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에서 스가까지 조작되는 혐한 여론 - 한국 혐오를 조장하는 일본 언론의 민낯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서승철 옮김 / 생각비행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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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도시오 (村山俊夫)는 1953년생으로 도쿄 출신입니다. 그는 일본 지바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 방송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한국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1983년 지바현에 한국도서자료실 '녹두문고'를 열었고, 1986년 이후, 서울에서 일본어 강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교토에서 한국어 교실인 '녹두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일 양국 간의 국민들이 서로 간, 이해를 돕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외 그와 관련해, 특이한 사항은 1994년 제7회 도쿄영화제에서 통역을 한 계기로, 영화배우 안성기씨에게 인간적인 감화를 받아 안 배우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전반에 관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嫌韓' 與論"으로 지난 2020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같은 해인 2020년 12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일본 내에서 혐한과 관련된 노골적인 출판은 단적으로 말해, '거대한 산업'이기도 합니다. 이는 거의 부정할 수가 없죠. 한일 양국 간 서로를 향해 벌이는 '혐한과 반일'이라는 소위 공격적 모멘텀은 마치 피차일반이라는 식으로 치부되긴 합니다만 여기에서 본질은 한국에서 만큼은 반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거두는 산업과 그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입니다. 또한 역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 내에서 극우 민족주의에 기반한 '역사 수정주의'가 일전에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언급대로 큰 목소리를 얻으면서 일본 내에 어떠한 반론도 용납하지 않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루야마 도시오의 이 글을 일독하며,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이지만, 일본 사회가 상충되는 주장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에 반하는 건전한 반론이 자라날 수 없는 토양임을 불행하게도 확인하게 되었는데요. 어떤 학자들은 과거 일본 전국 시대에 만연했던 "강자에 마땅히 굴복해야만 하는 약자의 순종'을 들어, 일본 사회의 '순종주의 혹은 순응주의'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일본 내의 대다수 시민들이 과거 역사 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으며, 그로 인해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한 부정과 모르쇠, 합리화 등이 어떤 식으로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작용하는지 일체의 이해가 없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마루야마 도시오의 이 책은, 지난 2018년 초반부터, 2019년까지 저자 본인의 비판적 정치 시론을 출판한 것입니다. 특히 여기에 비판적으로 논의되어 있는 주된 내용은 일본 정부와 이를 맹종하는 일본 언론들의 각종 혐한을 조장 발언과 과거 역사 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의 정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행태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인용되어 나오는 '요미우리 신문','아사히 신문','산케이 신문'.'석간 후지' 뿐만 아니라,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의 '조선일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지난 평창 올림픽 즈음에, "한국 정부가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것"에 대해 일본 측 보도가 "북한의 책략에 빠지고 공산주의 국가에 예속된 한심한 한국 정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는 식으로 저자는 이를 꼬집어 논평합니다. 이에 조선일보의 2019년 7월 11일 자 일본어판 사설을 언급하며, "애초에 지금의 문제(한일 마찰)을 일으킨 것은 한국의 법원과 정부다"라는 "마치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이라도 하듯 한국 정부와 사법부를 공격했다"는 저자의 비판적 논평이 논조에 담겨 있습니다. 더욱이 저자는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이 글의 비판적 주장들의 근거는 막대한 기사 자료를 수집한 저자의 노고에 있으며, 이는 글 서두부터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판적 주제에 대한 다양한 기사들과 일본 정치의 단면까지 우리에게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에 대한 도를 넘어선 비난과 소위 프로파간다와 같은 일본 정부의 의도에 일본 언론 대다수가 거의 같은 논조와 보폭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는데요. 즉 정부 내각의 지침과 어떤 정치적 논점을 평범한 언론사 답게 쉬이 비평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사망하고 없는 아베 전 일본 총리는 전후 70주년을 맞이한 담화에서, "그 전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우리의 아들과 손자, 그리고 그 후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해야 하는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과거 역사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거듭된 사죄와 사과는 국격의 실추를 측면에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요. 여기서 연급된 독일이 현재 유럽 지도국의 위치에 있는 것과 일본이 소위 세계 지도국에 있으면서도 강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비롯, 과거사 문제에 대한 명확하지 않은 태도로 말미암아 주변국들에게 근본적인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지난 박근혜 시절, 한일 간의 위안부 졸속 합의와 관련해서도, 2016년 3월 10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밝힌 과제, 2018년 11월 19일 유엔 강제실종위원회가 위안부의 존재를 강제 실종 피해로 인식하고 일본 정부에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것은 참으로 기막힌 감정을 들게 합니다. 이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서 저자인 무라야마 도시오는 이 당시 합의가 분명 공개할 수 없는 '이면 합의'가 있었으며, "이는 소녀상 철거와 국제 무대에서 더이상 위안부 문제가 언급되는 것을 한국 정부가 관리"하는 점을 요구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요. 이 이면 합의와 관련된 의심과 정황도 이미 국내에서 기사로 나온 바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들끓는 여론을 불러 일으키는 '욱일기 문제'도 심각합니다. 지난 2018년 10월 10일부터 제주에서 있었던 '국제 관함식'에 일본 자위대 해군의 욱일기 게양 문제는 한국 내에 심각한 반일 감정을 초래했는데요. 우리는 이 욱일기가 왜 문제인지 이미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마찬가지로 욱일기는 대동아 공영과 태평양 전쟁의 원죄를 가친 일본 제국군의 상징이었습니다. 이것을 한국과 한국 정부의 예민한 대응이라는 일본 정부 및 이를 받아쓰는 일본 언론의 행태는 이들이 얼마나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글 후반부에 언급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과 관련해, 이 영화의 출연자 중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다섯 명이 2019년 6월, 상영 중지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도 일본 내부의 '진실된 역사 문제'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만듭니다.

끝으로, 저자인 무라야마 도시오는 일본 내의 조직적인 혐한과 과거 한국 정부에 대한 적대감과 여론 몰이는 아베 총리가 자신과 자신의 정권을 향한 낮은 지지를 외부로 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일관되게 비판합니다. 따라서 일본 자민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극우 민족주의자들과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여전히 역사 문제에 있어서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의지가 전혀 없으며, 자신들이 중요시 하는 미일 동맹과 미국과의 정치적 밀착만을 인정하면서 아마도 주변국들을 이런 정치외교적 매커니즘으로 배제하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저자의 이 책은 무엇보다 일본 내의 혐한 논리를 여실히 파헤친 것으로 단순히 일본의 책임이다, 일본의 문제이다 아니라, 혐한이 근본적으로 일본 정치의 병리적 현상임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에도 과거 조선의 일본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는 인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해, 저자가 이를 비판한 대목을 따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식민 지배 시절의 갈취, 약탈, 인권 유린, 고문, 살인, 문화 말살 등에는 눈 감은 채 중국 침략기지로서의 인프라 정비에 불과했던 개발 정책을 두고서 '일본의 원조'가 있었기에 한국이 근대화를 이루고 오늘날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강변한다.



따르지 않으면 배착될 거라는 주문을 퍼붓는다. 일본은 성년이 되기 전 학교 생활에서 이런 분위기를 체득하는 사회다.

천황을 이용해 국민 통합을 꾀하려는 사람들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은 11월 9일 국민제전 때 여실히 드러났다. 젋은 세대에게 어필하려고 아라시에게 봉축곡을 부르게 한 연출도 억지스러웠다. 게다가 프로그램이 끝나고 천황과 황후가 퇴장할 때 누군가 "천황 폐하 만세!"라고 외치자 많은 이가 호응하며 "천황 폐하 만세!"를 열여섯 번이나 연호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과 중국에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선동함으로써 일본 국민이 동아시아 정세와 관련해 위기의식을 갖게 하려고 한다.

2019년 <조선일보> 일본어판 기사가 대통령 직속 기관과 한국 내 여론의 반발을 산 일을 상기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2019년 7월 11일 자 일본어판 사설에서 "애초에 지금의 문제(한일마찰)을 일으킨 것은 한국의 법원과 정부다"라며 마치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이라도 하듯 한국 정부와 사법부를 공격했다. 이후로도 <조선일보>는 일본어판 지면을 빌려 문재인 대통령 관련 비판을 더욱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장식하며 일본 내 혐한 감정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논조에 편승해 일본에서는 한국과 문재인 정권의 약점을 캐거나 북한 종속을 비난하는 주장이 두드러졌다.

‘한국은 법치국가임을 부정하고 법을 초월한 국민 정서라는 감정에 따라 사회 규범이 변하는 후진적인 나라‘라고 우기고 싶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자칭 애국주의자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일본 정부의 행위가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부른다.

마키노 요시히로는 한국 대통령을 황제나 국왕에 빗대어 그 존재감이 전근대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 게임‘을 한다며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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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 지음, 허형은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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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과학 철학자 중 한 명인 칼 포퍼는 190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중상류층 계급의 부모에게서 태어납니다. 포퍼의 가문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루터교로 개종했고, 그도 루터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부친은 보헤미아 출신의 변호사이자 비엔나 대학의 법학 박사였고, 모친은 실레지아와 헝가리 출신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특히 포퍼의 부친은 12,000권에서 14,000권으로 추정되는 책을 소장한 애서가였으며 그런 집의 분위기로 말미암아 포퍼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19세가 되던 해인 1919년, 당시 포퍼는 마르크스주의에 매료되어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었는데요.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류를 깨닫고 이 이데올로기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됩니다. 이후 그는 객원 학생으로 비엔나 대학에서 수학하고 그외에는 캐비넷 제작자로 견습 생활을 시작해 곧 숙련공으로 이 과정을 마쳤습니다. 1928년에 포퍼는 칼 뷸러의 지도 하에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듬해인 1929년에 중등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칠 수 잇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교편을 잡고 있는 와중에 그는 1935년과 1936에 연구 방문을 위해 영국을 오가기도 합니다. 마침내 1937년이 되어 그는 뉴질랜드로 이민할 수 있는 자리를 얻었고, 크라이스트처이에 있는 뉴질랜드 대학에서 철학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논저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을 쓴 곳이 바로 뉴질랜드에서였습니다. 그런 명성을 안고 1946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제안을 받아 영국 런던의 런던정경대학 LSE에서 논리학 및 과학적 방법론의 교수로 임명됩니다. 이후 1969년에 최종적으로 학계에서 은퇴한 포퍼는 1985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서리의 켄리에 정착합니다. 그렇게 사색과 집필활동을 하던 그는 1994년 9월 17일 암과 폐렴 및 신부전의 합병증을 세상을 떠나게 되고, 화장 후, 그의 유골은 비엔나로 옮겨지게 됩니다. 평생에 걸쳐, 포퍼는 합리주의 철학과 정치적 자유 및 민주주의에서의 사회 비판의 원칙에 학문적 노력을 기울이고, 특히 1945년 이후 독일의 나치즘에 반하여, 이러한 전체주의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던 인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Alles Leben ist Problemlosen : Uber Erkenntnis, Geschichte und Politik"으로 지난 199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 번역은 2006년 초도 번역 이후, 2023년 3월 재번역이 이뤄졌습니다.

여기 칼 포퍼 역시, 인류사의 비극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치열한 냉전의 시기도 학자로서 분투했다고 볼 수 있으니 그의 전반적인 삶 자체가 내적으로 그저 편안하거나 안온했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특히 포퍼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칸트의 지고한 탐구에 대한 찬탄과 함께 서두에 자신이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포퍼는 "내가 지지하는 것은 민주주적으로 선출되고 헌법에 의거해 통치하는 정부"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로써 그가 7장 이후의 '법치주의 국가'에 대한 본질이 어떻게 자유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는지 깨닫게 되는데요. 여기에 그의 주저였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민주주의에 터무니 없는 공격을 해 체제를 붕괴시킨 전체주의와 그 추종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좀 시간이 지난 뒤,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그의 주저가 당혹스럽게도 부분적인 오독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 책의 출판 연도를 감안하더라도 소위 열린 사회에 대적하는 자들의 존재란 아주 명확했지만 어떤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오독이 된 정황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포퍼의 이 논저는 일종의 에세이이자 강연 원고 모음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글의 제목인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는 9장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1부가 과학 철학에 대한 포퍼의 인식과 그런 과정에서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소위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는 과학 철학의 중요한 전제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어지는 3장에서 그는 지식의 한계, 즉 대부분의 지식이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에 소위 지식을 항유한다는 지식인들을 대범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지식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작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에둘러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아무것도 혹은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그것이 인생의 기본 진리라고 추측합니다."라고 포퍼는 첨언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과학이 대답하고 창의적인 여러 가설을 통해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지요. 가설의 거의 대부분은 틀렸거나 검증이 불가능합니다."라고 그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포퍼의 생각은 과학을 비롯한 학문의 기본적인 태도는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어야만 한다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그가 겸허한 인간이기도 했던 케플러를 긍정하고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요. 케플러는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가설을 '경험'이라는 엄중한 시험대에 올려, 우리가 실수를 통해 배우게 할 수 있는 과학적 가설이 될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케플러도 본인도 그것을 잘 알기에 실수를 제거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고 포퍼는 그리 평가하기에 이르는데요. 포퍼가 앞선 진화와 관련된 논증에서 수많은 종이 자연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 세대의 실수가 제거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앞선 주장과 연계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즉, 이는 본질적으로 현재의 과학계가 보이는 자신의 어떤 가설의 진위 여부를 가리게 되는 반증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들은 결코 그런 실수로부터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학계의 세태를 비판하는 것인데요. 앞선 장에서 논증되고 있던 진화인식론에 대한 그의 비판적 분석 역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비롯한 소위 지식의 경험적 요소로서, "우리는 오직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학습한다"는 큰 전제를 다시금 강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부는 소위 '역사와 정치에 대한 고찰'로 포퍼가 몸소 겪었던 그 혼란의 세계를 기준 삼아, 철학과 정치 그리고 사회에 대해 가감없는 자신의 의견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일단 과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본질을 파악한 포퍼는 마르크스가 경고한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비판하고 그런 이데올로기가 구축되어 나타난 미소 간의 첨예한 냉전시기에서 당시 거대한 공산 국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즉, 유럽의 역사에서 한동안 배제되었던 스위스의 시민들이 자유에 대한 결속된 태도를 갖고 있었듯이, 인간의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원초적이고 중요한 의미인지 포퍼는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자유의 좀 더 확장된 의미라고 볼 수 있는 '정치적 자유'에 대해, 8장 이후 이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포퍼는 이 정치적 자유를 전제주의 정치로부터의 자유로 먼저 해석하고 있지만 이 정치적 자유가 있어야만 정부가 어떠한 유혈없이 교체될 수 있고 그런 민주적 체제가 보장되어야만 동시에 정치적 자유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민주주의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시장 경제와 자유시장에 대한 관념이 포퍼의 입을 통해 "나는 오직 국가가 법적 질서를 세우고 보장하는 상태에서만 자유시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논리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 바 있습니다."라고 두 체제의 명료한 관계성과 이것을 존재케 한 정부의 본질을 명확히 합니다. 즉, 이는 앞선 신자유주의자들이 애써 왜곡한 부분으로 시장을 위해, 국가와 정부가 과정의 합목적성과 합리적 결론을 방해하고 무조건적인 당위만을 이들이 강요한 이행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왜곡된 주장을 에둘러 이해할 필요가 없이, 그저 자신들과 기업 그리고 자본에 이득이 되었기 때문에 사회 체제 전반을 시장에 봉사하는 식으로 개조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끝으로 저는 10장에서 포퍼가 보이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인식에 적잖은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정치적 가치들 중에 이 정치적 자유는 무엇보다 중요하며, "우리는 언제든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는 힘 있는 목소리에 이어, "정치적 자유는 언제라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만히 앉아서 이대로 자유가 보장될 거라고 믿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라는 선명성을 문장의 연계를 통해, 우리에게 거듭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역사의 분절을 몸소 체험한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전체주의가 어떻게 국가와 유럽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런 결과가 인류에게 어떠한 참혹함을 안겨주었는지 뼈아프게 경험해 봤기에, 이 정치적 자유라는 소명을 우리와 같은 다음 세대의 시민들에게 부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고언으로 읽히는데요. 또한 지식의 강요된 형태가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최소한 인정한다면 선동과 폭력이 아니라, 지식 자체는 시민들의 안정과 더 나아가 평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포퍼의 마지막 조언은 많은 독자들을 숙연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포퍼는 일생동안 스스로를 낙관주의자이자, 칸트에 동화된 합리주의자이자 그리고 계몽주의자로 밝혔는데요. 핵무기 경쟁으로 점철된 시대를 살다간 한 지식인의 남다른 고백은 냉소주의와 역사의 예언적 의미에만 몰입하는 일부 세대에게는 한낱 공허한 울림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너무 과신하지 말라는 점과 스스로를 성찰하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새로운 지식의 디딤돌로 삼아야만 그런 적지 않은 과정 속에 삶과 정치를 아우르는 진정한 평화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글 말미에 생각해 봅니다.


-이 글에서 버틀란드 러셀과 카를 슈미트의 짦은 일화가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특히 포퍼가 경험한 카를 슈미트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놀랍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버틀란드 러셀에 대해 느끼는 그의 안타까움은 뭔가 아이러니한 감상이 들기도 했는데요. 러셀에 대해 그와 같은 평가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는 저로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과학을 진정한 과학으로 만드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비판적 접근이며, 이는 과학 이론의 객관적, 공개적, 언어적 공식화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

우리는 항상 반증을 통해 전혀 새로운 사실들을 배웁니다. 어떤 가설이 잘못됐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도 배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더욱 예리하게 조준된 새로운 문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고유한 인간 언어의 발명이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보고하거나 혹은 상세히 묘사하는 능력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 그 결과, 사건의 보고에는 종종 화자가 바라는 바가 섞여 있습니다.

케플러도 자신의 실수에서 배울 줄 아는 한명의 형이상학자였습니다. 실수에서 배운다는 건 그에게는 매우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과학자가 그것을 간과하는 것과 사뭇 대조되지요.

내가 이성이나 합리주의를 논할 때는 오직 우리가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비판, 특히 타인의 비판을 통해, 그리고 나아가 자기비판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주의와 계몽주의가 정치적 자유를 필요조건으로 한다는 사실도 간략히 설명했고요.

사실 국가 통치의 형태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피를 흘리지 않고 현 정부를 교체할 수 있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그럴 수 없는 형태이지요.

이미 46년 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초판본에서 나는 오직 국가가 법적 질서를 세우고 보장하는 상태에서만 자유시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논리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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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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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츠키는 미국의 저명한 비교 정치학자로 특히 남아메리카 정치 연구에 있어 탁월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는데요. 그는 스탠포드 대학을 거쳐,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UCB) 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2000년에 조교수로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과에 합류하고, 사회과학 부교수를 지내며, 2008년에는 같은 대학의 정교수로 재직합니다. 또한 하버드 대 인문대학의 최대 규모 연구소인 '웨더헤드 국제 문제 센터 (WCFIA)와 데이비드 록펠러 라틴 아메리카 연구 센터의 집행위원회 위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민주적 제도에서 일반적으로 정치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는 과정에 있어, 오랫동안 학문적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데요. 그는 최근에 동료 학자인 대니얼 지블랫과 함께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로 전세계 학계에 큰 관심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저자중 한 사람인 대니얼 지블랫은 2018년부터 하버드 대학의 정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유럽 국가 중 독일과 이탈리아 정치에 폭넓은 이해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권위주의 정치에 관한 탁월한 권위자가 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두 학자의 논저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미국 뉴욕 타임즈와 독일 슈피겔의 주목할 만한 도서로 선정되었고, 워싱턴 포스트, 타임, 포린 어페어스에서 선정한 2018년 최고의 논픽션 도서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큰 반향을 일으킨,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은 원제, "Tyranny of The Minority"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최근인 2024년 5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이었던 것 같은데요. 모 지상파 라디오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채상병 특검'의 무산과 관련해, 바로 이 책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진행자가 인용한 부분은 바로 5장의 논증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결주의를 어느 정도 제약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에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인용을 필두로 나중에는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민주주의자 로버트 달의 발언을 첨언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 진행자는 이 책의 핵심 주제라고 볼 수 있는 '반다수결주의 제도 counter-majoritarian institutions'의 핵심을 빼먹고 언급하지 않아 어찌됐든 저로서는 다소 아쉬운 문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작금의 대통령 거부권 정치에 대해,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도 이 논저를 인용할 정도로 우리 정치의 위기감을 어느 정도 대변했다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

일단 두 공저자의 이 논저를 통해, 최초의 성문 헌법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 헌법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과 더불어, 이 당시 건국의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민을 갖고 있었는지 새삼 이해하게 되었는데요. 그리고 이들이 세대와 세대를 거쳐, 자신들이 기초한 이 헌법이 아무런 수정 없이 '불사의 영역'으로 남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마땅히 변화된 시대와 사회 모습에 따라, 후세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이 헌법을 고칠 수 있기를 바랬던 것으로 추측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두 공저자는 미국의 개헌이 전세계 여타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제도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하고, 또한, '노예 전쟁'이라 불리는 남북 전쟁과 여성 참정권 확대와 같은 근본적으로 변화된 사회를 겸험했던 후대를 감안해 본다면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이를 위한 폭넓은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헌법과 탄생한 '백인 남성들만의 민주주의'는 앞선 남북 전쟁을 통해서도 여실히증명된 바가 있습니다. 연방의 해체라는 극명한 위협 속에서도 노예제를 유지한 남부 연맹은 자신들의 실질적 요구를 '연방 헌법'에도 강요한 바가 있습니다. 즉, 이는 '노예제도의 존속'이라는 이해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굴절은 전쟁을 통해서 사실상 국가를 남북으로 갈라쳤고, 두 공저자가 논증하고 있는 대로 현재의 미국 헌법에도 이러한 유산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다시 엄밀히 말하자면 '소수의 과대 대표'를 이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건국 헌법의 유산이기도 한 모든 주가 인구와 상관없이 동일한, '2석의 상원제'와 연방 대통령 선출에 있어 직접 투표가 아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거 인단'을 통한 간접 선거에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두 공저자는 지난 2000년 대선의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2016년의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투표 결과를 논하면서, 선거 인단에 의한 대통령 선출의 민주주의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공저자는 현재 공화당이 과거의 정치적 유산과는 거의 단절된 채, 소수 농촌 지역과 보수적 기독교적 기반에서 표를 얻고 있는 상황을 크게 주목하고 있었는데요. 반대로 도시 지역에서의 지지를 기반으로 미국 양당 정치의 한 축인 민주당는 반대로, 헌법 위반과도 다름 없는 비도덕적인 '게리맨더링'과 티파티와 같은 소수 극단주의 세력의 지지를 얻은 공화당이 과대 표집된 소수의 권력을 통해, 의회와 대통령 선거에서 군림해 왔다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정치와 제도 왜곡이 미국 정치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자명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공화당을 접수한 '도널드 트럼프'와 거의 친위 쿠데타와 다름없는 2021년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의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거에도 불구하고 이 당은 트럼프를 중심으로 더욱 똘똘 뭉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극단주의 소수에 대한 경고는 이미 학계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주지되어 왔는데요. 그럼에도 기존의 미국 정치가 도널드 트럼프를 통한 극단주의 세력에 포획되었고, 이것은 더 쉽게 말하자면 공화당과 미 연방이 트럼프라는 극단주의적 아이콘에 의해 포획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서두에서 언급했던 반다수결주의 제도에 대한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다수에 의한 폭정'이라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오독과 터무니 없는 우려는 다수가 주도하는 정치에 대한 노이로제를 미국 정치에 극단적으로 이식했으며, 미국이 여타 민주주의의 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국가로 오랫동안 변모해 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민주주의 하에서 다수에 의한 통치는 민주주의가 인류의 역사를 통해 구축해 왔던 이념이며, 5장에서 드러나는 논증대로 '다수결주의에 어느 정도 족쇄를 걸면서' 토론과 합의에 이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다음 장에서 영국과 캐나다가 일종의 개혁에 나섰던 의회 내에서의 다수에 부여된 토론 합의, 즉 다수에 기우는 토론 결과에 대한 단호하고 합법적인 인정은 이처럼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정치적 토론이 지난한 자기 변론과 대안적 사실과 같은 것으로 변질되어 '토론으로 인한 굴복'이 더욱 요원해지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의회 내의 결단은 매우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특히나 의회내에서 결정할 부분을 사법 제도로 끌고가 법의 판단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정치의 무능력화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와 관련해, 공저자들도 자신들의 연방 판사 임용에 있어, 선출되지 않은 거의 정년을 보장받은 판사들이 이런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과 다름없는 정치적 결정에 있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마찬가지로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회에서 통과된 입법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이를 부당하게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저 역시, 공저자들의 이런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결국 3장에서 광범위하게 논증되는 과거 백인만의 인종주의 정치의 전개는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꽤나 반동적인 정치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나 우리의 주민등록제도와 같은 국가에 의한 신분 증명이 가능하지 않은 미국 행정하에서 흑인들이 민주주의 선거를 위해 자신의 신분을 입증해야 하는 지난한 행정 처리가 최소 남부 11개주에 조장되었고, 이후 연방 대법원에서의 극적인 법적 개선에 이르는 판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이는 흑인들과 히스패닉 및 아시안 인종의 사실상 투표 방해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소위 코카서스 인종이 주도하는 미 연방이라는 측면의 닳고 닳은 음모론을 꺼내기에 앞서 전반적으로 미국 백인 계층이 다인종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방 판사조차도 다인종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하고 이보다 저학력의 백인 계급은 더 심각한 형편인데요. 그런 연유로 소수 계급의 극단적인 증오를 바탕으로 이뤄진 정치 행보 자체는 이처럼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렇게 미국 사회가 처절하게 분절된다면 미국 헌법에서의 반다수결주의와 함께 모두가 결코 원하지 않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더욱이 작금 공화당의 지지 기반과 이들이 취하고 있는 정치 행보가 단순히 미국의 정치 체제와 더 나아가 미국의 국익에 있어서 심대한 악영향이 될 것은 거의 자명한데요. 다음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을 좌지우지 하며 다시 한 번,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로 이런 우려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7장 이후, 공저자들은 아주 강도 높게, '표준 이하의 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종신제, 간접선거, 불균형한 의석이라는 현실의 분석으로 가늠하고 있기도 한 데요. 특히 1962년 이후, 그 기간에 있었던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연방 의회와 주 의회가 선거 다수를 대표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소위 보편적 민주주의에 근접한 정치 제도를 긍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양원에서의 투표에 반하는 결과들과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의 사법의 영향이 그 전보다 더욱 비대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인종주의 정치와 소수 계급에 집중된 메커니즘이 오늘날 미국 정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만약 이들 극단적 소수 정치가 국역된 책의 제목처럼 다수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은 과거 독일 전체주의와 맞먹는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는 미국 정치와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건전성은 자신들만의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방위적인 세계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도래할 지 모르는 극우 포퓰리즘 정치의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8장에서, 자신들을 포함한 미국인들이 지난 4년의 트럼프 집권을 견뎌냈다는 것 만으로도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혼란과 파국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견지하고 있었는데요. 암담하다면 암담할 수 있는 이 작금의 현실에서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에 대한 변별력과 자정 능력을 영원히 상실하게 된다면 단순히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이 아니라, 다시 한번 미국 정치의 궤멸적 상황을 전세계인이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정치에게도 불안한 시사점을 안겨 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작금의 우리 정치도 무엇보다 심각한 병리 현상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지점에서 어떤 정당과 어떤 정치인을 지칭하고 있는지는 이미 여러분 모두 잘 인지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약간 논외이기도 하지만, 작금의 극단주의 정치에 있어,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선임 고문인 캘리언 콘웨이의 '대안적 사실'이 바로 그 시초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5장의 제목과 그것에 반하는 후반부의 논증, 그리고 전반적인 내용은 실로 대단하다고 여겨졌는데요. '반다수결주의'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이것이 초래한 민주주의 전반의 병리적 현상은 유독 미국에 국한된 현실이기도 하지만 이것의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고, 폭동을 조직하고, 반란을 조장하고, 폭탄 투척 및 암살 등 다양한 테러 행위를 계획하고, 정적을 물리치거나 유권자를 위협하기 위해 군대나 폭력배를 동원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정치인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주류 정당이 전제적인 극단주의자를 용인하고, 묵인하고, 혹은 이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할 때, 민주주의는 곤경에 빠진다.

혹은 탄핵을 생각해보자. 대통령제 민주주의하에서 헌법은 일반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권한을 입법부에 부여한다.

연방이 투표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부 지역의 민주주의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존슨의 민주당은 남부 보수 진영을 넘어선 자유주의 계파와 더불어 시민권을 옹호하는 정당이 되었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이 이러한 남부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는 1960년대의 시민권법과 투표권법에 반대했고 주州 의 권리에 대한 주장을 1980년대로 이어나갔다.

티파티는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로 결심한 나이 많은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 미국인들이 주를 이룬 전형적인 반동적 운동이었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인종적 분노는 당파적 문제가 아니었다. ‘양당‘의 당원들 모두 전통적인 인종적 수직체계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인종적 보수주의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민주주의자 대부분은 개인의 자유,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야당의 권리가 다수결주의 범위 너머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해밀턴은 연합규약을 비판하면서 모든 주에게 평등한 대표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다수의 지배라는 개념을 요구하는 공화국 정부의 근본 이념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 무렵에 유럽 대륙의 민주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다양한 형태의 비례대표제를 실시했고, 오늘날에는 인구 1백만 명 이상인 민주주의 국가들 중 80퍼센트가 그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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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서 2판 전면개정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6
레이먼드 웍스 지음, 이문원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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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웍스는 홍콩대학의 법학 및 법이론 명예교수로, 1986년부터 1993년까지 동대학의 법학과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 소재한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런던정경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옥스포드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 석사 취득 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방 공립 연구 대학인 런던 대학에서 최종적으로 박사 학위를 마칩니다. 그의 주요 전문 분야는 법철학과 인권, 특히 개인 정보 분야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개인 사생활 권리와 그에 따른 법철학 이론으로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홍콩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현재 홍콩의 정치 상황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큰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한 데요. 2000년대 이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발생한 홍콩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그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중국 공산당의 홍콩 특별법 등에 그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홍콩 법률 저널 Hong Kong Law Journal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Law : A Very Short Introduction -Second Edition-"으로 2008년 초간의 재간행 판으로 지난 2015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번역은 2017년 3월에 이뤄졌습니다.

이미 글 서두와 역자 후기에서 드러나고 있듯, 레이먼드 웍스의 이 글은 법과 법률에 대한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쓴 소위 알기 쉬운 개론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장 법과 도덕, 그리고 6장의 법과 미래를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 될 부분으로 여겨졌는데요. 특히 3장의 법과 도덕은 나름대로 법에 대해 제법 생각할 것들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법과 도덕의 연관성과 도덕이 배제되어 법이 그저 합리적인 측면으로만 존재한다면 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지는 거의 자명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 역시 저자의 논증대로 법은 절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습니다. 더욱이 법이 어느 정도는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 명목상 마땅하다고 볼 수 있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정의를 지켜내는 것이 더욱 '사적 이익화'와 맞물려,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요. 형법의 체계적 고도화와 나날이 어려워지는 민법의 판결 등은 과연 법원과 사법 체계가 과연 정의에 이를 수 있겠는가를 매번 시험하게 만드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글 서두에서 인류가 제정한 법의 기원은 크게 대륙법과 영미법으로 갈라지고, 이것은 서로간의 독특한 문화권 만큼이나 구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먼저 영미법은 원칙적으로 법문으로 작성되지 않는 불문법이 다수 있으며, 애초에 이전 영미법의 계승자들은 성문법화에 반감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둘째로 영미법은 판례법으로, 판례에 대한 일종의 맹신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 다음은 선례구속의 원칙으로 이는 동일 또는 유사한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는 경우에 선판례에 의하여 구속을 받으며, 상급법원의 판결은 하급법원을 구속한다는 내용으로 이를 선결례의 원릭이라고 합니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상급 법원의 판결은 사법적 위계 질서하에 하급 법원을 구속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미법은 '구제책이 있는 곳에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대륙법의 전통은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법원의 심리 결과 구금이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을 경우에 법관은 피구금자의 석방을 명할 수 있는데, 이는 앞선 영미법의 주요 법적 가치로, 현재는 대륙법 체계의 국가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토머스 홉스를 통해서도 한번 더 드러나고 있지만 법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의 보루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만인 대 만인'이라는 자연 상태의 투쟁에 준하는 상태에서는 모두가 원칙적으로 존중해야만 하는 사회 규칙이라는 것이 그저 말 뿐으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 국왕과 봉건 영주 간의 소위 명예로운 계약 이후, 계급과 사회 제도 유지를 위한 기초적인 법의 형태가 뿌리 내리게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호하고 그리고 자유에 대한 헌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법관들의 사명은 단순한 법집행과 법원의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데요. 이는 저자의 우려와 경고대로 각 판사들이 정치적 이익에 가까워지는 것이 그 사회에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법관들의 '자유에 대한 헌신'이라는 뭔가 이상적인 가치보다도, "왜 나날이 우리가 사법제도를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판사 스스로의 역량이라든지, 혹은 법을 여실히 잘 이해하는 것과 법이론과 현실과의 균형 감각 등 판사의 재량에 사법 제도의 건전성이 달려 있다는 원론적인 주장들보다는 판사에게 허용치 이상의 권력 허용과 판사는 곧 법이라는 소위 법 권력 지향적인 합의 없는 이행이 사회에 가속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4장 법원'에 이르러 저자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각 국가의 법원을 고찰해보고, 특히 미국 연방 법원 판사 제도와 같은 선출직 판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었는데요. 투표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선호하는 민주적 인사들이 '미국의 판사 선출 제도'에 반색을 할지도 모른다며 논평하고, 저자 자신은 이 제도에 대해 일종의 의구심을 표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일종의 엘리트 선발 제도로서의 광범위한 사법 시험을 통해 선발된 법관들이 단순한 시험 고득점자가 아니라, 법원과 사법제도, 그리고 시민에게 필요한 인물인지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자격 심사' 같은 것이 실질적으로 전무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판사를 선출 하는 것 이상의 의회 인사 청문회, 더 나아가 전문가 그룹의 이력과 사법 제도에 대한 이해 및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검토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저자는 3장에서 법과 인간의 생명, 그리고 윤리 문제를 거듭 분석 진단해 보고, 안락사 문제와 낙태 문제를 법의 해석과 제도 규범에서 이를 마찬가지로 살펴보고 있었는데요. 더욱이 후반부에는 개인 사생활 문제에 대한 저자 스스로의 관심 답게, 2000년대 이후 미국의 테러 와의 전쟁과 그 이후 진행된 NSA와 같은 안보 조직의 비대화, 그리고 에드워드 스노든을 통해 폭로된 CIA를 비롯한 미국 정보 조직의 전세계 감청과 도청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이렇게 나날이 비대해진 정부 조직의 권력화와 여기에 사법 제도가 과연 어떠한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이를 논하고 있었는데요. 앞선 광범위한 도청과 같은 개인 사생활의 무분별한 수집이 '시민의 사생활 소멸'로 이어지고, 이는 곧 정치 전반의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엄중한 예측으로까지 연결됩니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 '법이 소멸될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발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정보 조직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권력 조직이 국가의 비상 사태 등을 들어 시민의 권리와 기본권을 사실상 침해하려는 어떤 메커니즘이 단계 별로 진행된다면 여기에 법원이 맹렬히 대응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법원과 그 구성원들 역시, 어떻게 보면 '관료'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양심의 건전성'과 '확고한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확실히 예단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소위 법의 소멸과 같은 망상은 바로 이런 복합적인 문제가 혹여 파국으로 치달을 때, 무조건 배제할 수 없는 위기일 것입니다. 사법 제도가 시민의 자유와 안녕에 봉사하지 않고 체제 현상 유지를 위한 소수 권력의 편의에만 몰두한다면, 사법 제도 뿐만 아니라 민주 사회의 지속성은 그때부터 소멸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논증 가운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대목은 '4장 법원'에서, "법관은 비선출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서 특히 자유의 수호자로서 우월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논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양심적인 문장으로 여겨집니다만, 비선출직이 어떻게 자유의 수호자가 될 수 있는지는 이어지는 후술에서도 역시나 딱히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른바 독일 통일민법(BGB)으로 알려진 이 법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 그리스, 발트 해 국가들에서 도입된 민법전의 모델이 되었다.

법과 법적 절차에 대한 숭상은 현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판사가 사법공무원이라는 사실이 법체계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 심지어 불의로부터 이익만을 취하는 사람과 판사를 구별할 이유가 되는가? 판사를 다른 사람들, 특히 변호사와 도덕적으로 달리 취급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현대적인 정부는 법적 강제 외에도 다른 수단으로써 시민들을 설득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판사는 판결문에서 사건의 주요 사실과 무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혹은 사건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에 대하여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고 싶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영미법은 실용주의적이고 상업적이라고 평가되는 반면, 대륙법은 윤리적 측면을 좀 더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적용 가능한 규칙이 없을 때 또는 확립된 규칙들로 결정을 내리기에는 미흡할 때, 판사는 서로 대립하는 원리를 비교형량한다.이때 원리는 규칙이 아니지만 법의 일부가 된다.

법원도 실수를 한다. 판사도 인간적 나약함을 면하지 못하며, 따라서 과오를 정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만을 제외하고) 영미법계에서 판사는 일반저긍로 고참 변호사 중에서 선발되는 반면 대륙법계에서는 공무원처럼 임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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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지음, 김윤하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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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독자들로부터 영어 소설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헨리 제임스는 1843년 4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부친은 총명하고 사려 깊은 인물로 아버지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 받았고, 모친도 오랫동안 뉴욕의 정착했던 부유한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헨리가 태어난 지, 1년이 되지 않던 해에 그의 부친은 워싱턴 플레이스에 있던 집을 팔고 자신의 가족을 한동안 영국에서 지내게 하는데요. 그들은 윈저 그레이트 파크에 있는 별장에서 한동안 머물게 됩니다. 그러다 이들은 1845년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고, 특히 헨리는 올버니에 있던 친할머니 집과 맨해튼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냅니다. 1855년부터 1860년 사이의 기간에는 그의 부친의 관심에 따라 런던, 파리, 제네바, 본 등을 여행하고, 틈틈이 경비가 부족해 질 즈음에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후 1864년에 이들 가족은 미국 메사추세츠의 보스턴으로 이주하게 되는데요. 헨리는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다녔으나 법학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이 즈음에 문학에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이에 같은 해인 1864년에 익명으로 단편을 출간하고, 1869년부터 70년까지 그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존 러스킨, 찰스 디킨스, 매튜 아놀드, 윌리엄 모리스, 조지 엘리엇 등과 만납니다. 이처럼 그의 인생 절반은 미국 바깥으로의 여정과 발길이 닿았던 곳에서의 사색 등으로 점철되어 있는데요. 1875년부터 이어지는 활발한 집필 활동과 최종적으로 정착하게 되는 영국에서의 여러 활동들이 그의 문학적 영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회 통념과 그에 따른 개인의 심리적 변화와 타락, 한 개인의 이상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비틀어 내는 그의 주제 의식은 특유의 긴 심리 묘사, 그리고 그런 배경의 더할 나위 없는 점층된 서사로, 당시 평단으로부터 문학가로서의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여러 작품들 중, 중기에 속한 이 장편은 원제, "The Bostonians"로 지난 1886년에 처음 출간 되었고, 펭귄 클래식의 2000년 판을 바탕으로. 2024년 2월, 국내에 초역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올리브 챈설러, 버리나 태런트, 베이질 랜섬, 이 세 인물이 극을 주도하고 이들의 엇갈린 행보와 더불어 당시 시대상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큰 틀에서 진보에 관한 주제 의식을 독자들의 고유한 양심에 맡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진보의 대한 주제란 이 시대의 여성의 자유, 남녀 평등에 대한 요구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번역본이 출간된 직후에 여러 기사나 소개글로 헨리 제임스의 이 소설을 단순히 페미니즘적 작품으로 홍보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1865년의 남북 전쟁의 종결 이후, 노예 해방이 미국 사회에서 명목상으로는 완수됨으로써, 이제 여성의 차례라는 점을 올리브 챈설러라는 인물로 드러내며, 그녀가 원하고 지향하는 이 거대한 이상에 대한 치밀한 서사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사실 작가인 헨리 제임스의 과거 이력으로 보았을 때, 그가 기존의 '결혼 제도'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인물은 아닌 것은 분명해, 이런 여성 해방 운동이라는 주제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앞선 올리브 챈설러는 독신을 무엇보다 스스로 신념의 증거로 체화하면서 억압 받는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운동에 대한 야망을 매우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즉, 이는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운동에 있어 결혼은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그녀 자신의 확고한 의지이기도 합니다. 물론 극중에서 이런 그녀를 좀 별난 인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집안 언니인 루나 부인을 통해서 말이죠. 또한 올리브가 극중에서 자신의 언행을 통해 보여지는 기존 남자들에 대한 일종의 '혐오'도 그런 비슷한 맥락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여성의 앞길을 막는 남자' 라든가, '여성의 역겨운 파트너들'이라는 직접적인 어구들은 올리브라는 인물의 남자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 체계를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인데요. 이것은 당시 편협한 사회 구조에 대응하는 비판이기도 하면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소유(몸과 마음 전반)하고 있다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깨어 있는 여성'의 인식이기도 합니다. 마치 존 스튜어트 밀의 비판과도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올리브는 자신과 같은 여성들이 좀 더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각성하길 바라면서, 당시 누군가의 정치적 의견 피력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던 '대중 연설'을 소위 점진적 여성 해방의 방편으로서 이를 연결 시키는데요. 남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있어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던 버리나 태런트를 올리브가 우연히 만나게 된 장면이 바로 이 극의 중요한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당시 남녀 평등 운동의 대모로 읽히는 미스 버즈아이에 준하는 인물로, 그리고 그녀보다 좀 더 친화적이며 대중적인 여성 리더로서, 버리나를 그렇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올리브는 어리석지만 음흉한 야망을 갖고 있던 그녀의 부모로부터, 자신의 수표를 통해 버리나를 항유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사고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나이 어린 소녀를 자신의 이상을 위해, 내면과 의식을 함께 조형하고자 하는 이런 시도가 사실 지금에있어서는 상당히 불편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버리나는 어느 정도 영악한 친부모로부터의 영향력을 차단시켜 준 올리브에 대한 고마움과 그런 그녀가 갖고 있는 내면의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런 이상을 가진 그녀와 함께 한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다만 버리나 태런트의 이런 불완전한 이상의 한계 자체는 후에 나타날 극의 반전과 교묘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난 치열한 전쟁에서 자신의 고향인 미시시피 주가 속한 남부 연방이 북부에 무참히 패배해, 소위 전통을 망각한 몰지각한 북부인들의 연방으로 회귀한 현실에 스스로 어느 정도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베이질 랜섬은 작가가 의도한 바대로, 올리브의 신념과 정반대로 대치되는 인물입니다. 랜섬은 그 자체로 정치적 구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다시 연방 체제로 복귀한 작금의 미국에 있어, 여실히 사회적으로 패배자이자 동시에 낙오자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남부가 노예 노동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자신들의 문화적이고 귀족적인 측면에서의 특수성으로 항변해 왔던 것처럼, 남녀 간의 차이 혹은 소위 '성별의 임무'가 마땅히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기존의 소리를 마찬가지로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올리브는 극중에서 꽤 애매한 언급으로 이런 랜섬을 사람 자체로 싫은 것이 아니라, 그의 사고와 발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으로 그를 갈음하고 있기도 한 데요. 이것은 분명 작가인 헨리 제임스의 의도된 설정으로도 읽힙니다. 이런 측면에서 랜섬과 버리나의 마치 운명과도 같은 - 아니면 약간 작위적이라고 볼 수 있는 - 애정이 독자들에게 정황상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즉, 올리브의 영향력 하에 있던 불완전한 버리나가 완전히 다른 성향의 인물인 랜섬의 상당히 이해 되지 않는 구애에 굴복했다는 단순한 전개를 넘어, 결과적으로는 극의 주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올리브를 처절하게 몰락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그저 단편적인 생각이 초반에 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제 예상과는 반대로 이 결말의 여운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여성을 위한 운동 그 자체에서 역사가 되었던 한 인물의 죽음은 작중 세 인물의 경로를 완전히 틀어 놓습니다. 자신이 진정 스스로 원했던 바가 그 '진보의 운동', 그 곁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그녀와 그런 운명을 마치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한 어떻게 보면 그의 일관된 의지와 ,이 남녀의 결합은 '남녀 간의 애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견고하게 보였던 이상이 함께한 관계를 처절히 붕괴시켰습니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은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거듭 강조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거창한 대의라도 사람 사이의 단순한 감정이라는 자연물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점과 동시에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며, 대의거나 혹은 거창하지 않은 편협한 소의라고 할지라도 이를 누가 대신 짊어질 수 없다는 당위와 가까운 관념은, 현실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대의에 대한 냉소나, 이상에 대한 명확한 반론이라는 의견 만으로는 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는데요. 올리브가 가고자 했던 길이 사실 현재에 많은 여성들이 바라 마지 않는 대의가 되었다는 것은 거듭 말하지 않더라도 거의 분명합니다. 다만, 현란한 말 뿐인 대의는 쉽게 주변을 불타오르게 할 수 없으며, 일말의 공감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불꽃이 되어야 사회에 대한 변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진보를 위한 중요한 맥락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오히려 올리브의 여느 결말을 작가인 헨리 제임스가 따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설정이 많은 독자들에게 삶에 있어 사소한 여운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일전에 존 스타인벡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신념이 전무한 인간은 그 존재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냐고 우리에게 되물은 바가 있었죠. 이는 여기서 말하는 노예 해방이나 여성 해방이나 정치적 평등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봤던 4시간 22분짜리 영화 게티스버그에서 남부군에 속한 장군들과 병사들의 남부 억양을 개인적으로 접할 수 있었는데요. 역자도 이미 뒤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베이질 랜섬의 '미시시피 억양'의 설정과 이에 대한 충실한 번역이 우리 말로는 어려웠다는 점에서 원서를 일독해야 될까 고민입니다. 이와는 논외로, 이 번역된 작품도 상당한 분량이어서 일상 속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읽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이듦은 그것에 비례하여 집중력을 더욱 소진시키는 것만 같습니다.   



그중 하나는 인간을 가장 단순하게 분류하면 만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자와 쉽게 받아들이는 자로 나눌 수 있다는 점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제 남부의 낡은 관념은 막을 내렸다는 말을 그녀에게 얼마나 귀에 못 박힐 정도로 했는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가 고투하는 목표는 국가의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고 모든 남자에게서 술이 넘쳐흐르는 잔을 뺏는 것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미스 태런트라는 젊은 여성이 과연 놀랄 만한 재능의 소유자인지, 아니면 단지 나서기 좋아하는 말괄량이에 지나지 않는지 자문하고 있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모두 여성의 온유함과 선량함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것, 오랜 시대를 걸쳐 어떻게 여성들이 남성의 강철 뒤축에 짓밟혀왔는가 하는 이야기였다는 것뿐이었다.

잔 다르크는 어디서 프랑스의 고통에 대한 통찰을 얻었냐고 물었다. 이 말을 하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올리브는 그녀에게 거의 키스할 뻔했다.

연설이란 건 거의 누구나 아무 대가가 없어도 기꺼이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 분야에서는 사심이 없는 걸로 눈에 띄기는 쉽지 않다.

"당신의 사명은 개개인에게 기분 전환용으로 자신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전체, 나라 전체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에요."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녀는 악이 일소되지 않고 눈앞에 여전히 있어서 과업과 보상의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녀는 여성의 속박 상태에 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성 개개인이 걸출한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호방한 마음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여자가 본질적으로 남자보다 못한 존재이고 남자가 그들을 위해 정해준 운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여자는 한없이 짜증이 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서 랜섬이 남부 열한 개 주의 탈퇴를, 그리고 올리브의 용기와 비교하기 위해 당시 궐기한 남자들의 태도(그 용기가 어쨋든 가상했던)를 은근히 언급한 것은 그로서는 지극히 점잖은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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