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르치기 -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핀켈 교수의 새로운 교육법
도널드 L. 핀켈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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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널드 L. 핀켈의 『침묵으로 가르치기(다산에듀/문희경 옮김』는 표지의 일러스트로 주장을 대변하고 원제 “Teaching with your mouth shut”을 병기함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저자인 도널드 L. 핀켈은 하버드 대학의 대학원생이었을 때부터 수업을 맡으며 다양한 교수법을 고안하고 실험했으며 에버그린 주립대학으로 옮긴 이후로도 오랜 시간 교수법에 대한 창의적 열정을 나눠왔다.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저자가 30여년 동안 쏟은 헌신의 총합으로 “나는 가르치는 내내 교수법을 실험하고 토론하고 성찰하고 글로 써 두었다.(308p)” 밝히며 독자를 초대한다. 서문에서도 책의 목표를 개혁보다는 대화의 장을 열고 생각거리를 공유하는 것임을 말한다. 소크라테스와 루소, 존 듀이의 사상으로부터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발전시킨 핀켈의 교육법들은 제목인 “침묵으로 가르치기”의 실전 활용법을 세밀하게 제시한다.

 

 

좋은 교육과 훌륭한 교사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는 1장에서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상식적이고 유일한 듯한 “말로 가르치기”의 약점을 상기시키며 출발한다. 이는 반드시 학교 현장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말로 가르치려다(방법론적으로도 다른 접근법에 무지하고, 여력이 없다는 핑계도 있겠지만) 효과는 커녕 감정적 충돌과 언쟁으로 끝나곤 하는 예는 다 꼽을 수도 없는 일상이다. 2장 부터는 그 해결법인 “침묵으로 가르치기”의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책이 말하게 하라”라는 고전적인 제안이 등장한다. “우화”와 “수수께끼‘로 배우는 방법은 솔깃하다. 나아가 질문이 녹아 있는 명작으로 가르치기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비롯한 고전 명작을 보여주는데 대찬성이다. 특히 일리아드에서 끌어낸 질문은 그 자리에 앉아 함께 하고 싶어진다. "결국 명작은 잡다한 질문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어준다. 우리는 여러 갈래를 따라 의미를 찾아다니다가 분열되고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집중해서 마침내 온전한 의미를 찾게 된다.(65p)" 바로 고전 명작의 힘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더해 5가지 문학작품을 더 소개해 주는데 기쁜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3장은 “세미나 수업”으로 학생이 말하게 하는 법을 보여준다. 세미나의 세 가지 유형과 읽은 후 질문하고 토론하며, 주어진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네 가지 연구 모임도 살필 수 있다. 4장의 “교사와 학생이 함께 탐구하라”에서는 문제 중심으로 진행되는 탐구 수업은 관심사와 탐구 주제의 밀착도가 높아 “왜 배워야 하나요?”의 시큰둥한 반응에 효과적인 답이 되어줄 수 있다. 세미나 수업 사례로 든 “소크라테스를 찾아서”의 전반적인 과정은 ‘진정한 지적 공동체(138p)’란 이렇게 가능하겠구나 생각되고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공부한 지금은 남을 설득하는 삶, 다시 말해 설득하는 수사학은 사람의 영혼에 독이 되고, 내 영혼에도 독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140p)”를 비롯한 학생들의 후기는 이를 증명한다.

 

 

5장의 “친숙한 글쓰기로 말하라”에서는 빨간 펜으로 보고서 체점을 하는 대신 감상편지를 써주는데 이런 감동 앞에 무감각하기도 힘들겠지만 숙고하고 실천하는 저자의 열정과 마음이 존경스럽다. ‘학생들끼리 감상편지 주고받기’에서 이런 편지들을 내가 받는다면, 상상하게 되고 아마도 하루 종일 가슴 뛰지 않을까 싶었다. 글쓰기 모임 운영하기에서 글쓰기의 주의할 점(159p)은 인상깊다. 6장에서는 학습을 일으키는 경험을 설계하는 법으로 탐구 문제 설계와 개념 연구 설계를 보여준다. 둘 다 흥미로운데 “소크라테스를 찾아서”- 아포리아 개념 연구 계획서는 무척이나 좋은 자료이지만 만들어 내기에는 내공(집중력과 고도의 관심, 열정, 실력 등)이 필요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권력과 권위를 구별하는 것이 침묵으로 가르치기의 핵심이 된다(254p)고 설명하는 7장부터 8장의 협력수업에 대한 반응과 효과, 변화 그리고 루소와 듀이로부터 실제 적용하려고 노력했던 요소들을 짚어보는 9장까지도 결국은 “침묵으로 말하기”의 또 다른 실험과 사례,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듀이의 주장에는 말로 가르치는 방법이 인간행동을 변화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듀이는 인간이 경험을 성찰하면서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이라고 주장한다.(298p)”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참된 교육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교육으로 변화되는가, 성장을 위한 접근법은 무엇이 있을까, 측정되고 숫자로 환산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치가 아닌 내적으로 충만하게 차오르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과 믿음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에 대한 사례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정성껏 내어주는 책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전체 주제가 무엇인지 지향점을 잃지 않도록 반복해서 요약하고 정리해 주기 때문에 더 온전하게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읽는 일과 쓰는 일, 질문하고 토론하고 나누는 일을 가다듬고 교정해 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길을 안내해준다.

 

 

책 속에서>

                            

-무엇보다도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좋은 책은 교사의 설명 없이도 교육적 기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73p)

-학생들은 글쓰기를 ‘종이 위에서 사유하는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글은 사유의 결과를 보고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사유의 폭을 넓히고 정리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쓸 때는 먼저 ‘진지한 질문을 제기해야’한다. 진심으로 궁금한 질문이면서 글을 시작할 때는 답을 모르는 질문이어야 한다. (중략) 흔히 질문이 아니라 논제를 두고 글을 시작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질문하기도 전에 답을 알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논제를 명시하고 시작하라는 말은 글을 쓰기 전에 탐구를 마친 상태여야 한다는 뜻이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막상 진지한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시작하려면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하지만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글을 쓰면서 주제를 탐구할 수 있다.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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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독서의 힘 - 토론을 위한 논제 만들기
김민영 외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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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독서의 힘(북바이북)』은 김민영, 권선영, 윤석윤, 장정윤이 공저한 책으로 “토론을 위한 논제 만들기”라는 부제로 정체성을 드러낸다. 읽고 쓰고 전하는 모임, 학당의 강사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귀한 깨달음 또는 방법론을 친절하게 펼쳐 보인다. 2014년 출간된 “이젠, 함께 읽기다(북바이북)”가 “독서 공동체 숭례문 학당 이야기”라는 부제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열정과 긍정적 기운을 보여주었다면 “질문하는 독서의 힘”은 논제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머리말에서 김민영 저자는 질문을 어려워 하는 이유로 인정 욕구와 정답 강박증을 드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성향이나 기분 문제로 모호하게 넘어갔던 부분을 제대로 지적받아 오히려 산뜻하다. 그렇다. ‘정답 강박증’은 현재 나의 큰 문제다. ‘저자의 의도’, 특히 세계 문학을 읽을 때 작가 의도에 배치되지 않을까, 그 맥락을 제대로 독해하고 있을까가 점차 무거운 숙제가 되어가는데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설레이는 마음이다.

 

 

1장의 “질문하는 독서를 위한 마음가짐”에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일 것, 나만의 질문 만들기를 권한다. 공감과 감탄만 즐겼을 뿐 정작 나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자동 동의 습관’에 길들여 지는 것(19p), 옳지 않다. 토론 현장의 풍경은 무척 생생해서 그 분위기가 느껴진다. 좋아하는 책들, 읽어야 하나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나오면 그저 신남과 조급함이 교차하며 그 분위기에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책의 바다에 푹 빠진 현장의 그들을 마냥 부러워하며 읽어야 할 책 리스트를 추가시킨다.

 

 

2장은 “홀로 책 읽는 이를 위한 질문 독서”로 비판적 독서의 시작점, “책에 푹 빠져서는 안 된다. 계속 읽고 싶어도 잠시 멈추고 눈이 머물렀던 문장에서 떠오른 내 생각을 들여다 보며 책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57p)”, 요즘 겨우 시작하고 있는 방법이다. 이번에도 유익한 팁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책을 읽는 이유가 뭔가요?(72p)”에서 잠시 멈추었다. 강연자는 “저는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72p)”라 답하는데 그럼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불변할 가치, 진리를 간직하고 싶어서다. 삶의 본질(황당해?-다 그래-왜냐하면 으로 이어지는)을 통찰할 가능성, 경우의 수를 늘리고 싶다는게 현재의 내 답이다. 가치나 진리는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점차 폭을 넓힌다.

 

 

3장 “독서 모임을 위한 논제 독서”에서 본격적으로 논제 만드는 법을 다룬다. 또 한 번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이 쏟아진다. “문학 평론가 장석주는 글쓰기의 3대 적을 –두려움, 내면의 검열자, 나태-라고 말한다.(112p)” 나는 속으로 말한다. ‘들켰다!’라고. (두렵고 게으르고, ‘사실입니까?-난 모르오’의 반복과 핑계는 날로 늘어간다.) 논제의 유형, 좋은 논제의 특징, 논제문 형식 익히기와 자유논제, 선택논제의 예들을 엿볼 수 있다. 실전의 장이다. 4장 “독서 교육을 위한 논제 독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대상에 맞는 질문 만들기 법의 예를 다룬다. 부록으로 실린 “독서 토론 논제 만들기”에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소설/비소설) 대상 논제들을 담았는데 아끼는 작품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이 있어 반가왔다.

 

 

“질문하는 독서의 힘”은 한 번 읽은 후 “네, 알겠습니다”하며 덮는 책은 아니다. 앞으로의 독서 여정에 벗이 되어 이끌어 주고 필요한 동기부여를 해 줄, 책 친구들을 위한 발제에 여기 저기 넘기고 찾아봐야 할 책이다. 내가 답답해 하던 부분이 해소되기도 했고, 그렇지 못했을지라도 물꼬가 트이는 안도감을 선사해 주었다. 사례, 예시, 인용, 발췌가 많아 풍성했고 매끄러운 문장으로 잘 읽히고 쉽게 이해되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 읽고 쓰는 일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일까, 물론 힘 닿는데까지. 마지막까지 할 일을 좀 더 잘 하기 위해서 바삐 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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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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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4/문학동네/진선주 옮김)』은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스”와 함께 “더블린 3부작”에 포함되는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37년간 망명작가 생활을 하면서 실험적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두드러진 그만의 작법들, “이피퍼니를 비롯해 자유간접화법, 틈 또는 생략의 기법, 열린 결말, 의식의 흐름 기법, 특히 내면독백 등(해설, 455p)”을 시도한다.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등에게 영향을 끼친 제임스 조이스는 현대 문학의 고지를 점한다. 이피퍼니(현현)나 의식의 흐름 등 문학용어로 먼저 연상되는 작품이라 읽기 전에 걱정이 앞선 면도 있었지만, 촘촘한 주석은 얼마나 작가의 현실을 반영했을지를 가늠케 했고 부록의 아일랜드 역사개요까지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니 그 걱정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기술에 온 마음을 쏟았다.(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제8권 188행)” 시작에 앞선 제사는 알려지지 않은 기술, 그러나 간절하고 유일한 소망 또는 소명을 향해 바쳐질 시간, 삶을 그려보게 한다. 제임스 조이스가 “스티븐 히어로”라는 제목으로 26장까지 썼으나 다시 5장으로 축약한 (443p해설) 첫 장은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의 소년기, 클롱고우스 우드 칼리지 시절을 그린다. 어떤 장면들은 두려움에 싸인 연약한 자신을 어쩔 줄 모르고 견디고 넘어가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나의 유년을 소환하기도 한다. 매일 반복하는 기도문, 길지만 멈추거나 생략할 수 없는 밤기도를 끝내는 순간의 “그러나 이제 죽더라도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으리라.(29p)”하는 안도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정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없고 또 우주가 어디서 끝나는지도 잘 몰라서 고통스러웠다. 스스로가 작고 무력하게 느겨졌다.(26p)” 동급생의 폭력에 양호실에서 떨며 자신의 장례식을 그려보거나 교무주임의 부당한 처사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기도 하며 예민한 소년기를 통과한다. ‘결코 알 수 없는 대상들’과 ‘작고 무력한 나’의 대비는 날카롭기만 하다.

 

 

“그가 화가 치미는 데는 먼 것과 가까운 것, 여러 이유가 있었다.(107p)” 어리고 충동적인 자신, 가세의 변화, 그러나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해 “그 모든 것을 참을성 있게 마음속에 새겨두었다.(108p)”고 밝힌다. 2장에서 더블린으로 옮기고 벨비디어 칼리지로 전학하게 된 스티븐은 “소년기의 두 해 동안 그가 지나온 성장의 과정과 쌓아온 지식이 그때와 지금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그런 식의 감정의 발산을 허용하지 않았다.(125p)” 이미 어제의 그는 아니다. 분별하고 선택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그런 목소리, 명령하는 목소리, 속세의 목소리, 졸라대는 목소리(135p)를 공허한 목소리가 내는 소음이라 여기고 오히려 혼자 또는 환상 속 친구들에게서 행복을 느낀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목소리들-명심해라, 명심해라-에 대한 반감은 자신의 현실감각을 의심하게도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나는 스티븐 디덜러스다. 나는 지금 아버지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고 그의 이름은 사이먼 디덜러스다. 우리는 지금 아일랜드의 코크에 와 있다. 코크는 도시다. 우리의 객실은 빅토리아 호텔에 있다. 빅토리아와 스티븐과 사이먼, 사이먼과 스티븐과 빅토리아. 이름들이다.(150p)” 여기에 육신의 타락이 보태진다.

 

 

3장은 “어쩼든 신앙심은 사라져버렸다. 그의 영혼이 스스로의 파멸을 갈망하는 마당에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169p)” 라며 죄책감에 자신을 정죄한다. 학교 수호성인 축일 기념 피정에서 옛 스승 아널 신부의 강론은 심판을 말한다. 지옥을 묘사할 때 영원에 대한 모래산 비유나 ‘에버, 네버, 에버, 네버(217p)’ 똑딱거리는 시계소리의 예들이 실로 무섭고, 글 만으로 그려내는 지옥도가 입체적이고 감각적이라 심장을 옥죄며 신곡(단테)의 지옥편을 연상시킨다. 이는 그를 참회로 이끌고 4장에서 고행과 속죄의 시간에 자신을 철저히 내맡긴다. 그러나 교무주임의 성직 제안은 오히려 자신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두 발에는 이 세상 끝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방랑의 욕구가 용솟음쳤다. 앞으로! 앞으로! 그의 심장이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279p)” 예술과 방랑의 심장을 지닌 헤세의 크눌프가 떠오르기도 했다. 스티븐은 혼자였던 그 때, 바닷가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녀의 모습은 그의 영혼 속에 영원토록 아로새겨져 어떠한 말로도 그의 황홀경이 빚어낸 거룩한 침묵을 깨뜨릴 수 없었다. 그녀가 눈길로 그를 불렀을 때 그의 영혼은 그 부름에 화답했다. 살아가면서, 실수하기도 하면서, 추락하기도 하면서, 승리하기도 하면서,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리라! 어떤 야성적인 천사가, 인간적인 활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천사가, 삶의 아름다운 궁전에서 보낸 사자가 실수와 영광의 모든 길로 통하는 대문을 어느 황홀한 순간 활짝 열어주기 위해 그 앞에 돌연히 나타난 것이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지!(282p)” 이 책 전체의 주제가 아닐까. 순수한 방랑의 목표가 뚜렷한 푯대, 의미를 부여받는 순간이다.

 

 

5장에서 스티븐은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을 점점 더 구체화한다. “디덜러스 군, 자네는 예술가가 아닌가, 그렇지?” 하며 “자네 지금 그 아름다움이라는 문제를 풀 수 있겠나?(306p)” 묻는 교무처장 신부, 스티븐과는 전혀 달랐을 삶의 행로를 견지해오고 그 결과 ‘이용해왔으나, 애착은 없는’, 아일랜드에 사는 가난한 영국인 개종자(311p)를 대비시킨다. 친구 데이빈과의 대화에서 언어, 영혼, 조국 아일랜드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고(337p). 린체와의 대화에서는 본격적으로 예술론을 펼친다. 참다움과 아름다움, 아름다움에 필요한 세 가지 인테그리타스(전체성), 조화(콘소난티아), 클라리타스(광채), 예술의 세 가지 형식 등 이론의 장이다. 스티븐의 질문 기록 또한 흥미롭다. 이렇게 민감한 영혼이 길을 떠나는 새로운 출발은 가장 완벽한 마침이고 그의 앞으로의 행적이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날들과 나란히 놓는다면 어떨까 상상하게 된다.

 

 

정성 가득한 해설은 무디고 침침한 시력으로 발견할 수 없었던 많은 의미를 밝혀줘 감사했다. 제임스 조이스와 스티븐 데덜러스라는 그의 필명, 데덜러스가 디덜러스로 바뀌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되고 신화 차용과 이름의 의미를 깨닫기까지의 과정, 작가의 독창적 서술 전략 이피퍼니 등을 풀어주니 작품이 몇 배로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그 중에서도 예술가를 정의내리던 장면에 대한 해석부분은 감동적이다. “작가가 죽은 듯이 침묵해야 하는 이유는 독자에게 최대한 읽기의 자유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작가의 간섭이 없는 곳에 독자의 자유로운 읽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해석, 자유분방한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열린 문학의 특징이라면, 스티븐의 이 주장은 열린 문학의 매니페스토라 할 것이다.(해설455p)”

 

 

깨어있는 정신, 민감한 영혼의 자취를 어린 시절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엿볼 수 있었던 생생한 성장기는 그가 처한 시공간적 배경은 물론 독특한 역사적 배경에 녹아들거나 맞서는 변화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인적, 물적 환경에 대해서도 감추거나 에둘러 말하거나 미화하는 법 없이 최선을 다해 진실만을 선택한다. 그에 더해 글에서도 말에서도 그 진실이 일말의 왜곡 없이 전달되도록 정련된 문장만을 통과시킨다. 그런 문장으로 이루어졌기에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삶과 예술을 묻는 탁월한 문제지이자 모범답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범답안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겠고 제2, 제3의 답안도 가능하겠지만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빛을 품고 있는 방식, 외로운 가시밭 길일지언정 자족하고도 남을 근사한 길일 것이라는 믿음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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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이스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라고하니 흥미가 가면서도 안 가고 그러네요 ㅎㅎㅎ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mazinga 2021-06-07 11:16   좋아요 0 | URL
초딩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잘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4
윌리엄 포크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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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문학동네/민은영 옮김)』은 노벨문학상 및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1942년 작으로 단편집 “모세여 내려가라”의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207p)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카뮈와 마르케스의 찬사에서 ‘위대함’은 거듭 등장한다. 1929년 『소리와 분노』, 1936년 『압살롬, 압살롬!』등 대표작들을 이미 선보인 후의 작품이라는 점은 기대를 높힌다. 늙은 곰의 이야기이자 노인의 이야기이며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한 “곰”은 ‘한정된 시간’이라는 조건에 묶인 인간과 그에 반하는 ‘영원’에 대한 그림이기도 하다.

 

 

“남자 하나가 있었다. 이번에는 개도 함께였다. 곰 올드벤까지 친다면 동물 두 마리, 분 호갠벡까지 친다면 남자 두 명이었다.(중략) 이들 중 때 묻지 않고 강의한 존재는 오직 샘과 올드벤과 잡종견 라이언뿐이었다.(9p)”로 시작되는 첫 번째 막의 주 무대는 숲 속이다. 열 여섯 살 소년이 지난 6년간 들어온, 보고 체험한 황야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중독성 있는 포크너식 열거법으로 펼쳐낸다. 이름도 얻은 늙은 곰, ‘죽을 운명마저 벗어던진 고독하고 막강한 늙은 곰’을 잡기 위한 추적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반복될수록 소년도 자라난다. 장성한 성인으로, 무엇보다 사냥꾼으로.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함을 소년은 이미 알고 있었고 끈기도 터득하고 있었다.(16p)”

 

 

열 살 때부터 소년은 멘토인 샘 파더스의 곁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 자체로 신성한 숲과 신화같은 곰을 향하는 인간들의 추적은 같은 듯 다른 동기로 움직이고 차이나는 종결을 짓는다. “소년은 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시간이 생겨나 시간이 되는 곳,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망각의 그늘 아래 죽음을 면제받은 늙은 곰과 죽음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된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25p)” 가장 강한 적을 쫓는 레이스의 외적 단순함 사이사이로 존재와 어긋남, 무서움과 두려움의 차이, 지키고 존중해야 할 것과 그럼에도 훼손하고 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더 비울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시계와 나침반이었다. 아직도 그는 오염된 존재였던 것이다.(30p)" 처음으로 소년이 곰과 맞닥뜨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반복되는 문장은 소년의 경외심 가득한 진지함을 보여준다.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대로(30p)“,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다음 방법에 따라(30p)“, ”다시 한 번 샘이 가르쳐주고 연습시킨 마지막 방법을 쓰고(31p)“ 나서야 비로소 잊지 못할 순간을 맞는다. ”샘 파더스가 소년의 선생님이고 뒷마당에서 토끼와 다람쥐를 쫓던 시절이 소년의 유치원이었다면, 늙은 곰이 뛰어다니는 황야는 그의 대학이었고 긴 세월 짝도 새끼도 없이 살며 성별이 없는 스스로의 조상이 된 늙은 수곰은 그의 모교였다.(36p)“

 

 

분 호겐백은 푸르스름한 개 라이언을 마음의 단짝으로 삼고 샘은 곰 올드벤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정신은 물론 내적 동기 일체는 곰에게 온전히 연결돼 있었고 “괜찭아요.”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어요. 그냥 놔버린 거요.” “그래요, 노인들은 그럴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러다가 한숨 잘 자고 일어난다거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마음을 바꾸기도 하지요.(88p)”에서처럼 죽음도 결코 육신의 문제가 아님을, 존재이유가 사라질 때 ‘스스로 그냥 놔버린 현상’일 수 있음을 본다. 이는 현대의 일상에서도 마음을 공유하는 대상과의 하나됨과 분리 곧 상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4장에서 새로운 시공간으로 배경이 전환되고 분위기는 환기된다. 소년은 스물 한 살 청년이 되었고 황야가 아닌 그가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땅(99p)에서 친척 형 매캐슬린을 만나고 있다. 상속자이지만 그 자격도 칭호도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펴는 아이작과 설득하고 반론하는 매캐슬린의 대화가 이어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성경 속 천지창조부터 신대륙 발견과 노예제도, 부끄러운 가계의 역사와 그 속에 엄연히 행해졌던 비인간적인 일들을 드러낸다. 특히 노예 장부의 간략하고 무심한 어조가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당시의 실상을 그려보게끔 하고 참담함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 장부는 200년 동안 기록했지만 완성하지 못했을뿐더러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청산하지 못할 기록의 연장이었다. 어느 땅 전체의 역사가 축소판으로 그 연대기에 담겨 있어, 이를 곱하고 조합하면 전쟁에서 항복한 이후 23년, 노예해방 이후 24년에 걸친 남부 전체의 역사가 될 것이다.(153p)”

 

 

5장에서 아이작은 다시 한번 그가 소년이었을 때 학교인 동시에 모든 곳이었던 황야를 찾는다. 제재회사가 벌목을 하고 열차가 달리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이 작품의 가장 뭉클한 재회를 선사한다. “어느 날, 겸손이 무엇이고 긍지가 무엇인지 설명할 줄도 모르는 한 노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소년은 늙은 곰과 조그만 잡종개를 보고, 겸손이든 긍지든, 둘 중 하나만 얻으면 둘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156p)” 개발과 파괴를 섞어내는 인간의 손과 죽지도 변치도 않는 자연을 대비시키고, 영원한 멘토 샘을 불러낸다. “라이언에게도 샘에게도 죽음이란 없었으므로(202p)”로 시작되는 영속성의 이유는 설득적이고 옛 언어로 스승을 불러보는 장면에서는 마음 깊이 충만함이 차오른다. 아이작이 걸어갈 앞으로의 길을 예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인용이 많아졌지만 새겨둘 문장이 그만큼 빼곡하다. 되새기며 음미하게 되는 문장은 다음 장면으로 스토리를 쫓는 리듬을 헐겁게 늘린다. 단어보다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어 멈춘 채 장면에서 눈을 돌리고 어딘가를 두리번 거리게 했다. “압살롬, 압살롬!” 다음으로 읽는 포크너이기에 나름의 각오를 했지만 분량 면에서도, 문체에서도 늪처럼 길게 끌어당기는 마성적인 문장은 훨씬 덜했다. 해설에서 역자는 원문의 외형적인 구조만을 따르는 번역보다는 의미 전달을 중시한 번역을 택함으로 소통에 중점을 두었음을 밝히는데(213p) 그렇다면 원문은 몇 문장이 결합된 형식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곰”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각자가 취하고 감당할 자세와 태도를 묻는 질문지다. 동시에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향한 영원불멸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혼자는 아니었으나 고독했다. 고독이 여름의 짙은 초록으로 그를 에워쌌다. 숲은 변하지 않았다. 여름의 초록, 가을의 단풍과 비처럼, 그리고 강철 같은 겨울 추위와 눈처럼, 영원한 숲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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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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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어른/2016/문학동네』은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의 첫 번째 평론집으로 저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동화작가로 등단했으며 가르치는 일과 쓰고 전하는 일을 통해 어린이와 성인들을 만나고 있다. 특별히 우리말로 옮기거나 해설한 작품들이 하나같이 인상 깊었다. 연속되는 만남이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평론집을 읽게까지 한 셈이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고정순 그림, 안데르센 원작의 “그림자”로 흑백의 묵직한 질문에 미심쩍은 답을 모색할 때 김지은의 해설은 놓치거나 넘기지 않아 안도하게끔 돕는 길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믹 잭슨 글/존 브로들리 그림)”의 장면 수정도 불필요한 오해를 거둘 수 있으니 든든한 마음이다.

 

 

“동화작가는 작품을 쓰고 쥐도 새도 모르게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어른이다. 이 이야기 안에는 너희만 있으니까 염려 말라고 상냥하게 거짓말해주는 어른이다.(6p)” “어른 없는 안전한 시간들(6p)”을 만들어주는 동화작가의 정체성을 잘 설명한다. “거짓말하는 어른”은 자유로운 이야기 세상, 안전한 그곳으로 부재, 목소리, 꿈이라는 주제로 세 번에 걸친 여행을 보여준다. 소제목 안에서 소환된 작품들은 주제 또는 사건과 배경으로 견주어 새로운 ‘아, 그렇구나’를 찾아내게도 하고 생생한 숨을 지닌 인물들을 불러내어 유쾌하게 때론 짠하게 대면하게끔 한다. 읽은 책들은 반갑지만 읽지 못한 책들이 스스로를 부끄럽게도 하고, 급한 마음까지 들며 자연히 도서목록은 쌓여간다.

 

 

“어린이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지고 함께 굶주리는 일은 어떤 사설이나 보고서도 해낼 수 없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중략) 공주와 기철이와 유정이가 따뜻하게 잠들 수 있도록 그날 밤 이불을 덮어주고 곁에 누워주는 동화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33p)” 어른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린시절 이와같은 동화를 갖는다는 것,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곁에 있을 친구, 백 살이 되어도 꿈처럼 돌아가 꺼내볼 수 있는 보물을 지니는 것과 같다. “자유, 살게 하는 힘”편에서는 ‘변신 모티프’를 다루며 변신은 자유의 수단이자 해방을 향한 유일한 통로임에도 “하지만 가장 실현 가능해 보이는 변신은 ‘성장’이다(68p)”라는 말로 공감케 한다.

 

 

“묻지 않는 어른 앞에서 어린이는 입을 잃어버린다. 이 경우 입은 오직 대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훈련된 대답은 말이 아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입은 몸에서 사라진 기관이나 다름없다.(91p)” 5월 5일 어린이날 이 문장을 읽으며 ‘묻지도 듣지도’않았던, 줄로 재단하고 한 치, 두 치 이탈을 세며 ‘너는 왜’ 또는 ‘왜 너는’을 반복하고 사로잡히던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평만 봐도 매력 넘칠 것 같은 “주병국 주방장”을 읽으며 헛헛함을 채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은 마음으로 아끼는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곁에 수년간 꽂혀있기만 한 이영서의 “책과 노니는 집”이다. “동화 가운데 이 작품만큼 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203p)” 이 문장이면 됐다.

 

줄과 체크와 동그라미와 물결무늬로 가득해진 “거짓말하는 어른”은 어린이를 향해 말하는 동화에서 어른이 더 귀담아 듣게 되는, 귀기울여야 하고 흘려보내서는 안되는 지점들이 빼곡하다. 무딘 눈으로 알 수 없었던 것들을 깊고도 세심하게 살펴주기에 소중하다. 앞으로도 김지은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그 작품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듯하다. 사람들이 놓치고 외면한 얼굴들이 작품 안에서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말을 건다. 읽고 발견하고 깨달을 때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실현가능한 변신,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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