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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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영국 햄프셔주 올더숏에서 스코틀랜드인이자 전직 군인이었던 부친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부친은 싱가포르. 독일, 리비아에서 군생활을 지속했는데 그런 연유로 그의 가족은 매큐언이 12살이 되어서야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그는 서퍽의 울버스톤 홀 스쿨에서 교육을 받고, 1970년에는 서섹스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노리치의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는 1975년에 첫 단편소설집을 출간한 이래로 꽤 다작한 영국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에 주류 문학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는 1997년작, '견딜 수 없는 사랑 Enduring Love"와 이듬해에 출간한 '암스테르담 Amsterdam'이 부커상을 수상함으로써, 전세계로부터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또한 2001년에 출간된 '속죄 Atonement'역시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큰 방향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이로써 그는 2008년에 타임즈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의 목록에 오르게 됩니다. 다만 그의 종교적 및 정치적 견해와 관련해, 여성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탄압이라는 이슬람교의 교리에 그는 지속적으로 반대하였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가감없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긜고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 (EU) 탈퇴와 관련된, 소위 브렉시트 캠페인과 이어지는 국민 투표에 대해, 그는 영국 정치권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Cockroach"로 지난 201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 번역은 2021년 11월에 이뤄졌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일독이 이번이 두 번째이기도 한데요. 제가 접한 그의 첫 작품은 2008년에 번역된 "체실 비치에서"였습니다. 지금도 이 작품을 눈에 잘 들어오는 서가에 놓고 지난날 읽었던 흔적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다시 이 작품으로 돌아와, 처음에 일독 후에 들었던 생각은 작가가 강조했던 것처럼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지성과 반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게 벌인다"는 일관된 논점에 대한 이해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감상이었습니다. 어떤 인간을 그 자신의 지성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는 허버트 스펜서 류의 사고 방식에 물론 동의하지 않지만,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인지적 한계"에 이르러 현실 정치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결정에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의 판단을 너무도 과신하거나 혹은 그렇지도 않은 불확실성의 인질로 미래를 비합리적인 위기로 몰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물론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진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큐언이 말하고자 하는 최근의 EU 체제에 대한 영국의 놀랄만한 '브렉시트'는 단순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작품에 등장하는 것처럼 미국 연방 대통령이 영국의 브렉시트를 은근 부채질 하거나, 혹은 브렉시트를 통해 EU를 손 봐줄 수 있는 기회를 작당하는 것 같이 무슨 음모처럼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는 불확실해 보입니다만 이 브렉시트 자체가 당시 정치인들이 국민의 반EU 정서를 교묘히 부채질하여 이것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포퓰리즘적 선동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은 좀 더 의미심장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1940년대에 프랑스가 무너지고 독일 나치의 공포과 유럽을 집어삼킬때도 홀로 서 있었다."는 영국인들의 소위 유럽 대륙에 대한 본질적 정서 말입니다.

그런 연유로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고귀한 총리를 '바퀴벌레'로 종(복합적인 측면에서)을 바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무엇보다 바퀴벌레처럼 '페로몬'이 인도하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본능을 마냥 실소로 치부해서는 안될 겁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이 페로몬이 이끄는 본능을 정치인의 노골적인 정치적 셈법에 대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비상 시국이라는 상황에서 등장한 영국 총리가 과연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능히 짐작이 가능한데요. 정권을 위해 다소 간의 불편한 브렉시트는 국민에게 그 책임을 떠안길 수 있다는 손쉬운 정치적 편의주의 말이죠. 설사 국가를 비이성적인 내분 상태로 만든다 해도 말입니다. 더욱이 카를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를 구분조차 못하는 일국의 총리라는 작가의 신랄한 비꼼은 이들 엘리트 지도층이 실질적으로 어떠한 인물들인지 새삼 깨닫게 하는데요. 과거 마거릿 대처의 시대를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적지 않은 시민들과 이러한 역사 분열의 조건을 정치적으로 쉽게 이용하고자 하는 '권력의 무지성'은 익히 우리가 귀담아 들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 그리고 위대한 결단 등의 이해타산으로 이해되는 '역방향 주의'는 "노동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부자들에게는 더 적은 세금을 배분하여, 실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려고 하는 일련의 정치적 과업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이웃 혈맹인 프랑스와의 전통적인 관계조차도 큰 고려나 숙고 없이, 때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작위적인 맥락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체제나 이웃과의 관계 혹은 동맹과 같은 일련의 맺고 합쳐지는 과정들이 소수의 고위 계층이 원하는 이익과 그런 편취적 태도에 국익이나 모두의 이익으로 때론 쉽게 변질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뒤집혀 버리는 정론, 그것을 둘러싼 영국 의회와 그곳에 모인 정치인들 역시 냉소의 대상이기도 한데요. 그리고 그들 주변을 맴도는 가벼운 인사들을 작가는 인정사정 없이 비꼬고 있습니다. 특히 커트 보네거트 식의 풍자로도 읽히는 극중, "교도소 만 곳을 지으면 25억이 들어온다"는 가히 휘황찬란한 논지는 오늘날 미국이 교도 행정을 민간에게 개방하게 소수의 인사들이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는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 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바퀴벌레의 페로몬적 본능, 인간이 지성에 반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오류는 서로 종이 한장 정도 차이의 구별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평범한 모두가 원하는 정의와 이에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 엘리트 지배층의 이해 관계로 양분되는 것처럼, 단순히 신자유주의나 그것을 걸고 넘어지는 포퓰리즘 등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는 영국의 사회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가들의 실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다수의 시민들이 스스로 합리적인 사고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짚기 전에, 이러한 점을 절묘하게 미리 인지하여 이들을 선동과 왜곡으로 자신의 이익으로 삼는 정치인들이 태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흄으로 비롯된 영국의 계몽주의가 이런 수준에 이르렀다는 작가인 매큐언의 한탄과 동시에 양심이 결여된, '정치의 비도덕적 측면'은 과연 우리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자임하기에는 매우 위선적인 것이 아닌가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됩니다.


-작품의 서두에, 매큐언이 남긴 얼마간의 주의 사항(?)이 절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소설은 허구다. 이름과 인물들은 작가가 상상해낸 것이며, 현존하거나 세상을 떠난 실제 바퀴벌레와 유사점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이다."



이제야 웨일스 사투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웨일스? 먼 서쪽에 위치한 구릉과 비가 많은, 신뢰할 수 없는 작은 지방. 짐은 자신에게 예전과 다른 지식이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국가가 지긋지긋한 예속에서 해방되려는 참이었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 북과 남의 분열, 임정 정체 등 국가의 문제점은 모두 재정 흐름의 방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을 사랑한다면 기존 질서를 뒤집어야 했다. 기존의 흐름은 오만한 지배 엘리트의 이익에만 봉사했다.

우리는 과거에도, 1940년대에 프랑스가 무너지고 독일 나치의 공포가 유럽을 집어삼킬 때도 홀로 서 있었다.

총리와 그의 동료들은 죽음이 일상인 환경에서 자랐고 위생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온당한 일이기도 하여 시체를 먹는 걸 관례로 삼았다.

그렇잖아도 영국의 역행으로 포도주와 치즈 수출에 위협을 받게 되면서 당혹감과 분노를 느끼던 라루스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영국이 "아주 좋은 친구의 말을 의심하다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국가는 확실한 적을 필요로 했다. 애국적인 언론인들은 프랑스에게 당당히 맞서 "우리가 잃어버린 청년들"을 위해 항변한 총리를 칭찬했다.

"세상을 흔들어놓는 건 좋은 일이지요. EU를 흔들어주세요."

하지만 공적은 삶은 굵은 윤곽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모든 건 법으로 금지하기 전에는 합법이라는 게 개방사회를 규정하는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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