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 아웃 - 300 Q&A About Gay and Lesbian People
에릭 마커스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의 금기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금기가 생겨난 동기를 보면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절도, 강도, 살인같은 금기는 남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면 안된다는 목적에서 생겨났다. 타인에 대한 폭력이 결국 공동체나 무리, 집단을 해치게 될 것이라는 보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기를 채우기 위한 타인에 대한 폭력이 금기시된 동시에 온갖 부당한 차별 또한 생겨나 금기라는 법으로 자리잡게 됐다. 여성에 대한 차별, 아이에 대한 차별, 장애자에 대한 차별, 타민족, 국가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다.

인류는 타인에 대한 폭력의 허용이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약자에 대한 금기와 차별이 공동체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 알아차렸던 것이다. 전쟁이 일상이었던 지난 수천년간 여성과 아이와 약자와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감내함으로써 지배 남성들에게 몰아준 권력은 공동체를 더욱 무력으로 강하게 만들었을테니까. 오늘날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도 지난 수천년간 우리에게 이어져왔던 정서가 금기를 풀지 못하고 유지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동성애자. 그들을 용납해서는 안되고 싫어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당성과 설득력을 지닌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단순히 불결하고 비도덕적이라는데서부터 왜 그 많은 이성을 놔두고 친구로서의 관계여야하는 동성을 사랑하냐는 반문도 있다. 에이즈의 주범이라는 오해와 사회를 타락시키고 가족제도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확신도 만만치 않다. 누가 이런 물음에 차근차근, 이성적으로, 정확한 지식과 함께, 흥분하지 않고, 상냥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나 또한 동성애에 대해 상식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상식이 틀린 부분도 상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전적으로 이 책 때문이다. 또한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을 질문에도 상세하게 답을 해주고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단면들까지 저자는 차근차근 짚어주고 있다. 낯뜨거운 질문들에까지 성실히 답을 해주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한 개방이야말로 진정한 이해를 부를 수 있음을 이 책을 저자를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배타와 폭력은 같다. 인종을 차별하고 여성과 아이를 차별하고 동성애자를 차별했던 것은 그들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그들은 수천년동안 알려지지 않은 채 기득권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세력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상,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 이상 그들의 말을 막고 귀를 닫을 수는 없다. 이제는 듣는 것 또한 의무인 시대로 접어들지 않았을까? 그것은 인류가 성숙해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을테니. 그 첫걸음으로 이 책은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전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철학과 의도는 모든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촉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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