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소련의 몰락과 그 궤를 같이한 조지 H. W. 정부는 국제 사회에 미국의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행정부였습니다. 물론 군사적 신자유주의라는 측면에서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고 막대한 연방 정부 예산을 국방과 관련된 기업들에게 크나큰 수혜로 안기기도 했습닏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일부 요소가 비대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국방부를 통해 지급되는 막대한 이익 자체에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시기 전반을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5장에서 '승리의 개가'라는 단어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시기는 고르바초프의 과감한 결단과 그 다운 퇴장, 그리고 그로 인한 체제의 균열로 소련의 붕괴가 마무리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런 과정 자체를 자유 세계의 승리로 규정했고, 이 시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등한시 하기에 이르렀는데요. 더욱이 여기에 등장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의 몰락은 일상 생활에 실천하고 이식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들을 현실 공간에서 제거했다"는 해석으로 이 거대한 승리의 본질을 우리는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지 H.W. 부시는 이라크 전쟁과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하는 듯, 재선에 실패했고 그 후임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빌 클린턴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논의된 빌 클린턴과 그의 행정부에 대한 저자의 여러 분석 가운데, 무엇보다 동의할 수 있었던 부분은, 제가 이미 인지하고 있던 딘 베이커의 주장대로, 클린턴이 미국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리버럴'가운데, 누구보다 신자유주의를 지지한 정치인이었다는 진술이었습니다.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유산을 기억하고 이를 인정하는 민주당 정치인 가운데, 누구보다 껍데기만 남은 뉴딜 체제의 해체를 불러 일으킨 정치인이 바로 클린턴이었습니다. 민주당에게 있어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정치적 유산'은 실로 중요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대의 공화당 정치인들이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언급하면 쉽게 이를 갈 듯, 빌 클린턴 역시 이후 등장한 조지 W. 부시와 그의 지지자들 및 인사들에게 있어 소위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로널드 레이건이 구축한 신자유주의를 민주당 인사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것인냥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를 향한 적대감은 그저 문란한 사생활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물론 로널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와 빌 클린턴의 신자유주의는 상당히 다른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클린턴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세계의 모든 시민들이 서로를 협력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점이 레이건과는 다른 일면인데요. 이는 일종의 세계시민주의적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공화당은 이런 인식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빌 클린터은 로버트 루빈을 필두로 월 스트리트와 소위 한 몸이 되어, 신자유주의를 새롭게 건설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의 8년 동안의 집권 시기에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다는 점은 따로 강조하지 않겠습니다만 '글래스-스티걸 법'의 해체로 대표되는 금융계의 규제 완화와 양적 완화, 그리고 FRB의 지속적인 협력 등을 통해 내수 경제를 부양한 점은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실리콘 벨리로 대표되는 IT 산업의 토대를 쌓은 정부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였다는 사실은 그가 기존의 월 스트리트의 금융인들과 미 서부 캘리포니아의 'IT 가이들'의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는 반쯤 농담쯤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월스트리트와 민주당의 도가 넘는 결합은 후에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정책과 관련된 운신의 폭에 있어 크나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분명한데요. 이는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와 대결한 힐러리 클린턴의 실패와도 마찬가지로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클린턴은 젊은 시절 스스로 의뭉스러운 가운데 자신이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뛰어 넘는 업적의 민주당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야망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야망의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스스로 영악하게 우군을 월 스트리트에서 찾은 것이죠. 하지만 내각에 참여했던 랠프 네이더가 빌 클린턴과 엘 고어가 더욱 강고하게 구축한 신자유주의 질서에 크게 실망했다는 사실은 이 시기 신자유주의에 대한 리버럴의 항복이라는 메타포를 거듭 떠올리게 만듭니다. 특히 앞서 진술했던 비슷한 맥락으로 미국 사회의 많은 흑인들이, 사회 안전망의 외주화와 더불어 민영화라는 거대한 교도 행정 산업의 대두로 말미암아 무엇보다 사법 시스템에 의해 이들이 감옥에 투옥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사회의 신자유주의화의 맥락으로 언급하고 싶은데요. 저는 무엇보다 미국의 사법 체계가 범죄자들을 처벌 후에 갱생 시켜, 다시금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이들을 사회에서 철저한 분리시켜 고립에 이르게 만든다는 저자의 분석이 쉬이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즉, 이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을 일소시키겠다는 그 저변에 깔려 있는 폭력적인 인식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데요. 맨 앞에서 언급한 그 신빅토리아주의적 맥락이 다시금 생각되는 이유가 바로 역설적으로 이러한 노골적인 영리 행위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8년 간의 클린턴 집권기를 거치고 나서, 그의 후임인 엘 고어를 연방 대법원의 '결단'으로 물리쳐 백악관의 주인이 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는 소위 귀하게 자란 엘리트 가문 출신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의 방황을 딛고 일어선 행적은 당시 세인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는데요. 전임 정부가 남겨준 경제적 호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번 부시 정권은 2001년 9월의 참혹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미국 전체가 의도치 않은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물론 주변인로부터 선량하다는 평가를 받는 콜린 파월 전 국방장관을 압박해, 그로 하여금 거짓 진술을 하게 만들고 기어코 동맹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이라크의 후세인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미군이 개입하게 되는데요. 당시 부시 대통령을 넘어서는 실세라고 여겨졌던 딕 체니와 도널드 럼스펠드를 비롯한 네오콘 일당들은 이라크에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이 나라를 수렁으로 빠트립니다. 전쟁 이후에 대대적인 군정과 함께, 이라크 내부를 개혁시키고자 했으나, 결국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여기에 2004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즈의 제방 붕괴로 인한 환경 재앙과 도시 붕괴는 조지 W. 부시의 정실 인사로 말미암아 이 정권의 무능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저자는 이 시기에 딕 체니의 과도한 행정부 개입을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과연 조지 W. 부시가 제대로 된 통치를 하였는지는 개인적으로 큰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난맥상 자체에 그치지 않고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의 신자유주의가 그저 붕괴하는 것을 넘는 전세계 경제의 대폭락이 조지 W. 부시 임기 말에 핵폭탄처럼 터트려지게 됩니다.
2008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등장한 2009년의 오바마 행정부, 즉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달변과 명쾌함, 그리고 누구보다 이성적인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2008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의 조짐을 가볍게 여기고 또한 임기 말기에 레임덕에 빠진 부시 행정부의 사실상 비협조로 오바마 행정부 초기 이 거대한 위기 상황의 대처가 직간접적으로 미흡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AIG의 유동성 위기로 시장이 이 위기를 통제할 수 없음이 명백히 드러나자, 의회에 막대한 구제 금융 법안을 요청하게 됩니다. 다만 이때에도 신자유주의적 신념으로 강고한 공화당 의원들이 시장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발상 자체를 여전히 거부하기에 이르는데요. 결국 의회에서 수락한 총 700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 금융으로 시장을 정부가 구제하게 됩니다. 이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언급대로 이때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쿠야마의 저 유명한 표현대로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종언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는 도널드 트럼프로 대표되는 익숙한 저자의 논법처럼, '인종 민족주의 포퓰리즘'에 강제적인 종언을 당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이 위기의 봉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이 상황을 초래한 금융인들을 기소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심지어 이 금융인들이 공적 자금으로 보너스 파티를 연 것은, 그야말로 '도덕적 해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이미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초기 신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의 온전한 기능과 그 지속성에 있어 정부의 역할, 즉 법의 보장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그렸던 그림은 사회의 진보 세력을 무력화 시키고,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구축되는 것이 중요한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인지해, 소위 시장 자유를 위한 규제 완화와 사회 부조를 철저히 퇴출시키는 등의 작은 정부 등을 신자유주의 이행의 선결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자체의 이념적 이행과 이를 구축하기 위한 사회 제도적 고안들이 완성이 된 상황에서, 이 신자유주의 체제 자체가 결과적으로 시민들이 요구하는 개선이 아니라, 아예 판을 뒤엎어 버리는 상황이 초래했는데 그것이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입니다. 과거 오바마 정권이 월스트리트와의 밀착으로 말미암아 2008년 대위기의 화해와 법적 책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 트럼프는 바로 이 월스트리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즉, 기존의 엘리트 지배 체제를 불신하고 스스로 권력 무대에 나타나 거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선동으로 다수의 표를 획득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제가 앞선 맥락에서 왜 도널드 트럼프가 신자유주의의 판을 뒤엎은 인물이라고 칭했냐 하면, 그가 공화당을 이미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의 공화당은 신자유주의 유산을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정당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저자도 글 말미에서 분석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를 정점으로 단순히 티파티나 대안 우파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지지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화당 정치가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모양새인데요. 일전에 후베르트 자이펠이 고안한 '푸틴 치하의 러시아'처럼,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공화당은 트럼프의 치하에 놓여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맥락에서 글 후반부에 거의 절반쯤은 신자유주의가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자포자기식의 서사가 간혹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만한 어떤 아이디어나 생각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언급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는데요. 6장에서 논증되는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적인 일관된 경제사회적 체제가 100년 이상은 지속할 줄 알았으나, 엄밀히 말하면 체제의 변용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로 인한 기득권의 존재는 여전히 무시 못할 정도이고, 반이민과 반이슬람과 맞물려, 껍데기 뿐이었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여러 곳에서 심각한 저항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신자유주의적 요체 자체가 금융 자본주의에 여전히 남아 있어, 아주 완벽하게 신자유주의 체제가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 그리고 유럽과 특히 우리 나라는 완전한 신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양상이 도널드 트럼프 개인으로 말미암아 체제가 급속하게 변질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는데요. 다만 도널드 트럼프가 획득하려는 국가 자체가 세계 패권 지위를 갖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트럼프 집권 제2기가 과연 어떤 식으로 세계를 '판의 재편'으로 몰고 갈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고 여겨집니다.
-지난 미국 30여년 정치에서 민주당과 월 스트리트의 밀착 관계로 인한 당사자들의 오판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을 초래했습니다. 높은 학력과 돈, 그리고 권력을 가진 소위 진보 정치인들은 자신의 가진 것 때문에 의도치 않은 정치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는 논리를 사람에 따라 이중적으로 받아들이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무엇보다 여기에 선동이 의도하는 맥락이 이런 틈에 여실히 파고드는 이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도 이미 언급했듯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은 자신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줄곧 거부해 왔습니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을 보수주의자로 여기는 것 만큼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로 확신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