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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1 - 무량 스님 수행기
무량 지음, 서원 사진 / 열림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쉬 폐가가 된다고 하던가. 그러고 보면 집이란 인간의 온기와 생활을 양분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인간을 살게 해주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숨쉬는' 무생물. 그러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이 10년에 걸쳐 지은 집. 그 사람이 스님이라 부처님을 모실 대웅전도 짓고, 수행하는 곳도 짓고, 마지막에는 평화의 종으로 마무리했다는 집. 부처와, 스님과, 찾아오는 손님들이 함께 살 집.
불교에는 인과론이라는 게 있다고 하는데, 무량스님의 경우에도 그런 것 같다. 그가 내성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그의 어머니가 일찍 죽지 않고 끝까지 안정적인 사랑을 쏟아 주었다면 무량 스님은 혹시 출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지질학을 배우지 않았다면, 숭산스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만행 중에 대둔산 태고사에 가지 않았다면, 외향적이어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즐겼다면 미국 외진 사막에 한국식 절을 손수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그만의 수행방법으로 생각해 낸 집짓기가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사막의 절로 불러모으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무량 스님의 성격을 조금 바꿔놓기까지 했다는 것은 인과의 사슬의 기분 좋은 반전이라고나 할까.
음식의 맛은 정성이 좌우한다는 것은 라면 한 냄비, 죽 한 그릇을 끓여본 사람이라면 익히 아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 음식을 대접받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무량 스님의 태고사도 그렇지 않을까. 그가 절짓기에 들이는 정성은 다른 많은 재주 많은 화가, 목수를 끌어당겨 더 훌륭한 집을 짓게 되었고 많은 수행자와 불자들을 모아들였다. 사람들은 태고사를 짓는 것에 힘을 보태고 그 안에서 수행하면서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을 함께 먹는 기쁨을 느겼을 것이다. 아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아무런 가치 있는 인과의 사슬도, 철학도 존재하지 않는 기업산 아파트에 사는 내가 불쌍해졌다.
이 책을 감명 깊게 읽긴 했지만 앞으로 내가 태고사같이 손수 만든 집에 산다거나, 그런 집을 지을 확률은 전혀 없을 것이다. 아마 태고사를 방문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평생 아파트 아니면 똑같이 생긴 주택들의 한 곳에 살겠지만 그래도 무량 스님의 태고사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무량스님 평생의 인과의 사슬들이 탄생시킨 결정체가 태고사라면 나의 인과의 사슬들도 모이고 모여 어떤 멋진 결과물을 '짠!'하고 탄생시킬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기대를 갖게 했다는 것만으로, 태고사를 구경 못한 나도 무량 스님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