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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 원서 2판 전면개정 ㅣ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6
레이먼드 웍스 지음, 이문원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9월
평점 :
레이먼드 웍스는 홍콩대학의 법학 및 법이론 명예교수로, 1986년부터 1993년까지 동대학의 법학과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 소재한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런던정경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옥스포드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 석사 취득 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방 공립 연구 대학인 런던 대학에서 최종적으로 박사 학위를 마칩니다. 그의 주요 전문 분야는 법철학과 인권, 특히 개인 정보 분야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개인 사생활 권리와 그에 따른 법철학 이론으로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홍콩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현재 홍콩의 정치 상황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큰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한 데요. 2000년대 이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발생한 홍콩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그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중국 공산당의 홍콩 특별법 등에 그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홍콩 법률 저널 Hong Kong Law Journal의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Law : A Very Short Introduction -Second Edition-"으로 2008년 초간의 재간행 판으로 지난 2015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번역은 2017년 3월에 이뤄졌습니다.
이미 글 서두와 역자 후기에서 드러나고 있듯, 레이먼드 웍스의 이 글은 법과 법률에 대한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쓴 소위 알기 쉬운 개론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장 법과 도덕, 그리고 6장의 법과 미래를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 될 부분으로 여겨졌는데요. 특히 3장의 법과 도덕은 나름대로 법에 대해 제법 생각할 것들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법과 도덕의 연관성과 도덕이 배제되어 법이 그저 합리적인 측면으로만 존재한다면 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 지는 거의 자명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 역시 저자의 논증대로 법은 절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습니다. 더욱이 법이 어느 정도는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 명목상 마땅하다고 볼 수 있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정의를 지켜내는 것이 더욱 '사적 이익화'와 맞물려,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요. 형법의 체계적 고도화와 나날이 어려워지는 민법의 판결 등은 과연 법원과 사법 체계가 과연 정의에 이를 수 있겠는가를 매번 시험하게 만드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글 서두에서 인류가 제정한 법의 기원은 크게 대륙법과 영미법으로 갈라지고, 이것은 서로간의 독특한 문화권 만큼이나 구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먼저 영미법은 원칙적으로 법문으로 작성되지 않는 불문법이 다수 있으며, 애초에 이전 영미법의 계승자들은 성문법화에 반감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둘째로 영미법은 판례법으로, 판례에 대한 일종의 맹신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 다음은 선례구속의 원칙으로 이는 동일 또는 유사한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는 경우에 선판례에 의하여 구속을 받으며, 상급법원의 판결은 하급법원을 구속한다는 내용으로 이를 선결례의 원릭이라고 합니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상급 법원의 판결은 사법적 위계 질서하에 하급 법원을 구속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미법은 '구제책이 있는 곳에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대륙법의 전통은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법원의 심리 결과 구금이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을 경우에 법관은 피구금자의 석방을 명할 수 있는데, 이는 앞선 영미법의 주요 법적 가치로, 현재는 대륙법 체계의 국가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토머스 홉스를 통해서도 한번 더 드러나고 있지만 법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의 보루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만인 대 만인'이라는 자연 상태의 투쟁에 준하는 상태에서는 모두가 원칙적으로 존중해야만 하는 사회 규칙이라는 것이 그저 말 뿐으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 국왕과 봉건 영주 간의 소위 명예로운 계약 이후, 계급과 사회 제도 유지를 위한 기초적인 법의 형태가 뿌리 내리게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호하고 그리고 자유에 대한 헌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법관들의 사명은 단순한 법집행과 법원의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데요. 이는 저자의 우려와 경고대로 각 판사들이 정치적 이익에 가까워지는 것이 그 사회에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법관들의 '자유에 대한 헌신'이라는 뭔가 이상적인 가치보다도, "왜 나날이 우리가 사법제도를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판사 스스로의 역량이라든지, 혹은 법을 여실히 잘 이해하는 것과 법이론과 현실과의 균형 감각 등 판사의 재량에 사법 제도의 건전성이 달려 있다는 원론적인 주장들보다는 판사에게 허용치 이상의 권력 허용과 판사는 곧 법이라는 소위 법 권력 지향적인 합의 없는 이행이 사회에 가속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4장 법원'에 이르러 저자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각 국가의 법원을 고찰해보고, 특히 미국 연방 법원 판사 제도와 같은 선출직 판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었는데요. 투표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선호하는 민주적 인사들이 '미국의 판사 선출 제도'에 반색을 할지도 모른다며 논평하고, 저자 자신은 이 제도에 대해 일종의 의구심을 표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일종의 엘리트 선발 제도로서의 광범위한 사법 시험을 통해 선발된 법관들이 단순한 시험 고득점자가 아니라, 법원과 사법제도, 그리고 시민에게 필요한 인물인지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자격 심사' 같은 것이 실질적으로 전무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판사를 선출 하는 것 이상의 의회 인사 청문회, 더 나아가 전문가 그룹의 이력과 사법 제도에 대한 이해 및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검토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저자는 3장에서 법과 인간의 생명, 그리고 윤리 문제를 거듭 분석 진단해 보고, 안락사 문제와 낙태 문제를 법의 해석과 제도 규범에서 이를 마찬가지로 살펴보고 있었는데요. 더욱이 후반부에는 개인 사생활 문제에 대한 저자 스스로의 관심 답게, 2000년대 이후 미국의 테러 와의 전쟁과 그 이후 진행된 NSA와 같은 안보 조직의 비대화, 그리고 에드워드 스노든을 통해 폭로된 CIA를 비롯한 미국 정보 조직의 전세계 감청과 도청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이렇게 나날이 비대해진 정부 조직의 권력화와 여기에 사법 제도가 과연 어떠한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이를 논하고 있었는데요. 앞선 광범위한 도청과 같은 개인 사생활의 무분별한 수집이 '시민의 사생활 소멸'로 이어지고, 이는 곧 정치 전반의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엄중한 예측으로까지 연결됩니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 '법이 소멸될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발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정보 조직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권력 조직이 국가의 비상 사태 등을 들어 시민의 권리와 기본권을 사실상 침해하려는 어떤 메커니즘이 단계 별로 진행된다면 여기에 법원이 맹렬히 대응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법원과 그 구성원들 역시, 어떻게 보면 '관료'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양심의 건전성'과 '확고한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확실히 예단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소위 법의 소멸과 같은 망상은 바로 이런 복합적인 문제가 혹여 파국으로 치달을 때, 무조건 배제할 수 없는 위기일 것입니다. 사법 제도가 시민의 자유와 안녕에 봉사하지 않고 체제 현상 유지를 위한 소수 권력의 편의에만 몰두한다면, 사법 제도 뿐만 아니라 민주 사회의 지속성은 그때부터 소멸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논증 가운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대목은 '4장 법원'에서, "법관은 비선출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서 특히 자유의 수호자로서 우월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논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양심적인 문장으로 여겨집니다만, 비선출직이 어떻게 자유의 수호자가 될 수 있는지는 이어지는 후술에서도 역시나 딱히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른바 독일 통일민법(BGB)으로 알려진 이 법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 그리스, 발트 해 국가들에서 도입된 민법전의 모델이 되었다.
법과 법적 절차에 대한 숭상은 현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판사가 사법공무원이라는 사실이 법체계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 심지어 불의로부터 이익만을 취하는 사람과 판사를 구별할 이유가 되는가? 판사를 다른 사람들, 특히 변호사와 도덕적으로 달리 취급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현대적인 정부는 법적 강제 외에도 다른 수단으로써 시민들을 설득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판사는 판결문에서 사건의 주요 사실과 무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혹은 사건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에 대하여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고 싶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영미법은 실용주의적이고 상업적이라고 평가되는 반면, 대륙법은 윤리적 측면을 좀 더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적용 가능한 규칙이 없을 때 또는 확립된 규칙들로 결정을 내리기에는 미흡할 때, 판사는 서로 대립하는 원리를 비교형량한다.이때 원리는 규칙이 아니지만 법의 일부가 된다.
법원도 실수를 한다. 판사도 인간적 나약함을 면하지 못하며, 따라서 과오를 정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만을 제외하고) 영미법계에서 판사는 일반저긍로 고참 변호사 중에서 선발되는 반면 대륙법계에서는 공무원처럼 임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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