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책은 인간이고, 책에도 운명이 있다고 말하는 정호승 시인.
이 책,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2003년 출간된 『위안』의 개정증보판으로,
19년 전 작가의 첫 산문집이 몇 차례 개정판을 거듭하며 다시 나온 산문집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깊이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작가의 문장력에 반해 글 읽는 게 즐거우면서도 줄어드는 글이 아까워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랄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거나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서도
작가는 그 나름의 깨달음을 발견해 차분히 글로 풀어내고 있다.
잔잔하고 담백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글. 한동안은 이 여운 속에 머무르게 될 것 같다.
 

 

자연과 꽃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예찬, 그리고 사람 이야기.
특히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그 일화를 들여다보는 내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인연에서부터 잠깐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사람냄새 안 나는 글이 없다.
강원도 탄광 마을에서 만났던 김장순 씨, 인생이 달라질 만큼 형제애를 나눈 정채봉 형,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함을 알려주신 성철 스님, 잊히지 않는 외할머니의 사랑 등등...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지만 나도 모르게 왠지 그리워지는 기분이다.

 


"호승아, 지금 네가 받는 고통이 실타래와 같다고 한번 생각해봐라.
다 뭉쳐진 실타래는 더 이상 뭉쳐지지 않고 풀릴 일만 남았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참고 기다려라."
30대 초반에 나는 형의 이 말을 듣고 큰 위안을 받았으며,
고통에 대한 인내의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p.118)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가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깨우쳐주신 분이 바로 성철 스님이다.
사진을 찍으려면 천 번을 찍어라.
나는 스님의 이 말씀을 잊은 적이 없다.
시를 쓰려거든 천 번을 써라.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이 말씀이기 때문이다. (p.133)

 


사랑에 관한 글들도 좋았지만 외로움, 고통에 대한 글들도 무척 인상 깊었다.
작가는 외로움도 고통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밥과 물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과 불행 속에서 한생을 살게 마련이라고,
그러니 고통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가능한 한 고통을 피하고 싶고, 두렵고,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긴 하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마음대로 흘러가던가.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피한다고 해도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다.
고통을 제대로 마주 보고 극복하기.
당시엔 힘들겠지만 사람은 이겨내고 나면 조금은 단단해지고는 한다.
물론 이겨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너무 힘든 상황에서는 아무런 말도 귀에 들리지도 않으며, 남들이 보기에 어떻든 자신에게는 큰 고통인 것도 있다.
그리고 이겨내고 싶어도 오랫동안 사람을 힘들게 했던 고통은 더 어렵고 더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일단은 버텨내보자.
아주 조금씩, 천천히, 느리더라도 그렇게...
견딤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 더 강해진 우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온몸이 뒤흔들리는 나무의 고통을 보라.
나무도 그런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란다.
한여름의 폭풍을 통해 꽃과 나무와 새들도 삶의 인내를 배우는 것이다. (p.20)

 


폭풍우를 견딜 수 있는 꽃과 나무와 새들만이 살아남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 맞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따스한 햇살을 맞기 위해서는 혹한의 추운 겨울이 있어야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살기 위해서는 뜨거운 폭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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