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국 민주주의론 - 일본은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모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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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와 얼마전 한국에서 ‘영속패전론’으로 큰 관심을 끈 시라이 사토시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서로 대담으로 교환해 나온 글이 바로 이 ‘속국 민주주의론’입니다. 제가 일본어 검색이 수월하지 못해 일본 포탈에서 검색을 못했지만 추측하기로는 2016년경에 먼저 일본에서 출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 말미에 실린 우츠다 다쓰루의 후기가 2016년으로 나와있어 짐작을 해봤습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지레짐작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 체제라고 불리우는 소위 ‘전후 체제’와 그 정치적 배경이 되었던 뿌리깊은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졌는데요. 미국을 종주국으로 자신을 속국으로 표현한 제목도 그렇고 이 주제가 과연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참으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완독하고 나니 본글의 의미 중 절반 정도는 진행 방향이 상이하다고 봐야겠습니다.

글은 전체적으로 총 5장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5장이 일종의 결론과 제언으로 파악되니, 앞의 4개의 장이 주요한 내용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더 들어가면 앞의 1장과 2장이 현재 일본 정치에 대한 분석과 비판, 3장과 4장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들과 일본사회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논하고 있는 아베와 그 자민당 정권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전후체제’를 부정하면서 일본의 국격이 크게 훼손당했다는 평가와 함께 ‘역사수정주의’를 수술칼로 삼아 일본을 크게 수술대에 올려놓고 있는 것을 침착한 논조로 비판학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인에 의한 입장에서 이러한 아베의 정치적 수단이 오로지 미국에 크게 기대고 있는 부분으로 그동안 역대 일본 정권과 정치권이 미국에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일종의 ‘예스맨’ 과 같은 행동을 보여왔다고 비판하고 있는데요. 얼마전에 있었던 집단 안보 개념에 대한 인식 변화와 헌법 개정 논의 등과 같은 부분에서 아미티지와 나이와 같은 저팬 핸들러들에 의해 미국의 이익에 동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보고 있더군요. 이러한 과정을 통한 일본의 보통 국가화가 일정 부분 미국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이 두 우치다와 시라이 두 사람이 동시에 동의하는 것은 사뭇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아베의 이러한 일본의 국가정치적 행보가 자신이 원하는 일본의 국격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겠죠. 종전 체제를 부정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무력화 시키려다가 미국의 압력 때문에 바로 철회해야만 했지만 기저에 깔려 있는 인식이 어떤지는 충분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이러한 일본의 행보를 미국의 손아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는데요. 저같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아베의 이익과 미국의 요구가 서로 교집합이 아닌가 여겨지는데, 일단 두 사람은 세계에 공인되는 주권 국가가 미국의 종속된 형태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듯 보였습니다.

글과는 약간 논외로 ‘저팬 팬들로’로 유명한 리처드 아미티지와 조셉 나이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훈장을 수여 받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속된 말로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일본 정치권이 미국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여겨지더군요.

다만, 대담의 일부 중에 과거 같은 일본의 식민지에 처해있던 대만의 사례를 들어 우치다는 ‘의도적으로 일본의 영향력을 지우려 했던 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아직도 대만의 많은 이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고 일본을 동경하고 있다는 식으로 일본 제국 시절의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국가마다 다르다는 평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민족 스스로의 의지 없이 식민지 상태에 처해 일본인들 스스로 성스러운 전쟁이라 여겼던 참혹한 시기에 2000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것은 무슨 말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나쁜 식민지 통치, 더 나쁜 식민지 통치 등으로 개별 평가해야 된다는 식의 일본 내부의 주장은 역사를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물론 조선에 의한 식민지 통치를 어찌됐든 근대화의 초석이 되지 않았나 하는 식의 주장에는 따끔한 일침을 하고는 있더군요. 여기서 일본의 문제는 우익이나 일반 국민이나 할 것 없이 일본에 의한 가혹한 식민지 통치에 대해 일관된 관점이 없이 사소한 부분을 일일이 거론하며 그것을 부정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겠죠. 고도의 민주주의화 된 선진국이라는 일본이 이러한 역사적 모순에 빠져있다는 것은 실로 이웃 국가의 국민으로서 개탄할 만합니다. 이런 것들을 개인의 사상의 자유라고 옹호하는 것은 더욱더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일전에 아베는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식의 행태가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이 현재 미국의 정치적 속국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정상적인 주권 국가가 되기 이전에 그러한 이익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 정치권이 교묘하게 이에 영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본 국민 스스로 좀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인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현재 일본이 일본인들 스스로 자기혐오주의와 반지성주의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젊은이들이 소비주의에 빠져있고, 대학내의 학력 저하 문제, 노인들의 유치주의 등과 같은 사회 곳곳에 이러한 문제들이 있어 이것을 먼저 해결해야 된다고 여깁니다. 그에 대한 해결방안이 5장에 논의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독립적이고 주권의 실질적인 현실화는 지식인이라고 할 것 없이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일일 겁니다. 전후 ‘요시다 독트린’ 으로 비롯된 안보를 미국에 일임해 경제를 부흥해왔던 일본으로서는 그 동안의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일본은 아마 탄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전쟁 특수가 일본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해서는 안되죠. 오키나와의 희생을 바탕으로 본토인들이 안락을 누려왔다는 주장을 펼쳤던 다카하시 데쓰야처럼 이러한 것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국가적 위신에만 올인하는 것은 ‘전후의 일본’ 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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