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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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이 곳을 통해 리뷰한 어니스트 칼렌바크와 마이클 필립스의 ‘추첨 민주주의‘에서 비교적 광범위하게 인용된 자크 랑시에르의 이 책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를 일독했습니다. 이 책은 거의 4일에 걸쳐 두 번 정독을 했는데요. 책 서문에 역자의 언급대로 ‘저자인 랑시에르는 난필로 유명하며 그의 문장과 문체는 매우 복잡하고 지루하다‘ 라는 분석에 절로 동의가 될 정도로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다만 부족하게나마 이만큼이라도 머리에 집어 넣은 것도 이처럼 역자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서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인 랑시에르는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실질적 실현에 대한 의미로서,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 하에서의 통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여러 과거 이론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플라톤이 강조한 것처럼 ‘제일 합당한 통치는 통치 행위를 갈망하지 않는 자들에 의한 통치‘ 이다라는 문장의 함축적 표현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책의 제목대로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은 현재 민주주의하에 또는 민주주의 제도를 주요한 정치제도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정치 경제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소위 각국의 기득권층‘ 이라고 해석했는데요. 예전에 읽었던 오언 존스의 ‘기득권층‘ 에서 이 기득권층에 있는 이들은 선거로 선출된 것도 아니면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관리‘ 하려는 지배 계층의 총칭이라 봐야하는데요. 예전에 부패 혐의로 태국 정치에서 퇴출당한 탁신 칫나왓 전 총리가 원인이 되어 태국에서 대규모 정치 투쟁이 일어났을때, 당시 태국의 기득권층인 사업가, 의사, 변호사 들이 농민 등에 대한 투표권 제한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과 같은 선례들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기득권층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고도화 된 민주주의의 확대를 잠정적으로 바라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많은 정치 이론서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기득권층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민주주의가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분란과 소요를 일으키고 소모적인 정치 논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더불어 기득권층은 아니지만 사회 보장 체계와 평등과 관련된 부분에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념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개인의 선택적 자유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지난 오바마 정부의 ‘오바마 케어‘를 반대한 사람들이 이러한 예가 되겠죠.

그래서 이들은 현재는 ‘민주주의 과잉의 시대‘ 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며 종국에는 공화주의적 과두체제, 즉 삼권 분립과 같은 견고한 민주주의 통치 이념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하에서 그 무제한성을 특징으로 삼는 ‘경제적 이익 추구‘ 가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의 무력화에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는데요. 사실 ‘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민주주의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이 자유주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나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사상‘ 은 경제와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과도하게 침투해 시민들이 이러한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려운 형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랑시에르의 ‘엘리트주의적 정치‘ 에 대해서는 다소 태도가 불분명하다고 저는 느꼈는데요. 과거 토크빌의 미국 독립 정치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분석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태도는 소위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붕괴와 타파를 주장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엘리트 정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그리스에서 실행된 정치 이상주의적 태도와 개인적인 꿈이라는 측면에서 자원봉사 형태의 엘리트 정치 중심의 민주주의에 대한 약간의 동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시스템상에서 직업적 전문 정치인들이 과거 그리스 시스템하의 엘리트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시점에서 다수의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정부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에는 개인의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고, 역사적이며 세계적인 하나의 본체로서 간주되는 근대성이라는 측면을 포함하는 역사의 진보를 대표하는 이념이라고 분석됩니다. 세계 역사에서 인권의 역사는 진보적이었고, 평등의 개념 또한 그러합니다. 이렇게 전면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각 민주주의 정부는 고도화된 교육 체계와 시스템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삼권분립의 과두제의 부분에서도 헌법이나 국가법의 사법적이며 정치적인 태도는 결코 하나만의 그리고 동일한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자유로운 논의와 인간 계층의 평등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벌거벗은 인간들의 권리‘라고 강조한 한나 아렌트의 인권의 분석대로 이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서로 존중하는 이들이 모여 이루는 평등한 가치 체계‘ 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는 것이 우리에게 요청된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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