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파워 매트릭스 -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선 한반도
NEAR재단 지음 / 이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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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민간 싱크탱크인 NEAR재단에서 동북아 3국인 한중일 간의 정치, 경제, 역사 화해에 대한 논의를 근래 한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일종의 연구집이라고 봐도 무방할텐데요. 한중일 3국의 공인된 관련 연구자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균관대 이희옥 선생과,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였던 이태진 선생을 글로나마 접할 수 있어서 비교적 기대와 함께 책을 일독할 수 있었습니다.

1부는 냉전 이후 안보 환경 변화가 초래된 오늘날 동북아에 대한 개괄적 분석과 여기에 중국의 대두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다루고 있고, 2부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한중일 3국간의 경제적 측면에서의 분석, 앞으로의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3부는 아무래도 요즘 일본 정치권의 심상치 않은 역사를 해석하는 문제와 전체적으로 19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문제에 대해 한중일 3국의 연구자들과 이들의 대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실재하는 이 지역은 정치적으로 안보 변화에 놓여있는데요. 특히 중국이 놀랄만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외형적으로나마 경제대국에 도달함으로써 이에 대한 대국화 전략을 수립하고 지역 강국에 걸맞는 대접을 받으려는 입장과 국제 사회의 첨예한 제재와 비난에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지역 안정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안보 줄안이 되고 있는 북한 문제에 대해 의견들을 개진하고 있는데요. 대체로 심도있는 논의를 보여주고 있어서 관심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북한이 왜 핵무기를 개발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아직도 언급되는 것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일본측에서는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성실하고 실효적인 영향력을 기대하는 듯 했으나, 사실상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전무하다고 여기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소위 순망치한적 이해관계로 북한의 붕괴나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전혀 바라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는 수많은 난민들의 동북3성 유입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실질적으로 미군과 국경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들의 안보적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꽤 흥미로운 내용들 중에는 만약 대만이 핵무장을 시도하게 된다면 중국은 지금의 북한에게 대응하는 것처럼 하긴 힘들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그리고 이러한 동북아의 안보 불안정에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한국과 일본에 전략 자선을 더 투입하게 된다면 중국이 좀 더 북한을 관리하려고 들 것이라는 논의에는 예측이 어렵고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봐야겠죠.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도 강한 안보이익이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지는 않겠으나, 이번의 북한과의 대화 기조가 어그러지거나 결국 무용의 결과에 이른다면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으로 봤을 때, 한일 양국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군사 자산을 일정부분 후퇴시키고 과거의 고립주의로 갈 가능성도 고려해 볼만 하겠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입니다. 또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과의 치킨 게임을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현명한 협상력과 면밀한 외교적 이성이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북한 핵실험 결과에 대해 미국과 중국등에 섭섭함을 표시했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우리다운’ 생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정부와 외교 당국자들이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사와 요구를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주지시키고, 특히 미국과 중국 양국 사이에서 되도록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에 수긍이 가더군요. 이른바 연미화중에 대한 높은 상황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경제 부분에서는 한중일 삼국 뿐만아니라 아세안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아시아 금융 위기 가능성과 (대체로) 중국 주도의 한중일 삼국 경제 통합화에 대한 분석 및 경제 협력 가능성, 금융 위기 가능성에 대한 삼국간의 통화 스와프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요. 지난 한일간의 통화 스와프는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일본 내의 불만이 원인이 되어 연장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견을 밝힌 일본 연구자는 ‘경제적 문제에 역사 문제가 관여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밝히고 있는데 뒤에 3부에서도 간혹 나오는 논리지만 자신들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고 한국과 중국이 역사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탐탁치 않아 하는 일본 내의 의견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 측에서 한중일 삼국 사이에는 달러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중일 삼국의 화폐로 직접 교환할 수 있는 시장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것은 꽤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일 양국은 뒤에 미국 때문에 이러한 논의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도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과거사 해결과 동북아시아 화해 시대에 대한 결론에는 일본이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이 너무나 집요하게 요구와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은 여러 글들에서도 비슷하게 접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일본 내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게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이 점을 일본 국민들이 전후 역사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본심의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베 총리의 일단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미국의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가 연일 비판하고 있음에도 본심을 내비쳐, 그것을 실질적인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의 무력화에 나서고 싶었지만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압력으로 철회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일본의 정치권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우려할 만한 가능성이 있으며, 과거와는 달리 한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국민대 이원덕 교수는 과거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이 동서 냉전 상황하에 주변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사죄를 통한 전반적인 독일의 국가 이익이 있었기에 사좌 정치를 행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일본에게도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면 일본이 사죄를 할 것이고 역사와 화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저는 여기에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일본측에서 지난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자민당 정부가 아니라 다른 정부라 하더라도 일본 측에서 이것보다 더 높은 양보를 하기는 힘들며 이를 한국 정부가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일본의 역사 문제과 관련된 거의 전반적인 논의에 대해 한결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태진 선생도 역사를 잊지 않되 용서는 하자는 일부 한국 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아직도 ‘식민지 근대화론’를 비롯한 수정주의적 입장에 서있는 학자와 관료들이 많은 것으로 아무리 용서가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권리라지만 이러한 일본측의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가 북아일랜드 문제로 거의 100년이나 지체된 것처럼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역사 고리는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될 한중 양국 국민들의 정서가 깃든 아주 근본적인 문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아베로 비롯된 일본의 정치권이 더욱더 수정주의적 입장에 다가설 것으로 예상되어 사실상 한중일 3국간의 진정한 교린과 협력은 어렵지 않나 예측해봅니다.

결론적으로 최근에 동북아시아의 정치, 외교적 환경 분석과 안보 문제를 다룬 글들 중에 이 책은 독자들에게 꽤 수준높은 이해를 제공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각국의 입장과 이 지역의 현실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이론과 접근이 대체로 실용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이 분야의 이름있는 연구자들이 다수 참여해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파악할 수 있어서 학문적 측면에만 국한해봐도 꽤 유용하지 않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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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팔아버린 남자 - 신자유주의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윌리엄 클라인크넥트 지음, 유강은 옮김 / 사계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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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Man Who Sold The World”와 매치되어 한국에 번역 출간된 ‘세계를 팔아버린 남자’를 일독했씁니다. 이 책은 2012년도에 출간되었구요. 저는 우연찮게 초판본을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호기심으로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니 원래 미국에서 출간된 책에는 젊은 시절 배우로 활약했던 로널드 레이건의 흡연 장면이 책표지로 장식되어 있는데요. 이상하게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아마도 신자유주의를 통해 미국과 세계를 자유 시장에 맡기며 즐거워 하는듯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이 책을 소화하는데 다른 책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4일 동안 잡고 있었는데요. 생각보다 진도가 안나가서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딱히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몇몇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해석해 지은이가 의견을 내는 방식이 아니고 레이건 행정부 시절 당시의 관련된 인사들의 행적들을 신문 기사가 풀어내는 방법으로 글을 엮어내고 있어서 읽어내는데 적잖은 노력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군요. 조지 슐츠나 캐스퍼 와인버거와 같은 당시 내각의 유명인들을 제외하면 귀에 생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라 아마도 배경지식이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요. 반대로 일종의 르포 형식이라 이런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약간의 배경지식을 취합하여 읽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출연하는 영화의 단역으로 출발해 당시 배경으로만 봤을 때도 배우 치고는 꽤 정치적 성향이 있었던 인물이 레이건일텐데요. 초기 진보적인 성향에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활동할 시기에 적극적인 공화당주의자로 변신하고 특유의 이미지 정치와 많은 이들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장점 등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뤄 꽤 이슈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사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 책의 저자도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은 영국의 대처와 더불어 전세계에 이른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항상 옳다’는 신념의 자유시장을 강조하여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올린 정치인으로 유명한데요. 2008년 이 전까지 미국과 유럽이 거의 유일한 이념으로 생각한 전세계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파고에 대한 비판과 재평가는 오늘날 수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클라인크넥트의 이 책은 당시의 레이건과 그 주변인물들 특히 정책과 정치상황에서의 상황에 대한 독자들이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일찍이 우드로 윌슨이 ‘서민을 실망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진보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천명했던 것처럼 레이건 행정부의 정치경제적 행위들은 사실상 소수의 부유 계층과 기업들을 위한 전반적 시장 재구성과 여기에 도태되는 많은 국민들을 무자비한 야생의 세계로 내몬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거기에 해당되는 한때 왜곡 주장으로 밝혀진 ‘복지 여왕’의 오도와 복지 전반을 무위로 돌리고, 환경 규제와 금융업 전반의 규제와 기업 규제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갈아엎은 이른바 ‘제네럴모터스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주장까지 잉태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들의 대부인 레오 스트라우스와 비견되는 철저한 자유주의자 아인 랜드를 추종하는 자유시장 근본주의자 앨런 그린스펀을 연준 의장에 앉히고 종내에는 금융시장에서의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를 보장했던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적잖은 무력화 시도와 부유층의 재산 증식 시도라고 봐도 무방한 무분별한 기업 합병을 통한 기업들의 주가 상승 시도 등 미국의 자유 시장 추종에는 이러한 의도가 있었는데요. 당시에도 낙수 효과(Trickle Down)를 믿는 미국인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복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 국민들의 왜곡된 정서도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권과 언론의 의도였던간에요. 저는 여기에 소개된 자료들 중에 충격이었던 것이, 1981년 한해 동안 (합병을 위한) 전체 대금 가운데 300~380억 달러가 미국 은행에서 대출한 것이라고 나와있는 것을 보고 이러한 인수 합병이 실로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회계 부정으로 수십억달러를 휴지 조각으로 만든 엔론 사태나 저축 대부조합의 도산 사태 등 우리가 알아야 될 사항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회 따위는 없다’고 일갈한 대처 전 영국 수상의 말처럼 레이건 대통령의 행적들에서도 묘한 기시감을 느꼈는데요. 무분별한 신자유주의화의 제 2부가 되지 않도록 많은 시민들이 이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는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역시 중간에 내려놓고 한쪽으로 치워버릴까 하는 고민을 억누르고 끝까지 읽게된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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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부상, 문명의 전환인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열린강연 시리즈 1
임현진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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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열린강연시리즈의 3권 중, 임현진 서울대 명예 교수가 쓴 ‘아시아의 부상, 문명의 전환인가’ 를 일독했습니다. 이 책은 앞선 시리즈 중의 제일 첫번째 책입니다. 전체 분량은 110여 페이지 정도인데요. 여기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대체로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원하는 충족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크게 5장의 챕터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중국 칭화대 교수인 후안강 교수와의 대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인 찰스 S. 쿱찬 교수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4장의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고 있다’는 부분을 내용을 좀 더 보강해서 논의가 좀 더 진전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이 부분에서 아시아의 미래에 관련해 낙관적 시나리오와 비관적 시나리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곁들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넓은 저변에 있는 독자들을 위한 글이어서 그런지 그 정도의 제기에서 마무리를 한 모양입니다.

이어 중국 칭화대 교수인 후안강 교수와의 일종의 대담집에서는 조지 프리드먼이 경고한 중국의 여러 심각한 문제에 대한 후안강 교수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확실히 중국의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광범위한 중국내 부패 문제와 서부와 동부간의 소득격차, 그동안 경제 발전 과정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인민들의 소득 격차가 극심한데, 여기에 경제계 엘리트와 공산당을 비롯한 정치 엘리트간의 정치적 제휴로 인한 부의 편중 문제 등 당면한 문제에 대한 너무나 낙관적 태도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군요. 사실 앞으로 중국의 경제발전이 지지부진해진다면 세계 경제에 입장에서도 특히 지역 내 안보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공산당 세력이 이러한 내부의 불만을 민족주의적 표출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이것은 우려할 만한 시나리오입니다. 앞으로 미중간의 대결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나날이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부패. 지역 격차, 부의 편중 문제를 지속적인 외적 경제 성장이
억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중국 정치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 내부 압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해 정말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중국측 인사들은 양적인 중국의 경제 성장과 막대한 외환보유고 및 지속적인 기업간의 인수합병 등으로 크게 낙관하고 있는 모양인데요. 이러한 낙관은 아주 간단하게도 미국 경제와 미국의 내수시장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중국과 같은 수출주도의 국가들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는 다행히 미국의 상품시장이 큰 영향은 없었지만 이런 낙관이 언제라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무속신앙에 기대어 경제 예측을 하는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30년이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중국이 평화적으로 부상할 것인가에 대한 결과가 이 책의 제목대로 ‘아시아의 부상’ 여부가 달려있다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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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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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반지성주의’의 열풍을 일으킨 이 책의 저자 모리모토 안리의 간단한 이력을 접한 순간 조금 놀라웠는데요. 저자 자신이 신학을 전공하고 국제기독교대학의 목사까지 역임했던 행적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라고 봐도 무방한 사람이 반지성주의라는 주제 들고 글을 썼다는 자체가 대담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소 의외라고 느낀 것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느꼈던 감정이었습니다.

우선 반지성주의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웹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이에 해당하는 설명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저자인 모리모토 안리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지성주의란 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 의식이 아니라 지성의 자기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며, 이러한 반지성주의의 입장에 있는 의견이나 사람들은 지성이 갖고 있는 특수한 성격, 즉 지식 자체가 대체로 권위를 뛰어넘기도 한다는 문제와 지식인들이 종종 스스로 그런 권력이나 제도의 일부가 된다고 평가한 것과 같이 제가 느끼기에는 지식 자체가 과도화게 해석되고 인정되어 그것에 대한 우려로 ‘반지성주의’를 이해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위키 백과를 비롯한 다수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다소 적대적이고 노골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단 저로서도 반지성주의적 운동이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서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를 비롯한 일련의 우려할 만한 정치적 분위기가 반지성주의와 그 궤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죠.

세계 지성사에서 반지성주의를 최초로 소개한 ‘미국 생활에서의 반지성주의’를 쓴 미국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를 모리모토 교수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포퓰리즘 연구를 거의 최초로 시도한 폴 태가트와 유사하게 호프스태터 역시 ‘반지성주의 연구’에서 동일한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미국에서 초기 청교도 유입의 영향으로 비롯된 미국 독립 혁명과 그 이후의 초기 미국의 청교도적 분위기, 그리고 독립 운동에 관여한 소위 미국의 국부들의 행적들을 연관지어 대체로 정교 분리를 강조했던 미국 초기 사회가 오늘날 백인 상류층과 정치종교적인 백인들에 의해 어떻게 세속의 불합리한 상황에 눈감고 종교적인 구원 사회에 몰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토마스 제퍼슨이 앞으로의 독립 미국이 정교 분리 국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으나, 모리모토 교수가 설명하듯이 초기 미국 식민지에 학교보다 교회가 먼저 들어선 연유로 현재의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기독교적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레이건의 대통령 퇴임사로 설명되는 다소간의 자신의 기독교적 가치 지향과 40세 이전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그 이후 종교에 귀의해 다른 사람이 되었던 조지 W. 부시의 일화 등으로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맏형이라 자임하는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가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적 정치인들이 과도하게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기독교적 체험을 비중있게 다루고 그것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국한된 문제라고 보기에는 민주적 제도 하에 헌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교 분리의 원칙에 다소 편파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미국 독립 선언서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은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아도 도덕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며,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를 분별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신념이지만 이런 능력이 이성의 능력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아마도 지성의 측면에서 이성이 역할을 하는 부분까지 공통적으로 평등하다고 여기는 것은 반지성주의적 측면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다르게 인용된 평등의 개념이 지성에 대한 인식을 무시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듯 한데요. 앞서 말한대로 지성이 때로는 권위로 나타나거나 권력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제는 계몽주의적 입장에서도 휴머니즘적 측면에서도 매우 좋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모리모토 교수는 이렇게 지성의 지배에 대한 반역은 이처럼 평등이라는 이념을 원동력으로 허고 있는데,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지적인 것이나 지적인 사람에 대한 반발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것은 지식의 권위에 대한 반발이며 이러한 반역에 의해 때로는 반지성주의가 지성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예측되지 못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책을 일독하고 나서 약간 뒷맛이 개운하지 못했는데요, 반지성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나 부정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 가치인 ‘정교 분리’에 대한 입장이 대체로 모호해서 그가 신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전의 가톨릭적 정교 일치 세계는 당시의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에도 중동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유일의 종교 원칙이 어떤식으로 표출되는지 알 수 있지요. 이런 모호한 부분을 제외하면 미국의 역사와 초기부터 안착된 현재 미국 사회의 분위기, 기독교적 운동과 그와 관련된 인사들의 행적들까지 세세히 제공하여 우리가 ‘반지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정보가 미국의 과거와 지금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어서 다소 제한적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미국 자체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정보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봐도 개인적으로는 무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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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국, 미국 - 글로벌화와 미국의 패권
이가라시 다케시 지음, 곽진오 옮김 / 역사공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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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다소 거창한 수식어로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주목받을 만한 이력으로 채워져 있는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이자 명예교수인 이가라시 다케시입니다. 그는 비교정치와 특히 미국정치외교에 관한 일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미국 내에서도 여러 직함을 거쳐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이 더 있는지는 아직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일본 내에서도 미국과 유럽 정치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정력적으로 집필해 다수 출간했더군요.

다케시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크게 미국 독립 혁명의 기초라고 볼 수 있는 공화주의와 다소 제약이 가해진 연방제, 세계 양대 대전을 거쳐 서유럽의 재건과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발휘해 온 소위 ‘미국에 의한 글로벌화’와 좀 더 확대된 개념으로 동아시아 3국의 민주화에 영향력으로 발휘되었던 미국의 초국가적 정치력 등 이론적으로 만들어 놓은 개념들이 본래 기존의 학문적인 체계와는 다른 고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 어차피 이 글에서도 미국인들 스스로도 제국주의에 대한 적지않은 반감과 거부감 때문에 지금의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제국주의적 접근으로 해석하는 것에 일종의 ‘회피적 거부’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의 패권은 과거 유럽의 제국주의와는 달리 특유의 미국 고립주의에 기반한 체제를 뒤엎거나 강요하는 측면은 거의 볼 수 없다고 봐야겠죠. 물론 비밀스럽고 대놓고 밝힐 수 없는 과거 CIA의 공작들이 얼마간 있긴 했지만, 이것을 미국 제국주의의 한 측면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합니다.

냉전 시기에 태평양을 자신들의 앞마당이라고 생각한 미국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미일 안보조약과 이후 한국 전쟁으로 비롯된 동서 냉전의 실질적 충돌에 한국을 자유주의 세력의 보호권으로 받아들이고,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대만 자체의 안보 보장을 위해 미국이 중국과 관계정상화를 거쳤음에도 이를 포기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우연이듯 계획적이든 지역내의 안정에 이바지 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다케시 교수도 필리핀과 한국, 대만의 민주화 과정을 예로 들며, 이러한 안보 공약과 자신의 시장을 이들 나라에게 제공해 아시아의 4마리 용이 경제 발전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산모 역할을 결과적으로는 맡았고, 이것의 가치도 인정해야할 부분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경제발전 단계에서 이러한 미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의 득을 본 것은 분명 사실일겁니다.

소련과의 냉전이 갈수록 첨예화 되던 레이건 정부 시절에 미국은 당시 전두환 정권을 자유 진영의 중요한 교두보라 여기고 한국 국내의 민주화 요구를 거의 모른척 하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박정희 시기부터 고난을 당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박해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로 사실상 기존의 입장을 돌려 한국 정부에 개입함으로써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한국이 정상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로의 이행을 이끌었다고 이 책은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레이건 행정부를 비롯한 미국의 영향력은 기존의 군사력이 포함된 안보 보장 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정치권에 초국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경제적인 산파 역할까지 자임하여 실질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이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정상적인 국가로의 이행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저 역시, 우리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개인의 삶까지 희생시킨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토록 전세계에 인정받는 경제 대국이자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내적인 역량과 노력에 미국의 외적인 환경 지원과 안전 보장 등이 맞물려 거대한 시너지를 낸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전체적으로 여기에 언급되는 배경은 레이건 시기부터 오바마 행정부 초까지 그동안 있었던 세계 정치의 굵직한 사건들을 함께 분석하고 언급되는 당시 대통령들의 면모까지 서술해 내고 있어 흥미를 끄는 부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특히 조지 W. 부시에 대한 언급은 여기에서도 전혀 어긋나지 않아, 그 자신이 종교적 신념과 말도 안되는 예지력으로 무장해 이국 정치 역사상 책과 담쌓은 대통령중 아이젠하워와 더불어 유명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교주 레오 스트라우스를 받드는 네오콘 무리들을 중용해 미국식의 일방주의를 세계에 강요한 것은 그동안의 미국식 정치에 어울리지 않은 면이라고 분석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케시 교수가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언급하고 있습니다.

책의 간략한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꽤 창의적인 개념과 이론에 흥미로웠고, 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서술을 포함한 문장들이 평이한 편이라 즐겁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국제 정치나, 외교사에 아직 배경지식이 없는 분들이라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각국간의 국제 정치나 외교가 거의 무정부의적이고 힘에 기반한 뭔가 이성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힘든 부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는 분들도 적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그런 중독성 때문에 외교와 국제정치에 관련된 글들을 주구장창 찾아 읽는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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