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 창비청소년문고 15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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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영의 시인 동주(창비)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를 생생하게 기록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윤동주 서거 70주년인 2015년 출간되었고 그가 떠난지 올해로 77주기다. 책만 보는 바보, 다산의 아버님께, 갑신년의 세 친구등 역사속 실존 인물을 주로 그려온 작가는 이번에는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을 불러낸다. 작가는 우리가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복원해 나가며 온전한 윤동주의 모습을 찾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밝히면서 윤동주 시가 지닌 보편성의 힘을 환기한다. 시인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다양한 형태의 시집으로, 평전으로 여전히 독자 곁을 찾고 있다.

 

소설은 윤동주 시인이 “1938, 경성의 봄”, 연희전문학교 입학부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기까지의 8년간을 주로 다룬다. 조선어 교육을 폐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일제 강점기, 점령국의 언어를 국어로 칭하던 시기의 모국어 강의, “부디 잊지 말기 바랍니다.”(p.21)라는 맺는 말은 동주와 같은 공간의 벗들에게 새겨진다. 소설은 북간도 용정을 배경으로한 가족들과의 애틋한 일상, 또 한 명의 빛나는 청춘이었던 사촌 몽규와 우정을 쌓아간 친구들, 시작하는 계절처럼 발아하던 시와 문학에의 동경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당시 문단의 분위기도 학생들의 시선을 통과해 비춘다. 식민 통치 3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이를 근거로 나름의 방향을 취할 때 동주와 몽규는 더 분노한다. 슬픔에 흠뻑 잠긴 분개다. 방학을 맞은 빈 강의실은 순수를 논하는 학생들의 열기로 뜨겁다. 전쟁의 기세는 더해가고 동주와 몽규는 일본 유학길을 선택하게 된다. 선택의 결말은 예상치 못할 만큼 빠르게 다가온다.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것도 주저되었다."(p.286)

 

시인 동주는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그려보인다. 가재가 동주와 몽규였듯이 비교적 드러나지 않았던 송몽규를 담아낸 점도 의미있다. 영원한 청년으로 남은 윤동주에게 허락된 시간은 시처럼 축약된 채 빛처럼 짧아 ‘~했다면’, ‘~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무익한 말들을 마냥 보태게 만든다. 소설은 동주의 시와 삶을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엮는다. 애초에 아름다웠던 시는 작가 덕분에 소리와 질감, 미소와 향내 등 고유한 장면들로 풍성해진다. 그의 산책길이나 눈길이 머물던 별, 먼 나라의 시인을 그려내고 마지막 순간 다시 돌아와 조용히 인사한다.

 

말을 빼앗긴 시대에 우리말로 시를 씀으로 치열하게 사랑하고 저항했던 윤동주를, 그의 흔적을 기억하려한다. 애틋하게 아끼는 책 책만 보는 바보에 이어 시인 동주역시 많이 읽히기 바란다. 6년만에 두 번째 정독이지만 먹먹한 감동은 빛바래지 않고 별처럼 충만하다. 손으로 목소리로 눈으로 읽어야 할 윤동주의 시가 담겨 있고, 간결하고 밀도높은 문장으로 그의 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책으로 초등 고학년 이상 모든 이에게 읽기를 권한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동주가 좋아했다고 하는, 저음에 겨울 바람 소리가 묻어난다던 표도르 샬라핀을 찾아 들어봐야겠다.




---책 속에서>

그런데 순수하다는 게 과연 무얼까? 순수다, 순수가 아니다 하는 게 선언한다고 되는 걸까? 순수를 염두에 두고 쓰면 순수한 작품이 나오고, 현실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으면 순수하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마는 걸까?”

어떤 것을 쓰건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하게 그리면, 그리고 그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면 순정하다, 순수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내면에 치중하건, 그를 둘러싼 아픈 현실을 그려 내건······. 순수는 작가가 먼저 정해 놓은 작품의 성격이 아니라, 읽는 이의 가슴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 아닐까?”(p.108)

 

한때 동주도 문인이라는 빛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갈망한 적 있었다. 공들여 쓴 작품으로 세상과 문단의 눈길을 끌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이름이나 평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도 그곳까지 데려가, 일렁이는 감성들을 충분히 무르익게 하고, 때로는 예리한 지성의 바늘로 톡 건드리기도 하면서, 마침내 정제되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체에 걸러, 노트 위에 한 편의 시로 옮겨 적는 길고도 진실하고 순정한 시간. 그것이면 충분했다. 동주의 새로운 시는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 슬픔의 웅덩이 깊은 곳까지 닿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였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맑고 고요한 눈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했다.(p.156)

 

시를 남김없이 다 빼앗기고 일본 말로 뒤집히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동주의 가슴속에 마르지 않고 고요히 차올라 오는 시였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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