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4대 마약을 끊어라
유종일.권태호 지음 / 페이퍼로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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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신의 경제학자로서는 그 이력이 대단한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와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인 권태호 기자의 일종의 주제별 대담집을 묶어 출간한 ‘한국 경제 4대 마약을 끊어라’ 를 접했습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상조 원장과 더불어 유종일 교수도 한국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와 소득 재분배 원칙의 소신을 밝히고 있는 몇 안되는 경제학자 인데요. 경제학은 그 태생적 위치로 인해 이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이 자유 방임주의를 성경의 유일신 사상과 비슷하게 동일시 되고 있는데요. 자유 방임의 역사가 19세기와 밀접하다고 하더라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그 역할에 대해 의심을 보이는 학자들이 또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특히 정부와 경제 주체 간에 어떤 역할 관계가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 끊임없이 대체로 소모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우리 나라는 사회적인 면에서 꼭 재벌이 아니더라도 기업 친화적인 행태를 보인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게 아니죠.

여기의 유종일 교수는 얼마전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MB의 비용’의 공동 저자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출간한 책의 주제도 그렇고 요즘 세간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그 분의 구치소 수감과 맞물려 이 즈음에 뭔가 의미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MB의 구속과 그의 의심되는 과거 여러 위법한 상황에 대한 결과는 일단 지켜보더라도 이 사건 자체가 한국 사회에 꽤 의미있는 과정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권태호 기자와 유종일 교수가 지난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여러 사회 경제적 주제들을 갖고 제법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운 대담집이 결과물로 나왔더군요. 저와 같은 일반인이 이러한 여러 주제들의 논점들을 읽고 받아들이는데 수월한 글로 쓰고 싶었다는 취지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은 이 두 분이 바로 옆에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몰래 엿듣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짧게나마 몇가지 요약을 해본다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기의 정부는 너무나 일관된 화법으로 정부와 외교 및 경제에 관련된 거짓말을 해왔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권을 위한 전방위적 행동,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상한 측근의 부적절한 국정 개입은 결과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을 정리하는 데 일조 했다고 보고 있는데요. 이러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인 교조 자본주의 즉, 정부가 경제에 관여해 지도, 조정, 통제하는 것으로 그러한 한국 전체의 전방위적인 과정을 통해 성장 우선과 과도한 경쟁이 내면화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를 대표적으로 정의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양 대통령의 과거 청산이라고 볼 수 있는 이른바 ‘적폐 청산’은 고위 공직자라도 위법을 저지른 행위에 대해 엄벌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히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일찍이 미국과 유럽이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가들과 부패한 경제인들에 대한 엄벌적 처벌로 보여줬는데요. 법에 의한 지배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우리 나라가 이제서야 마땅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교수도 여권이 정치 논리에 뜸들이지 말고 해야 될 건 확실히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국민이 여태 요구하고 지지했던 데로 나아가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경제에는 유종호 교수가 설명하는 4가지 마약이 있는데, 투자 만능주의와 수출 우선주의, 단기 성과주의,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해당하는 각 주제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과 자료를 더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저는 이 취지에는 심히 동감하지만, 경제 발전 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가치 함몰된 측면이 있으므로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에서 특히 시민의 삶을 매몰시키는 소득 불균형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건강한 자본주의와는 다소 맞지 않는 왜곡된 부동산 성장주의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각 주체들간의 경제 활동에 대한 형평성을 보장하고 정당한 세금 부여와 소득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아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잘 영유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반을 정부가 제공한다면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 문제 등과 같은 시급한 선결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기서도 유 교수가 언급한 바 있지만 한국의 오늘날 저출산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신생아 출산, 1.06 명 정도로 추산되는 자료를 여기서 봤는데요. 이대로 이어지는 추세라면 한 4~50년 뒤에는 국가 기반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사실 현재 우리 경제와 규모로 봤을 때 아직 사회 기반 제도가 미흡하고 전반적인 우리 시민의 삶의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너무나 커 이런 것들을 점차 제도적으로 개선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글들이 좀 더 확대된 논의의 형태로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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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민주주의 - 정치인.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이몬 버틀러 지음, 이성규.김행범 옮김 / 북코리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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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국의 권위 있는 정책 싱크탱크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 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몬 버틀러의 이 책 ‘나쁜 민주주의’를 접했는데요. 2012년 영국에서 출간된 원제 ‘public choice a primer’를 번역 출간한 것인데요. 이러한 한국어 제목이 배치된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다 읽고 나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인 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라는 부제도 조금 자극적으로 느껴지는데요.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 개념을 경제학으로 해석하여 제도하의 발생되는 문제점과 행위자들간의 논리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분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기대와는 달리 흥미로운 부분도 제법 있었습니다.

공공선택학은 정치와 정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기 위하여 경제학의 방법과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는데요. 특히 이러한 관점에서 사익이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러한 동기의 이행을 (자유로운) 시장제도에서 찾고 있는데 공공선택학에서 분석하여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를 판단하는 느낌은 사익과 이익추구는 각각의 행위자들에게 아주 명백하게 보여지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과 각 제도내의 행위자들의 ‘소위 정치적 결정들이 비용과 편익들간의 선택’이며 좀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들의 정치적 행동이 크게 보면 이익이 오고가는 부분으로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다분한 이익 거래로 볼 수 있는 투표 거래인 로그롤링과 소수의 강력한 이익집단이 출현하여 정치 행위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로비 제도와 그것에 적극적으로 편입해 정치적 행위를 양산하고 있는 의원 및 입법부의 모습이ㅕ 정치 이상적인 측면에서 다수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보다는 정치인들에게도 사익은 분명 존재한다고 규정짓고 그러한 일상적인 면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따라서 이렇게 정착된 시스템 전체를 면밀히 분석하고 좀 더 개선시키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서 논의되는 정부의 역할과 입법 사법, 행정 간의 관계 문제, 관료제에서 관리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의 측면에서 개인이 서로간의 이익을 교환하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인가에 대한 의문 등이 나오는데 엄밀히 따지면 그에 대한 적절한 해답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면은 이 책의 한계라고 볼 수 있겠군요.

1960년대 이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공공선택학’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자본주의하의 경제학이 날로 발전되면서 정치학 전반의 이러한 경제 수단의 분석은 제법 효과가 있었는데요. 민주주의 제도와 시스템의 설정은 유럽과 미국의 것을 따르고 있어서 저자의 글에서 보여지는 평가가 우리에게는 조금 맞지 않을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의사와 변호사 등의 소수 엘리트 층의 이익단체 등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소수 집단의 영향력이 시민 일반의 이익에 부합되기 어렵다는 측면의 평가는 이해할 만합니다. 한가지 이 책에서 보이는 한가지 불확실한 점은 시민 일반의 이익을 소수의 편파적인 이익 단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사익 추구가 사회에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저자가 받아들인다면 기본적인 인식에서 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제도하의 정치적 문제를 두고 벌이는 행위자들의 이익 갈등에 정부의 개입이 마냥 마땅하다고 여기지는 않겠죠.

하지만 공공선택학에서의 제도와 정치속의 개념들의 설명이 아주 명료하고 정치인들이 사익을 추구한다고 명확히 규정한다는 점,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대의적인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단체의 권력과 이익을 보편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평가 등은 실로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이상적인 이해는 거의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제도의 명암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시민들이 정치를 균형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마지막 부분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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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간 나오토 지음, 김영춘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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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멜트다운 및 수소폭발 사태에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의 최근 출간된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적절한 시점에 한국에 번역 출간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관련하여 가장 상세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는 오시카 야스이키의 ‘멜트다운’에 언급된 간 나오토 총리의 처한 상황을 보고 저는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간 나오토 전 총리의 이 글이 기대되었습니다.

오시카 야스이키의 ‘멜트다운’에서는 일본의 도쿄전력이 당시 간 나오토 총리에게 상황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아마도 의도한 상황이겠지만 총리를 거의 정보 격리를 시켰는데요. 이에 간 나오토 총리는 전문가 그룹을 따로 만들정도로 도쿄 전력을 다소 불신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태 당시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의 입을 빌어 “원자력 분야의 폐쇄성과 비밀성이 목격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요. 제가 읽었던 ‘멜트다운’에서도 일본 원전 마피아의 노골적인 정보 폐쇄성에 실로 충격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인사는 원자력에 대한 정보 공개는 일본의 국익에 이롭지 않다고 밝혔는데요. 일전에 노엄 촘스키는 어떤 소수의 이익 집단이 막대한 이익을 나눠갖고 있다고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면 거기에는 폐쇄적이고 집단적인 그들만의 비타협적 정보 공유가 있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익적인 측면에서 다수의 이익을 위한 그런 정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거의 반항구적인 이익 공유를 위한 정보 폐쇄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다시 2011년 3월 11일의 후쿠시마로 돌아가보자면, 당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원전 6기 중 1호기와 3호기가 수소 폭발하여 각각의 원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붕괴 위험까지 내포되어 크게 볼때 동일본 전체가 앞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될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고 이는 일본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당시 간 나오토 총리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너무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관료들과 도쿄 원전 관계자들의 주장과 전면적인 주민 대피를 고려하는 것은 너무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까지 보이는데요. 저는 당시 일본 정부의 전체 입장을 싸잡아서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일본의 관료 사회는 뭔가 민주주의의 정보 개방성과 시민의 안전에 대한 원칙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 나오토 총리는 도쿄 원전의 직원들과 관료들을 이끌고 피해 상황 복구에 나서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방사능 피폭의 가능성까지 염두해두면서 현장을 일일이 챙긴 것은 그나마 일본 국민들에게는 큰 위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위대가 보유한 장비만으로는 부족해보여 도쿄도에 있는 관련 장비를 수소문하기 위해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그 긴박한 시간에 사람을 거쳐 연락을 시도한 것은 뭔가 납득이 되지는 않더군요. 일본인들 간의 예의 차원에서 지인을 통해 연락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측면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긴박한 시간에 총리가 도지사에게 몇다리 건너 연락하고 있는 상황은 뭔가 문화충격이었습니다. 물론 이시하라 도지사와 연락이 되고 나서 정파를 초월해 협력해왔다고 평가하긴 했습니다만 일본인들의 그런 상황에서 일본인들의 예의 차림은 신선하긴 하군요.

이후, 총리에서 물러난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자신 스스로가 탈원전 지지자가 되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본 국민들에게 앞으로 탈원전 계획의 당위성과 재생 에너지 필요성에 대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현재 일본에 54기의 원전이 있다는 것은 지진과 화산 활동에 취약한 일본 상황에는 불안한 측면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끝으로 이런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앞서 제가 언급한 오시카 야스이키의 ‘멜트다운’을 참고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간 나오토 전 총리의 이 책은 전반적인 후쿠시마 사태의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상세한 상황 정보는 다소 미흡하긴 합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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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 재특회, 왜 재일 코리안을 배척하는가
히구치 나오토 지음, 김영숙 옮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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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쿠시마 대학의 종합과학부 준교수인 히구치 나오토의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를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완독을 했는데요. 평소에 저는 일본 내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역사 수정주의와 지속적인 혐한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 연원이라든지 배경을 명확히 알고 싶던 찰나에 우연히 여기 히구치 나오토 선생의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갑자기 들었던 생각은 저자가 일본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야스다 고이치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도 그런 취지의 글인데요. 여기에서도 적잖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구치 나오토 선생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해석과 주장에 비판을 가하고 있기도 한데요. 그것은 뒤이어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조관자 선생의 ‘탈 전후 일본의 사상과 감성’ 에서 (일본 내부에서) 역사 수정주의란 ‘태평양 전쟁 사관/도쿄 재판 사관’을 부정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는데요. 최근의 일본 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재특회에 의한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폭력적 혐오 운동은 배외주의와 역사 수정주의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며, 배외주의 운동이 보수주의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역사 수정주의의 한 변종이라고 저자는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재특회에 나서고 있는 회원들이 저학력, 저소득 및 하위 계층이 주도하고 있다고 보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야스다 고이치의 주장을 잠정적으로 반박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저학력자들이 교육을 통해 진보적인 의식을 갖지 못하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하게 된다고 앞서 정의내리고 있지만, 재특회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인원이 저학력 혹은 저소득자들은 아니고 매우 계층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각계에 속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일본의 재특회와 같은 극우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특성상 포퓰리즘과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자민당 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극우가 이념적으로 비타협적인 배외주의와 하등 연관이 부족한 재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재특회가 주장하는 재일 한국인들읱 특권은 대표적인 차별제도라 할 수 있는 통명제도와 통계로 나와있는 것처럼 그들 거의가 화이트 컬러 계층이라기 보다는 다수가 직업을 자영업으로 갖고 있고 오히려 재일 중국인들이 훨씬 고학력의 화이트 컬러 계층이라고 자료가 보여주고 있는데요. 식민지 시기를 거쳐 일본에 정착한 조선인들과 그 후손들이 다수인 한국인들이 일본의 패전 전까지만 해도 순혈 일본인들과 달리 이등 국민이었지만 일본 제국 시절에는 같은 국적이었음에도 이제와서 한국인, 조선인으로 분리시켜 특권 운운하는 것은 그 이념적 한계가 명확하다고 봐야 하겠죠.

‘속국 민주주의론’에서 봤던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태평양 전쟁과 대동아 공영에 ‘그래도 한때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같은 편에 서서 유럽과 미국에 싸우지 않았나요. 그런거면 동료였던 건데’ 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저는 적지않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얼마나 역사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지 이 사례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히구치 나오토의 이 책에서도 바로 그러한 관점으로 태평양 전쟁과 2차 대전 종전을 보고 있는 일본인들이 많더군요.

다군다나 이 재특회라는 프레임은 조금만 관련된 지식을 찾아봐도 진위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속한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일본 학계 내에서도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을 널리 펴고 있는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는 것 같았고, 이른바 ‘자학 사관’이라는 입장에 동조하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자민당을 지지하고 있는 일반인들과의 인터뷰가 바로 이러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서두에 북한 핵문제와 일본 역사문제가 해결된다면 그야말로 동아시아는 평화로울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는데요. 재특회에 근간에 배외주의가 겉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본질은 역사 수정주의가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여기게 만드는 그리고 이웃나라인 중국과 한국이 얼마나 자신들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그러면서 동아시아의 불신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무조건 이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재특회를 비롯한 혐한론과 일본 사회의 외국인 전투적인 배체에 대한 충분한 사례와 증거를 밝히고 있고 그것에 동조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어떻게 다소 심하게 말하면 ‘세뇌’ 되었는지 그 본질을 명확히 알게 해줍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책을 봐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테러, 특히 한국인들에 대한 폭력, 외국인 참정권에 대한 말도 안되는 해석과 피해주의 등으로 봤을 때 선진국이라는 일본의 시민 사회의 모습은 전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반대로 한국에서 조직적인 움직임과 폭력적인 시위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이해하기 힘든 충격을 안겨주면서도 단순히 정치권의 역사 수정주의와 배외주의라는 측면이 아니라 일본의 일반 시민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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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정학과 미국의 패권전략
조지 프리드먼 지음, K전략연구소 옮김 / 김앤김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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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국제정치학에서 다소간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는 국제 정세 분석가이자 예언가로 자주 일컬어지는 조지 프리드먼의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프리드먼의 글은 ‘100년 후’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이 100년 후는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킨 출간물인데요. 이것으로 프리드먼은 국제 정치계의 샤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참고삼아 언급드린다면 경제학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밀턴 프리드먼과 구분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실려 있는 소개 문구들과 얼마간의 정보들이 저자인 프리드먼이 한국에 앞으로 10년 이후의 국제 정치학적인 환경 변화에 조언을 하기 위한 것처럼 나와 있지만, 여기에 소개된 글들은 오로지 앞으로 미국의 국제 정치학적인 측면의 분석과 첨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한국이 포함된 내용은 그리 많지는 않아서 이 점을 감안하시면 좋을 것 같군요.

과거 역사에서 미국은 양차 대전을 거치며 고립주의적 입장에서 필요에 따라 개입의 의지를 보여 왔는데요. 프리드먼은 여기에 미국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위해 힘을 투사하거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다시 지양하고 과거의 ‘역외 균형 전략’에 의거해 조정과 국가 균형과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미국 대통령은 마땅히 마키아벨리즘을 적극적으로 현실 이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요. 루즈벨트와 레이건과 같이 술수와 허위를 배제하지 않고 적극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듯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중동에 대한 직접 개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만 2001년 9월의 테러 이후 미국의 정치 상황이 완전 돌변하여 개입의 필요성이 있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미흡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그는 판단하고 있는데요. 특히 중동에서 후세인의 이라크를 제거하여 종래의 지역 패권국의 등장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외 균형 전략에 반대되는 결과로 이란의 야심을 키우게 되는 원치 않는 반대 결과가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에게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가 중동의 아랍 국가들의 야심을 조절하기 위한 기존의 해석보다 구 소련과의 냉전시기에 미국의 대소 봉쇄 전략의 일환으로서 그리스와 터키가 매우 중요했는데, 터키에 대한 압력 분산의 의미로서 이스라엘이 긴요했다는 평가와 더불어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이 일종의 분수령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꽤 흥미로운 주장이라 저는 몇 번이고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현재 전세계의 국제 정치학적인 환경과 앞으로 10년간의 전망을 함께 조망하고 있고 설득력이 높은 주장들도 있어서 흥미롭고 다채로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독일이 점차 러시아가 자국에 제공하고 있는 천연가스와 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러시아의 부존 자원, 반대로 독일의 기술을 원하는 러시아는 양국 간의 협력과 연대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측면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독일과 러시아가 동맹에 준하는 관계로 확대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전망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 떠오르는 중국과 그 중국을 복잡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일본이 중일간의 협력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것처럼 일견 자명한 부분입니다. 또한 부상하는 중국과 관련해서도 일본을 통해 견제하는 것과 한국, 호주, 싱가포르와 긴밀히 협력하고 특히 한국과 같은 경우는 중국과 일본에게 있어서 비수와 같은 존재라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일종의 전통적인 미국의 역외 균형 전략에 철저히 부합하는 경우라 봐도 무방합니다.

전체적으로 프리드먼의 이러한 주장들은 앞서 헨리 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언급했던 ‘미국의 세계 전략’ 에 대한 비슷한 형태의 맞춤 글입니다. 근래에는 종잡을 수 없는 중국에 초점이 맞춰져 이를 미국의 전세계 영향력과 연계해 많은 이론가들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중국 보다는 앞으로의 러시아를 비교적 상세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푸틴의 장기집권과 관련된 기사들이 헤드라인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단순한 자원 수출국 경제와 몸에 맞지 않는 비대한 군사력으로 연명하고 있는 오늘날의 러시아가 푸틴이 원하는 바대로 구 소련의 붕괴가 현대사에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었다고 언급했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이런 글들을 통해 예측해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프리드먼의 미국이 과거의 균형 전략 대로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외교 전술과 국가간의 관계를 조정하여 앞으로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패권과 영향력이 급격히 축소되지는 않을 것이라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앞으로 미국과 관련된 정치 외교적인 문제에서 어떻게 분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같은 일반 독자들이 요긴한 지식을 이 책은 분명 제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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