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는 구약성서
편집부 / 한국신학연구소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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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구약은 잔혹하며 난해하다고 여겨진다. 더군다나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족보의 행렬과 낯선 지명과 인명, 사건들은 왠만한 끈기가 아니고서야 구약을 완독한다는 결심을 좌절하게 했고 다 읽고서도 이해하고 얻은 것 없이 농사를 망친 농부의 기분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인지 구약은 휴머니즘과 인간 평등의 가치, 그리고 사랑의 정신이 발현된 예수와 그 제자들이 나오는 신약을 예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과 문헌학의 발달은 성경을 그 당시의 역사와 문화 가운데서 판단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 경전 해석의 발달은 값진 성과를 얻게 됐는데, 은연중에 우리를 사로잡았던 시각, 즉 로마제국의 공인 이후 고대 제국이라는 권력과, 중세의 성직자와 귀족이라는 기득권층, 근대 유럽의 무력팽창 기간 중 유럽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권력과 함께 하는 듯 보였던 성경을 권력의 족쇄에서 벗어나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사실 구약은 잔혹하고 난해한 역사가 아니라 기층민들의 평등과 자유를 향한 구원의 역사였다. 성경을 저술한 이들이자 주요 등장인물인 히브리 민족은 하나의 씨족이나 혈연공동체이기보다는 주요 국가들에서 벗어나 중동을 떠돌았던 유랑기층민들이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힘이 모든 진리의 근원이었고 권력자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은 독특한 가치를 앞세운 공동체를 창안하면서 이 흐름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바로 '신 앞에서의 평등'이 그것이었다. 왕은 신의 대리자 혹은 분신이며 일반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백성은 왕과 그 일족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고대의 상식은 '신 앞에서의 평등'으로 예외를 두게 된다. 그 결과 왕이라 할지라도 농부의 땅을 사거나 빼앗을 수 없었고, 희년마다 빚이 탕감되고 노예가 해방됐으며 안식일마다 모든 사람과 가축이 휴식을 취했다. '신 앞에서의 평등'은 기득권자의 무한정한 권력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대의 이런 평등을 향한 혁명은 지속성을 누리기가 힘들었다. 다윗과 솔로몬 왕조의 증대해진 국가 권력은 신분 차별의 고착화와 권력자들을 위한 각종 노역을 강요했다. 이외에도 남왕국과 북왕국으로의 분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과 출애굽 이후의 오랜 방랑, 바빌론 유수 등은 히브리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했다. 외부의 대사건들 외에도 '신 앞에서의 평등'은 내부의 안일과, 제물을 바치면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여기는 '우상숭배'로의 유혹으로 존립마저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유일신의 존재여부라든지 고대 히브리인들이 진짜 야훼를 접하며 그 말씀을 들었는가 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가장 중요하며 또 구약의 보편성을 이루는 것은 온갖 내부와 외부에 원인이 있던 위기 속에서도 소수 집단이었던 히브리인들이 '야훼'라는 구심점으로 끊임없이 자기정화를 시도하며 정체성과 자주성을 지켜나갔다는 사실이다. 순결과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야훼'라는 신의 존재는 분명 힘들고 귀찮았을텐데, 히브리인들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가치를 되새기고 그것을 중심으로 뭉쳤다.
히브리인들의 역사는 좌충우돌의 역사다. 그리고 대개는 약자로서의 역사였다. 하지만 그들이 약자였기 때문에 무력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그리고 무력의 지배를 오랜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주변 민족들과는 달리 '신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창안함으로써 인간의 권력과 나태에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이 책은 유럽과 미국같은 기독교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 불과한 한국의 학자들에 의해 쓰여졌다. 그들은 히브리인이나 서양인의 눈 외에도 동양인의 눈으로 성경을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연과 여성의 눈으로 보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그 출발은 정복하고 다스렸던 게 아니라 지배당하고 떠돌았던 히브리들의 역사와 그들의 바램이 담긴 구약의 본모습을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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