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과학의 첫 문장‘을 읽고 있다. 깊이와 재치를 함께 실감할 수 있는 책이다. “과학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약하다. 라이엘이 말한 길고 점진적인 역사는 딱히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같은 표현이 특히 그렇다.


’과학은 재미 있는 이야기에 약하다‘는 문장은 ’대중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진실을 알려고 한다’고 읽어도 될 듯 하다. 라이엘은 제임스 허턴과 같은 주장(동일과정설)을 한 사람이다. 다윈이 비글호를 탔을 때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가지고 간 것은 유명하다. 다윈은 지질학자이기도 했다.


본문에 “(제임스 허턴의) 동일 과정설과 (조르주 퀴비에의) 격변설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나일스 엘드리지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 punctuated equilibrium)”이란 말이 나온다. 중간이란 말이 마음에 걸린다.


단속평형설은 생물 종이 본질적으로는 오랜 기간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중간중간 상대적으로 빠른 굵직한 변화의 시기를 거친다는 이론이다. 단속평형설은 두 이론(동일과정설과 격변설)을 포괄하는 이론이라고 해야 옳다. 중간이 아닌 포괄 이론이라는 의미다.


punctuated equilibrium, geology 등으로 검색을 할 필요를 느낀다. 중요한 점은 포괄하는 이론이냐 중간 이론이냐가 아니라 지구 생명체의 역사가 단속평형설로 잘 해명되느냐는 사실이다.


본문에 ’지구의 변화와 지구에 사는 생물의 변화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은 별도의 학문 분야다.‘란 말이 나온다. 지구에 사는 생물뿐 아니라 지구도 단속평형설로 해명되는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협지에는 무술인들 또는 검객들이 무술 또는 검술 비서(秘書)에 큰 관심을 보여 그 책을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런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러니까. 단 차이가 있다면 나는 과학책 특히 지구과학 책에 그런다는 점이다. 오늘 플룸 구조론의 명저를 알았다. 신간이라면 당장 주문하면 되지만 문제는 그 책이 절판된 책이라는 데 있다.

     

    연천 도서관, 양주 도서관, 파주 도서관, 서울 도서관, 종로도서관, 남산 도서관 등 비치 가능성이 낮은 도서관부터 검색했는데 예상과 달리 어느 곳에도 없는 책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국립중앙도서관의 책바다 서비스에서 검색해 몇몇 도서관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신청을 앞두고 있다. 제본(製本)해 소장할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웅배 교수의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저자가 '무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 걸려 있는 사진'이라고 힌트를 준 이 곳은 달(moon)이다. ’지구 입장에서 가장 먼 곳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이 있다고 하고 바로 무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 걸려 있다고 했으니 뜬금 없지는 않다. 다만 처음부터 지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가족 사진의 위치는 어디인가?’라고 묻지 않은 것은 짐작할까봐 였을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먼 곳의 가족 사진은 1972년 아폴로 16호 미션을 통해 달에 착륙한 찰스 듀크가 남긴 가족 사진이다.

     

    달은 낭만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달은 대기권도 없고 자기장 보호막도 없는 혹독한 곳임을 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별이 반짝거린다고 느끼는 것은 지구 대기권 때문이니 대기권이 없는 달에서는 어떨까? 전혀 반짝거리지 않는다. 지구에서 보는 달은 낭만적이지만 별이 반짝거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달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DMZ 평화의 길 걷기 프로그램에서 브루스 커밍스와 신복룡 교수의 맞섬에 대해 말했다. '폭포의 굉음(roaring of the cataract)' vs '백내장 걸린 눈으로 본 철책(railing of the cataract)'이 그것이다. 


    평소에는 우리나라의 한 학자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의 부제인 ‘폭포의 굉음’을 비틀어 '백내장 걸린 눈으로 바라본 철책(鐵柵)'이라고 맞받았다고 했는데 오늘은 건국대 신복룡 교수가 그런 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가족 팀의 여성 분이 아, 그 분 제 지도 교수님이셨습니다란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도정궁 경원당, 아차산, 화양정, 광나루, 시립천문대, 어린이대공원 등 광진구의 여섯 명소에 대해 말했다. 이 명소들은 내가 글 작가로 참여한 '엄마가 들려주는 광진구 이야기; 진(津)이의 땅물별 여행'에서 다룬 곳들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도정궁 경원당은 역모 혐의로 억울하게 사사(賜死)된 철종 대의 왕족 이하전(李夏銓; 1842~1862)과 관련된 곳이다. 전(銓)이란 글자를 주목한다. 사람 가릴 전, 저울질 할 전이란 글자다. 


    사람을 가려야 할 필요를 요즘 들어 절대적으로 느낀다.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다. 잡스러운 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나와 거리가 멀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까지 두루 주위를 기울여 상대해야 하리라. 


    어제는 얀 잘라시에비치의 '지질학' 리뷰로 인해 하나의 단서를 얻었다. 누군가 내 리뷰를 읽고 책을 구입하는 데 도움을 받아 thanks to 버튼을 눌러 내게 책 값의 1%가 적립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액수이지만 나는 그 사실을 기쁘게 확인하고 책을 펼쳐 보았다. 2년전에 읽은 책이기에 세부적으로 기억하기 어려워서 그랬다. 본문 중 한 곳에서 에베레스트에서 발견된 코노돈트 화석과 산호 화석 이야기를 확인했다. 마침 에베레스트를 주제로 글을 쓰던 참이어서 아, 이런 계시(?)도 있구나, 란 생각을 했다. 우연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일이 아닌지? 


    폴란드 태생의 지질학자인 얀 잘라시에비치는 ‘인류세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이후의 지구(The Earth After Us)‘, ’암석 읽는 법(How to Read a Rock)‘ 등의 단독 저서, ’우주의 오아시스(The Cosmic Oasis)’ 등의 공저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우리 이후의 지구’는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The Next Supercontinent)'과 같은 미래의 풍경을 그린 책이다. ‘암석 읽는 법’은 마샤 비요르네루드(Marcia Bjornerud)의 ‘암석 읽기; 지구 자서전(Reading The Rocks: The Autobiography of the Earth)’과 같은 부류의 책으로 보인다. 


    번역된 책도 다 따라가기 힘든 형편이기에 미번역 책을 원서로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필요하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라도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블라디미르 자이틀린(Vladimir Zeitlin)의 ‘지구 물리 유체역학(Geophysical Fluid Dynamics)‘, 마샤 비요르네루드의 ‘암석 읽기; 지구 자서전(Reading The Rocks: The Autobiography of the Earth)’ 등이 1순위가 될 것이다. 


    번역이 저술보다 더 어렵다. 저술은 아는 것만 쓰면 되지만 번역은 모르는 것도 써야(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는 것만 쓰면 된다는 저술도 새롭게 반영할 것을 꾸준히 찾아내야 하기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많이 위축되었고 많이 어렵다는 출판 번역시장임에도 나오는 양질의 번역서들을 보면 감사하다. 내가 할 일은 그런 책들을 꾸준히 읽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게 하는 것이다. 


    ‘다가올 초대륙’은 다음 달(6월) 쓸 슈퍼 플룸론(論)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에 이런 글이 있다. “압력이 깊이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은 온도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이유는 다르다. 우리 위로 암석이 많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 큰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암석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깊이 들어가게 됐을까? 한마디로 섭입(攝入)이다. 이는 밀도가 높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해양 지각이 맨틀로 돌아가 재활용되는 메커니즘이다.”(113 페이지) 


    한글 문서 작성시 섭입을 한자로 바꾸는 것은 아직 딱 떨어지게 되지 않는다. 가령 현무암은 한자 변형이 되지만 섭입은 아직 안 된다. 말하자면 당길 섭, 들 입을 따로 변형시켜야 하는 것이다. 섭입은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개념임을 반영하는 현실일 것이다. 


    위의 인용된 문장에 이어지는 다음의 문장이 눈길을 끈다. “직관에 반하는 것 같지만, 산은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를 만들면서도 아래로는 깊은 뿌리를 형성하며 높아짐과 동시에 깊어진다.”(114 페이지) 번역 차원이기보다 저술 차원의 이상(異常)이 아닌가 싶다. 주어를 산이 아니라 지판의 움직임 또는 조산작용으로 고쳐야 타당하지 않을지? 


    물론 의미 깊은 문장이다. 망쳤다고 할 수는 없고 조금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어떻든 문장의 적확함과 별도로 저 서술은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내가 익히고 이해해야 하는 문장이다. 5월도 저물어간다. 지구과학 책을 많이 못 읽어 아쉬워 하다가도 지구과학 책만을 너무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섭동(攝動)에도 불구하고 책과 만나는 시간은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라는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원서 출간; 2024년)을 정확히 한 달 전(4월 16일)에 구입했으나 아직 펼치지도 않았다. 이 책을 갖추어야 할 지질 문해력의 관점으로 이야기 하는 모양이다. 다케우치 히토시의 ‘대륙은 살아 있다’는 읽다 놓아둔 상태다. 이 책은 나온 지 40년 가까이 된 책이어서 읽기를 재개하기가 꺼려진다. 그간(4월 16일 이후) ‘지구의 삶과 죽음’, ‘지구물리학’, ‘오스트레일리아가 우리나라 가까이 오고 있다고?’, ‘지구에 관한 작은 책’, ‘블루 머신’ 등 다섯 권의 지구과학 책을 읽었다. 


    3일 전에는 오랜만에 역사 책(‘거꾸로 읽는 한국사’)을 구입했다. 로베르토 토르타의 수필 같은 과학책인 ‘우리는 별에서 시작되었다‘도 구입했다. ’지구의 물음에 과학이 답하다‘의 전면 표지에 쓰인 ’우리는 지구를 너무 모른다‘란 말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 지구도 모르고 우주는 더욱 모른다. ’지구의 물음에 과학이 답하다’에 ‘아프리카가 두 조각 난다’란 챕터가 있다. 우주까지는 아니라도 또는 우주에 대해 본격(?) 관심을 갖기 전에 지구에 대해 충분히 알 필요가 있다. 오래 전에 사 놓은 ’극저온의 세계’란 책에서도 유의미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책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