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이현웅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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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는 ‘탐욕의 시대’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 지글러의 최근 번역된 ‘유엔을 말하다’를 읽었습니다. 장 지글러 교수는 적지않은 이력을 갖고 있는데요. 1934년생으로 스위스에서 교수로 시작해 스위스 연방 의회의 의원, 그리고 유엔에서 식량특별조사관을 역임하고 현재 유엔인권이사회의 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처음 그를 접하는 분들은 겉으로 보이는 이력만으로 명예를 추구하고 출세지향적인 인물이 아닐까 여기실 수도 있지만, 그는 제가 언급한 전자의 삶과는 거의 상반되는 즉,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 사력을 다한 삶을 산 인물이라 평가 받을 만 합니다.

소개할 이 책은 온전히 유엔의 정치적 배경과 학술적인 측면의 접근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자의 개인적 체험이 글 곳곳에 들어가 있어서 유엔에 대해 좀 이론적이 아닌 실체가 잘 드러난 부분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꽤 흥미롭게 여겨졌습니다. 아예 국제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유엔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과 제안, 한계점 같은 것을 기대하셨다면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이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많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유엔은 현재의 그 한계와 최초의 설립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곳에 속했있는 국가들의 첨예한 국익 다툼과 예를들면 기업의 이사회의 최고위직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임이사국 5개국의 행태 등으로 국제 무대의 현실정치가 역시 상상하는 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 역시 유엔에서 상이이사국 5개국의 거부권 부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어떤식으로 무산 시키는지에 대한 사례 또한 이것을 정치 논리와 이들의 국익의 현실적인 측면으로만 인지하는 것이 저로서도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니까요. 꽤 실질적인 부분에서 유엔의 자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지글러 교수는 지난 유엔에서의 활동 기간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식량실태에 관한 현실적인 보고서로 이스라엘에 의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는데요. 실질적으로 그가 한 행동은 진실과 정의의 측면에서 매우 옳은 결정이었으나, 이스라엘 측은 지글러 교수를 ‘반유대주의’에 매몰된 위험한 인물로 여론 몰이를 해, 이스라엘과 미국으로부터 기피인물로 여겨졌습니다. 과거 부시 해정부 시절에는 더 노골적으로 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 말하면, 계속 저항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글 말미에 자신의 의지를 적고 있습니다. 본문 중간에 장 폴 사르트르와의 인연, 일종의 같은 연구회에서 일하고 있는 노엄 촘스키에 대한 언급을 봤을 때, 장 지글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더군요.

약간의 논외지지만 지글러는 스위스 연방의회의 의원으로 재직시에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로 1991년에 면책 특권을 박탈당했습니다. 또한 그것과 관련하여 이 책에서도 과거 스위스 은행 연합이 2차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보관했던 예금에 대한 일종의 지급 거부로 유엔과 유럽에서 문제가 되었을 때도 자신의 모국인 스위스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는데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증인으로도 출석하고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것에 마땅히 행동을 한 것인데 이런 ‘세계의 양심인’에게 반유대주의로 이스라엘과 유대주의 단체가 그를 매도한 것을 보니, 유럽의 양심과 합리주의는 어디로 갔는지 개탄할 수 밖에 없더군요. 이것이 어쩌면 정말 사족이겠지만 한국인 출신으로 유엔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사람에 대한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그에 대한 평가도 있었습니다. “사무총장을 맡은 사람은 코피 아난에서 생명력 없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로 대체되었다.” 라는 평가와 그는 미국으로서는 남한이라는 가신 같은 공화국 출신의 국민이라는 점이 호재였다는 부분이 유독 가슴이 아팠습니다. 간혹 제3세계의 국가들이 한국을 일본과 같이 한 세트로 묶어서 그렇게 취급한다던데 물론 과거와는 달리 현재 우리의 국력이 그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저로서는 딱히 반박할 여지는 없어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오탈자가 한군데 보였는데, 이 부분은 옥의 티라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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