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 시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 ㅣ 비주얼 사이언스 북 4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박정용 옮김 / 전나무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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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다케우치 가오루의 시간론이다. 시간을 측정하는 모든 방법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운동을 이용하고 있다. 마야의 달력은 특이했다. 1이 아닌 0을 시작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의 관점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가오루의 시간론은 저자의 전공인 물리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문명의 시간론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문명의 시간도 물리(학)과 관련이 있다. 철학자 김규영의 [시간론]을 보면 첫 순서에 베르그송의 시간론이 등장한다. 김규영의 책을 이야기한 것은 철학자, 과학자의 책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베르그송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속(持續)을 진정한 시간으로 본 인물이 베르그송이다. 지속이란 칼로 자르듯 쪼갤 수 없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흐름처럼 연속적으로 얽혀 있는 질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비연속적이라는 명제는 소개가 덜한 느낌이다. 베르그송의 연속적인 순수지속(durée pure) 개념을 정면으로 비판한 시간론이다. 바슐라르의 시간론과 양자역학의 양자(量子)는 관계가 크다. 양자역학은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흐르지 않고 불연속적인 최소 단위인 양자(Quantum) 형태로만 존재하고 전이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과학자 나름으로 시간에 대해 정의함을 알 수 있다. 다케우치 가오루 역시 자신의 시간론에서 베르그송을 예로 들었다. 물론 칸트도 그렇다. 저자에 의하면 생명의 기본인 의식이 순수지속이다.(68 페이지) 그것은 물리학적 시간과 구별되는 심리학적 시간이다.

 

베르그송은 물리학적 시간은 항상 균질하고 측정 가능하며 거꾸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는 의미는 거꾸로 시계 태엽을 돌려도 바로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다. 시계 바늘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기어와 태엽의 물리적 법칙은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 운동을 순간적으로 멈추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물리학 법칙 안에서는 아무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베르그송은 이를 두고 물리학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공간처럼 펼쳐져 있는 상태와 다름없다고 보았다. 즉, 이미 정해진 길을 앞으로 가느냐 뒤로 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본문에 시간과 공간의 불가분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시간은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33 페이지) 가장 짧은 시간과 가장 긴 시간이란 제목의 글이 있다. 이는 불교적 의미가 깃든 시간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공간의 도움 없이는 시간의 존재조차 알 수 없다.(41 페이지) 오직 공간의 변화를 통해서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칸트는 공간과 시간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65 페이지) 공간과 시간은 세계나 사물 자체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독립적인 실재가 아니라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렌즈(인식의 틀)이자 감각을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형식이라는 의미다.

 

다케우치 가오루는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정보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뇌속 필터로 걸러 해석한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뉴턴의 절대 시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 시간의 대비도 흥미롭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신은 시간 그 자체도, 공간 그 자체도 아니다. 하지만 지속(持續)하고 편재(遍在)한다. 영겁으로 지속하고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신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뉴턴이 내세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란 개념은 전지전능하고 언제 어디에나 있는 신의 존재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뉴턴의 절대시간이란 우주의 그 어떤 외적 존재나 물질,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도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균일하게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뉴턴의 절대공간이란 외부의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항상 동일하고 부동(不動)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를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적 상대 시간은 심리학의 주관적 시간과 비슷한 듯 다르다. 차이는 시간의 변화가 관측자의 물리적 운동 환경(속도·중력)에 의해 결정되는 실제 시공간의 변형인가, 아니면 인간의 '뇌와 심리 상태'에 따른 감각적 착각인가에 있다. 뉴턴이 말한 신이 만든 유일한 시간이 아인슈타인에 이르면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98 페이지)

 

아인슈타인 이후 현대 물리학과 철학에서 다루는 시간은 단순히 외부 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도 아니고 인간의 마음속에만 있는 주관적 환상도 아닌 주관과 객관의 중간적 존재(또는 상호작용의 결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상호주관성이라 한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물체의 운동을 생각하면 물체가 공간적으로는 정지해 있더라도 시간 속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 된다. 따라서 운동량의 시간 성분이 있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없으면 곤란하다.

 

아인슈타인 이후 에너지란 제1의 운동량 성분 즉 운동량의 시간 성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움직이는 물체는 진행 방향으로 줄어들고 물체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흥미로운 점은 친구가 빛에 가까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간다고 가정할 경우 우주선에 탄 친구가 볼 때는 자기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내가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친구가 나를 바라보면 반대로 나의 시간이 느리게 가고 나의 몸이 납작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상대성이론에서 서로가 똑같이 느낀다고 해서 시간 지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왜 지그재그 운동을 할까? 초미시 수준에서 공간에 거품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전자 외에 광자(光子)도 광속운동을 한다. 그런데 전자는 광자와는 달리 광속으로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경로를 꺾어 방향을 바꾼다. 엔트로피는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낸다. 저자는 엔트로피는 정보의 반대 개념이라고 말한다.(114 페이지) 시간은 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를까? 그 반대일 수는 없을까? 리차드 파인만, 로저 펜로즈, 스티븐 호킹 같은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초기 조건이 우연히도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400캘빈의 방 1과 300캘빈의 방 2가 있을 경우 1200J이 방 1에서 방 2로 빠져나가면 방 1의 엔트로피(온도당 에너지량)는 3(1200/400) 감소한다. 열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분자들의 무질서한 운동 에너지(열에너지)가 줄어든다는 뜻이기에 엔트로피는 감소한다.(-3) 방 2의 엔트로피는 4(1200/ 300) 늘어난다.(+4) 따라서 1(–3+4) 만큼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주에도 자연적으로 열이 흐르기만 해도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두 방의 온도가 같으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를 열적 죽음이라 한다. 미묘한 차이를 무시한다면 열에너지라 하도 분자 하나에 대해서는 운동에너지와 다를 바가 없다.

 

양전자는 시간을 역행하는 전자다. 세계에 단 하나의 전자만이 있다는 가설도 있다. 물리학자 존 휠러(John Wheeler)가 그의 제자 리처드 파인만에게 전화로 제안한 내용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시간도 흐릿해진다. 가상입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일시적으로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인 관점과 계 전체로 보면 결국 에너지 보존 법칙을 철저히 따른다.

 

유한온도장 이론이 제공하는 온도의 수학적 고리 구조와 루프 양자 중력이 말하는 공간의 물리적 고리 구조는 초기 우주의 초고온·초고밀도 환경에서 중력이 어떻게 양자역학적으로 작동했는가를 풀기 위해 긴밀하게 결합되어 연구되고 있다. 물리학의 몇몇 현대적 관점과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보다 속도(특히 광속)가 더 근본적인 물리량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가속도는 중력과 등가다. 이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는 내가 겪는 힘이 중력 때문인지 우주선이 가속하고 있기 때문인지 절대 구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떻든 우주의 근원에 있어서 중력이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가속도가 속도보다도 기본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시간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점차 모든 문제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우리가 시간에 대하여 고찰할 때 어떤 물리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물리 이론으로 시간의 역할을 논할 수는 없으므로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단숨에 양자 중력 이론으로 건너뛰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논의하기로 한다고 말한다.(177 페이지)

 

루프 양자 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 LQG)은 현대 물리학의 주요 양자 중력 이론 중 하나로 '스핀 네트워크 중력 이론'은 별개의 이론이 아니라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핵심 수학적 도구이자 공간을 묘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물이 스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핀으로 사물이 출현한다. 미시적인 양자의 특성인 스핀은 중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단지 시공간이 구부러져 있는 상태이기에 스핀은 시공간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현대 과학을 전제하지 않는 시간론은 수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시간은 환영(幻影)이란 말이 있다. 시간을 완전히 해명한 사람은 없다.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은 2006년(원서)에 나온 책이고 번역 출판은 2011년에 이루어졌다. 지금 읽어도 참신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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