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충좌돌 - 중도의 재발견
김진석 지음 / 개마고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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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계간지 ‘황해문화‘의 편집자인 김진석 선생의 ‘우충좌돌‘을 일독했습니다. 제목은 ‘좌풍우돌‘에서 약간의 패러디로 만든 것으로 ‘우파에 먼저 달려들고 다시 좌파에 충돌하는‘ 의미로 여기에 소개되는 주제에 우파(적 현상)와 좌파(적 이념)을 동시에 비판한 것으로 여기에서 대안은 중도적 접근 자체 라기보다는 위의 양자 사이에 일종의 타협과 토론으로 보여집니다. 김진석 선생은 철학을 전공한 학자인데도 접근과 비판이 꽤 현실적인 부분이 있는데요. 저자가 글에서 밝혔듯이 ‘이 현실을 있는그대로 직시‘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여기에 실린 주제들에 대한 배경이 아닌가 싶더군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아주 단순한 느낌은 일종의 우파 보수의 시스템적인 현실에 진보의 관념적이고 탈현실적인 접근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읽혔습니다. 저자 자신이 진보 정권의 집권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도 그를 위한 진보 세력의 현실 이념적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식의 간절한 요청이 김진석 선생의 의도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책 출간년도가 2011년도라 지금 읽고 판단하기에는 조금 철지난 논제들도 있긴 합니다. 물론 무시를 해야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전체는 11장으로 되어 있고, 마지막 11장은 따로 언급해서 실지 않은 일종의 후기와 소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들을 형식적으로 구분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봤을 때, 요즘 회자되는 강남좌파와 기존의 한국 사회의 좌파 혹은 진보세력, 반값 등록금 문제와 대졸자 주류 사회를 직시하자는 문제, 복지,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경제, 신자유주의와 사회에서의 개인의 경쟁 등으로 요약했습니다. 여기서는 복지와 비정규직 문제, 한국 사회에서의 신자유주의의 논란 등이 인상이 깊었는데요. 철학을 공부하고 전공한 사람답지 않게 매우 현실적인 접근과 비판을 하고 있어서 꽤 신선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답지않다는 표현이 제 선입견일수도 있지만 사회학을 오래 천착한 학자가 쓴 글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근래 강남좌파로 소개되는 새로운 진보 현상에 대해 보수 우파와 같이 개인 소비와 이익 추구를 하는 이들이 사상과 이념적으로 좌파라고 커밍 아웃 하는 것이 관념적으로 봤을 때 진보와 좌파에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과 전통적인 좌파는 전통적으로 돈과 개인적 이익에 대해 비판적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강남좌파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리버럴‘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하구요. 사실 한국 사회에 좌파는 따지고 보면 3% 도 안 될 수치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이런 미약한 수치로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 하는 것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이고 소위 과거 집권 여당과 기득권 세력에 대비되는 민주당과 사회 민주주의적인 태도를 지닌 세력들은 거의 리버럴로 지칭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극우 보수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좌파‘라고 규정짓는 것에 대해 저는 그동안 수없이 희극같은 장면이라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해도 불구하고 김진석 선생도 비교적 해석을 광범위하게 해서 리버럴을 진보로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는 거의 대다수의 극우 보수와 보수, 우파 세력에 민주당과 같은 리버럴 우파가 이끌고 있으며 사실상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 세력은 정의당과 일부 좌파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이처럼 한국 사회의 영향력적인 측면에서 진보와 좌파는 거의 미미하지 않나 싶은 전제를 깔면서 이곳의 저자의 논의들을 그런 점을 감안하여 해석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한국 사회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경제와 사회 현상에 대해 매우 깊은 통찰력이 보여집니다. 한국 사회가 이미 대졸들이 다수인 직업계층 및 사회주도계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현실적으로 직시해서 복지와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복지와 비정규직 문제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로 보고 있구요. 한국의 고용 시장이 지난 2000년대 이후로 많은 대졸자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 수많은 대졸 구직자들이 원하는 실질적 자리는 10% 남짓에 지나지 않는 현실 상황의 부조화와 더불어 복지 문제도 이런 점에서 고찰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용 문제가 해결되면 복지 문제도 꽤 신속하고 수월하게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는 이런 고용 시장과 연관이 깊다고 봐야겠죠.

그외에도 저자의 한국 사회에 대한 새로운 입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반값 등록금 문제는 사립 재단의 비리 문제와 경영 합리화를 통해 먼저 토대를 만들고, 북유럽의 사회 복지제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작금의 한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등의 논리들이 있습니다. 경쟁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현재 사회에 경쟁이 너무 과다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저자의 분석에 동의하며 이것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한정 짓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제반적 안정을 저해하는 것으로 지금 한국사회는 이미 근간을 흔드는 살인적인 높은 이혼율, 자살, 빈부 격차 등의 사회 토대가 흔들리고 있기에 경쟁을 부추겨 여기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을 벼랑에 몰아서는 언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현실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 보수와 진보가 사실상 무능하기 때문에 좀 더 행동적 각성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끝으로 이미 한국 사회의 정치적 계급 지지가 다소 역전되어 있는 상황은 보수보다 오히려 리버럴한 보수와 진보의 책임일 것입니다. 다수의 가난한 하위 계층이 보수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어떤 잣대로 들이대도 참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죠. 민주주의가 정착된 미국과 유럽 서구 사회는 각 시민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정치 이념적 행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데, 우리 나라는 기득권을 대표하는 보수 우파의 ‘격차는 자연스럽다는 주장‘ 에 중도 보수와 진보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그 특유의 다면적인 무능으로 이런 한심한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경제적 하위 계층이 진보 정책을 믿고 투표할 수 있도록 소위 합리적 중도 내지는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각성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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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중산층입니까 - 서울대 교수 5인의 계층 갈등 대해부
강원택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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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한상진 명에 교수가 한국 사회의 중류 계급 내지는 중산층에 대한 정치사회적 함의를 거의 처음 밝힌 이후, 그동안 한국 사회에 소위 ‘중산층‘ 논쟁이 심도 있게 있어 왔습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이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라는 책이 출간된 것이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더욱이 여기에 참여한 집필진들은 서울대 출신의 학자들이더군요. 각기 맡은 전공들이 다르니 좀 더 다각도의 분석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정치학 관련 학자들은 다소 권위주의적이고 비 민주주적인 국가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성장하는 중산층들이 이런 국가들의 민주화에 키를 쥐고 있다고 평가해 왔습니다. 1980년대 이후를 거쳐 미국에서도 많은 정치인들이 이제는 실로 ‘중산층의 시대‘ 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7년에 닥친 금융위기로 IMF 금융 구제를 받으면서 사실상 그동안 고용안정이 종말을 맞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한국 내의 다수 중산계층이 몰락하게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이 중산층에 대한 의미 부여가 작지 않았던 것 만큼 오늘날 이러한 중산층의 의미 변화가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 처음부터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한국 사회의 행복의 조건은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일종의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하는데요. 한국인들은 경제적 측면에서 행복의 편차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개인적인 행복 척도에 대한 여러 사례와 분석을 토대로 이 책에서는 집의 자가 여부와 월소득 및 여가 활동 등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고 대체로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꽤 상세한 자료로 객관적 평가로서의 중산층 분류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에는 주로 주관적 평가로서의 귀속적 계층 분류를 좀 더 의미있게 언급하고 있고, 이 두 가지 분류는 사로 상이한 결과가 도출되는데요. 그래서 거의 ‘주관적 중산층‘ 이 글 전체의 전제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여러 국가들중 다소 생소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분단 국가에 처해 있는 관계로 정치 사회에 오랫동안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해 왔고, 정치 이념적 측면에서 이런 반공 이데올로기가 여러 사상적 스펙트럼을 제한해왔던 관계로 한국 사회에서 계층간의 층위 토대가 두텁지 못합니다. 즉, 유럽의 노동자 계층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에 충실하고 이를 정치 세력화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의 상황은 그것과는 매우 차이가 나죠. 이 책에서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이것 말고도 몇가지 특이한 결과라면 자신의 주관적 계층적 속성이 중상위 계층이라고 여겨질때 사회내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결여되고 하위 계층으로 갈 수록 정치적 관심은 높아집니다. 유럽이나 미국은 그 반대의 상황이죠.
또 한 가지는 국내 정치에 있어서 이른바 ‘계급 투표‘ 및 ‘계급적 정치 지지‘ 가 거의 없는데요. 하위 계층의 많은 수가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꽤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특히 이 ˝계급 배반 투표‘는 우리 나라 정당 정치 지형이 오랫동안 지역주의와 이념, 세대 차이에 매몰되어 와서 그동안 정당들이 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고, 국민들 또한 자신들의 상황과 거의 상관없는 투표와 정치적 지지를 해온 게 아닌가 분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학력층과 소득 하위 계층의 보수 정당 지지 현상은 조금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단편적인 차원에서 저자들이 이처럼 분석하는 것에는 일견 동의하지만 조금 더 분석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 국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은 부동산과 금융자산 모두 합쳐 평균 6.6억. 4인 기준 가족 기준으로 세금과 4대 보험을 제외한 평균 가구 소득이 515만원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은 중산층을 일종의 중간소득계층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 개념은 거의 경제적, 소득적 측면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에 미쳤는데요. 단순히 소득 기준의 중산층 규정이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에 대한 의구심이랄까요. 단순한 경제 및 소득적 기준으로 중산층을 결정한다면 단순히 다른 계층보다 소득이 나은 계층이 정치를 비롯한 민주주의 의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소득이 상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의식이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안락하고 만족스런 윤택한 생활에 만족하고 그야말로 개인적 삶에만 충실해 그가 속한 사회나 현실에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죠.

이런 점은 아직 우리 민주주의가 그다지 성숙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릅니다. 87년 체제로 불리우는 민주화 과정이 우리에게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저변 자체는 아직 의식적인 측면에서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광화문의 촛불로 일어난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축적되어온 시간과 과정의 역사가 아직 미흡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복지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전면적인 민주주의 사회라고 평가되고 그와 동일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의 국가이지만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이 사회 구조와 시민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것을 쉼없이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과 이 자본주의 주변의 ‘송파의 세모녀 자살 사건‘ 과 같은 약자들과 스스로의 복지를 해결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한 공생의 복지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우리에게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논의된 글이 현재 우리 사회의 실상이라 볼 수 있기에 개인의 사고로서 사회 전체를 개략적으로 조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를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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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
일레인 카마르크 지음, 안세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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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제가 Why Presidents Fail 로서 한국에는 ‘대통령은 왜 실패했는가‘ 로 출판된 눈에 잘 들어오는 노란 표지의 작은 양장본인데요. 저자인 일레인 카마르크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거버넌스 스터니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이자 효율적 공공관리센터의 설립이사로 재직 중인데, 겸직으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식인으로서 과거 대통령 선거 켐페인에 참여한 경력도 갖고 있습니다.

제목에 실패하는 표현되어 있어 글 전체 내용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까봐 걱정을 했는데요. 전체를 일독하고 나니 생각보다 만족도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인용되고 있는 행정부는 지미 카터부터 버락 오바마 행정부 기간까지의 사건과 대통령들의 주요 행적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하의 대통령 책임제는 선거와 여론의 측면에서 성공과 실패가 제법 극명하게 갈리는데요. 특히 대통령의 통치 실패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안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런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이 책은 잘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행정부와 연방 대통령에 대한 분석이죠.

연임을 준비하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 해결 실패로 2선을 자신하던 그가 거의 무명이라고 봐도 될법한 한 배우 출신의 정치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게 됩니다. 당시에 카터 행정부가 심각한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긴 했습니다만 저자인 카마르크는 이 ‘이란의 대사관 인질 사태‘ 실패가 정권을 일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하에서 여론과 언론의 중요한 관심 대상이 되는 대통령에게는 이러한 굵직한 문제에 대한 결과가 중요한 법인데요.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검토하고 집해해야 하는 문제에도 남보다 더 주의와 이해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책은 오바마 행정부의 ‘오바마 케어‘를 다루고 있습니다.

카마르크는 이러한 대통령과 행정부가 유념해야 될 부분으로 ‘정부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고 조언하는데요. 어쩌면 판에 박힌 주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꽤 의미심장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부‘제왕적 대통령‘ 이 국내외에 산적한 문제를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관료들로 해결 볼 수 있다는 확신이 대체적으로 국가를 위기로 끌고 가게 됩니다. 여기에다 대통령 개인의 도덕적 자질 문제가 비롯되면 더 심각해지죠.

지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전임인 클린턴 대통령이 2001년 초에 부시 대통령에게 알 카에다 제거가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쉽게 묵살되었습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보이는 전임 정부 지우기는 부시 행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소위 ‘백악관 섹스 스캔들‘ 로 인해 그의 많은 면에서 신뢰성이 떨어졌고 그런 연유로 클린턴 대통령의 중동 테러 단체에 대한 언급은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2001년의 9/11 이 클린턴의 경고를 무시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부시 대통령이 CIA를 비롯한 정보 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죠.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은 잠시 뒤에 숨기고 ‘전문가‘로 불리우는 조언 그룹에 대한 열린 자세가 필요한데 그동안 출간된 여러 책들로 보았을때 부시 대통령은 이 부분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뒤이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루이지애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라크에 파병된 군 병력 때문에 주 방위군의 인력과 장비가 제때에 도착하는데 애를 먹어, 현지 주민들이 ˝캐나다의 지원이 더 빨랐다˝ 면서 방송한 인터뷰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카마르크는 오바마 시절의 예를 들면서 소위 ‘측근들에 의존하는 내각 정치‘ 에 대해 돌려 말을 하고 있는데요. 당선된 대통령이 그 동안 함께한 정치적 동반자들에게 백악관에도 함께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으나, 정무적 능력과 행정적 기반을 갖고 있는 실무자들을 곁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과거 ‘보훈 병원‘ 사태에서 측근들이 제대로 보고 하지 않아 나중에서야 언론을 통해 이 스캔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때 크게 격노했던 것으로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책 전체의 논조가 쓸데없이 치우치지 않아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는데요. 마찬가지로 번역도 꽤 나무랄데 없었습니다. 다만, 오바마 행정 시절의 오바마 케어에 대한 분석은 조금 자료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민간 의료 보험을 증권화 형태로 시장에서 거래하자는 부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그 부분의 설명이 조금 아쉽더군요. 차후에 오바마 케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글을 구해 읽어봐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 하에 삼권분리의 한 형태인 행정부의 대표인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다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거의 결과로 국가의 통치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은 자신이 도덕적 자질도 중요하지만 관리와 정부 조직의 균형적 분리와각 정부 조직의 깊은 이해와 관료들을 잘 관리해서 필요할 때 조직을 잘 사용할 수 있게 매사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요점이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읽기에 너무 이론에 치우치지 않아 좋았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미국의 현대 정치를 한번 훑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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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의 중국 -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
사토 마사루 지음, 이혁재 옮김, 권성용 해제 / 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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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정치부 기자인 사토 마사루는 총리실을 비롯한 자민당, 민주당, 외무성, 방위성을 취재하고 과거인 2007년 부터 2011년까지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이런 그의 책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일독했습니다. 우선 제 개인적 경험의 소산이랄까요. 그것은 일본인이 쓴 중국에 관한 글은 주의를 요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약간의 정치, 역사적으로 치우친 의견을 개진한다든지,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상대를 객관화해서 보는 것을 기본이고 당연히 해야하는 당위성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기질을 생각해보면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어쩌면 자신들의 정치와 역사와 같은 기존의 관념체계를 건드리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생태적 거부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총 6장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구분된 형식은 그렇구요. 1장과 2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장들을 간단히 해석한다면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것인가에 대한 분석과 이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 라는 부제가 본디 일본 원서에도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대두는 어떤식으로 귀결되든 간에 일본인들과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해와 영향력의 쇠퇴를 답보하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부정할 수 없겠죠. 그런 기본적인 입장의 이해를 갖고 이 책을 보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대충 틀이 잡힙니다.

처음 1장과 2장은 후진타오 정권부터 요즘까지의 중국 정치의 간략한 소개와 정보를 제공합니다. 수월하게 읽힐정도로 내용은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시진핑의 중국이 과연 어떤 형태로 국제무대와 세계 경제 시스템에 나오게 될지에 대한 약간의 분석과 예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외 많은 언론과 여러 책들을 통해 많이 논의가 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다만 여기에 몇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요. 2010년 3월 미중간의 협의에서 중국측은 대만이나 티베트 문제에 사용되는 ‘핵심적 이익‘ 이란 표현을 남중국해에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국제 외교 무대에서 이 시점이 거의 처음일테죠. 2008년 이후에 중국은 본격적으로 유소작위로 나오게 되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2010년은 중국의 외교가 주변국에게 매우 놀랄만하게 배타적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과 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국에게 그간 보지 못한 우려를 끼쳤고, 이 시점으로 싱가포르가 미국에게 좀 더 군사 외교적으로 가까워지는 반대급부를 만들었습니다.

며칠전에 리뷰한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에서 아리기는 중국의 돌이킬 수 없는 군사 외교적인 흐름이 이어지면 일본, 한국, 필리핀, 태국 등 주변의 미국 동맹국들이 일제히 대 중국 봉쇄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주변국에 심히 우려를 안겨주는 중국의 군사 외교적인 흐름이라는 것은 아마도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 댜오위다오/센카쿠 같은 현안일텐데요. 이처럼 현재의 중국이 국제 무대에 외교 역량과 경제력을 자랑하면서도 분란의 씨앗이 적지 않은 관계로 중국과 주변국들이 특히 미국을 포함한 경우죠. 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경우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책에는 중국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의 지도를 거꾸로 그려 넣은 지도가 있는데요. 확실히 이렇게 보니까 중국의 (약간의) 해양 지리적으로 포위 당한 느낌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인지되더군요. 아마도 그런 측면에서 자꾸 남중국해와 오키나와 등지로의 태평양 연안의 연결을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해석은 결국엔 미국과 중국의 국가 이해와 이익이 서로 상충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중국 공산당을 포함한 정치권과 정부가 기본적인 무력을 전제로 한 외교 및 경제 분야의 지원을 확대할 것 입니다. 중국 정부가 군사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바로 이 점에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국제 체제의 변환을 시도한다거나 미국과 유럽이 기초해 온 세계 시스템의 전환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이란과 수단의 예에서 중국이 특유의 일방적이고 국제 환경을 무시하는 외교적 행태를 보여왔기에 국제 무대의 많은 자유진영 국가들이 앞으로 중국이 보일 외교적인 측면에 우려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 책의 마사루도 지금은 작고하고 없는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하여 워싱턴과 베이징의 세력으로 나뉘어 잠시 대립한 경우를 들며 겉으로는 민주주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속은 전제주의적 독재 정권들이 이 노벨평화상 사태에 중국을 두둔한 것은 이런 측면의 연장선상이라 해석해도 무방하겠죠.

리커창과 시진핑이 거듭 소위 ‘베이징 컨센서스‘의 수출과 확대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혀왔지만 제가 몇번 언급했듯이 민주화가 없는 이 베이징 모델은 전세계의 독재 정권과 무늬만 민주주의인 정부에 매우 좋지 못한 신호를 보낼 것임은 아주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인 일본인 특유의 역사 정치관을 볼 수 있었는데요. 과거 일본군이 벌인 난징대학살과 관련해 ˝중국이 역사를 인식하는 방식은 일본과 다르다‘ 언급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의 일개 개인이 이런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대하지 않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일 테지만 일본제국 시절의 잔제를 극복하지 않고 부정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시라이 사토시가 말하는 ‘일본의 영속패전론‘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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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 21세기의 계보 프런티어21 9
조반니 아리기 지음, 강진아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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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리뷰했던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의 공저자였던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일독했습니다. 이 책은 약 6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갖고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소감은 그렇게 수월히 읽혀지는 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번역은 상당히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이를 탓할 수는 없구요. 다만 ‘동아시아 역사에서 오래전 중국과 지금의 현대 중국을 해석하고 분석하기 위해 도입된 애덤 스미스와 홉스를 비롯한 여러 이론과 주장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시작되서 서론부터 3장, 그리고 그외 다른 장에서도 곳곳의 왠만큼 사회 경제학적 배경지식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몇번을 계속 읽어야 될 만큼 난이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기에 포함된 ‘그 범위‘가 실로 광범위한 문제여서 사회, 경제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유럽과 동아시아의 역사와 인용되는 사상가들의 핵심 주장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럼에도 아리기 선생이 꽤 친절한 편이라 사상가의 언급과 배경 설명에도 상당부분 할애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꽤 진지한 독서가 될 수 있을듯 합니다. 저자인 아리기 선생은 ‘세계 체계론‘의 유명한 이론가이며, 본인 스스로 놀라운 만한 독서를 선행한 증거로 이 책에서도 그러한 연구 노력이 녹아 있습니다. 주위에 많은 학자들이 이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역작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는데요. 참으로 놀랄만한 연구 성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기존의 애덤 스미스의 이론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해석을 달리해서 근래 자유주의 비판으로 뮤명한 칼 폴라니의 주장에 애덤 스미스가 이에 동의하리란 주장과 그는 ˝강한 국가의 존재를 전제‘ 했는데요. 이 책의 중심 논지는 이런 테제를 수정하고 확대한 버전이라고 저자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해석 기반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이어지는 유럽의 초기 자본주의적 경제와 유럽 전반의 시장과 자본의 생성과 축적 및 흐름을 시대적 구분과 함께 여러 사상가들을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자본주의를 거쳐 영국을 대신해 미국의 헤게모니 획득과 그 이후의 세계의 양대 대전을 언급하고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분석한 영국의 패권이 미국에게 평화적으로 이양된 시기와 지금의 중국의 굴기가 미국의 패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거의 최후의 세계 패권에 대한 개입 작업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실패로 미국의 전세계 영향력의 충격적 쇠퇴를 가져왔고 이 전의 미국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시 행정부의 전임 행정부였던 클린턴 행정부는 매우 양호한 경제 지표를 만들어 놓고 이임했는데요. 이렇게 비교적 양호한 상태에서 네오콘의 패착과 부시 대통령의 결단으로 시작된 이라크에서의 실패가 미국의 힘이 크게 꺾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에 전통주의적인 동아시아의 중국과 현대의 중국은 주변의 영향력이 상대한 국가였으나 지금의 미국이 양자간 동맹으로 유사시 그들이 원하는 군사 개입과 오랜 미국 외교의 지침이었던 역외 균형 전략을 국익의 제일 우선 과제로 삼고 그러한 동맹 블럭화에 힘써왔다면 중국은 전통의 역사에서도 지금까지 그러한 측면의 확장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존 미어샤이머가 강하게 주장하는 ˝중국은 평화롭게 부상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논리에 수긍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중국의 평화적 부상에 대한 아리기 교수의 평가는 이후로도 명확히 찾아볼 수는 없었는데요. 중국이 오늘날 성공적으로 시장 경제를 발전시킨 배경에 향진 기업과 화교 경제가 큰 기여를 하고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테제를 따르지 않고, 스티글리츠가 평가한대로 이 워싱턴 컨센서스가 옹호하는 충격 요법을 지지하지 않고 점진주의를 채택해 중국이 세계의 권력을 동아시아로 향하게 했다 말합니다. 이처럼 곳곳에 중국 경제와 경제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가 보다 평등하고 평화적으로 힘을 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마찬가지로 중국의 부상 또한 평화적으로 이뤄지리라는 희망과 예견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21세기는 미국의 퇴조와 중국의 부상으로 설명하는 아리기 교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2025년이 큰 분수령이 될 해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데요. 2023년의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2025년에는 과연 미중 사이에 어떤 국제 정치경제적 결과가 나타날지 지켜보는 재미도 나름 있겠군요. 이제 전세계를 아우르는 것은 헤게모니가 아니라 헤게머니의 흐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고 있는 중국의 경제가 실제로는 더 크고 대규모이지 않을까 여기에 글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기존의 애덤 스미스에 대한 전통적인 이론을 아리기 교수가 반박한 경우가 많아서 따로 애덤 스미스와 관련된 책 몇 권을 더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467페이지 마지막 부분의 문장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공백으로 되어 있어서 편집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가 구입한 책만 그런건지 약간 의아했습니다. 한가지 더 부언해 드리면 서론부터 3장 까지는 꽤 인내심을 갖고 보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해가 미진한 부분은 다른 책을 찾아가며 읽었는데요. 이를테면 애덤 스미스와 관련된 책들입니다. 그래서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책을 일독하고 나니 왜 이 책이 역작이라 불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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