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 도미노 총서 5
에티엔 클렝 지음,박혜영 옮김 / 영림카디널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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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과학 철학자인 에티엔느 클랭(Étienne Klein; 1958- )이 쓴 시간을 주제로 한 [시간]이란 책이다. 저자는 항상 사용하는 개념들이 가장 큰 수수께끼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시간은 난점(難點)이다, 그 이유는 뒤로 물러서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간의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을 잡을 수도 없다. 전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적 의미의 시간은 없다는 말을 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도 표준으로서의 시간,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시간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간은 우리가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저자는 시간은 자명하면서도 만질 수 없고,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재빨리 사라져 버리고, 친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물리학자들의 말대로 시간이 화살표 방향으로 흐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발견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물리학자들은 늘 시간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가변적이며, 불안정하고, 덧없는 것인 반면 물리학은 변화를 벗어난 관계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움직이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 또는 적어도 비가역적인 것을 열망한다.

 

물리학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물리학의 목표가 일시적인 현상들에서 출발하여 영원한, 다시 말해 시간에서 해방된 법칙들을 세움으로써 변화하는 것을 항구적인 것으로 귀결시키는 데 있다고 믿는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시간을 초월하는 것을 겨냥하지 않는가? 저자는 물리학 내에서조차 시간은 다양한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카를로 로벨리처럼 루프 양자중력 이론 진영에 속하지만 시간은 실재한다고 말하는 리 스몰린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이 말한 시간의 화살은 사랑의 욕망을 상징하지 않고 시간의 가차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흐름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두 사람도 시간을 꼭 같이 계산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껠레비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상하게도 시간은 텅 비어 있을수록 더욱 우리에게 짐스럽게 여겨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시간은 역학의 일반 대상들과 구별된다.

 

권태로운 시간은 끝없이 길게 느껴지며, 초조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나 밀도가 높고, 기쁨의 시간은 강렬하고 마치 정지한 것 같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장 껠레비치의 이야기는 할 일이나 의미로 채워지지 않은 텅 빈 시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보다 오히려 권태라는 무거운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알 수 있는 말이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날것 그대로 느낀다. 이는 인간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불안이 되기도 한다.

 

공간의 위상 기하학과는 반대로 시간의 위상 기하학은 대단히 초라하다. 그것에는 단지 두 가지 변이(變異) 밖에 없다. 즉 직선과 원 다시 말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선적인 시간과 고리 모양으로 맞물리는 순환적 시간이다. 후자는 원의 마술적 특성에 힘입어 그리스인들(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의 영원회귀 신화에서처럼 신화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물리학은 고통스럽게도 그리스 사상의 두 기둥을 중심으로 양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한편에는 존재와 근본적인 부동성을 주장한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있고 다른 편에는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변전(變轉)과 유동성(流動性)을 주장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있다.

 

저자는 뉴턴, 아인슈타인, 프리고진의 시간론을 말한다. 뉴턴은 우주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똑같이 흘러간다고 보았다. 관찰자의 상태나 물질의 존재와 상관없이 시간은 독립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 시간의 개념을 깨뜨리고, 시간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속도)와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에게도 시간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4차원 시공간의 한 축일 뿐이다.

 

프리고진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 법칙이 자연계의 '가역성(되돌릴 수 있음)'만 설명하는 반쪽짜리 과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에 기반하여, 자연계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산일(散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우주는 되돌릴 수 없는 한 방향으로만 진화하며, 이를 통해 물리 법칙 안에 시간의 화살과 우주의 창조성을 복원시켰다.

 

역학(力學)은 자연이 행하는 모든 것을 똑같은 과정에 따라 해체할 수 있다. 가령 종이 위에서 항성들은 거꾸로 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동시성의 개념은 그 어떤 원칙상의 혼란도 야기하지 않는다. 두 명의 실험자는 그들의 시계를 동시에 작동시켜 동시성을 갖게 할 수 있다. 단지 빛으로 신호를 교환하기만 하면 된다. 뉴턴에 의하면 빛은 무한 속도로 퍼져가기 때문에 이 신호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두 실험자는 시계의 동시성이 그대로 유지 됨을 확인하여 그들의 개인적 시간이 아닌 보편적이며 공통된 시간을 창조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단 하나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뉴턴의 시간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밀도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 시간은 영원하며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시간이므로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항상 동일하게 흘러간다. 미시방정식(물리학의 분자·원자 수준의 법칙)은 시간 반전 대칭성을 가지기 때문에 가역적이고, 거시방정식(열역학이나 유체역학 등)은 확률적 통계와 엔트로피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비가역적이다. 거시방정식은 미시방정식에서 비롯된다.

 

프리고진은 시간이 발명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베르그송의 경구(驚句)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에 발명품이란 망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베르그송이 시간은 발명품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이유는 그가 보기에 진짜 시간이란 매 순간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절대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 철학의 정수인 [창조적 진화]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는 일리야 프리고진이라면 시간의 화살표는 없지만 거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한 화살표가 있다는 환상이 생긴다는 말 대신 시간의 화살표는 있지만 미시적 층위에서는 시간의 화살표가 없다는 환상이 생긴다고 말할 것이라 말한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도 통계역학의 기초를 다지던 루트비히 볼츠만의 H-정리(H-theorem)와 거시적 비가역성(시간의 일방통행성)에 대해 강력한 논리적 이의를 제기했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푸앵카레의 영원회귀는 주기가 너무 길어서 사실상 비가역성과 맞먹는다.

 

저자는 중력과, 오늘날 훌륭한 중력이론인 듯 여겨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서도 논한다. 그의 체계에서 중력은 우주의 서로 다른 물질적 내용물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 자체의 기하학적 속성이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중력을 언급하며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자기 시간을 갖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말은 물질이 존재하며 가지는 무게(중력)라는 속성이 단순히 아래로 떨어지는 성질이 아니라 그 존재가 우주 속에서 시간과 관계를 맺는 독특한 방식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무게가 없다면(빛처럼 질량이 없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 채 시공간을 최고 속도로 통과하지만, 무게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리듬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의 원칙들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원칙들은 아직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파동함수를, 서로 다른 여러 항들의 합이라 정의한다. 모든 물리적 체계를 모든 가능한 상태들의 합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첩원리라 불리는 것의 직접적인 결과다.

 

합(+)의 형태로 중첩되어 있는 여러 개의 파동함수들 중에서 측정 후에 선택된 하나의 파동함수는 실제로 측정된 에너지의 값과 일치하므로 그대로 존속한다. 이때 우리는 파동함수가 측정에 의해 축소되었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에서 특정한 속성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측정 그 자체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나이도 같고 흔히 약혼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못해 짝짓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간이 개념의 보편성이란 없으며 시간을 중심으로 한 이론적 통일성도 없다고 말한다. 시간의 화살통의 목록은 작성했으나 우리가 본 것은 단지 화살의 동강들(열역학적, 우주론적, 양자적) 단편들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현상학자 후설은 미래는 기다림의 대상, 현재는 주의의 대상, 과거는 기억의 대상이라 말했다. 시간에 대한 베르그송의 생각은 양자물리학의 시간론과 잘 들어맞는다. 베르그송은 상대성이론은 비판했고, 양자역학은 긍정했다. 공간은 우리가 지닌 힘의 표시이자 그 증거이기도 하다.우리는 공간을 정리할 수도 있고 개조할 수도 있다. 공간 속에서 모든 방향으로 온갖 속도로 돌아다닐 수도 있으며 지그재그로 갈 수도 있고 공간의 외양과 형태를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오히려 우리의 나약함의 표시이다.

 

시간은 우리가 어느 때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산책 장소가 아니다. 시간은 유순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시간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우리에게 자신을 강요한다. 시간은 서서히 조금씩 우리 모두를 거의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한 불로 파멸시킨다. 우리의 무능함을 상징하는 시간, 그것은 우리 인간 조건이 거역하지 못할 경계이다. 저자는 인간의 권한이 인간에 대한 저주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는다.

 

저자는 어떤 생각들은 우리를 시간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다른 생각 들은 우리를 시간으로 이끌어들인다고 말한다. 고엽이라는 샹송에 나오는 “낙엽이 무수히 쌓이네”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우수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때 시간은 텅 빈 허전함이 되며 우리를 가을의 블루스 속에 천천히 잠들게 한다. 가을은 언제나 무언가의 종말이어서 우리 자신의 종말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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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의 저자 쥘리앙 보브로프는 흔히 물리학자들이 거만한 눈으로 동료 화학자들을 대하는 것은 아마도 두 학문이 지닌 역사적 기원의 차이에서 기인한 현상일 것이라 말한다. 보브로프의 말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탄생한 물리학은 세계에 대한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을 제시했지만 화학은 연금술사 덕분에 여러 의식(儀式)으로 가득한 마법 세계에서 첫 발을 떼었던 역사적 차이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그런데 양자 물리학이 탄생한 이후 원자와 전자의 행동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화학적 결합과 반응도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복잡한 현상이나 개념을 그것을 이루는 더 단순한 하위 요소나 근본적인 법칙으로 쪼개어 설명하는 환원주의(Reductionism)가 문제인데 양자역학을 통해 화학을 설명해 낸 것은 하위 요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상위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의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사례(긍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전자야말로 빛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리언 레더먼과 크리스토퍼 힐은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에서 전자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며 입자이면서 파동이라 말했다. 그들에 의하면 전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 양자(量子) 상태다. 전자가 양자 상태(Quantum State)라는 말은 전자를 단순히 입자다 또는 파동이다 같은 이분법적 틀로 대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공존하는 미시 세계 고유의 완전히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관측하기 전에는 파동처럼 퍼져 있는 확률로 존재하다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처럼 특정한 위치에 모습을 드러내는 양자역학의 신비로움을 잘 나타낸 표현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 [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등은 최근 내가 읽은 물리학 책의 목록이다. 나에게 전자를 주제로 한 책은 없다. 다만 아직 읽지 못한 일본의 이학 박사 사이토 가쓰히로의 [한 권으로 이해하는 원자 소립자 양자의 세계]란 책이 있다. 


최근 일본의 물리학 석사, 공학 박사 에마 가즈히로의 [전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 물질·양자·생명을 움직이는 작은 입자]란 책이 출간되었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목차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제1장 전자는 자연계에서 ‘가장 작은 부품’, 제2장 전자의 베일이 걷히면서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제3장 전자가 보여주는 양자역학적 운동, 제4장 화학에서도 주인공은 전자, 제5장 금속, 절연체, 반도체, 그리고 초전도체, 제6장 생물 몸속에서도 대활약하는 전자 등이다. 양자, 생명 등의 키워드가 눈길을 끈다. 제4장 화학에서도 주인공은 전자는 앞서 예시한 쥘리앙 보브로프의 말을 뒷받침한다. 


분자생물학자 찰스 코켈은 [생명의 물리학]에서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히 원자에 전자를 하나씩 추가하면서 입자의 종류를 늘릴 수 없다. 전자는 자신과 똑같은 다른 전자 옆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은 일란성 쌍둥이를 생일 잔치에서 나란히 앉히는 것과 비슷하다. 쌍둥이들은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하며 친구들에게 독자적 존재로 대접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무작정 전자 옆에 전자를 쌓을 수는 없다. 전자 또는 모든 페르미온이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이 원리를 파울리의 배타 원리라고 부른다....그렇다면 원자 안에 나란히 있는 두 전자가 서로 똑같지 않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성질 중 하나는 전자의 스핀이다. 전자의 스핀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 둘은 다르다. 쌍둥이에게 자신을 개인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것처럼 두 원자는 이제 파울리의 원리를 따를 수 있다...”


[전자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는 원자와 양자역학부터 화학 결합, 금속과 반도체, 초전도체, 생명 현상까지 따로 배웠던 과학 지식이 전자라는 하나의 열쇠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기대가 크다.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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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쥘리앙 보브로프 지음, 김희라 옮김, 이재일 감수 / 북스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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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양자(量子)다. 전자는 너무 빨라 우리는 그 움직임의 흔적만 볼 수 있다. 전자는 뿌연 증기처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전자는 흐릿하고 미세하며 부피를 가진 듯하지만 측정하는 순간 갑자기 하나의 입자로 변한다. 전체성 또는 양자 물리학의 미스터리가 이미 이 기이한 장면에서 작동하고 있다. 흐릿한 영역이 파동 함수다. 전자의 위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르다.

 

이렇게 기이한 상황이 전자나 원자처럼 극히 작은 차원에서만 발생하고 테니스공이나 모래 아래에서는 생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자 물리학의 위대한 이론가 리처드 파인만은 강의를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누구도 자신을 속이지 않고서는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다." 닐스 보어도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양자 이론에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파동 함수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측정하려 했다는 행위가 그것을 즉시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작은 차원의 세계는 양자적이며 파동과 입자 사이 어딘가에서 아주 뜻 밖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작은 차원의 세계가 양자적이란 말은 미시적인 크기의 차원에서는 거시 세계의 연속적인 물리법칙이 통하지 않고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양자라는 덩어리 형태로만 존재하며 확률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이 각각의 광자가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는 이야기를 했다면 루이 드 브로이는 물질을 이루는 입자가 파동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물질파는 해당 물체의 크기가 약 10억분의 1m 정도로 아주 작고 가벼워야 한다. 파동함수는 단순한 파동이 아니라 존재할 확률이다. 파동 함수는 반드시 어디에서나 같은 값은 아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결정론적인 꿈을 산산이 부순다. 전자의 위치를 치밀하게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는 슈뢰딩거 방정식은 완전히 결정론적이라 말한다.

 

이것을 이용하면 파동 함수의 형태와 시간에 따르는 변화를 매우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우연을 개입시키는 것은 오로지 최종 단계인 측정을 할 때다. 반대로 입자의 에너지 값을 정하고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 계산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으며 이 값은 이후 실험을 통해 완벽히 확인된다. 양자 물리학은 흐릿한 것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며 심지어 역학이나 광학보다도 정확하다.

 

얻고자 하는 것을 잘 선택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입자의 에너지를 악보 형태로 표현한다. 양자화는 불연속적인 세계를 표현하는데 이 세계는 잘 분리된 층계참들로 이루어져 있고 한 층계참에서 다른 층계참으로 솟아오를 가능성은 있지만 두 층계참 사이에 있는 것은 절대 금지된다. 과학에서는 유추의 미에 눈이 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원자가 태양계와 닮아 있다는 아이디어를 버리라고 말한다. 파동 함수의 원형들을 오비탈이라고 부르는 것은 행성의 궤도를 연상시킴으로 그릇된 명칭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전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문자 그대로 상호 침투하며 합쳐지려는 구름 같다고 말한다. 이것이 원자를 표현하기 까다로운 이유다. 산소 원자는 우리들의 몸, 대서양, 화성 또는 이 책 등 어디에서 나온 것이든 언제나 정확히 같은 특성과 같은 형태를 갖는다. 이것은 물질의 동일성이라고 한다. 원자에 핵심적 특성을 부여해 이 원자를 비슷한 다른 것과 구별 짓는 것은 사실 각 원자의 전자 중 맨 마지막 전자다.

 

오비탈의 다양성과 원자들이 서로 합쳐지는 방식의 다양성 덕분에 액체, 기체 또는 고체, 금속, 절연체 단단하고 무른 물체, 색깔, 광채가 나는지, 투명한지, 자성을 띠는지 등 여러 양상이 나타난다. 기체를 들뜨게 하면 기체의 전자들은 갑자기 더 높은 에너지로 도약해 형태를 바꾼다. 그리고 잠시 후 처음 상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하면서 전자들이 빛을 내는데 이것이 우리가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빛이다. 빛의 색깔은 전자들이 받았다. 되돌려준 에너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보라색은 네 번째 에너지 준위와 일치하고 파란색은 세 번째 에너지 준위와 일치하는 식이다.

 

불확정성원리를 적용하면 열역학은 심지어 절대 0도에서도 원자들이 계속해서 조금씩 움직일 거라고 예상한다. 원자들은 0점 에너지를 가진다. 구체적이며 놀라운 결과로 절대 얼지 않는 액체 헬륨이 존재한다. 불확정성원리가 위치와 속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와 시간도 이 원리와 관련이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불확실해지는 것은 바로 에너지다. 에너지는 크게 변동하기 시작하는데 때로는 미세하게 때로는 엄청나게 요동친다. 이 기이한 유령 에너지는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심지어 진공에서도 이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진공의 양자적 요동이라고 한다. 파동항수가 둘로 나뉠 때 일부는 벽을 통과하고 나머지 일부는 튕겨 나온다는 것이 입자가 둘로 나뉜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입자는 측정되면 때로는 왼쪽에 때로는 오른쪽에 물질화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관련된 확률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이용해 계산한다. 파동이 벽을 통과할 확률은 장벽의 높이, 입자의 에너지와 질량에 달려 있다. 장벽이 높을수록, 입자가 무거울수록 또는 입자의 에너지가 작을수록 장애물을 뛰어넘기가 더 어렵다.

 

이것은 승마 경기에 나선 말의 경우와 같다. 그런데 양자 입자가 가볍고 빠르면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다. 이것을 터널 효과라고 한다. 장벽에 갑자기 구멍이 생겨 가끔 입자가 통과하도록 해주는 거라고 비유할 수 있다. 터널효과의 원인은 입자의 파동성이다. 양자 파동이든 빛의 파동이든 파동이 거울 같은 벽으로 보내지면 이것은 반사된다. 하지만 파동이 튕긴 거울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파동이 전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파동이 아주 작은 일부만 거울의 두께 속으로 침투해 그곳에서 거의 즉시 엄청난 양이 사라져버린다.

 

이 작은 잔여물이 소멸파다. 효과는 아주 미약하다. 빛의 파동은 반사면에서 기껏해야 몇 백 나노미터 정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양자 파동 함수가 장벽에 도달하면 반사되지만 조그만 일부는 장벽의 두께 속으로 들어간다. 터널 효과가 없다면 인류는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터널 효과 덕분에 우리의 태양이 빛나기 때문이다. 터널 효과 덕분에 두 양성자는 결국 충분히 가까워져 태양 안에서 융합한다. 측정은 양자 이론의 가장 까다로운 주제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실험자가 무엇을 하든 입자를 찾아내고자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입자에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쳐 갑자기 그것의 파동 함수를 붕괴시킨다. 결잃음은 왜 양자 입자가 환원되어 파동성을 잃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 몸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각기 양자적이고 파동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점이 우리 몸에도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 몸의 원자들은 같은 보조를 취하지 못한다. 우리 몸에서 나는 열, 몸에 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원자, 그리고 이것들의 끊임없는 운동 등 모든 요소가 즉시 결잃음을 유발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양자적 발현을 막는다.

 

우리는 파동을 닮아 있지도 않고 두 슬릿을 통과해 간섭할 수도 없으며 결잃음 때문에 덜 중첩되는 존재도 아니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인과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의문시 될 정도로 우연이 고유한 특성처럼 보인다. 저자는 세 개의 해석을 말한다. 닐스 보어의 코펜하긴 해석, 루이 드 브로이와 데이비드 봄의 파일럿파 해석, 다세계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 물리학과 고전 물리학의 경계가 어디인지 전혀 말해주지 못하며, 파일럿파 해석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과학자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관점은 기권이다. 양자 물리학을 하려면 확률과 비결정론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해석에 의존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측정하고 계산하고 예측해서 결국 당신이 얻은 결과를 발표하면 된다. 태양의 흰빛은 다양한 색깔의 파동이 중첩되는 것이다. 빗물 방울이 이 색깔들을 분리해 각 색의 파장에 따라 경로를 바꾼다. 이런 식으로 무지개는 빨강에서 보라까지 색깔별로 하늘에 흩어진다. 중첩 원리는 다양한 성질의 모든 파동에 적용된다.

 

모든 양자적 물체는 파동처럼 움직이므로 양자적 물체 역시 이 현상과 관련이 있다. 파동 함수는 진짜 진동이 아니어서 확률만 설명한다. 측정하면 파동이 한 점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이 입자를 동시에 두 곳에서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 전자가 실제로 동시에 두 곳에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 전자가 모든 면에서 동등한 두 경로 중 어느 하나를 자유롭게 통과해 간섭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저자는 연약한 중첩 상태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입자를 측정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중첩은 양자적 특성 대부분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중첩 덕분에 입자는 동시에 두 가지 상태에 있을 수 있으며 각 상태는 고유한 에너지 준위를 갖는다. 이때 에너지 값은 두 준위의 중간값이 아니라 이 값인 동시에 저 값이다. 중첩은 스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물체는 어떤 크기일 때까지 동시에 두 상태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든 에르빈 슈뢰딩거다.

 

그는 슈뢰딩거 고양이라는 유명한 실험을 제안했다. 저자는 어떤 물체가 이 크기 이상으로는 양자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정확한 경계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첩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 있는 것은 아주 단순한 벤젠 분자다. 이 유기화합물은 다양한 플라스틱 제조에 쓰인다. 이곳의 기하학적 구조는 단순하다. 탄소 여섯 개로 이루어진 육각형 모양이며 각 탄소는 팔을 뻗어 수소 하나를 매달고 있다.

 

탄소는 매번 어떤 이웃과 함께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전자를 공유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떻게 결정할까? 사실은 선택하지 않는다!(149 페이지) 수소와 산소 원자들이 서로 결합할 수 있는 것은 양자 중첩 덕분이다. 이들 전자의 스피는 동시에 위 방향과 아래 방향을 향한다. 중첩은 가장 단순한 전쟁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고체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얽힘은 이론을 통해 완벽히 설명될 뿐 아니라 30년 전부터 해온 모든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미스테리라는 말은 얽힘이 우리의 직관을 넘어서 있다는 뜻이며 이전 장들에서 설명한 다른 역설들보다 더 역설적이라는 의미이다.

 

전자는 전하량, 질량, 그리고 스핀을 갖는다.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멀리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두 입자가 멀리서 즉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국소성 원리에 의지했다. 이 원리는 어떤 물체가 지금 있는 근접한 환경을 통해서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틀렸다. 얽힘에 관한 실험은 사실 양자 물리학이 국소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의식이 없이 양자 원자와 양자 입자로 만들어졌고 이 의식이 우주 전체와 얽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리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얽힘은 지극히 연약한 현상이다. 얽힌 두 입자 중 하나와 경로에 있는 다른 원자들 간의 아주 작은 상호작용도 즉시 효과를 파괴한다. 여기서도 결잃음이 작동한다. 이야기들을 읽을 때 우리는 제한 없는 즉각적 소통을 꿈꾸게 된다.빛이 화성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인 4분을 기다리지 않고도 화성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얽힘을 이용해 빛의 속도로 능가할 수 있을까? 답은 불행해도 아니오다. 전달되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쓸모없고 그저 수많은 양자 역설을 탐구하는 내 효용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여러 기술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이미 상용화된 기술도 있다. 구별 불가능성은 우리 세계의 차원에는 존재하지 않는 순전히 양자적인 특성 중 하나다. 그러므로 그것을 우리의 고유한 기준과 직관으로 살펴보기는 어렵다. 동일한 페르미온 두 개는 같은 지점에 있을 수 없다. 보손은 다르다.

 

페르미온은 외로운 늑대다. 보손은 양자 물리학의 양이어서 떼로 이동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서로 겹치게 쌓여 있기도 좋아한다. 스핀은 영어로 돌다(회전하다)라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자의 스핀은 전자의 자체적 회전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자는 부피가 없는 점이기 때문이고 빛의 속도보다 빨라야 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핀은 전자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양자역학적 성질을 의미한다. 스핀은 언제나 정수 또는 반 정수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잘 조율된 물리량일 것이다.

 

정수(整數) 스핀을 갖는 원자는 모두 보손, 반정수(半整數) 스핀을 갖는 원자는 모두 페르미온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광자를 매개로 서로 끌어당긴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여전히 이 책을 읽고 있는가?(162 페이지), 여러분을 이해시키지 못했을까?(183 페이지) 등이다. 저자는 배타 원리 덕분에 원자 속 전자들의 파동함수가 다양해지고 그 결과 원자도 다양해진다. 우리 우주가 풍요로운 것은 그 때문이다.(186 페이지) 또한 이 원리는 분자 대부분의 존재를 보장해준다.

 

공유결합은 전기적 상호작용과 배타 원리가 교묘하게 섞인 결합이다. 흔히 물리학자들은 거만한 눈으로 동료 화학자들을 대한다. 아마도 이것은 두 학문의 역사적 기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물리학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탄생했고 이들은 세계에 대한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을 제시했지만 화학은 연금술사 덕분에 여러 의식으로 가득한 마법 세계에서 첫 발을 떼었다. 양자 물리학이 탄생한 이후 카드 패는 다시 섞였다. 화학과 물리학은 하나의 동일한 학문이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189 페이지) 마지막 문장은 양자역학의 탄생으로 원자와 전자의 행동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화학적 결합과 반응 역시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원자의 움직임은 드브로이 파장이라는 특수한 물리량에 의존한다.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드브로이 파장에 의존한다는 의미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에 이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보손 기체의 움직임을 해석한 최초의 인물이다. 저자는 물리학계의 7대 불가사의를 고르라고 하면 주저 없이 보스 아인슈타인 응축을 꼽을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 물리학의 가장 큰 진전은 뜻 밖의 접근으로부터 나온다. 통찰력 있는 연구자들은 겉보기에 별개인 현상들 속에서 공통 구조를 찾아낸다. 그들은 이 그럴듯하지 않은 조합에 근거해 새로운 통일적 이론을 쌓아오는 데 열중한다. 뉴턴은 물체의 추락과 행성의 운동이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전역학을 만들어냈다.

 

보손과 페르미온을 구분 짓는 것은 스핀이다. 이것이 정수이면 보손, 반정수이면 페르미온이다. 전자는 페르미온이다. 스핀이 2분의 1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 둘이 쌍을 이루면 이 쌍의 스핀은 정수가 되고 보손처럼 움직일 것이다. 저자는 기초 연구의 시간은 기업가의 시간이 아니며 언론의 시간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한다. 그 시간은 아코디언 연주다. 연구자들은 흔히 수십 년에 걸쳐 한 걸음씩 아주 천천히 전진을 이루고 그러다 갑자기 어떤 발견을 하면 그것은 결국 새로운 성장을 동반해 연구 분야에 깊은 변화를 일으킨다.

 

저자는 현재의 양자 컴퓨터는 거의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전자공학은 우리에게 개척해야 할 흥미로운 연구의 장, 극한에 도전하는 양자물리학, 얽힘 상태에 있는 수백 마리의 슈뢰딩거 고양이를 제공한다. 아마도 그렇게 환상적인 양자 컴퓨터는 결코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253 페이지) 양자 물리학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고 길들여야 그게 뭔지 제대로 알 수 있다.하지만 제대로 아는 그때부터 우리는 깊은 당혹감에 빠진다.

 

양자역학은 물질의 특성 대부분을 설명해준다. 물질의 내구성, 분자의 안정성, 자성 등 우리 일상의 모든 요소 역시 양자를 기반으로 한다. 마찬가지로 LED에 공급되는 전류는 그 안에 전자를 들뜨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 전자들은 즉시 여분의 에너지를 내놓으며 광자를 방출한다. 이 전구의 색깔은 전자가 방출한 에너지 양에 의해서만 달라진다. 에너지 차이가 가장 적으면 붉은색, 가장 크면 파란색이다.

 

책 내용들 중 인상적인 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크립토크롬을 양자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양자물리학에 반한 이유는 이 학문이 가장 소중한 것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여행으로의 초대다. 이 학문은 우리에게 특이한 산책을 제안한다.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의 벽을 통과할 때 발견하는 마법 세계의 방식처럼 양자 물리학은 모든 게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마력의 세계, 준엄하고 일관적이지만 완전히 엉뚱한 새로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제시한다.(27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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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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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Eleanor Atwood; 1939년 ~ )는 현대 캐나다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시인, 에세이스트, 평론가다. 2000년 요청받은 윌리엄 엠프슨에 대한 강의에서 파생된 [글쓰기에 대하여]는 글쓰기보다 작가의 정체성 및 위상, 독자의 의미 등을 주제로 삼은 책이다. 말할 것 없이 작가는 글쓰기의 주체이고, 독자는 “대상이 없는데 글을 쓰는 소설가는 드뭅니다.”(184 페이지)란 저자의 말대로 작가와 함께하는 존재다. 저자는 자신은 작가이자 독자일뿐 학자도 아니고 문학 이론가도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작가들에게 왜 글을 쓰냐고 묻는 대신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았다. 저자는 글쓰기란 어두움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 운이 좋으면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또는 충동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책은 그런 어둠 그리고 욕망에 대한 책이라고 말한다. 어떤 작가도 어려서부터 작가에 대한 편견이 전무한 순백의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그에 걸맞게 책과 고독이 함께했던 어린 시절과 자신이 속했던 가족 이야기를 펼친다.

 

저자가 맞이한 2차 대전 종전 후인 1940년대 후반은 더 이상 전시 생산 체제에 동원될 필요가 없어진 여성들이 무리지어 집으로 돌아와 베이비붐이 일어난 때이다. 저자는 1956년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중 갑자기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은 후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처음 시집을 낸 것은 26세 때였다. 문예지를 통해, 그리고 문예지에 글을 기고하는 교수님들을 통해 감춰져 있던 문을 찾았다고 말하는 저자는 노스럽 프라이, 마셜 매클루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노스럽 프라이와 마셜 매클루언은 20세기 중후반 학계를 흔들었던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대표적인 대사상가들이자 토론토 학파(Toronto School)를 이끈 주역들이다.

 

저자는 문을 통과해 시인들이 우글거리는 개미총(塚)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보증받은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 보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일까? 어떻게 해야 그만한 수준이 됐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그나저나 수준이라는 건 뭘까?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말인데 훌륭하다는 건 뭘까? 누가 훌륭한지 여부를 결정했으며, 어떤 리트머스 시험지를 사용한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글쓰기가 다른 예술과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은 외견상 민주적이라는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표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머릿 속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그것이 바로 작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자신은 이중성의 세계에서 자랐다고 설명한다. 이중성의 세계란 저자의 실제 성장 배경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저자는 두 독립체 이야기를 한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의 존재 즉 개를 산책시키고 규칙적으로 밀기울을 먹고 세차를 하는 등의 일을 하는 존재와, 아무도 안 볼 때 그 몸을 넘겨받아 글쓰기에 사용하는, 같은 육체를 공유하지만 좀 더 희미하고 애매모호한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하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사무실 게시판에 하나의 문장이 붙어 있다고 말한다. 작품이 좋아서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파테(파이크로스트에 고기, 채소 등을 갈아 만든 소를 채우고 오븐에 구운 것)가 좋아서 오리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는 글이다. 저자는 작가는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기에 독자가 책을 읽을 때는 이미 바뀐 존재라는 의미에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중성과 관련된 쌍둥이 이야기를 한다. 그 가운데 카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는 성경이 출처여서 친근하다. 이 밖에 저자가 거론한 예 가운데 로마의 건국 신화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집트의 종교적 핵심인 오시리스와 세트도 있다. 전쟁의 신 마르스와 알바 롱가의 공주이자 제사장(레아 실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와 연관이 있다. 왕위를 찬탈한 아물리우스 왕에 의해 테베레강에 버려진 쌍둥이는 암늑대 루파의 젖을 먹고 자란다.

 

저자는 여러 문학 작품을 인용하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는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을 작품 속에 집어넣는데 이렇게 할수록 자신의 진짜 자아를 잃어버린다고 설명한다.(81 페이지) 저자는 평론가들은 곤경을 피하기 위해 소설가를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말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해당 작가가 플롯은 잘 짜지만 나머지는 별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견고하고 영속적이지만 말하기는 아니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예수를 이야기꾼으로 소개한다. 저자에 의하면 예수는 우화로 가르치지 글로 적지 않았다. 그 자신이 말씀이요, 소망하는 곳으로 흘러가는 성령인 까닭이다. 또한 예수의 적대자였던 바리새인, 서기관은 법문 즉 기록된 글을 고수한다.

 

저자의 말을 보르헤스의 말과 비교할 만하다. 보르헤스는 “....흔히 인용되는, 글은 남고, 말은 날아간다는 구절은 말이 덧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글(文語)이 항구적이고 죽은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말은 빠르고 가벼운 것, 플라톤의 말처럼 빠르고 신성한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 말로 가르쳤다.”란 말을 한 아르헨티나의 현재 작가다.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혼자이고, 이야기꾼은 배우처럼 즉석에서 관중에 반응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세대는 돈을 더러운 빨래 같이 여긴 세대라 말한다. “예술적 진실과 돈을 무 자르듯이 나눌 수 있을까요?” 저자는 자신은 한순간도 자신이 글쓰기로, 아니 자신이 쓰는 분야의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가 통과한 1950년대 캐나다는 문학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런던, 파리, 뉴욕의 변방이자 타지였다. 그러니 캐나다 작가들은 부득이하게 오롯이 예술을 위한 예술에 헌신하는 길밖엔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미국의 작가 루이스 하이드 이야기를 한다. 하이드에 따르면 진지하게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예술의 영역과 돈의 영역을 중재해줄 수 있는 중재인을 잘 얻어야 체면 구기는 지저분한 흥정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작가가 되었을 무렵에는 여성 작가, 특히 여성 시인이 되면 얼마나 고약한 일을 겪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 작가들은 낭만주의 시대에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으며 천재라는 메달을 별로 걸어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힘이 감소했다거나 세계 무대에서 위신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보다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걸출했던 여자 선배들과 비교해 자신들이 아주 허약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저자는 종류를 막론하고 예술은 종교적 의미에서 수양이라고 말한다.

 

“예술가가 모시는 신은 아름다운 형식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자 아폴론이어야 할까요? 그게 아니면 말썽꾸러기이자 사기꾼이자 도둑인 헤르메스여야 할까요?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성령을, 아니면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의 서문에 등장하는 불의 뮤즈를, 아니면 마술사 해리 후디니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야 할까요?”(157, 158 페이지)

 

저자는 갓 시인으로 등단한 스무 살 무렵의 자신에게 몸소 트럭 운전사가 되어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실제로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직접 깨닫지 않는 이상 시인으로서 어떤 위치에도 오를 수 없다고 말한 한 남자 시인을 떠올리며 자신은 예술과 삶 사이에, 고기를 넣으면 소시지가 나오듯 인과관계가 확실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술 지상주의는 신문과 정치적 반응과 시장의 힘이 공존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이자 예술과 사회 양쪽 모두 표 장사로 번 돈을 세면서 코끼리 똥으로 장식된 성모 마리아상 같은 것들을 놓고 충돌하는 곳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래전 자신의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자연을 존중하세요. 그게 여러분이 가진 전부니까요.“란 말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요즘 무엇보다도 자기 보호 차원에서 일기 비슷한 것을 겨우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독자가 누구인지 안다고 한다. 그것은 3주 후의 자신이다. 기억이 나지 않아 하는 대비책이다. 저자는 혹여 독자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해도 작가는 반드시 독자를 가정해야 하고 언제나 가정한다고 말한다. 물론 가정은 하되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너무 큰 실패와 너무 큰 성공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본문에 이런 말이 인용되어 있다. ”성공은 오직 인생 황혼기에, 그것도 오직 작은 양만 복용해야 하는 독약이다.“ 최악은 독자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복제를 했는데 오히려 복제라며 비난받는 경우다. 저자는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네‘라는 라틴어 구절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걱정이 그를 짓고자 하는 욕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왜 다른 예술이나 매체가 아닌 굳이 글쓰기가 개인의 최종적 소멸에 대한 불안과 그토록 복잡하게 연결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야기가 펼쳐지면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구부러진 것이 곧게 펴질 수도, 세월 때문에 더 구부러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길이 생긴다. 플롯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상적인 말을 한다. 모든 책의 해피엔딩도 마찬가지다. 토마스 울프의 말처럼 다시는 고향에 못 가더라도 고향에 대해 글을 쓰면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장을 만나게 된다. 책은 또 다른 나라다. 그 속에 들어갔다가도 다시 나와야 한다. 지하 세계처럼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모든 작가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얻는다.

 

계속 글을 쓰는 한 작가는 앞서 글을 썼던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된다. 동시에 그들에게 평가받고 질책 당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작가는 작가로부터 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조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죽은 자들은 과거도, 이야기도, 특정한 진실도 모두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마음껏 탐닉하려면 결국 지나간 시간에서 온 사람들과 거래를 해야 한다. 그 지나간 시간이 겨우 어제라 하더라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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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충분한 지구사 - 지구의 6대 사건부터 인류의 탄생까지 ㅣ 비주얼 사이언스 북 2
가와카미 신이치 & 도조 분지 지음, 박인용 옮김 / 전나무숲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가와카미 신이치(川上紳一; かわかみ しんいち)와 도조 분지(東條文治; とうじょう ぶんじ)의 책이다. 가와카미 신이치는 줄무늬지구과학이라는 의미의 시마가쿠(しましまがく; 縞々学)라는 학문을 만든 지구과학자다. 줄무늬지구과학을 만든 저자가 공저로 참여한 책답게 “지층의 줄무늬 모양에는 낮과 밤의 되풀이, 조수의 간만, 계절의 변화 같은 지구 표층 환경에 주기적인 되풀이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그마가 차가워져 굳은 암석에는 지구 내부의 변동에 관한 정보가 간직되어 있다.“는 문장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다.

 

”빙하 퇴적물은 빙하 작용으로 운반된 토석(土石)의 층을 말한다. 자갈, 모래, 진흙 등이 뒤섞인 퇴적물이며 층리(層理)가 뚜렷하지 않다. 빙하 작용으로 운반된 지층인지 토석류 퇴적물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었다.”란 말에도 줄무늬의 하나인 층리 이야기가 나온다. “해양 지각에는 퇴적물이 서서히 축적되는데 대양저가 형성된 지 오래일수록 퇴적물은 두꺼워진다. 중앙 해령이 대양 한가운데 있는 경우에는 원양성 퇴적물로 부드러운 진흙이나 탄산염으로 구성되지만 해구(海溝)에 가까우면 육지에서 온 사암(砂巖)이나 이암(泥巖)이 많다.“는 글에는 줄무늬로 볼 수 있는 단서보다 시간에 따른 두께 변화, 퇴적물 종류의 공간적 분포에 대한 단서가 있다.

 

대양저에 퇴적한 지층은 판이 섭입할 때 맨틀로 기어들어가지만 일부는 떨어져 나와 육지쪽 판에 붙는다. 이렇게 생긴 지질체를 부가체(Accretionary wedge 또는 Accretionary prism)라고 한다. 부가체와 오피올라이트는 관계가 밀접하다. 부가체 내부에 오피올라이트가 포함된다. 이는 과거에 바다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오피올라이트란 과거 대양 아래에 있던 해양 지각과 상부 맨틀의 파편이 판구조 운동에 의해 대륙지각 위로 밀려 올라와 드러난 암석 조합을 말한다.

 

지질학적 충격이나 강한 응력(압력)에 의해 격자가 변형되면서 형성된 미세한 층상 구조를 라멜라(lamella) 구조라 한다. 작고 얇은 판(plate) 또는 비늘(scale)을 의미하는 단어다. 석영 입자에서 보이는 라멜라 구조에서 줄무늬 단서가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지층도 태양이나 달 등의 천체 변동과 운동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줄무늬를 살펴보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면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싹틀 것이다. 지구상에는 실로 많은 줄무늬가 있으며 그들 줄무늬에는 지구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줄무늬 모양에 시간이 새겨지는 경우도 많다.

 

지구를 구성하는 부분이란 지구 내부를 구성하는 지각, 상부 맨틀, 하부 맨틀, 액체 외핵, 고체 내핵 지구 표층의 대기, 해양, 강수, 설빙, 생물권, 나아가 지구 대기인 대류권, 성층권, 또 그 상공에서 우주 공간까지 펼쳐지는 전리권, 열권과 그것들을 에워싸는 지구 자기권을 가리킨다. 이런 각각의 부분은 지구 시스템을 구성하는 서브 시스템이라 한다. 지구 환경 변동은 지구를 구성하는 서브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고유의 변동이 서브 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다른 변동과 서로 관계하여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지구 환경의 변동을 하나의 원인으로 특정 지으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나 메탄 농도의 변동은 어떻게 일어날까? 지구과학 분야에서 대기와 해양, 지각 등의 서브 시스템 사이의 물질 순환을 지구 화학 순환이라고 한다.

 

기상 관측 기기가 설치된 과거 100년의 기후 변동에 대해서는 수치가 데이터로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더 오래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기후를 복원하려면 나무 나이테, 산호, 빙상 퇴적물 등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맨틀이 대류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암석이나 광물 등이 힘을 가하면 천천히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고체 물질의 유동이나 파괴 등의 성질을 리올로지(Rheology; 유동성)이라고 한다. 맨틀 물질의 리올로지는 가해지는 힘에 따른 충격파의 진동수에 따라 달라진다.

 

지구 내부에 존재하는 지진파 속도의 불균일성이 물질의 온도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속도가 느린 영역은 고온역이며, 속도가 빠른 영역은 저온역인 셈이다. 즉 온도가 높은 영역은 맨틀의 상승류역이며 차가운 부분은 맨틀의 하강유역이기 때문에 현재 지구 내부의 불균일성을 통해 지구 내부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지구 내부를 보면 지진파의 속도가 느린 곳 즉 온도가 높은 영역은 맨틀 심부에서 표층으로 원통 모양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통 모양 구조는 대류의 플룸 형태가 유사하다. 즉 맨틀 대류의 상승류는 플룸과 비슷하다. 한편 하강류는 판으로 섭입하는 것이 특징이며 그 형태는 판 모양을 하고 있다. 물질의 온도가 높아지면 부피가 팽창하고 밀도가 감소하며 물질이 더 말랑말랑해지는 성질(강성 감소)을 갖게 된다. 지진파는 딱딱한 물질일수록 빠르게 통과하므로 온도가 높아진 고온역에서는 지진파의 진행 속도가 느려진다.

 

대륙지각은 선캄브리아대에 안정화된 순상지(楯狀地)나 탁상지(卓狀地)부터 최근의 조산운동으로 갓 생겨난 지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생긴 지괴의 집합체다. 순상지는 선캄브리아대의 지층이나 암석이 변성 작용을 받아 생긴 기반암류가 노출된 지역이며 탁상지는 선캄브리아대에 기반암류 위에 그다지 변형을 받지 않은 지층이 수평으로 두껍게 퇴적된 지역이다. 캄브리아기 이후에 형성된 조산대는 선캄브리아대의 순상지나 탁상지를 에워싸듯이 분포한다. 순상지와 탁상지를 합쳐 안정지괴(craton)라고 한다.

 

대륙 지각은 상부 지각과 하부 지각으로 나뉘며 상부 지각은 화강암질, 하부 지각은 현무암질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저자는 지구 근처에서 약 100억 개의 미행성이 생겨났고 그것이 충돌 및 파괴, 합체 및 성장을 되풀이해 현재와 같은 태양계가 생겨났을 것이라 말한다.(120 페이지) 미행성의 충돌로 방출되는 열과 휘발성 물질로 형성된 대기의 보온 효과로 원시 행성의 표면 물질은 녹는 상태가 된다. 이 시기에 행성 표면을 뒤덮고 있는 것을 마그마의 바다라고 한다. 원시 지구의 표면이 녹는 상태가 되면 밀도가 큰 금속인 철과 규산염질 맨틀의 분화가 시작된다. 철의 층은 마그마 바다의 바닥에 축적되지만 중심부에는 초기에 집적한 미분화 물질이 가득 차 있다.

 

이 미분화된 원시핵은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녹아 철과 규산염으로 분리되었든지 어느 한 시점에 한 방향으로 떠올라 파괴되어 철의 층과 교체되었을 것이다. 원소는 화학적 성질에 따라 몇몇 그룹으로 나뉜다. 철과 쉽게 결합하는 원소는 친철원소, 구리와 쉽게 결합하는 원소는 친동원소, 규산염과 쉽게 결합하는 원소는 친석원소라고 한다. 맨틀의 친철원소 과잉 문제는 지구 형성 초기 핵과 맨틀이 분리될 때 금속과 결합하기 좋아하는 원소들이 이론적 예측보다 훨씬 많은 양으로 맨틀에 남아있는 수수께끼를 말한다. 이를 지구화학 학계에서는 친철원소 역설이라고 부른다.

 

생명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등의 원자가 모인 유기물이며 유전 정보를 지니고 스스로를 복제하는 능력이 있다. 세포막에 싸여 막을 통해 에너지나 물질을 거두어들여 몸을 유지하기 위한 복잡한 대사 반응을 하고 노폐물을 세포 밖으로 버린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데 물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많은 지지를 받는 가설은 원시 지각이 현무암질이었다는 것이다. 맨틀이 대규모로 녹아 마그마의 바다가 형성되고 마그마의 바다가 식으면서 두꺼운 현무암질 지각이 분화했다는 것이다. 이 설은 실제로 원시 지각에 현무암이나 현무암에서 유래한 퇴적암이 있는 점, 변성 정도가 높은 지각에 함유된 현무암이나 퇴적암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유력한 견해로 간주된다.

 

원시 대기 중에는 산소가 전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현재 지구에서 산소 분자는 광합성 반응의 부산물로 식물이 만들고 있다. 이러한 광합성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지구에는 산소를 만드는 화학반응이 있었다. 그것은 대기 상층에서 일어난 일련의 광화학반응에 의한 물의 분해 반응이다. 지구 대기 상층(중간권 및 열권)에서 태양의 강한 자외선(UV) 에너지를 흡수하여 물 분자가 산소와 수소 등으로 쪼개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에 생명이 언제 출현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질학자들이 시생대 암석에 노출된 지역을 조사하고 퇴적암 속에 검은색 처트가 끼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요하게 지질 조사를 거듭했다. 처트는 미세한 석영(이산화규소) 결정으로 이루어진 매우 단단하고 치밀한 암석이다. 이 암석은 주변 환경의 변화나 높은 열, 압력에도 잘 변하지 않아 수십억 년 전의 아주 미세한 세포 구조를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최고의 타임캡슐 역할을 한다. 처트가 검은색을 띠는 이유는 그 안에 탄소 성분의 유기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검은색 처트는 그 옛날 그곳에 생명체(주로 단세포 미생물)가 살았고, 그 사체가 암석 속에 갇혔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실제로 지질학자들은 호주 서부의 바버턴 그린스톤 벨트나 필바라 크라톤 같은 시생대 노출 지역의 검은 처트층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 결과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인류 가장 오래된 세포 화석인 마이크로화석(미화석)과 이들이 만든 거대 구조물인 스트로마톨라이트의 흔적을 찾아내어 지구 생명의 출현 시기를 약 35억 년 전(또는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줄무늬 철광상(호상철광층; BIF)은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산소 오염(대산소사건)의 명백한 물증이자 기록이다. 초기 지구의 바다에는 산소가 없었기 때문에 땅에서 씻겨 내려온 철분이 이온 상태로 엄청나게 많이 녹아 있었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뿜어낸 산소가 바닷물 속의 철분과 만나자 철이 격렬하게 산화(녹슬기)되기 시작했다. 녹슨 철(산화철)은 물에 녹지 않아 붉은 가루가 되어 바다 기저로 가라앉았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번성하여 산소가 많을 때는 붉은 산화철층이 쌓이고, 시아노박테리아의 활동이 주춤하거나 환경이 바뀔 때는 미세한 석영 입자가 쌓여 검은색 처트나 회색 규암층이 쌓였다. 이 과정이 수억 년간 반복되면서 겹겹이 층을 이룬 줄무늬 철광상이 만들어졌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활동이 왕성해지면 산소에 의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녹슨 철(산화철)이 실리카를 제치고 압도적으로 많이 쌓인다.

 

철의 침전 속도가 실리카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다. 실리카는 그냥 물이 가득 차서 서서히 흘러넘쳐 쌓인 것이라면 철은 산소라는 기폭제를 만나 순간적으로 거대한 고체 덩어리로 변신해 무거운 무게로 바다 바닥에 내리꽂힌 것이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활동이 줄어들었을 때 처트(규산염) 층이 쌓인 이유는 당시 원시 바다가 이미 실리카(석영 성분)로 가득 찬 포화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활동이 왕성했다가 소극적이었다를 반복한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태양광(낮과 밤)과 계절에 따른 환경 변화 때문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수온이 높고 일조량이 풍부한 시기에는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활발히 활동하지만 온도가 낮아지거나 환경이 불리해지면 성장과 대사 활동을 멈추고 소극적인 상태로 변한다. 여름에는 수온이 높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시아노박테리아가 폭발적으로 증식한다. 광합성이 매우 활발해지면서 물속의 칼슘 성분을 침전시키고 끈적끈적한 점액질 성분을 많이 분비하여 주변의 모래나 유기물 퇴적 입자들을 강하게 붙잡는다. 이 시기에는 성장 속도가 빨라 두껍고 느슨한 형태의 밝은 색 층이 만들어진다. 겨울에는 수온이 낮아지고 해가 짧아지면서 광합성 효율과 대사 활동이 급격히 떨어진다. 박테리아의 성장과 증식이 거의 멈추거나 매우 느려지며 퇴적물을 붙잡는 힘도 약해진다. 이 시기에는 미생물들이 조밀하게 뭉친 상태에서 미세한 먼지나 유기물이 천천히 내려앉아 매우 얇고 조밀한 어두운 색 층을 형성한다.

 

결국 시아노박테리아는 자신의 생명 활동을 통해 몸 자체의 흔적을 스트로마톨라이트에 나이테처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바다 화학 구조를 바꾸어 철광층(호상철광층)에도 거대한 계절적 흔적을 새겨놓았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약 35억 년 전에 지구에 등장한 이후 단 한 번도 멸종하지 않고 진화와 생존을 이어온,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물 중 하나다. 현재는 흔히 남세균 또는 남조류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린다. 시아노박테리아는 녹조를 일으키는 핵심 생물이다.

 

두 저자는 동일과정설이란 말 대신 제일설이란 말을 쓴다. 두 단어는 영어로 동일하게 Uniformitarianism을 번역한 것이지만 제일설이라는 한자를 쓰는 데는 지질학적·과학 철학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동일과정설 (同一過程說)은 과거와 현재의 과정(Process)이 똑같다는 뜻에 치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과거에도 지금처럼 늘 잔잔하게 퇴적물만 쌓였을 뿐, 소행성 충돌이나 거대 화산 폭발 같은 격변은 없었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제일설 (齊一說)은 가지런할 제(齊)와 한 일(一)을 써서 모든 시대에 걸쳐 자연의 법칙이 한결같고 균일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든 지금 잔잔한 비가 내리든, 그 기저에 흐르는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은 우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Uniform) 적용된다는 본질에 더 부합하는 번역이다.

 

현대 지질학은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충돌이나 지구 전체가 얼어붙었던 눈덩이 지구 같은 돌발적인 대격변도 지구 역사의 일부로 수용한다. 과정(Process)은 급격하게 변했지만 그 격변을 일으킨 역학적 법칙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의미다. 줄무늬 철광상과 눈덩이지구론은 아주 큰 연관이 있다. 줄무늬 철광상은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가설을 증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지질학적 증거다. 지구 역사에서 줄무늬 철광상은 약 18억 년 전에 바닷속 철이 모두 소진되면서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약 7억 년 전 지층에서 수억 년의 공백을 깨고 줄무늬 철광상이 갑자기 다시 등장했다.

 

이 미스터리를 완벽하게 풀어낸 것이 바로 눈덩이 지구론이다. 약 7억 년 전 지구 전체가 얼어붙자 바다가 산소와 차단되어 무산소 상태가 되었다. 이 기간에 해저 화산에서 나온 철 이온이 산화되지 않고 바닷속에 엄청난 농도로 축적되었다. 화산 가스로 인한 온실효과로 얼음이 순식간에 녹으면서 대기 중의 산소가 바다로 유입되었고, 살아남은 시아노박테리아가 폭발적으로 광합성을 하여 산소를 공급했다. 바다 가득 쌓여 있던 철 이온과 새로 공급된 산소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막대한 양의 산화철(녹)이 침전되어 줄무늬 철광상을 만들었다. 완전히 얼어붙은 극한 환경 속에서도 빛 없이 철을 산화시키는 화학합성 미생물들이 얼음 밑에서 활동하며 철광상 형성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빙하퇴적물이 고위도(극지방)가 아닌 저위도(적도 부근) 지역의 지층에서 대량으로 발견되는 핵심 이유는 과거 눈덩이 지구 시기에 대륙들이 적도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뚜껑 탄산염암, 저위도 빙하 퇴적물, 호상철광층의 재등장 등은 지구 전체 동결의 증거다. 얼어붙었던 지구 속에서도 물이 흐르던 시기나 공간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보완적 증거는 잔물결 구조다. 잔물결 구조를 연흔(漣痕)이라 한다.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선캄브리아 시대 말기인 약 6억 3,500만 년 전 ~ 5억 4,100만 년 전(에디아카라기)에 번성했던 지구 최초의 대형 다세포 생물 군집이다.

 

에디아카라 생물군의 신체 대칭성은 현대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기괴하고 독특한 특징 중 하나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대칭성뿐만 아니라, 현대 생물계에서는 거의 완전히 사라진 전무후무한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피자의 3등분이나 메르세데스-벤츠의 로고, 혹은 바람개비처럼 중심축을 기준으로 몸이 정확히 3방향(120도씩)으로 대칭을 이루는 구조입니다. 대표적으로 트리브라키디움이라는 원반형 생물이 이 대칭성을 갖는다.

 

페름기 후기에서 트라이아스기 초기에 형성된 지층의 유기물이 풍부한 검은색 이암이 끼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지층은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멸종 사건인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의 원인과 당시의 파괴적인 지구 환경을 규명하는 핵심 단서로 평가받는다. 검은색 이암(셰일)은 퇴적 당시 산소가 극도로 부족한 무산소 또는 빈산소 환경이었음을 나타낸다. 페름기 말 시베리아 트랩의 대규모 화산 분출로 이산화탄소가 급증하면서 지구 온난화와 해양 산성화가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전 지구적인 해류 순환이 멈추어 바다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지 못했다.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는 유기물이 썩지 않고 고스란히 퇴적되어 지층이 검은색을 띠게 된다.

 

숯이나 석탄이 검은색인 것처럼 탄소 성분이 지층을 검게 물들이는 것이다.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이며 최초로 도구를 사용한 호모 하빌리스의 계통을 따랐다. 호모 하빌리스에 이은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사용하는 능력을 획득했다. 두 저자는 현생인류에 이르러 대뇌겉질이 크게 발달하고 지능이 높아진 것은 격심한 빙하시대의 도래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말을 한다. 빙하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두 저자는 과학이란 어둠에 싸여 있는 46억 년의 지구 역사에 빛을 쬐는 도구라 말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면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연구의 싹을 발굴하여 크게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행을 따라 연구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구과학은 아직 어두운 부분에 새로운 학문 분야가 잠자고 있음이 분명하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풍조 가운데서도 착실한 연구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건전한 과학과 사회의 파트너십이 더욱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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