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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물결 - 근본적 붕괴의 시대와 아웃사이더의 부상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4년 6월
평점 :
미치코 카쿠타니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1995년 1월 9일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그녀는 예일 대학의 저명한 수학자인 시즈오 카쿠타니의 무남독녀이기도 합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녀의 부친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모친은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자란 일본계 미국인인 2세대입니다. 그녀는 1976년에 예일대에서 영문학 학사를 마침과 동시에 워싱턴 포스트에 기자로 입사하게 됩니다. 이후 1979년부터는 뉴욕 타임즈로 자리를 옮겨, 2017년까지 언론계의 경력을 쌓게 되었습니다. 특히, 미치코 카쿠타니는 1983년부터 뉴욕 타임즈 도서 평론으로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되고, 1998년에는 이러한 공로로 퓰리처 상을 수상합니다. 그녀는 대중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은 평론가로 유명한 작가의 책에도 날카로운 평론으로 본의 아니게 악명을 얻기도 하는데요. 2017년 뉴욕 타임즈의 수석 평론가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이듬해인 2018년에 출간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책인, "진실의 죽음 : 트럼프 시대의 거짓에 대한 노트 The Death of Truth: Notes on Falsehood in the Age of Trump"로 평단의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서평을 쓰게 될 그녀의 새로운 글 역시, 바로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데요. 연말의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 그녀의 이 시론집은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우리에게 일목요연하게 전해줄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The Great Wave : The Era of Radical Discruption and the Rise of the Outsider"로 올해인 202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6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인 미치코 카쿠타니는 2019년 이후의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분열과 충격의 시대를 이른바 VUCA로 정의되는 단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이는 변동성 volatility, 불확실성 uncertainty, 복잡성 complexity, 모호성 ambiguity의 영문 앞자로 만든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러한 시대가 초래된 근본적 원인을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과 그로인한 정치 전반의 변질과 추락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논증되는 대부분의 사례와 실질적 내용들은 극단적 포퓰리스트인 트럼프의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반이민주의, 반민주주의에 따른 정치적 붕괴에 초점을 맞추고, 그렇다면 우리 왜 이러한 시대를 직면하게 되었는지를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 글의 문제점은 저자가 큰 명성을 얻은 서평가 답게 작가, 정치가, 사회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등 여러 지식인들의 고유한 주장과 사상 등을 너무 많이 언급하고 있어, 글을 읽는 내내 다소 장황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3장은 앞선 측면에서 글 전개에 따라 인용 구절이 많아 그만큼 산만해 보였는데요.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된 문장들이 조금 과도한 측면이 있어, 독자들에 따라 일독 전반에 다소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서두인 1장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아웃사이더가 미국 정치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더 나아가 워싱턴의 주인이 된 그 시점부터, 이미 미국은 저자의 말마따나 "상식이 실종된 사회"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극명한 현상에 대한 저자의 여러 비판적 분석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 정치인들 대부분이 민주주의의 대한 헌신을 사실상 헌신짝 버리듯 내버렸다는 여러 증거였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의 자진 투항에 있어, 전무후무한 폭거(2021년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 난입을 포함한)에 대해 공화당 정치인들 누구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점은 실로 미국 민주주의에 있어서 너무나 굴욕적이고 참담한 사건이라 여겨집니다. 이렇게 연이어 4장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앞선 의회 점거 폭거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낸 공화당 의원들이 거의 전무했으며, 그나마 이 사건에 목소리를 낸 리즈 체니 의원이 어이가 없게도 빠르게 공화당 지도부에서 쫓겨났으며, 2022년 고향인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패했다는 사실을 저자는 특별히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공화당 다수 의원들이 이에 대해 침묵했으며,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인의 의무와 책임을 내던진 것과 다름 아닌 것인데요. 이와 관련된 상반된 사례로 저자는 4장에서, 과거 닉슨 대통령의 워터 게이트 사건을 예로 들고 있었습니다. "1974년 워터 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상원 의원이었던 베리 골드워터는 공화당 상원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백악관으로 가서 리처드 닉슨에게 자신들이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닉슨은 다음 날 사임했다"고 언급합니다. 과거의 공화당 의원들은 최소한의 금도와 견식이 있었으나, 지금의 공화당 의원들은 여러 정치학자들의 비판대로 사실상 자신들의 간판을 극우로 덧칠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참고로 이 리즈 체니 의원은 바로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일관된 논증 뿐만 아니라 저 역시도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해 큰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분명하게, "민주주의에 반하는 자"로 규정하고, 이런 정치의 후퇴를 과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던 구시대적 중앙 집권적 폭력을 거부했던 오래된 미국의 유산을 뿌리 채 흔드는 '반동'으로 지목하고 있었는데요. 굳이 정치학을 여기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민주주의적 개방성과 다원주의적 맥락 그리고 이를 헌법이 수호하는 일련의 견고한 체계에서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데, 트럼프와 같은 자기 이익에 밝은,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과연 이러한 대의에 화답할 지는 모두가 알다시피 지극히 회의적이라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3장과 4장의 논증으로 거듭 밝혀지는, 미국 문화의 저항의식, 개방성, 그리고 다른 의미로서 시민들간의 유대가 나날이 예전만도 못한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다 봐도 무방해 보였습니다. 과거에 대한 회귀가 무조건적인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보다 못한 현실에 대한 무감각과 체념이 어쩌면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시점에서 현재 미국 정치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지식인들이 많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결국, 트럼프가 미국내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이끄는, 마치 성서의 요한묵시록에서 그려지는 '지옥의 기수'라고도 여겨지는데요. 특히 우경화 된 공화당과 그 맨 앞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반영웅(저자의 수사를 흉내낸다면 말이죠)과 그를 따르는 맹목적인 지지자들, 여기에 티파티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상대 진영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격멸'이라는 단어까지 언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저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많은 극단적 시민들이 오히려 종교보다도 더 진실되고 신뢰의 말을 건넨다고 확신하는 가히 믿겨지지 않은 일례들을 폭로하고 있는데요. 이런 현상의 본질적인 맥락은 분명합니다. 또한 저자인 카쿠타니의 말마따나, 미국내 극단적 인종주의자들인 KKK와 같은 자들이 자신들의 상징으로 나치의 '하켄 크로이츠'를 미디어와 다수 시민들에게 아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보여집니다. 이런 극단주의자들의 범람이 과연 미국 민주주의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거의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인문주의자이기도 한 저자가 독서와 자기 성찰이 더욱 멀어지고 있는 세태와, 그와 동시에 인간의 저열한 측면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부채질하는 극단적 인터넷 매체를 포함한 왜곡된 커뮤니티 문화에 대해 지극히 경고의 시각을 본내고 있는 점 역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즉. 앞선 내용을 보충하는 측면에서 저자는 2장의 전반적 진술을 통해,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들이 새로운 기술로 사람들을 연결했지만 또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정파 간 혐오의 매개체가 되었던 점"을 분명히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역사처럼, 이들의 민주주의 자체는 세월에 따라 켜켜이 쌓아올린, 그 유산이 엘리트들을 포함한 미국인들 전반의 귀한 정치적 공감대가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4장 이후의 논증과 더불어, 이런 민주주의의 역사 전반을 부정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모체가 된 공화당, 그리고 극단적인 그의 지지자들이 한 몸과 같이 움직이는 실정에서, 트럼프가 "민주주의 제도와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선동적인 수사법을 사용하자, 진보주의자뿐 아니라 많은 중도파, 무당층, 그리고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도 여실히 동요"했고,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가 스스로 결연하게 '부정 선거'임을 밝히자마자 공화당 정치인들 대부분이 이에 동조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요. 만약 건전한 사회라면 그곳의 시민들 대부분이 반민주적인 정치인을 향해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선연한 이익과 사실을 대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다수의 왜곡된 정보들에 따라 현실은 그런 정치적 이상과 상당히 멀어진 것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언급했던 '정치적 변별력의 결여'를 언급하기에 앞서, 마치 건강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도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증오와 혐오의 정치라는 병증에 한껏 몸을 맡기고 있는 상황은 저자가 지극히 우려하는 정치적 미래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고학력의 사회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결국 미국내의 문화적 흐름과 기술 수용에 관한 방향성, 이러한 맥락에서 더욱 변질되고 있는 미국 정치 전반은 글에서 경고하는 바대로, 그 위험 수치가 마냥 목도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국 대선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견실한 정치력을 발휘해, 큰 파란을 일으켜 줄 기대와 희망의 끈을 아직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비관적으로 논증해 왔던 저자의 글과는 확연하게 상반된 기대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저자의 신랄한 발언과 그 증거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국이라는 나라가 역사로서 쌓아올린 민주적 이상과 체제의 견고함. 더불어 문화와 시민의 선명성을 통해, 위대한 나라가 되었던 점을 그들 스스로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물론 타고난 시대의 암울함은 여전하지만 후반부에 인용되는 나오미 클라인의 희망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바라는 '정치의 올바른 회귀 가능성'의 모멘텀이 다시금 미국 정치에서 발현되기를 오직 바랄 뿐입니다. 끝으로 미국의 위대함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데에 있다는 토크빌의 명철한 분석과 함께, 저 역시, 극단주의와 인종주의의 망령이 하루 빨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적지않은 정보들 가운데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지난 2012년에 스티브 배넌이 브라이트바트 뉴스 Breitbart News를 인수했다는 점이었는데요. 누구보다 신자유주의의 기수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헨리 키신저라면, 이 스티브 배넌은 허무적 극단주의의 기수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의 민주화 효과는 기후 활동가부터 백인 민족주의자,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되려는 이들까지 온갖 부류의 아웃사이더가 전통적인 게이트키퍼를 우회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남부 주들은 재건 수정헌법 (1865년과 1870년 사이에 채택되어 비준된 제13조, 제14조, 제15조 수정헌법)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보장된 권리를 철회했다. 이들 주는 연방군이 떠나자 짐 크로 법을 통과시켜 인두세와 다른 유권자 탄압 전략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분리하고 선거권을 빼앗았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자유시장 근본주의 및 관련 시상들을 장려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동되고 있던 뉴딜 정책의 보호무역주의 및 케인스의 경제 정책을 되돌리면서 시작되었다.
추산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30,583건의 거짓 주장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했으나, 공화당에 투표한 사람들은 트럼프가 종교 지도자나 자기 가족보다 더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두 주요 정당 가운데 하나가 가장 극단적인 일원들의 견해를 수용하고 전 대통령인 트럼프가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라는 민주 통치의 초석을 뒤엎으려 하는데도 그를 지지하기로 결정하기 전의 일이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반대, 지나치게 권한을 부여받은 여성과 남성다움이 부족한 남성에 대한 반대, 이민자에 대한 반대, 사회 정의 운동에 대한 반대, 세계화에 대한 반대, 진보에 대한 반대, 어떤 사람들은 현재 미국의 모든 문제가 진보주의자 탓이라고 본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변함없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가 여전히 취약하면서 귀중하고 한 번의 선거나 투표로 확보될 수 없으며 지칠줄 모르고 계속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2025년에 재임할 경우 그의 측근들은 행정권을 확대해 연방통신위원회와 연방거래위원회 같은 독립된 기관을 대통령 통제 아래에 두고 자금 압류 관행(즉 의회가 책정한 자금의 지출을 거부하는 것이다)을 부활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견제와 균형을 위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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