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소풍
양은숙 지음 / 조선앤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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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세상은 다양한 꽃들로 화려한 색감을 뽐낸다. 이윽고 강렬한 햇빛, 뜨거운 열기의 여름이 시작되고, 이제는 못 버티겠다며 잔뜩 지쳐있을 때쯤에야 가을은 시원한 바람을 데리고 우리 곁을 찾아온다. 뒤이어 겨울에는 한동안 세상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릴 것 같은 추위가 이어지지만, 괜찮다. 우리는 알고 있다. 눈이 녹으면 다시 봄이 찾아온다는 것을.
나의 계절은 대개 그러했던 것 같다. 여름과 겨울은 너무 길어서 힘들고, 좋아하는 봄과 가을은 너무 짧아서 아쉽다고. 그래도 오감을 통해 최대한 느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사실 지나가는 시간 안에서 무언가를 담아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살짝 고백해본다.

 


그런데 글쓴이는 어쩌면 이리도 계절의 생동감을 선명히 담아냈는지,
일 년 열두 달이 이렇게나 흥미진진하고 풍성할 수 있음을 잘 알게 해주었다.
어느새 그녀의 시선, 그녀의 생각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는데 페이지마다 숲의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올 것만 같다.

 

 

 


도심지역에서는 눈이 내리면 하얗고 아름답기보다는 오염물질과 먼지 때문에 금방 까맣게 되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게다가 바람은 왜 이리 매서운지 혹독하게 느껴질 정도. 그러나 그녀가 사는 숲은 다르다. 눈이 쌓인 전나무 숲은 아늑함과 포근함이 감돌고 쌓인 눈은 천연 설빙고가 따로 없어 식혜를 묻으면 살얼음이 생긴다.
화롯불에 고구마와 가래떡, 그리고 직접 만든 얼음 동동 식혜 한 사발.
아, 손을 쑥 내밀어 사진 속의 식혜를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사계절이 깃든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철 나물과 직접 키운 채소로, 각각의 시기마다 자연이 내어주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는 것이다.
노란 치잣물로 밥을 짓고 붉은 동백꽃을 우린 물로는 떡을 찐다.
마당에 자란 쑥으로는 쑥버무리와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쑥개떡을 해먹는다.
들판의 봄나물의 잡채의 재료가 되며, 여름 무렵의 보리수, 앵두, 오디와 같은 열매들은 설탕에 절여 시원한 음료로 마시거나 우유나 연유를 넣어 얼려 먹을 수도 있다.

 

 

 


꽃은 그릇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장식이 되고, 초록 잎사귀와 함께 끈으로 묶으면 어여쁜 부케도 된다. 어디 그뿐이랴. 꽃밥이라든가 샐러드, 디저트로도 만들 수 있으며 또는 잘 말려 차로도 우려낼 수 있다. 때로는 그릇이 될 수도 있는데, 옥잠화 꽃 끝을 벌려 속을 채우는 요리를 보고는 그 아이디어의 신선함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덩달아 기분이 산뜻해졌던 죽단화 리스를 잊을 수 없다. 이 꽃은 황매화라고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꽃 중 하나라 더욱 기억에 남았다. 샛노랑의 소담한 꽃송이가 얼마나 예쁜지, 거기에 은은한 향까지 있어 사람을 무척 기분 좋게 한다.

 

 

 


계절소풍이라는 제목처럼 정말 각각의 달을 소풍하는 기분.
게다가 별명이랄까 수식어랄까 글쓴이가 달마다 붙여준 말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사월은 ‘들녘 프러포즈’, 시월은 ‘다락에 모아 두고 싶은 볕’이라고 되어 있다.
시월의 채소를 널어놓은 사진을 보니 그 별칭이 딱이다 싶다. 게다가 깨끗한 공기가 있는 곳에서 햇볕을 이용해 그대로 건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부럽기도 하다. 깨끗한 환경도 환경이지만, 단순히 수분만 날아가는 게 아니라 건조되는 동안 햇빛에너지를 알차게 저장하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재료들은 나중에 물에 불려 요리를 할 때, 들기름에 소금 간만 살짝 해도 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만약 열두 달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와글와글 기뻐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글쓴이가 허투루 보냄 없이 하나하나의 개성을 다 발견해준 것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아래 소제목들 또한 말랑말랑 동화 같은 느낌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동글동글하고 흐뭇한 기분이었다.
그녀만의 사계절 스타일링 북처럼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사계절을 담아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마지막으로 글쓴이에게 한마디 전해본다.
계절소풍! 덕분에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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