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 시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 ㅣ 비주얼 사이언스 북 4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박정용 옮김 / 전나무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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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다케우치 가오루의 시간론이다. 시간을 측정하는 모든 방법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운동을 이용하고 있다. 마야의 달력은 특이했다. 1이 아닌 0을 시작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의 관점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가오루의 시간론은 저자의 전공인 물리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문명의 시간론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문명의 시간도 물리(학)과 관련이 있다. 철학자 김규영의 [시간론]을 보면 첫 순서에 베르그송의 시간론이 등장한다. 김규영의 책을 이야기한 것은 철학자, 과학자의 책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베르그송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속(持續)을 진정한 시간으로 본 인물이 베르그송이다. 지속이란 칼로 자르듯 쪼갤 수 없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흐름처럼 연속적으로 얽혀 있는 질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비연속적이라는 명제는 소개가 덜한 느낌이다. 베르그송의 연속적인 순수지속(durée pure) 개념을 정면으로 비판한 시간론이다. 바슐라르의 시간론과 양자역학의 양자(量子)는 관계가 크다. 양자역학은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흐르지 않고 불연속적인 최소 단위인 양자(Quantum) 형태로만 존재하고 전이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과학자 나름으로 시간에 대해 정의함을 알 수 있다. 다케우치 가오루 역시 자신의 시간론에서 베르그송을 예로 들었다. 물론 칸트도 그렇다. 저자에 의하면 생명의 기본인 의식이 순수지속이다.(68 페이지) 그것은 물리학적 시간과 구별되는 심리학적 시간이다.

 

베르그송은 물리학적 시간은 항상 균질하고 측정 가능하며 거꾸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는 의미는 거꾸로 시계 태엽을 돌려도 바로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다. 시계 바늘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기어와 태엽의 물리적 법칙은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 운동을 순간적으로 멈추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물리학 법칙 안에서는 아무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베르그송은 이를 두고 물리학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공간처럼 펼쳐져 있는 상태와 다름없다고 보았다. 즉, 이미 정해진 길을 앞으로 가느냐 뒤로 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본문에 시간과 공간의 불가분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시간은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33 페이지) 가장 짧은 시간과 가장 긴 시간이란 제목의 글이 있다. 이는 불교적 의미가 깃든 시간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공간의 도움 없이는 시간의 존재조차 알 수 없다.(41 페이지) 오직 공간의 변화를 통해서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칸트는 공간과 시간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65 페이지) 공간과 시간은 세계나 사물 자체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독립적인 실재가 아니라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렌즈(인식의 틀)이자 감각을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형식이라는 의미다.

 

다케우치 가오루는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정보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뇌속 필터로 걸러 해석한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뉴턴의 절대 시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 시간의 대비도 흥미롭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신은 시간 그 자체도, 공간 그 자체도 아니다. 하지만 지속(持續)하고 편재(遍在)한다. 영겁으로 지속하고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신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뉴턴이 내세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란 개념은 전지전능하고 언제 어디에나 있는 신의 존재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뉴턴의 절대시간이란 우주의 그 어떤 외적 존재나 물질,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도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균일하게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뉴턴의 절대공간이란 외부의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항상 동일하고 부동(不動)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를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적 상대 시간은 심리학의 주관적 시간과 비슷한 듯 다르다. 차이는 시간의 변화가 관측자의 물리적 운동 환경(속도·중력)에 의해 결정되는 실제 시공간의 변형인가, 아니면 인간의 '뇌와 심리 상태'에 따른 감각적 착각인가에 있다. 뉴턴이 말한 신이 만든 유일한 시간이 아인슈타인에 이르면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98 페이지)

 

아인슈타인 이후 현대 물리학과 철학에서 다루는 시간은 단순히 외부 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도 아니고 인간의 마음속에만 있는 주관적 환상도 아닌 주관과 객관의 중간적 존재(또는 상호작용의 결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상호주관성이라 한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물체의 운동을 생각하면 물체가 공간적으로는 정지해 있더라도 시간 속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 된다. 따라서 운동량의 시간 성분이 있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없으면 곤란하다.

 

아인슈타인 이후 에너지란 제1의 운동량 성분 즉 운동량의 시간 성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움직이는 물체는 진행 방향으로 줄어들고 물체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흥미로운 점은 친구가 빛에 가까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간다고 가정할 경우 우주선에 탄 친구가 볼 때는 자기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내가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친구가 나를 바라보면 반대로 나의 시간이 느리게 가고 나의 몸이 납작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상대성이론에서 서로가 똑같이 느낀다고 해서 시간 지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왜 지그재그 운동을 할까? 초미시 수준에서 공간에 거품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전자 외에 광자(光子)도 광속운동을 한다. 그런데 전자는 광자와는 달리 광속으로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경로를 꺾어 방향을 바꾼다. 엔트로피는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낸다. 저자는 엔트로피는 정보의 반대 개념이라고 말한다.(114 페이지) 시간은 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를까? 그 반대일 수는 없을까? 리차드 파인만, 로저 펜로즈, 스티븐 호킹 같은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초기 조건이 우연히도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400캘빈의 방 1과 300캘빈의 방 2가 있을 경우 1200J이 방 1에서 방 2로 빠져나가면 방 1의 엔트로피(온도당 에너지량)는 3(1200/400) 감소한다. 열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분자들의 무질서한 운동 에너지(열에너지)가 줄어든다는 뜻이기에 엔트로피는 감소한다.(-3) 방 2의 엔트로피는 4(1200/ 300) 늘어난다.(+4) 따라서 1(–3+4) 만큼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주에도 자연적으로 열이 흐르기만 해도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두 방의 온도가 같으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를 열적 죽음이라 한다. 미묘한 차이를 무시한다면 열에너지라 하도 분자 하나에 대해서는 운동에너지와 다를 바가 없다.

 

양전자는 시간을 역행하는 전자다. 세계에 단 하나의 전자만이 있다는 가설도 있다. 물리학자 존 휠러(John Wheeler)가 그의 제자 리처드 파인만에게 전화로 제안한 내용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시간도 흐릿해진다. 가상입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일시적으로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인 관점과 계 전체로 보면 결국 에너지 보존 법칙을 철저히 따른다.

 

유한온도장 이론이 제공하는 온도의 수학적 고리 구조와 루프 양자 중력이 말하는 공간의 물리적 고리 구조는 초기 우주의 초고온·초고밀도 환경에서 중력이 어떻게 양자역학적으로 작동했는가를 풀기 위해 긴밀하게 결합되어 연구되고 있다. 물리학의 몇몇 현대적 관점과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보다 속도(특히 광속)가 더 근본적인 물리량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가속도는 중력과 등가다. 이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는 내가 겪는 힘이 중력 때문인지 우주선이 가속하고 있기 때문인지 절대 구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떻든 우주의 근원에 있어서 중력이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가속도가 속도보다도 기본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시간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점차 모든 문제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우리가 시간에 대하여 고찰할 때 어떤 물리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물리 이론으로 시간의 역할을 논할 수는 없으므로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단숨에 양자 중력 이론으로 건너뛰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논의하기로 한다고 말한다.(177 페이지)

 

루프 양자 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 LQG)은 현대 물리학의 주요 양자 중력 이론 중 하나로 '스핀 네트워크 중력 이론'은 별개의 이론이 아니라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핵심 수학적 도구이자 공간을 묘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물이 스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핀으로 사물이 출현한다. 미시적인 양자의 특성인 스핀은 중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단지 시공간이 구부러져 있는 상태이기에 스핀은 시공간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현대 과학을 전제하지 않는 시간론은 수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시간은 환영(幻影)이란 말이 있다. 시간을 완전히 해명한 사람은 없다.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은 2006년(원서)에 나온 책이고 번역 출판은 2011년에 이루어졌다. 지금 읽어도 참신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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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 스티븐 호킹의 마지막 제자에게 듣는 교양 물리학 수업
다카미즈 유이치 지음, 김정환 옮김, 김범준 감수 / 북라이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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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을 전공한 저자 다카미즈 유이치(高水裕一; 1980-)는 우주에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일, 일상을 초월하는 일이 당연한 듯 일어나기도 하며 인류가 지금 그리고 있는 꿈은 전부 우주 어딘가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라는 다카미즈 유이치의 시간론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론과 대조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서는 운동이 발생하지 않으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물체가 진공상태에서 계속 정지해 있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되지만 물질이 전부 원자와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어 끊임없이 여러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에 완전히 정지한 상태의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주 규모로 생각하는 시간의 화살을 우주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화살이란 시간 흐름의 불가역성을 전제한 말이다. 시간은 1차원이다. 그런데 시간이 만약 2차원이었다면 우리는 타임머신을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자연계는 온갖 것을 치우침 없이 균형 있게 배분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 균형 배분의 한 양상이 입자와 반입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대칭성이라고 부른다. 물론 입자와 반입자에는 미세한 수의 차이가 있었다. 이 대칭성 개념은 시간의 화살이라는 성질과 정반대다.

 

공간은 3차원이지만 파트너인 시간은 1차원이라는 사실은 대칭성의 관점에서는 매우 위협감이 느껴진다. 저자는 물리학이라는 학문의 목적은 자연이라는 신이 만들어낸 이 세계의 규칙을 도려내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모든 방정식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난해하게 보이는 이 말은 복잡해 보이는 방정식도 결국 다음 시각에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43 페이지)

 

시간에 관한 정보를 표시한 것의 대표가 미분 방정식이다. 뉴턴의 방정식에도 시간의 화살이란 개념은 없다. 저자는 방정식은 일단 탄생하면 발견자의 의도조차 초월해 드넓은 우주 어딘가에서 실현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물리학에서 시간의 불가역성을 믿는 이유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때문이다. 우주에서 엔트로피 법칙의 예외적 존재가 생물인 우리다.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의 신체를 일정 수준의 질서 잡힌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행위를 항상성 유지라고 한다.

 

생물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한 것은 아니다. 생물은 끊임없이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아들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시간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인슈타인의 두 상대성이론을 논한다. 특수 상대성이론의 주인공이 빛이라면 일반 상대성이론의 주인공은 중력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은 시공간의 일그러짐에서 만들어진다고 예언했다. 우주에서 일상적인 것은 광속에 가까운 빠른 속도를 생각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세계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옳았음은 2015년에 중력이 시공간을 일그러뜨린 흔적인 중력 파가 검출되고 2019년에 블랙홀이 실제로 촬영됨으로써 완전히 증명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관측이 따라잡기까지 100년이 걸린 셈이다.(67 페이지) 특수 상대성이론은 빛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줄 알았던 시간을 일그러뜨려 늘어나게도 하고 줄어들게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충분하다. 시간과 관련된 논리가 ‘원인이 있어 결과가 생긴다’는 의미의 인과율이다. 인과율을 끝까지 밀고가면 결국 결정론에 이른다. 아인슈타인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광속 범위로 한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순서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래에서 과거를 향해 날아가는 빛이 있는지 묻는다. 저자는 양자역학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황당함을 즐길 수 있느냐 아니냐에 열려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쿼크에 이어 양성자, 중성자를 이야기한다. 양성자 가족과 중성자 가족은 이 세계에서 원소를 만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원소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끊임없이 안정을 추구한다. 저자는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는 별에서 탄생했고, 별이 죽으면서 다종다양해졌다고 말하며 흔히 죽는 것을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표현하는데 이 말을 별이 듣는다면 '반대야, 그 반대야!'라고 바로잡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죽어서 너희들이 생긴 거야!"라고.

 

소립자의 입자 파동 이중성이 시간의 본질과 관계 있다.(92 페이지) 파동이 보이는 회절은 터널효과라고 한다. 빠져 나온다기보다 스며 나온다에 가깝다. 원자핵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전자도 위치를 확정할 수 없다. 전자가 궤도 주변에 구름이나 안개처럼 자욱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현재 물리학자들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다. 양자역학의 황당한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확률이고 이에 반대되는 말이 결정론이다. 양자역학에도 방정식이 있다. 물론 이 방정식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필연이 아니라 미래가 일어날 확률을 예언한다.

 

양자역학에서는 미래가 한 가지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불확정성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해 우리의 직관을 흔들어놓는다. 소립자가 만들어내는 양자역학의 기괴함은 아인슈타인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양자역학의 출현으로 온갖 기성관념이 근본부터 뒤집혔고 시간에 관해서도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황당한 생각이 등장했다. 양자역학에는 불확정성원리가 있고 시간과 무엇인가가 종종 불확정성 관계에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값을 갖는지가 어떤 범위 속에서 요동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시간이 플러스 값과 마이너스 값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면 시간의 화살을 따라서 플러스 방향으로만 나아가던 시간이 우연한 계기로 요동을 쳐 마이너스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100 페이지) 결정론에는 단순하고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저자는 과거를 통해 결정되는 미래보다 불확정적인 미래가 희망을 품을 수 있어서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관계에서 시간의 파트너로서 매우 중요한 에너지가 있다. 시간과 에너지는 서로 얽혀 있는 불가분의 관계다. 시간을 정확히 결정하면 소립자가 가진 에너지 양이 결정되지 않으며 반대로 소립자의 에너지 양을 결정하면 시간이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면 파트너인 시간도 불연속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카를로 로벨리는 에너지의 파트너인 시간도 불연속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로벨리는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고 자신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관측자가 관측함으로써 대상의 상태가 한 가지로 결정된다는 진영과, 관측을 하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이 소멸하지 않고 동시에 존재한다는 진영이 대립하고 있다.

 

우주는 탄생했을 때 인플레이션이라는 급팽창 현상을 통해 급격히 팽창했다. 팽창한 우주는 완전히 균일하지 않고 아주 조금이지만 얼룩(불균일)이 있었다. 이 얼룩이 우주 구조의 씨앗이 되어 은하와 별을 탄생시켰고 우주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우리가 존재하는 건 그 덕분이다. 고전적인 양자역학의 발생에 따르면 얼룩을 누군가가 관측했다. 갓 태어난 우주에서 누가 관측을 했을까? 신이라는 답 밖에 없지 않을까? 저자는 뇌의 소립자의 불확정성 관계로 인해 우리는 연인 사이일까? 아니면 친구 사이일까?라는 흔들리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열은 자발적으로 저온에서 고온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카르노 사이클에서 일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은 저온의 물체에서 고온의 물체로 옮기는 것이므로 온도의 자발적인 흐름에 역행하게 된다. 방정식은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지 않지만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만은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결정한다. 과거와 미래가 확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저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공을 이야기한다. 지면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공은 위로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하며 어떤 정지된 순간의 공만 봐서는 위아래 중 어느 쪽이 과거이고 어느 쪽이 미래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120 페이지)

 

온도차가 있는 두 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열의 이동은 명확히 일방통행하는 흐름이다. 클라우지우스는 엔트로피를 나타내는 기호로 엔트로피와 관계없어 보이는 문자인 S를 사용했는데 이는 사디 카르노의 머리글자다. 카르노는 열이 흐르면서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의 양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한 과학자다.(115 페이지) 사람들은 분자,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 세상에는 불가역적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도 점차 알게 되었다. 이는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라 열은 고온에서 저온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표현되는데 볼츠만은 이를 분자, 원자의 상태 수는 작은 쪽에서 큰 쪽으로 한 방향으로만 이동한다고 바꿔 표현했다.(126 페이지)

 

2019년 고르디 레소비크 박사가 열역학적인 시간에 화살과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는 상황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양자 컴퓨터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가운데 시간이 역행하는 현상을 관측했다고 말한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미시 세계의 양자에서 발견되는 중첩 상태를 이용해 복수의 계산을 병렬로 실시하는 컴퓨터를 말한다. 난잡에서 질서로라는 변화는 당연히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에 위배된다. 이는 시간의 화살이 거꾸로 날아갔음을 의미한다. 커피가 들어 있는 컵은 커피를 다 채우든 아이스크림을 집어넣든 형태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라는 그릇은 내용물의 양에 따라 시공간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등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우주란 내용물과 연동된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사고로 죽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친구가 사고를 피하도록 노력한다 해도 이미 친구가 죽는다는 기록이 역사에 적혀 있는 이상 어떤 수를 써도 친구를 구할 수 없도록 온갖 사안이 작용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타임 워프는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어 과거나 미래의 일이 현재와 뒤섞이는 일을 말한다. 저자는 이 세계의 시간이 2차원이어서 또 다른 시간 차원이 있다 해도 두 차원의 크기는 대등할 리 없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미미한 시간 축은 빠른 흐름에 저항하며 큰 강을 수직으로 횡단하려는 작은 배와 같다. 큰 강의 흐름이 너무나도 빨라서 작은 배는 좀처럼 반대쪽 기슭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이 세상의 자연 현상은 모두 기본이 되는 네 가지 힘 즉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 중 어느 하나가 일으킨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힘은 중력을 제외하면 모두 전자기력이다. 전자와 원자핵을 결합해 원자를 만드는 힘이나 원자와 원자를 결합시켜 분자를 만드는 힘도 전자기력이다. 강력은 쿼크를 결합시켜 양성자를 만들고 양성자나 중성자를 결합시켜 원자핵을 만드는 힘이다. 시간이 지나면 붕괴하는 소립자는 약력으로 인한 것이다. 중력은 다른 세 가지 힘에 비해 너무나 작지만 우주에서는 중력의 지배력이 전자기력이나 강력을 압도적으로 웃돈다.

 

중력만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기원으로 삼고 있고 양자역학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네 가지 힘 모두를 합치는 이론을 양자 중력 이론이라고 한다. 양자 중력 이론에는 두 가지 후보가 있다. 초끈 이론과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연속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공간도 불연속적이어서 시간과 공간 모두 띄엄띄엄한 그물처럼 이산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 예언하는 시공 네트워크에서는 스핀이라고 부르는 소립자의 회전 방향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 네트워크를 종종 스핀 네트워크라고도 부른다.

 

스핀 네트워크에는 중력을 나타내는 고리가 있는데 이를 루프라고 부른다. 양자 중력 이론은 시공간을 이산적으로 취급함으로써 공간이나 시간에 그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있음을 제시하는 이론이다. 그렇게 해서 시공간 자체를 양자화하고 나아가 최소한의 크기를 부여해 0으로 나누는 발산의 문제도 회피한다. 루프 양자 중력이라는 이론은 시공간의 양자화를 지향하며 일반 상대성 이론과도 양자역학과도 다른 띄엄띄엄한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시공간 모델을 구축했다.

 

루프 양자중력 이론에서 말하는 공간이나 시간의 최소 단위는 플랑크 스케일이다. 1/ 10⁴⁴이다. 로벨리는 시간을 양자화하면 공간은 플랑크 길이가, 시간은 플랑크 시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초끈 이론이 시공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루프 양자 중력 이론 쪽에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과도 일맥상통하는 ‘과격하기까지 한 참신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시공간을 양자화해 소립자 규모의 크기가 있음을 제시했을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시간의 존재 자체를 지웠다. 시간이 역행(逆行)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 생각하는 방법은 중력이 전달되는 장(場) 즉 중력장의 양자화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설명하는 시공간 그 자체를 불연속적인 최소 단위(양자)로 쪼개어 나타내는 과정을 말한다. 물리학에서는 장이 물질로서 실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양자역학에 따르면 물질은 전부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중력장도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중력장은 중력을 전달하는 시공간이므로 공간도 시간도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벨리가 생각한 시공간의 양자화다.

 

로벨리는 시간이란 하나의 사건과 다른 하나의 사건 사이의 관계라 생각한다. 이 시간관은 라이프니츠의 '관계주의(Relationalism)' 철학과 완벽하게 상통한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공간은 물체들 사이의 공존 관계(Order of Coexistence)다. 저자는 휠러 – 디윗 방정식을 논한다. 양자세계에서는 ab=ba가 아니다. 양자는 요동치고 있어서 양자의 위치가 확정된 뒤에 속도가 확정된 경우와, 속도가 확정된 뒤에 위치가 확정된 경우를 비교하면 양자의 상태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192 페이지)

 

물리학에서 시간이란 우리가 미시세계를 상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무지(無知)의 소산’이다. 시간을 양자화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는 시간의 본질과 관련된 수많은 주제가 숨어 있다. 현재 초끈 이론에서는 끈이 아니라 브레인(막; 膜)을 기초적 입자로 생각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의문이다. 이처럼 모든 것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암흑 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도달한다. 빛만으로는 우주를 만들 수 없다.(209 페이지)

 

저자는 인플레이션 이후 급격한 팽창으로 잡아 늘여진 양자 요동이 그대로 고정되었다는 것이 우주 탄생 시나리오인데 아직 생물은 고사하고 별 등 구조물조차 없는 우주에서 대체 누가 양자 요동을 관측했는가? 신 같은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듯 하다. 저자는 스타인하트, 투록의 순환우주를 이야기하며 우주 팽창은 익숙하지만 수축은 그렇지 않으나 빅뱅 이전 우주에는 수축이 금지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한다. 우주의 수축은 시간 역행을 의미한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는 암흑에너지이고 반중력(척력)을 가진 것이라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을 정적(靜的) 우주론이라 한다. 수축도 팽창도 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정상(定常) 우주론은 팽창하지만 같은 밀도를 유지한다는 이론이다. 중력에는 인력(引力) 밖에 없다는 기묘함은 어쩌면 시간의 화살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230 페이지) 아인슈타인을 후회하게 만들었던 우주상수 즉 암흑에너지가 바로 중력의 척력(斥力)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소립자 물리학에서 말하는 진공에너지의 크기와 우주상수 크기 차이를 논한다.

 

중력은 인력뿐이고 우주는 팽창하기만 하고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하고 반입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학자들은 머릿속에서 만약 이런 물질이 있다면?이란 가정을 다양하게 확장해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234 페이지) 저자는 우주를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이는 시간의 화살과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화살의 방향이 반대인 자연의 절묘한 균형감각에 매우 깊은 흥미를 느낀다고 말한다.(260 페이지) 저자는 생명이 형성되기 이전에 우주의 시간의 화살에 역행하는 또 다른 시간의 화살이 있어서 그것이 생명을 만들어낸 다음 그 안에 깃들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생명을 존속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추론한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큰 머리를 가진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상상한다. 즉 큰 뇌에 미래의 기억도 보존되어 있어서 회피할 수 없는 미래를 받아 들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살아서 멸종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270 페이지)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뇌 크기가 크지 않았는데 그런 작은 차이로 인해 호모 사피엔스의 뇌에는 미래 기억이 저장되지 않았고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저장되어 있었을까?란 의문이 든다. 소립자를 개별적으로 보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많은 소립자가 모여서 거시적인 계가 되면 개별적인 시간 역행의 효과는 통계적으로 무시되며 결과적으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된다.

 

저자는 양자 세계에서는 에너지와 시간 사이에 불확정성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음을 언급한다. 마이너스 에너지의 입자가 시간을 역행하는 것도 이 관계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281 페이지) 저자는 여러 우주 모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순환우주를 고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292 페이지) 그것은 순환우주가 비교적 수긍할 만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다양한 자연 상수가 있다. 저자는 거품 우주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 우주에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 지평선 크기의 우주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이를 거품이라 부른다. 무수한 거품 하나하나가 다양한 자연 상수를 가지고 있는 모델이다.

 

상수에 따라서는 팽창이 너무 빨라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우주도 있고 잘 안정되어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한 우주도 있다. 이른바 거품의 진화 같은 것이 일어난다고 가정한다. 인간에게 딱 알맞은 우주가 생기는 것도 무한히 많은 거품 중 하나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수긍할 만하다.

 

순환 우주는 인류 원리의 수수께끼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을 주는 우주모델인 동시에 현 시점에서 거시적 규모의 시간 역행을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모델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여행의 의도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것이기보다 시간에 관한 다양한 사고를 즐기면서 우주의 신비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주에 관해서라면 아무리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더라도 자유라고 말한다. 우주는 여러분이 생각해 주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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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약 - 루소의 『사회계약』, 그 이후 ㅣ 철학의 정원 79
미셸 세르 지음, 조현수 옮김 / 그린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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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사 연구자인 미셸 세르(1930-2019)의 책이다. 저자 세르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문 프랑스의 독보적인 통섭 철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식론자)다. 책은 서문, 1부 전쟁, 평화, 2부 자연계약, 3부 과학, 법, 4부 끈과 그 해체로 이루어졌다. 2부 자연계약은 표제작이면서 가장 읽기 쉬운 챕터에 속한다. 저자는 중심과 주변을 전제로 하는 환경이란 말은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반(反)하는 용어이기에, 생태라는 말은 법적 결정을 내릴 수 없기에 적절치 못하다고 말하며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연계약이란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을 법적 주체가 되는 지위로 올리자고 제안한다. 정치는 세계를 신경 쓰지 않으며 자연과 문화 사이의 오래된 구분 역시 똑같은 배제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각오로 이 낡은 관습을 뒤엎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단단한 과학(경성과학)에 의해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부드러운 과학(연성과학)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우리의 관습과 경제, 정치를 가능한 한 빨리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재앙을 향해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논쟁도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합의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거에는 항상 승리자였던 지구가 이제는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쟁은 하나의 계약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역사는 전쟁과 함께 시작된다. 폭력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전쟁이 있고 그 사이에 법적 계약이 존재한다. 저자는 주관적 전쟁과 객관적 폭력을 말한다. 전자는 인간들끼리의 전통적인 갈등과 전쟁을 말한다. 후자는 인간 집단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자 객체인 자연을 향해 가하는 일방적인 파괴와 폭력을 말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폭력에 대한 법을 발명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인간 세계의 객관적 적(敵)인 세계 자체와 체결해야 할 새로운 계약, 새로운 사전 합의를 말한다. 이것이 곧 자연계약이다. 저자는 인간들의 판(板)을 말한다. 저자의 의도는 이 인간들의 판들이 지구의 지각판들 만큼 물리적으로 지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을 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더 이상 어떠한 부피도 없는 한갓 점으로서 허공 속에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집합체로서 존재하며 특정한 장소에 갇혀 있는 것을 넘어 거대한 대양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공간에서 내려다 보아도 포착되는 거대한 판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장해가고 있다.(67, 68 페이지)

 

저자는 과학의 모든 역사는 나비 한 마리 격인 생각이라는 것에서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결과로 이어지는 극히 낮은 확률의 이 인과관계의 연쇄를 일정하게 만들고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근원적인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에 공포를 느끼고 과학을 통해 인과 관계의 사슬을 꽉 쥐고 우리가 세상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확신을 얻고자 했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는 이제 수원지, 우물, 호수로 이루어진 집단과도 같으며 아킬레우스의 작은 강보다 더 거센 물줄기를 이루고 있고 고야의 사막보다도 훨씬 광대한 유동하는 황야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또는 하나의 대양과 같고 단단하면서도 움직임이 있는 하나의 지각판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객관적 폭력의 상황에 놓여 있는 오늘날 이 계약에 서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다고 말한다. 과학자들 사이의 계약도 저 오래된 사회계약을 닮아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자주 다양한 학술기관이나 법정 판결의 역사와 중첩된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과학으로 인정되는 앎이란 에피스테모-디케로부터 나온다. 이는 지식을 뜻하는 에피스테메와 정의, 심판을 뜻하는 디케라는 말의 합성어다. 과학의 기원은 인간 사회의 기원과 마치 자매처럼 닮아 있다. 일종의 사회계약인 지식의 계약이 앎의 표현들을 상호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이성이 더 이상 아름다움에 대한 생존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하며 아름다움은 평화를 요구하며 평화는 새로운 계약을 전제로 한다고 덧붙인다.(84 페이지) 신이 죽은 이후 우리에게 남아 있게 된 것은 오직 전쟁뿐이지만 세계 자체가 각 민족이나 나라의 공동체와 자연계약을 맺는 순간 그것은 평화를 위한 이유를 제공해 주게 되고 동시에 우리가 찾아 헤매던 초월성을 부여해 주게 된다. 저자는 농업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권력을 서로 나누어 가진 이들은 자연을 잊었다. 우리 자신이 사상 처음으로 지구 전체에 물리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또한 지구 전체가 이에 대해 우리 인류 전체에 틀림없이 반응하기 시작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비극적이게도 지구를 소홀히 하고 있다.

 

지구를 보존하고 비와 바람이라는 의미에서의 시간을 존중하려면 긴 시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양의 물이 서로 섞이려면 대략 5천 년이라는 장기적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한 주기가 다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단기적 대답과 단기적 해법만을 내어 놓는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대상은 과학과 실천의 가장 큰 대상 즉 지구 - 행성이라는 새로운 자연이다. 저자는 정밀하게 나뉜 전문 분야들 안에서 살아가는 행정관리들, 기자들, 과학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권력의 짧은 시간 속에 흠뻑 빠지고 자신들의 좁은 분야들 속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긴 시간의 호흡을 가진 사유를 하는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어 보자고 말한다. 지배와 소유 바로 이것이 우리 서구의 이성이 우주를 정복하러 나선 과학과 기술의 여명기에 데카르트가 던진 핵심 개념이다. 우리가 우주를 지배하고 그것을 우리 것이 되도록 만든다는 것, 이것이 산업 발달의 추구와 이른바 순수 과학 양자 모두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그 이면의 철학이다. 이 점에서 그 둘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식 지배는 과학이 세계에 가하는 객관적 폭력을 잘 조율된 전략으로 전환시킨다. 여기서 우리가 객체들과 맺는 근본적 관계는 전쟁과 소유로 요약된다.(98 페이지)

 

저자는 동물이 배설행위를 함으로써 흔적을 남기고 더럽히며 자신의 영역임을 표시하듯 인간도 배설적 행위로 다른 종들을 내쫓는다고 말한다.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는 기생물처럼 세 들어 사는 존재다. 사회계약은 자기 자신 안으로 문을 닫아버린 채 세계를 문밖에 내버려두었다. 사회계약은 사물들의 거대한 세계를 단지 우리가 마음껏 써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수동적 대상들의 지위로 격하한 것이다. 인간 이성은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고 외부 자연은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인식과 행위의 주체는 모든 권리를 누리게 되었지만 그 대상들은 아무런 권리도 부여받지 못했다. 이 대상들은 오늘날까지도 어떤 법적 존엄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과학이 모든 권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오직 사회적이기만 한 우리의 계약 즉 오직 우리 인간들에게만 초점을 두고 있는 이 계약은 결국 우리 자신의 종의 존속을 위협하는,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위협하는 죽음의 계약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이”라고 말하는 공로를 세웠지만 동시에 ‘오직 인간만이’라고 생각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세계는 우리의 주인이었지만 얼마 전까지는 우리의 노예였으며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의 숙주이고 이제는 우리의 공생자다. 저자가 말하는 자연으로의 회귀란 자연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계약은 객관적 전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휴전협정이며 공생의 계약이다. 공생의 권리는 상호성에 의해 정의된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만큼 인간도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자연은 이제 권리의 주체가 된다.

 

지구는 우리에게 힘과 관계 상호작용이라는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정도면 계약을 맺기에 충분하다. 공생하는 두 존재는 마땅히 서로에게 생명을 빚진 자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따를 것이다.(115 페이지) 저자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에서는 자기들끼리 다투면 내부의 적을 무찌르기 전에 자신들의 배가 난파당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사회계약을 체결한 선원들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점에서 지구도 배와 같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제 정치 지도자는 인문학과 도시의 거리, 그 성벽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물리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물들 없는 인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사물들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 역시 타인들을 경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로 이것이 법이 그려내는 더욱 안정적인 공간이다. 저자는 자연계약을 형이상학적인 것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 국지적 전문 영역의 일상적 경계를 특히 물리학의 경계로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계약 역시 명시적으로 체결되지 않은 가상적 계약이다. 자연에 우호의 손을 내미는 것이 자연계약의 하나일 것이다. 실로 중요한 근본적 계약들은 모두 암묵적인 것으로인 듯 보인다. 자연계약은 이 지구 전체의 관계망과 자연계약 그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 연결망을 그것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도록 연결한다. 저자는 서로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은 물리적 지구 전체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134 페이지) 우리의 두 아버지를, 자연적 아버지와 인간적 아버지, 땅과 이웃을 사랑하라. 인류라는 우리의 인간적 어머니와 지구라는 우리의 자연적 어머니를 사랑하라.

 

저자는 기하학과 물리학에 큰 의미를 둔다. 저자는 기하학을 단순히 도형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방법론으로 본다. 저자의 물리학은 고정된 질서를 다루는 고전역학보다는 변화와 무질서를 다루는 현대물리학에 가깝다. 저자는 모방하는 것은 지배하는 것이고 이긴다는 것은 파괴한다는 것이라 말한다. 모방하는 것이 지배하는 것이란 말은 지식이 모방 욕구로부터 나왔기 때문으로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법정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 과학의 시작의 역사는 적이자 쌍둥이인 두 자매 즉 정의와 정확성, 판단하는(재판하는) 이성과 증명하는 이성의 비극적으로 파란만장한 공동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168 페이지) 저자는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는 언제까지나 그저 평범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모든 이가 모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는 데 불과하며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는 계산 가능한 것이며, 그 희귀성에 비례하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 부른다고 말한다.(175 페이지) 이는 사회과학이란 인간이라는 폐쇄된 울타리에서 말과 글을 주고 받는 재생산에 가깝고 자연과학은 인간 외부의 거대한 실재인 세계와 직접 대화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자유는 제한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자유는 부분적으로 법이 없는 공간들에서 오는 것이다. 바로 이 틈으로 자연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낙사고라스에게는 공공의 문제보다 자연이 더 큰 관심사였다.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이 불타고 있다고 말해 고발되었다. 그가 본 태양은 불타는 돌덩이다. 저자는 자연은 도시의 지옥 또는 문화의 지옥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연을 통제하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자연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나 소음을 경청하는 자연과학을 사랑한다. 문화는 수천 가지이지만 자연은 단 하나다.

 

저자는 과학과 도덕의 차이도 논한다. 도덕은 명령법으로 쓰이지만 지식은 법처럼 직설법으로 쓰이되 법처럼 수행문적이지는 않다. 저자는 과학들은 그 자신들끼리 서로 분리되고 구분되어 어떤 과학도 자신의 고유 영역 밖에서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관할권의 네트워크를 내적으로 제도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경계 짓기(영역 설정)를 의미한다. 과학의 역사 역시 종교의 역사가 그랬던 것만큼 수많은 추방된 자를 남기고 있다. 처음에는 법이 과학을,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며 압도하지만 과학이 점차 법을 압도한다. 모든 판결이 이성의 빛 아래 재검토되기 때문이다.(203 페이지) 물론 법이 다시 과학을 압도하고, 과학이 다시 법을 압도하는 순환이 계속된다.

 

저자는 우리 인간 자신이 하는 행위로 인해 크게 변모되는 지구를 흔들리는 지구라 부른다.(216 페이지) 저자는 세계가 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가운데 책이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말을 한다. 세계는 담론과 법에 갇혀 있고 가상이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저자는 오늘날의 현자(賢者)는 영웅들의 시대의 입법자와 엄밀한 지식으로 무장한 현대의 지식 소유자를 자신의 한 몸 안에 뒤섞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현자는 자연과학에 정통하며 사회과학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사람으로서 보고서보다는 직접적 행동을, 조사나 자료보다는 직접적인 인간 경험을 중요시하며 자연과 사회의 여행자이며 강, 모래, 바람, 바다, 산을 사랑한다. 그는 지구 전체를 걷는 자이며 다양한 몸짓 만큼이나 다양한 풍경을 사랑하며 북서 항로를 홀로 항해하는 탐험가처럼 실증적 지식인 인문학과 섬세하고도 드물게 교차하는 그 장소들을 통과해 간다.

 

그는 무엇보다 지구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이다. 진정한 교육은 자기 자신의 유한성을 판단할 줄 아는 신중한 존재를 길러내며 참된 이성의 올바른 지적 전수는 이 존재를 무한한 생성 속으로 내딛도록 만든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근원적 대지는 유한하다. 하지만 이 근원적 대지를 발판으로 출발하는 출항은 어떤 끝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계를 벗어나 이 세계와 비슷한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 이것을 두고 출항한다고 말한다.(247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끈을 풀고 다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끈울 묶는다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우리가 출항하는 것은 오로지 끈을 바꾸기 위해서일까?라고 묻는다. 저자가 말하는 바 계약이란 단어는 본래 조여 매는, 끌어당기는 선(線)이다.(254 페이지) 계약이 반드시 언어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밧줄 놀이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밧줄로 이어진 것들끼리는 서로 말없이 이해한다/ 아우른다. 어원적으로 볼 때 그리고 그 본성으로 볼 때 계약은 함께 묶이는 것이다.(263 페이지)

 

저자는 “밧줄은 나를 형식/ 형태들에, 사물들에, 타인들에 묶고 있으며 그러므로 나를 추상에, 세계에, 사회에 입문시키고 있다.”고 말한다.(264 페이지) 저자가 드는 예는 한 행성 또는 다른 행성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지체 없이 다른 모든 행성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에 대한 이 행성들의 반응 역시 곧 이 첫 번째 행성들에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일련의 상호 제약들의 총체라 한다,

 

저자는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래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멸 가능성을 우리 자신의 힘 안에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바 이 소멸의 곡선은 계속 수직 상승하고 있다고 말한다.(293, 294 페이지) 추상적으로 되어버린, 더 이상 직접 체험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대 인류는 땅에서 발을 떼어내어 기호들을 향해 날아오르고 이미지들과 코드들의 세계를 들락거리면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느라 더 이상 삶이나 세계의 사물들과 직접적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는 발이 완전히 땅에서 떨어진 탈영토화된 상태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저자는 우리는 실로 죽어가는 우리의 늙은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자연에게 그것이 우리에게 주었던 탄생을 되돌려준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는 대체 어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동행의 끈들 너무나도 상호적이어서 탄생이 어느 쪽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결정할 수 없게 되는 이 상호 공생의 끈들이 바로 자연계약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어조는 묵시적이고 시적이며 은유적이다. 흩어지는 듯 하다가도 의미가 연결되고 어렵게 다가오다가도 친절한 면모를 보이는 어조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책은 약 40년 전에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통합적이고 대안적이고 선구적이다. 깊은 사유의 세계에 초대한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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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9-22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셀 세르..앤날에 입장 총서 시리즈로 만나봤었는데 독특한 과학자같다는 안상이 강했습니다. 19년에 사망하셨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오랜시간동안..^^;;

벤투의스케치북 2026-09-22 12:1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과학, 영화와 만나다
레로이 W. 두벡.수잔 E. 모시어.주디스 E. 보스 지음, 차동우.홍주봉 옮김 / 한승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물리학과 교수 레로이 두벡, 생물학과 교수 수잔 모시어의 [과학, 영화와 만나다]는 물리학과 생물학의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책이다. 20년 전인 2006년에 나온 책이어서 SF를 공상과학영화라고 번역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런데 혹성 탈출이라고는 하지 않고 행성 탈출이라고 해 관심을 갖게 한다. 또한 최초의 과학 소설로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를 소개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공상과학영화, 과학 소설이란 제목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과학 공상 영화라는 단어도 나온다.(129 페이지)

 

흥미로운 구절이 하나 있다. 과학적 가설을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어떤 이론이 기술에 적용되고 나면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책에서 다룬 영화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 러너, 지구 최후의 날, 지구 온난화가 오면, 에일리언, 쥐라기 공원 등 다앙하다.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물리학, 생물학 지식을 별도의 장에 담았다. 물론 이는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지만 영화와 별개로 알아둘 만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뉴턴의 제 3법칙인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운동량 보존을 위배하는 영화로 [수퍼맨]을 든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 수퍼맨은 원자폭탄이 폭발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샌안드레이아스 단층이 격렬하게 움직이자 이것을 멈추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감쇄시키려고 수퍼맨은 단층의 일부를 들어 올려 제자리에 놓으려 한다. 암석의 무게는 수백만 톤은 아니더라도 수십만톤은 충분히 된다.

 

만약 수퍼맨이 암석에게 위로 향하는 힘을 작용하면 뉴턴의 제3법칙에 의해 암석은 수퍼맨을 아래로 내리누를 것이다. 그러면 수퍼맨은 서 있는 자리의 암반을 뚫고 박혀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수퍼맨이 얼마나 강한가는 이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서 있는 바위가 그를 누르는 암석 수백만 톤에 해당하는 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 수퍼맨이 법칙을 위반한 것은 더 있다. 수퍼맨의 아주 작은 손바닥 면적으로 거대한 단층 암반을 밀면 단층 전체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수퍼맨의 손이 닿은 부분만 뚫리게 된다. 또한 단층을 움직일 만한 에너지가 수퍼맨에게서 나올 때 발생하는 열과 충격파만으로도 주변 환경은 초토화되어야 한다.

 

지구 주위의 궤도를 회전하는 우주비행사들은 자유낙하 하는 기분을 느낀다. 즉 중력이 없는 것처럼 느낀다. 이것은 우주비행사들에게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비행사들을 지구 주위의 궤도에 붙잡아두는데 중력 전체가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주비행사들을 지구 쪽으로 잡아당길 중력이나 그들이 중력이 존재한다고 느낄 만한 여분의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은 흥미롭다. 다른 과학책들을 통해서 안 것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AI는 우주 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를 느끼는 것은 우주선과 우주비행사 모두 지구를 향해 똑같은 가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은 명왕성도 행성으로 소개한다.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은 것은 2006년 8월 24일이다. 책의 원서가 나온 해는 2004년이고, 책이 번역/ 출판된 것은 2006년 8월 24일보다 며칠 전이다. 책 출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명왕성의 행성 지위 박탈이 결정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토리노 목록이라는 것이 있다. 형성이나 혜성같은 근(近) 지구 천체가 지구에 충돌할 위험성을 나타내는 기준인 토리노 척도를 의미한다. 토리노 목록이 0이면 그 천체가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별로 없거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충돌한다고 해도 별 피해를 입히지 못함을 의미한다. 토리노 목록이 3이면 1% 이상의 확률로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있고 제한된 지역이 파괴될 수도 있다. 토리노 목록이 7이면 넓은 지역에 재앙을 일으킬 정도의 지극히 심각한 위협이 되는 충돌을 의미한다. 토리노 스케일이 10이면 지구 전체에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재앙을 일으키는 충돌을 의미한다.

 

태양계 내부에는 발달한 외계 문명이 없다는 점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달의 표면을 걸었고 우주탐사선이 화성과 금성에 착륙했으며 태양계에 속한 대부분의 행성 옆을 통과했다. 지적이든 원시 형태든 어떤 종류의 생명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행성의 대부분은 표면 조건이 너무 나빠서 어떤 형태의 생명체든 생겨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이 털이 없는 이유가 바다에서 헤엄치기 유리해서라는 말도 있다. 물론 털이 없는 경우 열이 잘 발산되어서 털을 가진 짐승을 따라잡고 사냥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고대 외계 우주인들이 인류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창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외계의 우주인으로부터 털이 없는 것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내용이 그렇게 쉽게 설명되지는 않은 책이다. 영화에 나오는 과학과 관련된 오류를 설명하는 책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정통 물리학 책, 정통 생물학 책 같다. 책에는 영화의 오류를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상식을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그 하나가 시간 여행에 관한 것이다.

 

"시간 지연이 독자들에게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결론짓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것은 맞지만 매우 제한적인 일방통행의 시간 여행만 가능하다. 만약 과학자들이 새로운 동력원과 우주비행사를 보호할 방법을 찾는다면 원칙적으로 우주비행사들을 수천 년 후에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을 미래로 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시간을 거스르며 돌아와 우리에게 미래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는 여행은 불가능하다. 우주비행사들과 우리의 물리적 접촉은 그들이 목적지로 일진광풍처럼 떠날 때 뿐이다. 승객들이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타임머신을 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172, 173 페이지)

 

저자는 하늘을 시간을 거꾸로 바라볼 수 있는 다른 종류의 타임머신으로 정의한다. 지금 하늘에 보이는 사건들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데 바로 지금 우리 눈에 도착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별인 센타우르스 자리 알파 별에서 오는 빛은 4.3년 전에 떠난 것으로 저녁 하늘의 그 별을 보면 적어도 4.3년 전을 보는 것이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대해서도 저자는 한마디 한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미래로부터 추가의 물질이 갑자기 과거로 더해지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에 위배된다. 과거가 물질의 형태로 에너지를 얻으면 미래는 그만큼 에너지를 잃는다. 간단히 말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과 논리의 지식에 근거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175 페이지) 일반적으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함을 예로 들 때 할아버지의 역설 같은 인과율의 오류를 들지만 우주 전체의 질량과 에너지의 총량이 변한다는 물리법칙을 예로 든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8장 열, 온도, 열역학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온도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나 분자의 전체 운동에너지가 아니라 평균 운동에너지를 측정하는 척도다. 그래서 끓는 물 10kg은 끓는 물 1kg 보다 분자 운동에너지를 10배 더 많이 갖는다. 하지만 두 경우에 물 분자 하나의 평균 운동에너지는 모두 같기 때문에 온도가 동일하다."는 구절이다.(207 페이지)

 

대부분의 물질이 식으면 수축하는 일반적인 규칙의 한 가지 예외가 물이다. 약 4°C 때 부피가 가장 작다. 그래서 물은 그 온도에서 밀도가 가장 크다. 온도가 이보다 더 낮거나 높으면 주어진 양의 물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4°C의 물보다 밀도가 작아진다. 열은 두 물체 사이의 온도 차이 때문에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온실효과는 수증기나 이산화탄소, 지구의 대기에 들어 있는 다른 기체에 의해 촉진되는 지구온난화를 일컫는 말이다.

 

자연적인 온실 효과에 기인한 온도 상승이 없었다면 지구의 날씨는 지금보다 15°C 정도 낮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많은 생물체가 살아남기에 너무 추운 날씨이다. 대기권이 얇아서 실질적으로 온실 효과가 없는 화성 표면의 평균 온도는 영하 60°C다. 온실 효과라는 명칭은 유리로 지은 온실 내부에서도 온도가 상승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붙여졌다.

 

온실 효과에 의한 온난화와 유황에 의한 냉각화가 있다. 보면 인간이 생산한 낮은 고도에 머무르는 유황 방출물은 수일 또는 수주일 이내에 지구로 다시 떨어진다. 대부분의 온실 기체는 수백 년 동안에 걸쳐서 대기에 남아 있으므로 온실 효과에 의한 온난화가 결국 유황에 의한 냉각화를 넘어설 것이다. 온실 기체는 하루에 24시간 동안 지구를 덥히지만 유황은 단지 햇빛이 쪼이는 낮에만 지구를 냉각시킨다.(247 페이지)

 

이산화황은 물에 잘 녹고 반응이 빠른 시한부 기체다. 이산화탄소는 반응하지 않고 버티는 끈질긴 기체다. 많은 영화가 지구온난화에 대한 개념을 다룬다. 화산이 분출하면 이산화탄소가 이산화황보다 1.5배에서 수배 더 많이 나온다. 이는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는 경우와 비슷하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든 화산이 분출할 때든 이산화황보다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지구와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소의 근본적인 양과 과학적 특성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탄소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만들어진다. 황은 부수적인 원소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탄소의 압도적인 결합력 때문이다. 탄소는 최외곽 전자 수가 네 개이다. 이를 쉽게 결합의 손이 네 개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탄소는 스스로 또는 다른 원소들과 결합하여 무궁무진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탄소와 탄소 사이의 결합은 매우 단단하고 안정적이어서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데 적합하다. 탄소는 양도 충분하다.

 

규소도 최외곽 전자가 네 개다. 규소는 원자가 커 결합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복잡한 사슬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탄소는 호흡을 통해 기체인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있지만 규소는 산소와 결합하면 단단한 이산화규소(모래/ 유리)가 되어 몸 밖으로 배출하기가 치명적으로 어렵다.

 

과학에서 어떤 이론이 설(說)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뒷받침되는 많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다윈이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을 때 그는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엄청나게 많은 양의 관찰 결과를 제시했고 그 이후에도 과학자들에 의하여 많은 양의 관찰 결과가 다윈의 가설을 지지해 줌으로써 진화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질학자들은 생물체가 생존한 모든 지옥에서 많은 날씨의 변화가 있었음을 충분한 증거를 근거로 단언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지역의 날씨 변화가 심할수록 그 지역에서 더 많은 종류의 생물체의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멸종이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현재도 인류는 생물체의 멸종을 경험하고 있고 이를 우려하고 있다. 인류에 의해 발생한 멸종은 단 수백년 만에 일어났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대멸종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된 것과는 극명하게 비교된다.(358 페이지)

 

영화 [쥐라기 공원]은 공룡시대를 관람자가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이 영화에서의 공룡은 너무나 진짜 같아서 관람객들은 시간차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자료에 의하면 공룡은 약 2억 3천만 년 전에 지구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해 약 6,500만년 전에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이 시기는 지질학적으로 백악기가 끝나고 신생대 3기가 시작되는 기간이었고 따라서 KPg 경계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제시된 조류와 공룡의 관계는 실제로 많은 화석 자료에 근거한 과학적 가설이다. 조류 골격의 특징을 가지는 공룡 화석이 반복적으로 발견됨으로써 공룡이 조류의 조상이라는 가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물리학과 생물학에 대한 차원 높은 지식을 제공한 후 저자들은 영화를 차례차례 하나씩 소개한다. 촬영 또는 제작 스태프들을 이야기하고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꽤 상세하다. 특수효과를 이야기하고 원작 해설을 언급한다. 참고문헌도 언급한다.

 

책을 읽으며 지질 또는 지구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는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테스 피크, 더 코어, 샌 안드레아스, 더 웨이브, 백두산, 투모로우, 트위스터, 인터스텔라, 돈 룩 업 등이 있다. 본문에 나온 수퍼맨은 제작 년도가 책이 나오기 전인 1978년이고, 샌안드레아스는 책이 나온 해보다 후인 2015년에 나왔다.

 

두 영화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을 소재로 한 영화다. 두 영화는 많은 차이가 난다. 전자가 과학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수퍼맨은 지질학적 단층을 수퍼맨의 위대함과 힘을 증명하기 위한 무대로 사용했고 샌안드레아스는 역동적인 지구의 움직임 자체를 인류가 마주해야 할 거대한 자연재해로 보게 만든다. 수퍼맨이 만들어진 시기는 판구조론이 정립된 후이다. 수퍼맨의 원작 만화는 1938년 작품이다. 이렇듯 [과학, 영화와 만나다]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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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8월 18일 아이슬란드 오크예퀴들(Okjökull)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녹아 사라진 얼음 조각을 애도하는 자리를 넘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후변화로 인해 소멸한 자연을 향해 치러진 공식 장례식이자 전 세계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였다. 과학적으로 빙하는 자체 무게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두께(약 40~50m 이상)를 유지해야 하는데 오크예퀴들은 2014년 이미 자격을 잃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크(Ok)는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빙하의 지위를 잃은 빙하입니다. 앞으로 200년 동안 우리의 모든 빙하가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기념비는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음을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행동했는지 여부는 오직 당신(미래 세대)만이 알 것입니다."

 

오크예퀴들 빙하 추모비에 새겨진 이 '미래로 보내는 편지'의 추모 글을 쓴 사람은 아이슬란드의 유명 작가이자 시인, 환경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Andri Snær Magnason; 1973 - )이다. 작가는 오크예퀴들 장례식 이후인 2019년에 나온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2014년 어느 날 아이슬란드의 한 빙하가 사라졌다.”고 썼다.

 

마그나손은 ”우리는 신문에서 빙하 해빙, 기록적 고온, 해수 산성화, 배출가스 증가 같은 머리기사 제목을 보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여긴다. 과학자들이 옳다면 이 단어들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그 어떤 사건보다 심각하다. 우리가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이 단어들은 우리의 행동과 결정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 의미들의 99퍼센트는 백색잡음으로 흩어져버린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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