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분쟁 - 갈등의 현장을 찾아 화해의 길을 묻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열린강연시리즈 2
안청시.최종호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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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시리즈 중 2번째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당시 아시아 회귀 정책을 표명한 것을 바탕으로 기획된 제법 의미있는 연구물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실린 주제들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새로운 논의는 없었으나, 일본이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과,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진출,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어 꽤 흥미를 끌고 있는데요. 다만 일본과 관련된 역사, 정치적 문제는 현재로서는 특별히 답이 없다는 결론을 다시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더군요.

우선 일본이 관련되어 있는 한일간, 한중, 한러간의 영토 분쟁에서 중국과 분쟁중인 댜오위다오/센카쿠를 실효지배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가 일본과의 사이에 독도는 영토 분쟁은 없으며, 일본이 댜오위다오/센카쿠를 실효지배하고 있는바와 같은 동일한 입장이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그것이죠. 즉, 일본의 자가당착적 태도는 사실상 국제사회에서도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다만 이러한 영토 분쟁을 일본 내부의 지지층 결집과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강화시키는데 이용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현재의 아베 정권의 현실이겠죠. 여기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일본이 일으키고 있는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이 지난 일본제국주의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은 크게 동의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국민들과 전문가들은 이런 일본의 독도와 관련된 도발이 단순히 영토적 측면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제대로된 역사 해결이 이뤄지지 않은 관계에서 간혹 가해자임을 망각하며 피해자 운운하는 현재의 일본의 민낯이 여기에 기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일본은 대동아 전쟁이 아시아 제국들을 서양의 지배로부터 독립시켰다고 선전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는 일본의 승리가 민족해방을 시켜준 쾌거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베 신조 총리는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지와의 대담에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알링턴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부분도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요. 이 책의 무지막 주제인 ‘일본은 좋은 이웃이 될까?‘ 라는 질문의 아주 회의적인 대답이라 생각합니다. 이것과 더불어 일본 내에서 역사 교육마저 명확하고 사실적인 방법이 아니라 위와 같이 왜곡되고 자기 기만적인 형태로 교육 현장에 교습되고 있는 것은 문제인 것이죠.

앞서 제가 말씀드린대로 일본과 관련된 이러한 분쟁에는 명확한 해결책이 전혀 없으며, 단지 이러한 역사 문제와 영토 분쟁이 더이상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지 않고 한중일 사이에 물리적인 갈등이 돌출되지 않도록 ‘안정적인 관리‘ 밖에는 없다고 여기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가해자가 주변국에 있는 것만로도 어떠한 현실적 모순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이미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글 내용들 중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집필자 중에 한 사람은 2015년에 있었던 위안부 합의가 일종의 벼랑끝에서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것으로 그동안 한일 양국이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기울여 온 사과와 반성과 보상 등을 적절히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는데요. 워싱턴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아베가 지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무력화 하려는 시도는 감히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 정치권의 문제는 진정성의 측면에서 사과와 인정을 얼마안가 스스로 뒤집는 행태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이런 피해자들에 대한 민간 차원의 지원 의사는 있었던 걸로 압니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을 수시로 바꾸고, 지금도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이웃 국가에 영토 문제나 일으키는 정치권의 그 후안무치한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동아시아 공동체‘를 운운하는 지식인들의 말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더군요.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역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날이 올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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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프리카 -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세르주 미셸.미셸 뵈레 지음, 파올로 우즈 사진, 이희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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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읽었던 바틸 린트너의 ‘차이나 브라더스‘에서 잠깐 소개된 중국의 전방위적 아프리카 진출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이번에 리뷰하게 된 ‘차이나프리카‘ 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부제로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가 눈에 띄는데요. 프랑스인 공동 저자인 세르주 미셸과 미셸 뵈레는 그들 자신이 명성있는 언론인이긴 하지만 과거 프랑스가 종주권을 갖고 식민통치했던 아프리카의 과거 국가들이 이제는 중국의 진출을 목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얼마간 착찹한 심정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제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강력한 개혁, 개방 의지에 따라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나서 짧은 시간에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것의 결과는 미국의 이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죠. 바로 이러한 변화된 상황으로 인해 경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산업에 투입할 자원과 그리고 대만과 경쟁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 외교전과 관련해서 아프리카에 들이는 노력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중국의 진출 확대에 원인이 ˝아프리카의 실패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신 자유주의적 개혁 처방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들이 국내적으로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저개발 상태, 심각한 문맹률, 부패, 다수의 독재 정권으로 서구가 요구하는 기준으로 경제 발전과 인권 개선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다지 해당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는 중국이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워낙 국제 정치 시스템이라는 것이 각국의 이익과 관심에 따라 그 중요도가 결정되는 연유로 그동안 미국과 서구 유럽에게는 들이는 비용 만큼 대비 결과가 좋지 못한 지난 경험 때문에 여태까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은 설사 국제 사회에서 왕따 국가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연연치 않으며 오로지 국익의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어서 가치 윤리적인 측면에서 그동안 서구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렛대 삼아 그것을 중점으로 삼았다면, 중국은 전혀 개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아프리카 대륙의 진출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분석과 그것을 뒷받침 하는 근거로 일종의 탐사보도 형식으로 현지에 거주하고 사업을 벌이고 있는 각각의 중국인들의 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대체로 가감없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이 공저자들도 자신의 모국이 아프리카 내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것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갖고 있는 듯 했는데요. 제국주의적 식민지 경영과 지금의 무조건적인 중국의 현금 살포를 동반한 진출 중에 어느 것이 더 윤리적으로 좋고 나쁜지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여지네요. 이 책에서 보여지는 중국 정부의 외교적 술책 또한 미국과 여느 유럽 국가들과 별로 다를것이 없어서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독재 정부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화에 거리를 둠으로써 그 기준 또한 그것에 상응하는 결과를 각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이미 보여지고 있어서 해당국에게는 좋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여지는 있어 보였습니다. 워낙 아프리카의 상황이 정세 불안과 내전 상황, 기본적인 의식을 바라기 힘든 국민들의 심각한 문맹률, 이슬람교과 비이슬람교도 간의 종교 문제, 관료들의 부패문제, 거의 갖춰지지 않은 인프라 등 이러한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수단화 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가 썩 좋아보이지 않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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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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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곳을 통해 리뷰한 어니스트 칼렌바크와 마이클 필립스의 ‘추첨 민주주의‘에서 비교적 광범위하게 인용된 자크 랑시에르의 이 책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를 일독했습니다. 이 책은 거의 4일에 걸쳐 두 번 정독을 했는데요. 책 서문에 역자의 언급대로 ‘저자인 랑시에르는 난필로 유명하며 그의 문장과 문체는 매우 복잡하고 지루하다‘ 라는 분석에 절로 동의가 될 정도로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다만 부족하게나마 이만큼이라도 머리에 집어 넣은 것도 이처럼 역자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서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인 랑시에르는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실질적 실현에 대한 의미로서,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 하에서의 통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여러 과거 이론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플라톤이 강조한 것처럼 ‘제일 합당한 통치는 통치 행위를 갈망하지 않는 자들에 의한 통치‘ 이다라는 문장의 함축적 표현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책의 제목대로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은 현재 민주주의하에 또는 민주주의 제도를 주요한 정치제도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정치 경제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소위 각국의 기득권층‘ 이라고 해석했는데요. 예전에 읽었던 오언 존스의 ‘기득권층‘ 에서 이 기득권층에 있는 이들은 선거로 선출된 것도 아니면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관리‘ 하려는 지배 계층의 총칭이라 봐야하는데요. 예전에 부패 혐의로 태국 정치에서 퇴출당한 탁신 칫나왓 전 총리가 원인이 되어 태국에서 대규모 정치 투쟁이 일어났을때, 당시 태국의 기득권층인 사업가, 의사, 변호사 들이 농민 등에 대한 투표권 제한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과 같은 선례들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기득권층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고도화 된 민주주의의 확대를 잠정적으로 바라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많은 정치 이론서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기득권층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민주주의가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분란과 소요를 일으키고 소모적인 정치 논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더불어 기득권층은 아니지만 사회 보장 체계와 평등과 관련된 부분에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념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개인의 선택적 자유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지난 오바마 정부의 ‘오바마 케어‘를 반대한 사람들이 이러한 예가 되겠죠.

그래서 이들은 현재는 ‘민주주의 과잉의 시대‘ 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며 종국에는 공화주의적 과두체제, 즉 삼권 분립과 같은 견고한 민주주의 통치 이념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하에서 그 무제한성을 특징으로 삼는 ‘경제적 이익 추구‘ 가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의 무력화에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는데요. 사실 ‘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민주주의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이 자유주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나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사상‘ 은 경제와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과도하게 침투해 시민들이 이러한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려운 형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랑시에르의 ‘엘리트주의적 정치‘ 에 대해서는 다소 태도가 불분명하다고 저는 느꼈는데요. 과거 토크빌의 미국 독립 정치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분석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태도는 소위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붕괴와 타파를 주장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엘리트 정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그리스에서 실행된 정치 이상주의적 태도와 개인적인 꿈이라는 측면에서 자원봉사 형태의 엘리트 정치 중심의 민주주의에 대한 약간의 동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시스템상에서 직업적 전문 정치인들이 과거 그리스 시스템하의 엘리트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시점에서 다수의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정부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에는 개인의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고,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하나의 본체로서 간주되는 근대성이라는 측면을 포함하는 역사의 진보를 대표하는 이념이라고 분석됩니다. 세계 역사에서 인권의 역사는 진보적이었고, 평등의 개념 또한 그러합니다. 이렇게 전면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각 민주주의 정부는 고도화된 교육 체계와 시스템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삼권분립의 과두제의 부분에서도 헌법이나 국가법의 사법적이며 정치적인 태도는 결코 하나만의 그리고 동일한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자유로운 논의와 인간 계층의 평등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벌거벗은 인간들의 권리‘라고 강조한 한나 아렌트의 인권의 분석대로 이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서로 존중하는 이들이 모여 이루는 평등한 가치 체계‘ 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는 것이 우리에게 요청된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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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역사와 깨진 꿈
로버트 케이건 지음, 황성돈 옮김 / 아산정책연구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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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이 곳을 통해 리뷰했던 ‘미국이 만든 세계‘의 저자인 로버트 케이건의 ‘돌아온 역사와 깨진 꿈‘ 을 읽었습니다. 원제는 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 인데요. 제목도 원제와 동일하게 만들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간혹 책 노출을 위해 다소 허무맹랑하게 근거없이 번역된 제목을 달아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출판사들이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볼때 상식적인 판단이라 생각 되어집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서 문득 드는 생각은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까 하는 소회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저자의 전작인 ‘미국의 만든 세계‘도 그리 나쁘지 않은 글이었는데, 지금 이 글은 좀 더 좋은 평가를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더 간단히 말씀드리면 현재의 세계 국제 환경과 그 체제에 관한 너무나 합당항 현실적인 관점을 통해 통찰력이 느껴졌습니다. 본문의 전체 페이지는 120여페이지 이지만, 국내에 전문 번역가로 알려진 황성돈씨의 번역도 잘 되어 있고, 문장의 군더더기가 없어서 매우 수월하게 읽혀지더군요.

저자의 이 책에 들어간 관점은 구소련이 붕괴한 냉전 이후부터, 중국이 경제적으로 대두하고 러시아가 천연 자원의 수출로 다소 경제적 자신감을 찾는 가운데 이러한 국제사회에 묘한 다극체제에 가까운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을 깊은 통찰력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이 비약적으로 대두하는 상황에 대한 분석글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있습니다. 나름 명망있는 저자들의 글도 많고 예리한 분석들도 많죠. 다만 그 현상에 대한 분석은 여러 시각이 혼재되어 있고 국제 사회의 패권과 영향력에 대한 추이 분석도 여러가지 시각이 나와 있는 상태인데요. 그런데 로버트 케이건의 이 책은 현재의 국제 체제에 관련하여 객관적이고 이해가 쉽고 논리적인 서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틀과 그것을 이론적으로 받치고 있는 주장들이 매우 균형적이고 의미심장하며, 통찰력까지 더해지고 있죠.

앞으로 세계의 체제에 대한 패권과 영향력은 미국이 다소간 감소하더라도 완전히 무대에서 퇴장하지는 않을 것이고, 지역 패권국으로의 대두를 하고 있는 중국, 인도, 일본 등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배경이 돋보입니다. 일례로 ˝중국 지도부는 중국이 점차 강대해짐에 따라 세계 중심국가가 돼야 하는 운명과 야망이 방해를 받지는 않을까 우려하며, 자신들이 원하고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믿는 국제 위상과 국가 발전이 깡그리 부정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다.˝는 평가는 대단하다고 느꼈는데요. 이는 중국에 대해 앞으로 국제 사회와 주변 지역에 ‘평화적 부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지난 과거 역사에서 무려 1000년간 지역 질서를 지배했던 국가라고 자신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고, 그런 이유로 이 지역에 미국의 영향력과 패권에 대해 매우 부당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이러한 미국의 영향력이 동북아시아에 안정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고 자체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이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죠. 중국의 부상과 이 지역의 패권국으로 발돋움 하려는 중국의 욕구에 아무런 판단 기준이 없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은 것은 현재 미국의 영향력보다 중국이 지역 패권국으로 올라서 미국의 영향력을 대신하는 상황이 과연 한국에게 어떻게 이득이 될지 고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냉전이 끝났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국들과 유럽의 민주국가체제와 중국과 러시아의 독재국가 내지는 권력 정치 국가들의 세계 정치 분할이 생겨날 수 있다는 분석과 특히 러시아와 관련해 천연 가스 수입 등 자원 무역이 늘어나고 있는 유럽의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밀접해진 유럽-러시아 관계가 오로지 정치 논리로만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봐야겠죠. 우크라이나, 조지아 사태에서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최근 몇년간의 경제적, 금융 시장에서의 상호 관계도 과거의 구소련을 봉쇄한 것처럼 정치 이데올로기적 해석으로만 미국이 대처하기란 어려운 것도 앞으로 중국의 ‘평화적 부상‘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그것의 관건이라 봐야할 것 입니다. 중국 스스로 현재의 미국이 자신들의 돈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국제 체제에 미국의 패권에 배타적으로 도전하려고 든다면 그것 자체가 ‘중국의 평화적 부상‘의 허구적 진실의 증거일테죠.

물론 이러한 전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중동에서의 대 이스라엘 안보가 발목 잡혀, 중동의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연대에 오랫동안 힘을 써온 것과 반미 정권의 헤게모니 획득을 막기 위해 CIA를 동원해 이를 막기 위해 행동한 것들이나 자신들이 민주주의 체제의 큰형임을 차저하면서도 국익을 위해서는 가치 모순된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것도 로버트 케이건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윌슨으로 대표되는 그 특유의 미국인의 고립주의 성향을 뒤로 하고 과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고 대체로 패권 지향이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영토 확장과 지배권 확립이 아닌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찰과 세력 균형에 주도적 역할을 해 온 것은 그래도 세계 역사에서 다른 패권국가들과는 다른 행보였다고 평가할 만합니다. 세계의 많은 권위주의 정부와 독재자들은 미국을 세계의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권력이 무장해제되는 ‘강압적 민주주의 체제의 요구‘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아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세계에 뿌리 내리면서 확고한 민주주의 체제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권위주의 독재라 일컫는 중국 조차도 이러한 시스템에 편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되었죠.

결말에 이르러서야 밝히고 있는 현재의 국제 사회는 미국과 유럽이 이끄는 민주주의 진영의 확고한 체제가 뿌리 내리고 있으며, 다시 한번 인간 본연의 자유 의지와 평등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들이 행동에 나설지는 앞으로 두고봐야 하겠죠. 즉, 케이건은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여러 권위주의적 독재 국가들의 배타적이고 타협이 불가능한 성향이 앞으로 국제 사회에 불안이 될 수 있으며 이에 민주주의 국가들은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 일방의 책임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이 연대해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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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 세계 속의 아시아연구 시리즈 10
신범식 외 13인 지음 / 진인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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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4년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수고의 아시아 연구기반 구축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고 펴낸 이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산하 중앙아시아센터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요 문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한권의 두터운 논문집 형태로 201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있어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연론 환기는 크게, 미국이 2001년 9, 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소위 대 테러 작전을 수행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고,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해 만든 상하이협력기구 SCO 와 최근의 중국 정부가 기획하고 대외에 열렬히 홍보하고 있는 ‘일대일로‘와 관련하여 크게 유명해졌습니다. 맨 마지막의 일대일로는 특히 중국의 경제 안보적인 측면에서 동남아의 말라카 해협으로 수송되는 해상 수송을 전략적으로 전환 모색하며 육로와 이 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관련국들과의 여러 제반 사항과 협력, 갈등 등을 책을 통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국판 크기의 책이라 처음에 다소 놀랍기는 했는데요. 학자들의 논문집 형태라 일독하는데 더 조금 집중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리적 위치로 봤을 때, 우리는 이 지역을 중앙아시아로 이해하는 것이 맞겠으나, 많은 학자들이 중앙 유라시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구소련 시기에 독립한 신생국들의 성격과 엄연하게 중동과는 조금 상이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더 구분하기 위해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 지역에 속한 국가들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입니다. 이들 국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상하이협력기구 구성국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 러시아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과거 구소련의 영향력을 기억하는 러시아는 이 지역에 중국의 경제적 진출에 마냥 반갑지는 않은데요. 린트너의 ‘차이나 브라더스‘에서도 러시아의 극동 연해주 지역에 중국인들의 진출이 이어지면서 현지 러시아인들이 그것을 우려하는 것처럼, 이 지역의 지역민들도 중국인들의 진출을 다소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이 그러했습니다.

세계적 논란을 일으킨 알 카에다의 뉴욕 발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지리적 이점이 대두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키르기스스탄은 미군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10억 달러 이상의 원조와 투자를 미국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자신의 영공을 미군에 열어주면서 대 테러 전쟁을 지원하게 되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에 미국의 영향력이 들어서는 걸 썩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그래서 미국이 옵저버라도 참여하고 싶어했던 상하이협력기구에 중러 양국은 이를 간단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목대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진출에 대한 각국의 상황과 그에 따른 분석을 여기에 학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 5개국 중 자원과 경제적 제반사항이 빈약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기스탄과 상대적으로 부존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이 양자는 중국 과의 관계에서 상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중 몇몇국가는 독립 후에 중국과의 국경선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양보를 해주고 경제적 투자를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방에서는 이들과 중러가 함께한 ‘상히이협력기구‘를 권위주의 국가들의 모임 정도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실제로는 자원 외교의 측면에서 중국의 진출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도 키르기스스탄에 미군 기지를 운용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때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다소간 시들해진 상황입니다.

다만 러시아와 중국의 상하이협력기구에 대한 협력은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더라도 상하이협력기구가 이를 지원하는 후방 조직 역할을 하는 것에는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 책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이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고 이 점과 관련해서 중국도 경제적 협력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아 정권이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 만큼 내심은 차이를 인식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란이 이 SCO에 가입하기를 원했던 모양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는 러시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 가입을 원하고, 중국은 인도가 가입할 경우를 대비해 파키스탄의 가입을 준비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약간 흥미로운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중국이 벌이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협력과 투자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파악하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천연가스 파이프와 연계한 가스 수입 기대를 해볼 수도 있는데요. 물론 북한의 협력이 있어야 되서 요즘 같은 상황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요즘 중국의 중아아시아 진출에 관한 글들이 서점에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의 출판은 의미가 있다고 봐야하겠습니다. 상세한 지도와 도표가 수록되어 있어서 전반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고, 글을 구성하는 문장 자체도 수월하게 읽혀지는 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런 경제적 자원 외교와 관련하여 아직 미흡한 면이 있는 것 같은데요.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 분산 수입을 위해서도 앞으로 이런 연구의 필요성도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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