하나도 같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저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눈송이인 셈이다.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지내다가 입시 학원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넓은 도시의 크기에 압도되어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안나(「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남편과 결혼 후 서울 외곽의 신도시로 이사 왔으나 낯선 곳에서 뿌리 내리기가 제 마음 같지 않은 그녀(「프랑스어 초급과정」),

신도시를 벗어난 적 없는 소영과 유학을 갔다가 9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완(「스페인 도둑」),

미국에 가면 잘 정착할 줄 알았으나 막상 현실은 예상과 달라 고군분투하는 엄마와 열세 살의 나(「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자신이 잃어버린 남자의 목도리를 뜨기 위해 뜨개방에 가서 수강을 받게 된 이원(「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그리고 J읍에 살았던 유리와 마리 자매 이야기(「금성녀」) .

특히 마지막 단편은 모든 인물들을 아우르며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외롭고 힘들고 가끔은 허무하기까지. 이것은 외국이나 다른 도시처럼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와 같은 감정은, 익숙한 곳에 사는 사람에게도 종종 찾아와 개인의 삶을 불안하게 흔든다는 점. 그러나 다행인 것은 슬프고 고통스럽던 현재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며, 이겨낸 다음에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는 점이다. 은희경 작가는 그렇게 주인공들의 삶을 가깝게 들여다보다가도 멀리서 바라보며 독자들에게 성장, 삶의 의미와 지혜를 전하고 있다.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곳에 가야 한다고 해서 저렇게 흐느껴 우는 건 아직 인생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야.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 테지. (「프랑스어 초급과정」, p.66)


이 단순한 목도리 뜨기의 세계에는 수많은 선택과 좌절과 성취, 그리고 인생의 드라마가 들어 있었다.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p.175) 

 


  뜨개질이라는 게 이렇게나 묘한 매력이 있었던가. 단순하게는 바늘을 이용해 실을 엮는 동작이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부분이 인생의 모습과 닿아 있음을 이 소설을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로 원장은 ‘힘 조절’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빽빽하게 뜨면 나중에 목도리 끝이 돌돌 말리고 너무 느슨하게 뜨면 구멍이 숭숭 나서 보기 싫은데 제일 나쁜 건 들쭉날쭉 한 것이라고. 그러면 목도리의 모양은 엉망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원은 전체적으로 고르게 뜨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힘 조절, 운동만 해도 그렇다. 구기 종목의 경우 순간마다 온 힘을 다해 집중해야 하지만, 수영은 힘을 빼야 물 위에 뜰 수 있다. 상황에 따라 힘을 조절할 것. 우리는 이것이 인생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중요한 이치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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