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이현웅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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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는 ‘탐욕의 시대’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 지글러의 최근 번역된 ‘유엔을 말하다’를 읽었습니다. 장 지글러 교수는 적지않은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1934년생으로 스위스에서 교수로 시작해 스위스 연방 의회의 의원, 그리고 유엔에서 식량특별조사관을 역임하고 현재 유엔인권이사회의 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처음 그를 접하는 분들은 겉으로 보이는 이력만으로 명예를 추구하고 출세지향적인 인물이 아닐까 여기실 수도 있지만, 그는 제가 언급한 전자의 삶과는 거의 상반되는 즉,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 사력을 다한 삶을 산 인물이라 평가 받을 만 합니다.

소개할 이 책은 온전히 유엔의 정치적 배경과 학술적인 측면의 접근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자의 개인적 체험이 글 곳곳에 들어가 있어서 유엔에 대해 좀 이론적이 아닌 실체가 잘 드러난 부분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꽤 흥미롭게 여겨졌습니다. 아예 국제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유엔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과 제안, 한계점 같은 것을 기대하셨다면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이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많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유엔은 현재의 그 한계와 최초의 설립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곳에 속했있는 국가들의 첨예한 국익 다툼과 예를들면 기업의 이사회의 최고위직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임이사국 5개국의 행태 등으로 국제 무대의 현실정치가 역시 상상하는 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 역시 유엔에서 상이이사국 5개국의 거부권 부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어떤식으로 무산 시키는지에 대한 사례 또한 이것을 정치 논리와 이들의 국익의 현실적인 측면으로만 인지하는 것이 저로서도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니까요. 꽤 실질적인 부분에서 유엔의 자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지글러 교수는 지난 유엔에서의 활동 기간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식량실태에 관한 현실적인 보고서로 이스라엘에 의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는데요. 실질적으로 그가 한 행동은 진실과 정의의 측면에서 매우 옳은 결정이었으나, 이스라엘 측은 지글러 교수를 ‘반유대주의’에 매몰된 위험한 인물로 여론 몰이를 해, 이스라엘과 미국으로부터 기피인물로 여겨졌습니다. 과거 부시 해정부 시절에는 더 노골적으로 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 말하면, 계속 저항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글 말미에 자신의 의지를 적고 있습니다. 본문 중간에 장 폴 사르트르와의 인연, 일종의 같은 연구회에서 일하고 있는 노엄 촘스키에 대한 언급을 봤을 때, 장 지글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더군요.

약간의 논외지지만 지글러는 스위스 연방의회의 의원으로 재직시에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로 1991년에 면책 특권을 박탈당했습니다. 또한 그것과 관련하여 이 책에서도 과거 스위스 은행 연합이 2차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보관했던 예금에 대한 일종의 지급 거부로 유엔과 유럽에서 문제가 되었을 때도 자신의 모국인 스위스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는데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증인으로도 출석하고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것에 마땅히 행동을 한 것인데 이런 ‘세계의 양심인’에게 반유대주의로 이스라엘과 유대주의 단체가 그를 매도한 것을 보니, 유럽의 양심과 합리주의는 어디로 갔는지 개탄할 수 밖에 없더군요. 이것이 어쩌면 정말 사족이겠지만 한국인 출신으로 유엔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사람에 대한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그에 대한 평가도 있었습니다. “사무총장을 맡은 사람은 코피 아난에서 생명력 없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로 대체되었다.” 라는 평가와 그는 미국으로서는 남한이라는 가신 같은 공화국 출신의 국민이라는 점이 호재였다는 부분이 유독 가슴이 아팠습니다. 간혹 제3세계의 국가들이 한국을 일본과 같이 한 세트로 묶어서 그렇게 취급한다던데 물론 과거와는 달리 현재 우리의 국력이 그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저로서는 딱히 반박할 여지는 없어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오탈자가 한군데 보였는데, 이 부분은 옥의 티라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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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데모크라시 - 소셜 네트워크 세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꾸는가
제러드 듀발 지음, 이선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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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있는 싱크탱크인 데모스(Demos) 소속 연구원인 제러드 듀발의 소위 웹 2.0 기반의 우리 세대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과 평가를 담은 책 ‘넥스트 데모크라시’를 어렵게 구해 읽었습니다. 어렵다는 표현은 어쩌면 짐작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입니다. 다만 출판사가 민음사이니 어쩌면 재간행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2000년대 이후 전세계의 웹 기반이 눈부시도록 발전하면서 오늘날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식으로 변화되고, 민주주주의의 토대인 시민들도 또 어떻게 바뀌게 될런지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어 왔습니다. 저역시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데요. 만연한 양비론과 정치 불신이 더 심각해질 것인가 아니면 시민들의 좀 더 직접적인 정치 참여가 원할해지면서 민주주의가 가치 측면에서 건실해질 것이다 라는 서로 구분되는 예측들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고도화와 발달된 인터넷과 망으로 인해 시민들이 더욱더 현실 정치와 멀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했는데요. 근래 유튜브에 대한 많은 참여와 활성화 각종 SNS 등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더 정치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지 않았나 평가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인 듀발의 미국의 현실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오늘날 웹 기반의 보편적인 상황이 민주주의에 있어서 나쁘지 많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몇년 전,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들이닥쳤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여러 지역이 수몰로 인한 재산피해와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겪은 것을 잘 아실겁니다. 늑장 대응으로 비판 받았던 조지 W. 부시와 해당 업무에 전혀 연계가 없던 인사를 연방 재난 관리청 청장으로 마이클 브라운을 앉힌 것과 당시 이라크 전쟁 등으로 주 방위군을 비롯한 군대가 제대로 투입되지 못해 사설 보안 회사 인력들이 현지 치안을 담당해 많은 무리수를 두었던 것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현지 주민들의 적극적인 복구 참여와 시 당국과 주 정부를 통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대중의 민주주의 참여를 촉구하는 단체인 ‘아메리카스피크스’와 함께 실시간 직접 투표와 집계가 가능한 기기를 도입해 이를 이용한 것은 민주주의 정치 참여의 새로운 일례가 되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사실인데요. 뒤이어 오픈 소스 형태로 커널을 공개해 핀란드의 대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르발스가 ‘리눅스’를 만들어 오늘날 웹 기반의 원조가 되었던 것 또한 이러한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신선한 계기의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일종의 온라인 혁신에 관한 부분이 제법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이 부분에 관심 있는 분들은 꽤 흥미로우실 것 같습니다.

현재는 이러한 웹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 정치 참여는 주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주제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미국이나 유럽의 풀뿌리 민주주의 단체들은 트럼프의 거부로 촉발된 기후 협약 무산에 대해 우려와 그에 대한 대책 등을 웹 상에서 활발히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은 전반적인 정치 참여 측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지난 2003년 대선에서 하워드 딘 캠프가 성공적으로 선보였던 웹 민주주의 라든지 투명성과 열린 정치 참여를 기조로 개인 블로거와 소규모 언론 사이트,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하고 있는 여러 활동등에 듀발은 상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이런 현실 정치 참여가 감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시민들의 웹 기반의 적극적 정치 참여가 투표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심각한 정치 불신에 매몰되지 않고 건실한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 때문일겁니다.

끝으로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하는 고민을 해봤습니다. 촛불 민주주의로 부패한 정치를 종식시켰던 우리 시민들이 이러한 단일된 행동에 SNS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겠죠. 다만 아직도 정치 권력이 온라인을 통해 개입한 전력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측면이 있어서 대중들의 판단이 아직 호불호가 있는 듯 합니다. 정치 권력이 이러한 식으로 개입한 전력은 앞으로 우리나라 웹 기반의 현실 정치 참여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단은 희망을 갖고 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웹 2.0 기반의 민주주의가 널리 많은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2.0으로 진화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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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국 민주주의론 - 일본은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모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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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와 얼마전 한국에서 ‘영속패전론’으로 큰 관심을 끈 시라이 사토시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서로 대담으로 교환해 나온 글이 바로 이 ‘속국 민주주의론’입니다. 제가 일본어 검색이 수월하지 못해 일본 포탈에서 검색을 못했지만 추측하기로는 2016년경에 먼저 일본에서 출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 말미에 실린 우츠다 다쓰루의 후기가 2016년으로 나와있어 짐작을 해봤습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지레짐작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 체제라고 불리우는 소위 ‘전후 체제’와 그 정치적 배경이 되었던 뿌리깊은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졌는데요. 미국을 종주국으로 자신을 속국으로 표현한 제목도 그렇고 이 주제가 과연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참으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완독하고 나니 본글의 의미 중 절반 정도는 진행 방향이 상이하다고 봐야겠습니다.

글은 전체적으로 총 5장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5장이 일종의 결론과 제언으로 파악되니, 앞의 4개의 장이 주요한 내용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더 들어가면 앞의 1장과 2장이 현재 일본 정치에 대한 분석과 비판, 3장과 4장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들과 일본사회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논하고 있는 아베와 그 자민당 정권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전후체제’를 부정하면서 일본의 국격이 크게 훼손당했다는 평가와 함께 ‘역사수정주의’를 수술칼로 삼아 일본을 크게 수술대에 올려놓고 있는 것을 침착한 논조로 비판학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인에 의한 입장에서 이러한 아베의 정치적 수단이 오로지 미국에 크게 기대고 있는 부분으로 그동안 역대 일본 정권과 정치권이 미국에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일종의 ‘예스맨’ 과 같은 행동을 보여왔다고 비판하고 있는데요. 얼마전에 있었던 집단 안보 개념에 대한 인식 변화와 헌법 개정 논의 등과 같은 부분에서 아미티지와 나이와 같은 저팬 핸들러들에 의해 미국의 이익에 동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보고 있더군요. 이러한 과정을 통한 일본의 보통 국가화가 일정 부분 미국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이 두 우치다와 시라이 두 사람이 동시에 동의하는 것은 사뭇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아베의 이러한 일본의 국가정치적 행보가 자신이 원하는 일본의 국격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겠죠. 종전 체제를 부정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무력화 시키려다가 미국의 압력 때문에 바로 철회해야만 했지만 기저에 깔려 있는 인식이 어떤지는 충분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이러한 일본의 행보를 미국의 손아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는데요. 저같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아베의 이익과 미국의 요구가 서로 교집합이 아닌가 여겨지는데, 일단 두 사람은 세계에 공인되는 주권 국가가 미국의 종속된 형태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듯 보였습니다.

글과는 약간 논외로 ‘저팬 팬들로’로 유명한 리처드 아미티지와 조셉 나이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훈장을 수여 받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속된 말로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일본 정치권이 미국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여겨지더군요.

다만, 대담의 일부 중에 과거 같은 일본의 식민지에 처해있던 대만의 사례를 들어 우치다는 ‘의도적으로 일본의 영향력을 지우려 했던 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아직도 대만의 많은 이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고 일본을 동경하고 있다는 식으로 일본 제국 시절의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국가마다 다르다는 평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민족 스스로의 의지 없이 식민지 상태에 처해 일본인들 스스로 성스러운 전쟁이라 여겼던 참혹한 시기에 2000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것은 무슨 말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나쁜 식민지 통치, 더 나쁜 식민지 통치 등으로 개별 평가해야 된다는 식의 일본 내부의 주장은 역사를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물론 조선에 의한 식민지 통치를 어찌됐든 근대화의 초석이 되지 않았나 하는 식의 주장에는 따끔한 일침을 하고는 있더군요. 여기서 일본의 문제는 우익이나 일반 국민이나 할 것 없이 일본에 의한 가혹한 식민지 통치에 대해 일관된 관점이 없이 사소한 부분을 일일이 거론하며 그것을 부정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겠죠. 고도의 민주주의화 된 선진국이라는 일본이 이러한 역사적 모순에 빠져있다는 것은 실로 이웃 국가의 국민으로서 개탄할 만합니다. 이런 것들을 개인의 사상의 자유라고 옹호하는 것은 더욱더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일전에 아베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식의 행태가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이 현재 미국의 정치적 속국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정상적인 주권 국가가 되기 이전에 그러한 이익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 정치권이 교묘하게 이에 영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본 국민 스스로 좀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인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현재 일본이 일본인들 스스로 자기혐오주의와 반지성주의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젊은이들이 소비주의에 빠져있고, 대학내의 학력 저하 문제, 노인들의 유치주의 등과 같은 사회 곳곳에 이러한 문제들이 있어 이것을 먼저 해결해야 된다고 여깁니다. 그에 대한 해결방안이 5장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독립적이고 주권의 실질적인 현실화는 지식인이라고 할 것 없이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일일 겁니다. 전후 ‘요시다 독트린’ 으로 비롯된 안보를 미국에 일임해 경제를 부흥해왔던 일본으로서는 그 동안의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일본은 아마 탄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전쟁 특수가 일본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해서는 안되죠. 오키나와의 희생을 바탕으로 본토인들이 안락을 누려왔다는 주장을 펼쳤던 다카하시 데쓰야처럼 이러한 것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국가적 위신에만 올인하는 것은 ‘전후의 일본’ 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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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0년정도 된 모 의류 브랜드의 다이어리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요즘에는 시중에서 내지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낮에 우연히 들러본 어느 초등학교 문구점 앞에서 뜻하지 않게 구하게 되었네요. 뭔가 휭재한 느낌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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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미래 - 데이비드 샴보 조지워싱턴대 교수.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데이비드 샴보 지음, 최지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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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중국과 관련해 출간된 글들 가운데에서 가장 관심있게 읽었던 ‘중국, 세계로 가다’의 저자 데이비드 샴보의 우리나라에 새로 번역 출간된 책을 접했습니다. 중국은 앞으로 ‘불완전한 강대국’에 위치할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샴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정치학자 이자 국제관계학자인데요. 그는 중국을 해석하는 방법과 관련해 자신의 주 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 및 경제적 부분에서도 깊은 이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미국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에 소개되어 있는 글에서도 특유의 통찰력을 찾아볼 수 있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세계 학계에서 가까운 미래의 중국의 모습에 관련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연히 아닐겁니다.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그로 인한 베이징 발 경제 투자는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그만큼 중요해졌고 이러한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중국이 제한적일지라도 민주주의화가 되는 것이 또한 세계 안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러한 궁금증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샴보 교수는 몇가지 예측을 남겨놨습니다. 현재의 싱가포르 모델과 비슷한 준 민주주의, 경성 혹은 연성 권위주의체제,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한 신전체주의. 체제 등이 그러합니다.

현재의 중국 정치체제는 중국 공산당이 일종의 엘리트 독재 형태의 당이 국가를 통치하는 형태인데요. 여기서 ‘엘리트 독재’가 정확히 맞는 표현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약간의 저의 식으로 공산당 기득권 독재를 순화한 표현이라고 밝히고 싶군요. 이 일당독재 정치체제가 그동안의 높은 성과로 나타난 경제 성장이 뒷받침 하지 않으면 중국 인민들의 정치 민주화와 자유주의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이 있어 중국 정치권이 경제 발전에 사활을 거는 이유일 겁니다. 물론 현재로서는 공산당이 요구하는 여러 규칙과 사회 제도에 대해 현재까지는 중국인들이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편인데요. 더 내면을 들어가보면 이미 사회 모순이 심각한 수준이고 특히나 빈부 격차, 도농 격차, 지도층의 부패 문제 등이 어떠한 식으로든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경제 발전 논의에서도 시스템상, 중국의 은행들은 거의 국유화되어 있고, 금융 제도 전반의 비개방적인 측면, 무역과 관련해 수출 분야에 대한 1차 가공 수출에 기여를 받고 있는 측면은 샴보 교수 또한 문제점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러한 경제 성장의 불확실성이 앞으로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행보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중국 정치권은 이미 싱가포르 모델과 같은 준 민주주의 모델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장기 집권의 틀을 닦은 시진핑 국가 주석 또한 그 자신이 강력한 반 자유주의자이며 강한 공산당에 의한 통치를 신념으로 갖고 있어 경성이나 연성 권의주의 체제로의 답습이거나 아니면 최악으로 신 전체주의적 입장으로 선회할 수도 있는데요. 이러한 가능성들의 전제 조건은 앞으로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씀 드리면, 중국 사회 내부의 심각한 모순들을 공산당이 경제 발전이라는 반대 급부로 틀어막고 있는데요.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가 한가지 씁쓸한 생각이 든 것은, 얼마전에 있었던 한중간의 사드 배치 갈등을 논외로 하더라도 베이징이 보는 서울은 그래도 ‘한국은 순종적이다’ 라고 보는 평가였습니다. 이는 1980년대 이후부터 더이상 고분고분 하지 않는 북쪽의 ‘평양’에 대한 반대되는 표현으로 여겨지기는 하는데요. 중국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더군요. 사실 샴보 교수의 판단이 아니더라도 많은 학자들이 우리가 중국에 할말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여기는 듯 했습니다.

끝으로 이것을 현실주의적 입장이라고 평가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자 역시 중국이 주도한 여러 영토 문제로 인한 긴장 고조로 ‘무조건 전쟁이 없다’는 다수의 예측에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측면에서 국제 정치가 말 그대로 무정부상태라면 아무리 효과적인 대화와 물밑 교섭들이 행해진다 하더라도 사소한 갈등이 큰 전화로 번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중 간의 경제적 협력 내지는 서로간의 밀접한 이해관계로 인해 심각한 양국간의 심각한 전쟁 상황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요. 미중간의 전략적 불신, 미국이 갖고 있는 비대칭 동맹들에 의한 연루의 문제, 어느 지역 내의 패권국 출현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역외 균형 (offshore balancing) 전략 등 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문제에 강대국이 어떠한 선택을 하리라는 것에는 오늘날 어느정도 자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미래의 예측들에 사소하지 않고 신중히 접근해 대응하는 것이 바로 국제정치학과 외교학이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사소한 조언을 드리자면, 앞으로 미중 관계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이해를 바라신다면, 주재우 선생의 “한국인을 위한 미중 관계사”, 피터 나바로의 ‘웅크린 호랑이’ 데이비드 샴보의 ‘중국, 세계로 가다’ 와 민신 페이의 ‘불확실한 중국의 미래’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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