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전통과 과학 템플턴 동아시아 과학사상 총서 1
김영식 지음 / 예문서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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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는 기(氣)의 구체적 속성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는 물리적이거나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구성하고 그 기초가 된다. 기에 도덕적 속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주희가 사람들의 도덕 수준의 차이를 그들의 기의 차이로 돌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희에게 물질과 생명, 물질과 정신 사이의 불연속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희가 물리적, 생리적, 정신적 현상들 사이의 차이를 인식했다 해도 그것은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였을뿐이다. 주희는 생명과 정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기를 초월한 비물질적인 것을 상정(想定)하지 않았다. 


주희에게 기는 세계 모든 사물의 기본적 재료이며 모든 현상의 기초였다. 주희는 세계의 어떤 현상도 기의 범위 바깥에 남겨 두지 않았다. 주희는 마음은 몸을 주관하고 주재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활동을 주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진실되어야 한다. 주희는 사람은 단지 하나의 마음만을 지니고 있는데 어찌 그것을 나누어 한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주희는 심(心)은 허령(虛靈; 잡된 생각이 없어 신령함)하지만 사물이나 욕심에 의해 막히면 어두워지고 완전히 알 수 없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심은 사람의 어둡고 탁한 기운에 의해서도 막힌다. 주희는 사람의 심의 양(量)은 크지만 사욕 때문에 줄어든다고 말했다. 마음을 빈 상태로 안정되게 유지하고 막힘이 없도록 하는 것은 인간의 지적, 도덕적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주희에 의하면 성(性)은 마음의 도리이고 정(情)은 마음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며 마음 자체는 신체를 주재한다. 도심(道心)은 의리로부터 나오고 인심은 몸으로부터 나온다. 주희는 마음이 기의 영역을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희는 마음은 기의 정상(精爽: 신령스러운 기운)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희에게 물질과 정신의 엄격한 구별은 없었다. 주희는 단일한 기가 물질, 생명, 정신의 현상과 과정들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주희는 기는 하나여서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지기(志氣)이고 형체를 주관하는 것은 혈기(血氣)라고 보았다. 기는 단지 하나의 기이다. 의리로부터 나온 것은 호연지기이고 피와 육신으로부터 나온 것은 혈기다. 주희는 화를 잘 내는 자신의 성향은 자신의 기의 질(質)이 병들어서라고 설명했다. 물론 기가 마음에 영향을 주듯 마음도 기에 영향을 준다. 이황은 형(形)이 있는 기는 존재하지 않는 때가 있고 형이 없는 리는 항상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황은 주리(主理)적 세계관을 가졌다.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논쟁은 주희의 모호한 이기론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주희는 리(理)가 무엇인지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주희는 리의 서로 다른 측면을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으로 표현했다. 소이연은 이유, 소당연은 규범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 주희에 의하면 리는 존재하기 위해 기를 필요로 한다. 주희에게 리와 기가 모두 중요했다. 주희에게 리와 기는 실재세계의 두 층을 가리킨다. 


신유학자들의 학문과 수신의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격물(格物), 치지(致知)였다. 격물과 치지의 목적은 개개의 사물과 사건에 내재한 수많은 리에 도달한 뒤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의 보편적인 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이 유추(類推)였다. 이는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지식을 같은 류(類)에 속하는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지식으로 확장시키는(推) 것이다. 주희의 격물 작업의 목적은 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일분수(理一分殊)란 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의 발현은 여러 가지이다란 뜻이다. 이는 정이의 구절이다. 


주희에게 인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의 자기수양에서 추구해야 하는 궁극의 목표였다. 이 목표를 성취했을 때 인간의 마음은 천리를 완전히 체현하게 된다. 인간은 격물의 방법을 통해 천리에 도달할 수 있다.(格에는 헤아리다의 의미가 있다.) 격물이란 사물의 탐구를 의미한다. 주희는 인간이 하나의 사물과 사건의 리에 도달한 상태를 일컬어 리를 안다고 하지 않고 리를 본다고 말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격물의 결과 얻게 되는 것은 리에 대한 지식이기보다 리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라는 의미다. 


주희의 진짜 목표는 개별 사물들과 사건들의 수많은 리들을 하나하나 전부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희가 격물을 하는 데 있어 설정한 궁극의 목표는 하나의 보편적 리(인간 마음의 본연의 상태)에 내재된 도덕적 덕목들을 보장해 줄 천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개별 리들의 이해로부터 보편적 리의 이해로 어떻게 나아가는가가 문제였다. 정이는 수많은 항목을 축적하고 수많은 사안에 익숙해진 후 홀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관통할 것이라는 지극히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주희는 정이가 한 가지 사물을 탐구하기만 하면 곧바로 관통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았고 천하 만물의 리를 남김없이 규명해야만 비로소 관통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주희는 정이를 따라 오랜 기간 많은 사물을 보고 경험하고 공부한 후에야 관통이 저절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오게 된다고 강조했다. 주희는 한 가지 일에 접해 곧장 그 일에 대해 그 리를 끝까지 탐구하고 얼마 뒤에 그렇게 탐구한 것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관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희는 되도록 많은 사물들을 탐구할 것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주희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만 가지 리가 하나의 리일뿐이지만 학자는 또한 만 가지 리 속에 있는 수천 수백 가지 온갖 복잡한 실마리들에 대해 이해해 나가야 한다. 만 가지 리가 사방으로부터 한데 모여들게 되면 저절로 그것들이 하나의 리임을 볼 수 있다. 


그 만 가지 리에 대해 계속 이해해 나가지 않고 겨우 어느 한 가지만을 이해하는 데 전념한다면 그것은 단지 공허한 상상일뿐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탐구하고 세상의 리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가지를 검토하고 연이어 다른 것을 검토하는 과정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을 다 다룰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이미 획득한 것을 확장시켜야 한다. 주희는 지식을 확장하고 충만케 한다(擴而充)는 맹자의 구절을 바로 그러한 의미로 해석했다. 관건은 과정 어딘가에서 개별 사물과 현상의 리를 이해하는 것과 관통을 가져다 줄 하나의 리를 이해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것이다. 


주희는 류(類)와 추(推) 가운데서 추를 더 중요시했다. 유추의 방법이란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것으로 확장시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희에게 격물이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희는 이미 가지고 있고 확장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지식을 시작(단; 端), 단서(端緖)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인(因; ~에 바탕해서), 거(據; 근거해서), 종(從; ~으로부터) 등의 표현을 사용해 그 역할을 나타냈다. 주희는 치지(致知)의 치를 추(推)의 의미로 이해했다. 확장한다는 것은 극한까지 추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물을 철저하게 탐구해서 그 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물을 항상 철두철미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주희는 한 가지 일에 대해 철저히 탐구할 수 없으면 또 다른 일을 탐구해 보라는 저이의 말을 인정한다. 물론 주희는 지극히 어려운 일을 다루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런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자기,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사실 지극히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주희는 학문에는 오히려 점진적인 나아감만이 있을뿐 서두르고 재촉해서 될 수 있는 리는 없다고 말했다. 


주희는 독서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고 글을 읽는 데는 서두르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씩 하나씩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며 점차로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에 대한 이해가 모여서 하나가 되고 머지않아 또 일고여덟 가지에 대한 이해가 모여서 하나가 된다. 그러면 곧 일제히 꿰뚫어 통하게 될 것이다. 주희에 의하면 수신(修身)에서 제가(齊家), 치국(治國)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유추에 의한 것이다. 주희에게 과학이라는 독자적 범주가 존재하지 않았다. 주희에게는 자연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해주는 경계가 없었다. 


주희의 세계에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자연세계와 도덕의 지배를 받는 인간세계 사이의 마찰 같은 것은 없었다. 주희의 세계에서 천지라 불리는 자연세계 자체에 도덕적 속성들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세계에 도덕적 질서가 존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성에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 고대 이래 널리 퍼진 생각이었다. 주희의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제외되지 않았다. 자연현상들 자체가 주희의 진짜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나는 일찍이 높은 산 위에서 소라와 방합 조개껍질들을 본 적이 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바위 속에 있었다. 


이 바위들은 바로 옛날의 흙이고 소리와 방합은 물속의 것들이다. 아래에 있던 것이 변해서 높은 곳에 있게 되었고 부드러운 것이 변해서 단단하게 된 것이다." 서양 과학자의 말이 아니라 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말이다. 조셉 니덤은 위의 말을 주희가 화석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쓴 글이라 평했다. 김영식 교수는 주희의 저 말은 회남자(淮南子)의 우주생성론과 음양순환의 이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한 것이라 말한다. 어떤 현상이 일단 기의 어떤 성질과 움직임들로 인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면 그 현상은 충분히 설명된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 현상에 대한 외적 원인이나 감춰진 메커니즘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주희를 통해 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리는 그 현상이나 사물을 총체적으로 가리킬뿐 그것을 설명해주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주희는 형이하에 속하는 것을 당연하고 명백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을 그냥 받아들였을뿐 표면적 실재를 넘어서는 더 깊은 탐구로 나아가지 못했다. 유가는 세계의 실재성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그 같은 실재성을 부정하는 도가나 불가와 자신들을 구분지어 준다고 생각했다. 주희는 천문역법, 화성학, 지리, 의술 등 자연현상과 관련된 여러 전문지식의 분야들에 깊은 흥미를 보였다. 격물을 통해 얻게 된 것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통찰이었다. 


격물의 결과 얻어지는 사물의 리에 대한 이해는 그 사물의 리와 사람의 마음의 리 사이의 일종의 공명관계였다. 공명이 일어나려면 마음이 텅 비고 맑고 고요해야 한다. 여러 개별 리들과 하나의 리인 천리의 연결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주희는 천지라는 중요한 개념과 관련이 있는 풍수, 지리 등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예(禮)의 일부인 음악도 중시했다. 주희는 의례, 음악, 제도, 천문, 지리, 병법, 행정, 법률 같은 것들도 모두 세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니 그것들이 없이 지내는 것은 불가능한 고로 그것들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주희는 기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구성하고 일으킨다고 보았다. 기는 생명의 근원이자 사람의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다. 주희에게 마음이란 단지 기이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의 정상(精爽)한 부분, 영(靈)스러운 부분이다. 기는 정신적 속성들도 지니고 있으며 마음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마음과 기의 상호작용은 자신의 마음과 기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외부세계의 기, 자신의 기와 다른 사람의 기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과학적, 기술적인 주제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주희는 유가의 학문을 더 폭넓고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후의 유가 학문체계에서 이런 넓은 범위가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았다. 후학들의 관심이 좁혀진 것이다. 


주희는 귀신과 같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정약용은 주희와 다른 점을 많이 보였다. 상관론적 사고에 대한 비판, 귀신에 대한 해석 등에서 현저하게 다르거나 상반된 입장을 보였지만 술수와 미신에 대한 태도는 크게 보아 주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희는 아무리 이상하게 보이는 현상도 기 개념으로 설명했다. 주희는 주역 점도 그의 체계 내에 받아들였다. 주희는 주역이란 원래 점복에 사용하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 생각했다. 주희는 주역의 의리(義理)에만 집중하고 점복적 측면을 무시한 당시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정약용이 오행 이론을 거부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상관 사고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약용은 여러 가지 사물들이나 관념들을 오행과 연관짓는 임의성을 비판했다. 가령 정약용은 수(水)와 적시고 아래로 향함, 목(木)과 굽고 곧음, 금(金)과 따르고 변화시킴을 대응하는 대신 수는 습하고 차가움, 목은 부드럽고 올라감, 금은 단단하고 내려감의 속성들과 연관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음양이론에 대해서도 정약용은 여러 가지 것들을 음양이라는 두 가지에 연관짓는 일이 지니는 임의성을 비판했다. 현대사회에서 전문 과학기술 지식은 일반 지식인들의 관심과 이해로부터 분명하게, 그리고 때로는 아주 심하게 분리되어 있다.


전통시대 중국에서, 그리고 이러한 분리가 일어나기 전의 유럽에서 일반 지식인들이 과학이나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을 그들의 관심 범위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었다. 전문가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경전의 근거들의 하나로 주역 계사전에 수록된 형이상은 도(道)이고 형이하는 기(器)라는 구절을 들 수 있다. 군자불기(君子不器)론도 빼놓을 수 없다. 진정한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도, 리, 성과 같은 고차원의 개념들을 추구해야 하며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구체적, 실용적, 기술적인 문제와 지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군자는 단순한 도구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좁은 범주에 자신을 한정시켜서는 안 되며 폭넓은 학문과 수양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도 즉 소도(小道)는 살펴볼 만하지만 너무 멀리까지 추구하면 수렁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가르침도 그렇다. 전통시대 중국 역사에서는 전문분야들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을 고무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다. 도(道)와 기(器)를 분리하여 도를 기보다 우위에 놓는 경향과 양자를 불가분의 관계로 간주하는 경향이 존재했다. 후자의 입장은 도가 기 안에 존재하며 기 없이는 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나타났다. 군자불기라는 말도 단순하거나 일방적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폭넓은 학문과 수양을 목표로 삼을 것을 강조했지만 그런 폭넓은 학문과 수양에는 자연세계에 대한 공부가 포함되었고 기술에 관한 지식 - 실행까지는 아니더라도 - 도 제외되지 않았다. 


군자불기라는 말의 실제 효과는 유학자들에게 좁은 주제 - 그것이 과학이건 기술이건 다른 전문분야이건 - 에 갇힌 단순한 전문가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을뿐 학자들이 당연히 추구해야 할 폭넓은 관심과 학문으로부터 과학과 기술의 주제들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소도라는 말에는 당연히 도라는 말이 들어 있다. 주희는 만물을 공부하고 이해할 것을 역설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때 논어의 박학(博學)이란 개념을 활용했다. 중국 전통사회에서 유학자와 전문 과학기술지식 사이의 수렴은 완전하지 않았다. 유학자들은 보통 과학기술의 전문 주제들에서 지적인 도전이나 자극을 느끼지 않아 그 같은 주제들의 공부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문 과학기술 주제들에 대한 유학자들의 지식수준은 대개 그리 높지 않았으며 당대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경우는 드물었다. 주희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비록 그가 역러 전문분야들을 공부하고 여러 분야들에서 상당한 지식을 지니기는 했지만 그의 이해는 당대 전문가들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했다. 전통 중국에 우리가 과학적이라거나 기술적이라고 부를 만한 여러 전문분야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서로 분리된 독립적 분야들로 개별적으로 존재했고 과학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 사이의 뚜렷한 구분도 없었다. 심지어 전통시대 중국에서 과학이나 기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존재했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전통 중국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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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을 걷다 1
(사)경기DMZ생태관광협회 지음 / SUN(도서출판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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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경기 DMZ 생태관광협회의 ‘DMZ 평화의 길을 걷다 1‘은 1차 대장정 염하강 철책길에서 16차 대장정 누에길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 12개의 경기평화누리길 코스와 4개의 강원평화누리길 코스가 담겼으니 2권은 강원의 5코스 만상동길에서 20코스 화진포 석호(潟湖)둘레길까지의 16 코스를 담은 책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DMZ는 슬픈 분단의 현장인 한편 생태의 보고(寶庫)로 손꼽히는 곳이다. 


1코스 염하(鹽河)강 철책길의 염하는 김포와 강화 사이의 물길이다. 염하를 따라 철책선이 길게 설치된 길을 걷다 보면 한반도가 분단된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다. 덕포진은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가 일어난 역사적 장소다. 2코스 조강(祖江)철책길의 조강은 예성강, 한강,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곳이다. 이 코스에 문수산성이 포함되어 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맞서 싸운 곳이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던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갔다. 3코스는 한강철책길이다. 애기봉 입구에서 전류리 포구에 이르는 길이다. 애기봉(愛妓峰)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해병대가 관할한다. 조강 기슭 한가운데에 솟아있는 높이 154미터의 봉우리다. 북한 개풍군과 불과 1.41km 떨어져 있다. 조강은 한국전쟁 이후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는 중립수역으로 지정되었으나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해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 이래 지금은 세계적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이자 번식지가 되었다. 


4코스는 행주나루길이다. 행주산성에서 고수부지길, 법원연수원 후문, 호수공원까지의 코스다. 행주산성 아래로 흐르는 한강을 행호(杏湖)라 한다. DMZ 평화누리길이 만들어진 것은 2010년이다. 서부전선 김포에서 중부전선 연천까지 이르는 182km의 길이다.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실제 비무장지대는 남이든 북이든 군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가까운 제방길, 농로, 마을길, 숲길, 때로는 대로변을 연결하여 만든 길이 DMZ 평화누리길이다. 민간인 통제구역인 한강 하구 철조망이 철거된 것은 2012년이다.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의 하나가 람사르 습지이자 기수역인 장항습지다. 5코스는 킨텍스길이다. 고양 평화누리길은 도시와 농촌,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멋진 곳이다. 6코스는 출판도시길이다. 동패지하차도에서 오두산 전망대까지의 길이다. 코스의 하나인 삼학산과 관련된 인물이 구봉 송익필(1534 ? 1599)이다. 외조모가 노비 출신이어서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지만 성리학에 통달하여 율곡 이이, 우계 성혼 등과 가깝게 지냈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설촌(雪村) 정엽(鄭曄) 등을 길러낸 인물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에게 거북선 전술 등을 알려준 조선 최고의 도인으로 알려진 분이다. 


파주출판단지는 파주시 문발동 일대에 조성된 국가문화산업단지다. 7코스는 헤이리길이다. 국립파주박물관, 프로방스, 오금교, 내포리 쉼터, 반구정에 이르는 길이다. DMZ는 완충지대(군사적)이자 점이지대(漸移地帶; 생태적)이다. 반구정(伴鷗亭)은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의미다.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낸 곳이다. 정자 안에 미수 허목 선생이 쓴 반구정(伴鷗亭記)가 걸려있다. 


8코스는 반구정길이다. 반구정에서 임진강역, 장산전망대, 화석정, 율곡습지공원, 율곡선생 묘역에 이르는 길이다. 화석정은 원래 야은 길재가 조선이 개국되자 낙향해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다시 세웠고 율곡 때에 중수되었다. 지금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9코스는 율곡길이다. 율곡습지공원, 파평면 사무소, 적벽산책로, 자장리마을회관, 황포돛배, 장남교, 경순왕릉에 이르는 길이다. 10코스는 고랑포길이다. 장남교, 장남면사무소, 사미천 징검다리, 학곡리 고인돌, 숭의전에 이르는 길이다. 


경순왕은 파주 석왕사(신라 고찰의 하나)에 자주 왕래했다. 필자(김경순)는 경순왕이 평소에 많이 거주했던 석왕사 인근의 현 고랑포리에 모셔지게 된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137 페이지) 11코스는 임진적벽길이다. 숭의전, 임진강주상절리, 임진물새롬랜드, 허브빌리지, 군남홍수조절지에 이르는 길이다. 적벽(赤壁)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썼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 임진강주상절리는 두 차례 용암이 흘러온 흔적을 지니고 있다.


12코스는 통일이음길이다. 군남홍수조절지, 로하스파크, 신망리역, 도신리 방아다리. 신탄리역, 역고드름에 이르는 길이다. 역고드름이라는 말은 한자로 승빙(乘氷)이라 한다.(172 페이지) 13코스는 금강산길이다. 역고드름, 백마고지역, 노동당사, 소이산 전망대, 대위리 검문소에 이르는 길이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의 노동당사는 1946년 조선노동당이 철원군 당사로 지은 건물이다. 소련식 건축양식에 따라 지은 이 건물에서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반공인사들이 취조받고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곳이다.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14코스는 두루미 머무는 길이다. 온전(?)히 철원만의 영역인 코스다. 한탄강 용암대지를 만든 용암이 120km를 이어온 것은 점성이 낮아서였다. 


용암 글(지구과학 전공 안락규의 글) 가운데 용암의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은 빨리 식는 데 비해 가운데 부분은 덜 굳어서 유동성이 있는 상태인 까닭에 중력에 의해 미끄러지듯 하류로 움직이는 관계로 모양이 휘거나 뉘어지는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내용이 있다. 흥미롭다. 가운데 부분이 더 가는<세; 細> 현상이 설명 가능하다. 휘거나 뉘어지니 윗 부분 및 아랫 부분에 비해 가늘 수 밖에 없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인간에겐 창조란 없고 새롭게 발견할뿐이란 말을 했다. 


전기한 안락규의 글에 소이산에서 오리산까지 삼십리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로망은 금강산 유람이었다. 한양도성 흥인지문을 나서 의정부 축석령, 포천, 철원을 거쳐 단발령을 넘으면 대금강에 이른다. 선조들은 금강산 가는 길에 한탄강 주변의 풍광 좋은 곳을 찾아 시문을 짓고 산수를 화폭에 담으며 풍류를 즐겼다. 대표적인 사람이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다. 정선의 화적연도, 삼부연도, 정자연도 등이 그런 산수화다. 


주상절리 절벽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이 정자연도다. 철원 갈말읍 정연리, 한탄강 강가에 있던 정자에 앉아 멋진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정자가 있던 곳 가까이에 금강산 가던 전기 철도 교량만이 우두커니 홀로 남아 있다. 15코스는 화강길이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철원은 강원도에서 춘천 다음으로 큰 도시였고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갈라지던 요지였다. 


남대천은 김화군 수리봉에서 발원하여 철원군 일대를 지나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남대천은 현재 원래 이름인 화강(花江)으로 불린다. 16코스는 누에길이다. 뽕나무가 많고 누에를 기르는 잠사(蠶舍)가 많았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잠곡저수지가 포함된 누에길의 잠곡은 蠶谷이다. 우리가 배운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의 이름은 일제 강점기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14개월 강 한반도를 둘러보고 광맥을 따라 그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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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해서 흥미진진한 지리 이야기 - 지구 생태계부터 인종·국경·도시 이야기까지
김성환 지음 / 푸른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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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潮境)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기수역(汽水域)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석호(潟湖)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자연 호수다. 연천에는 이런 곳들이 없지만 점이지대(漸移地帶)인 DMZ, 두 강(한탄강, 임진강)의 합수지점(도감포), 군사분계선과 38도선의 교차지점 등이 있다. 게다가 자연환경 보존과 활용이 균형을 이루는 지질공원이 있다. 연천은 이런 곳이다. 김성환의 애매모호해서 흥미진진한 지리+a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4화 애매모호함의 가치 중 점이지대 DMZ의 가치와 새로운 미래라는 챕터가 눈길을 끈다. 연천에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흥미진진한 지리 + a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지리 이야기와 사회 이야기, 국제 정치 이야기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지리 이야기 옆의 + a란 말을 얼핏 읽지 못하고 책을 구입했다. 다시 말해 작은 글씨로 쓰인 지구 생태계에서 인종, 국경, 도시 이야기까지란 부제를 읽지 못했다. 물론 내용면에서 읽을 만하다. 아쉽다는 것은 지리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고교에서 지리교사로 일하는 분이다. 하나 덧붙일 것은 애매모호해서라는 말보다 중간적이어서나 중립적이어서나 회색지대여서라고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애매가 일본식 한자라는 말이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 애매와 모호 공히 생경하게 들리는 말이라는 말은 할 수 있겠다. 새겨들을 말은 인종은 과학적 개념이 아닌 사회적 개념이란 말이다. 인종이란 말은 피부색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기 위한 방편은 물론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에 따라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인간의 유전체는 99.9% 일치할 정도로 모든 인간은 동일 종이다. 


제인 구달은 생물다양성을 거미줄 즉 생명의 그물망으로 비유했다. 이에 따르면 거미줄이 하나 둘씩 끊어지기 시작하면 약해질 수 밖에 없듯 동식물의 종도 하나 둘씩 사라지면 지구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고 균형이 무너진다. 그물망이란 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목초지에서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으면 식물에 닿는 햇빛의 양이 증가해 생물다양성이 증가한다는 말을 통해 전형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사안이다. 초식동물들은 지속적으로 식물을 섭취하여 특정 식물이 너무 크게 자라 태양빛을 가리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45 페이지)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섞이는 것이 순리라는 의미다. 그런데 국가와 도시, 시골마을, 소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많을수록 해당 지역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할 위험이 더 커진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소통은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저자는 언어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53 페이지) 햄버거의 시초가 몽골인들의 전투식량인 생고기라는 사실(64 페이지)은 흥미롭다. 


산지도 아니고 평야도 아닌 구릉의 가치와 매력이란 글은 어떤가. 구릉(丘陵)은 언덕의 다른 이름이다. 언덕은 산이라기에는 낮고 평야라기에는 높은 모호한 지형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침식, 풍화작용을 많이 받아 평탄화된 지형이 많다. 구릉은 생물다양성에 기여한다. 2011년 서울 강남 우면산 산사태는 구릉지대를 훼손하고 난개발을 한 탓에 일어난 인재(人災)라 할 수 있다. 제주 오름은 구릉에 가까운 지형이다. 연천의 특산물인 율무는 구릉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점이지대인 DMZ는 면적이 907km²로 한반도 면적(220, 748km²)의 0.4%를 차지한다. DMZ는 전쟁을 겪은 폐허에서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로 거듭난 공간이기도 하다. 한강 하구 중립지역은 주요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주목하는 구역으로 2006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한반도의 동서생태축인 DMZ는 남북생태축인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기도 하다. 동서생태축은 셋으로 크게 나뉜다. 1) 중동부 산악지형, 2) 한탄강 유역 화산지대인 철원평야와 연천을 포함하는 곳으로 임진강이 있고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중서부 내륙지역, 3) 한강과 임진강 하구를 포함해 대규모 습지와 갯벌이 발달한 기수역(汽水域)인 서부지역이다. DMZ 일원은 산악지형인 동부지역부터 하구와 갯벌의 평탄지역인 서부지역에 걸친 동고서저(東高西低)를 이룬다. 우리나라 자체가 동고서저 지형이다.


플라톤은 그쳐야 할 곳에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 말했다. 소동파는 “나의 문장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나와 평지에 차고 넘쳐서 하루에 천리라도 어렵지 않게 흘러간다. 산과 바위와 더불어 굽이쳐 꺾임에 이르러 부딪히는 사물에 따라 모습을 부여하기에 제대로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바는 당연히 흘러야 할 곳을 항상 흐르다가 마땅히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항상 멈춘다는 것뿐이다. 그 밖의 것은 비록 나라고 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갯벌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침수되고 썰물 때는 땅처럼 드러나는 바닷가의 벌판이다. 갯벌은 하천에 의해 흙모래 공급량이 많고 조차(潮差)가 크며 수심이 얕고 해안선이 복잡한 곳에서 발달한다. 우리나라 동해안은 성질이 다른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만나는 조경수역을 이룬다. 무지개를 보면 알 수 있듯 자연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계선상의 아름답고 다양한 색을 거느린 곳이다. 


BBC에서 흔히 쓰이는 비유가 있다. 세상은 시소에서 수레바퀴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수레바퀴의 바큇살처럼 이해관계가 360도로 퍼져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지방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서울, 넓게 보아 수도권 중심의 나라다. 자연의 경계가 그라데이션(gradation)적이듯 즉 단계적으로 차이를 드러내듯 인간이 구분해서 정한 경계는 필연적으로 애매모호성을 띤다. 


갈라파고스 제도(諸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지구의 동적평형 위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잡으며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지금도 여전히 지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움직임의 한복판에 있다고 썼다.(‘생명해류’ 139 페이지) 갈라파고스를 소유한 에콰도르는 어떤가.(에콰도르에서 갈라파고스는 1,000km정도 떨어져 있다.) 적도를 지나는 13개 나라 가운데 에콰도르는 대표적이다. 이 나라의 수도 키토는 북반구 별과 남반구 별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193 페이지) 해발고도가 2, 850미터로 높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호주 수도가 캔버라로 정해진 이유다. 캔버라는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중간 위치에 있는 이점 때문에 어부지리격으로 수도가 되었다. 적도에 걸쳐 있는 갈라파고스의 수도 키토가 해발고도가 높아 남, 북반구의 별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호주 수도로 캔버라가 정해진 것도 자연의 순리일까? 역리(逆理)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캔버라는 이점이 많기에 수도로 정해졌다. 단 자동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오류, 비상식 등이 가득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인간 또는 사회는 자연이 아니지만 자연을 따라야 한다. 가장 시사적인 글은 전략적 모호성이 절실한 대미(對美), 대중(對中) 관계라는 말이다.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리외교를 전략적으로 펼쳐야 한다.(23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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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책을 읽다가 잠시(?) 산에 대한 책을 읽는다. 두루 아는 것일 테지만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란 개념이 생각난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해석되는 말이다. 나는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급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순발력 있다는 의미로 읽는 것을 선호한다. 어진 사람은 변화에 민감하지 않아 긴 호흡으로 사람을 사귀는 유형의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순발력이 있어 변화를 선도하는 유형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정약용(丁若鏞)이 다산(茶山)과 열수(洌水)라는 호를 쓴 것은 흥미롭다. 정약용은 열수라는 호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나도 열수라는 호가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어진 인성과 거리가 멀고 지혜 이전의 지식 추구에 힘을 쏟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도감포 인근의 임진강 주상절리에서 해설을 할 때 강 지도를 활용했다. 예성강, 임진강, 한탄강, 한강, 북한강, 조강 등이 나오는 지도였다.

 

정약용은 북한강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현 남양주 마재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18년의 유배 생활을 마친 후 그곳에서 18년의 삶을 살았다. 정약용은 6살 때 연천 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을 따라 연천에 와 몇 년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정조 타계 6년전인 1794년 연천, 적성, 마전, 삭녕을 돌아보는 암행어사 직을 수행한 것은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태풍전망대에 가면 삭녕 우화정에 관해 쓴 그의 시가 게시되어 있다. 우화정은 겸재, 창애, 청천의 임술년(1742) 뱃놀이의 시작점인 만큼 물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전기한 물의 아름다움을 논한 책은 물과 아시아 미()라는 책이다. 학자 관료인 사대부가 중국 지성계의 흐름을 주도한 11세기 후반 물길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변의 모습을 횡으로 긴 장권(長券)에 그린 산수화가 유행했다는 글이 눈에 띈다. 물론 이런 유형의 그림에서 주가 되는 것은 물이다. 정약용은 예성강을 저수(), 임진강을 대수(帶水)로 표현한 분으로 물과 관련이 깊다.

 

전기한 산에 대한 책은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이다. 저자 최원석은 우리 겨레는 산의 정기를 타고나서 산기슭에 살다가 산으로 되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살았다고 말한다. 산에서 시작해서 산으로 될아가는 삶의 여정 곳곳에서 우리는 물을 만나 어울리며 감탄한다. 바다라는 뜻과 자궁이라는 의미를 갖는 수메르어 mar, 바다라는 의미와 무엇을 낳다/ 잉태하다란 의미를 갖는 일본어 우미(うみ)를 보며 나는 물과 생명이 연관이 깊다는 사실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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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바라드 컴북스 이론총서
박신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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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바라드를 안 것은 박준영의 ‘철학, 개념’을 통해서다. 바라드는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에 기반하여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함을 넘어 그릇된 것이라 말했다. 바라드가 제시한 대안은 하이젠베르크의 스승 보어에게서 나온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아닌 보어의 상보성 원리이다. 바라드는 물리학 박사 출신의 철학자다. 신유물론 페미니스트로 분류된다. 바라드는 몸이란 단순히 세계 안에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몸과 환경은 내부 작용으로 함께 구성된다는 것이다. 인간 몸을 포함한 모든 몸은 본질적인 경계와 속성을 지니지 않고 내부 - 작용의 개방된 역동성을 통해 특정한 경계와 속성을 획득하게 되는 현상이다.


바라드에게 세계와 우주, 공간성과 시간성도 내부 - 작용의 역동성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현상이다. 바라드는 과거와 미래가 서로를 통해 거듭 재형성된다고 본다. 바라드에게 개방성은 존재론적 비결정성과 직결된다. 바라드는 비결정성이 물질의 존재뿐 아니라 비존재론의 열쇠라고 설명한다. 바라드가 제시한 보어의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려는 자연의 일부다. 보어에게 사물은 본질적으로 확정된 경계나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또한 언어는 본질적으로 확정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보어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데카르트적 믿음과 뉴턴 물리학의 재현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보어가 양자이론의 인식론적 의미에 집중하는 데 그쳤다면 바라드는 보어의 통찰에 함축된 중대한 존재론적 차원들을 탐색한다. 보어가, 이미 존재하는 인간 관찰자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인간중심적 한계를 지녔다면 바라드는 보어의 통찰력 안에서 중요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함축을 탐색해 발전시킨다. 바라드는 양자이론이 미시세계뿐 아니라 거시세계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바라드에 따르면 양자물리학의 일반적 관념은 없다.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은 명시적으로 정치적인 물리학이라고 말한다. 이는 물리학은 이미 중립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라드는 2007년까지 양자역학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다가 2012년 이후 양자장론을 면밀히 다루기 시작했다. 양자장론으로 확장된 얽힘과 기억, 미결정성과 무한성, 무와 진공에 대한 바라드의 사유는 더욱 심화된다. 바라드는 이런 물리학의 통찰을 바탕으로 윤리, 정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전망을 제공한다. 바라드는 양자역학을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시킬 언어를 찾느라 이미 충분히 힘들었는데 양자장론을 설명하는 데에는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바라드에게 실험하기, 이론화하기, 알기, 측정하기, 관찰하기는 모두 물질적인 실천들이며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참여다. 바라드는 보어의 양자이론 외에도 푸코의 담론 - 권력 지식 실천이론,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이론을 또 다른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바라드에게 현상은 관계의 원자다. 이러한 현상들이 현실을 구성한다. 바라드가 만든 내부 - 작용이란 말은 핵심적 개념이다. 이는 얽혀 있는 행위성들의 상호적인 구성을 의미한다. 이는 상호라는 말 대신 내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세계는 이런 내부 작용의 역동적 과정이며 우주는 내부 작용으로서 계속 생성중이다. 


행위적 실재론에서 분리는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의 본질적 특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차이, 물질화하는 차이다. 바라드에게 존재의 기본 단위는 본질적 경계와 속성을 지닌 독립된 사물이 아니라 현상이다. 현상은 영원히 다시 주름 잡히고 다시 형성된다. 바라드는 개별 행위성이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 작용을 통해 창발한다고 설명한다. 행위성들은 개별 요소들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 얽힘의 관계 속에서 구별된다. 실험실에서 행하는 측정이 내부 - 작용의 예다. 


바라드는 기구들(apparatuses)이 단순한 관찰도구가 아니라 물질이 되는 경계 - 그리기 실천이며, 세계의 특정한 물질적 재현이라 본다. 바라드에게 공간적 분리가능성 대신 행위의 분리가능성과 행위적 절단이 객관성을 위한 조건이 된다. 행위적 실재론에서 물질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다. 물질은 내부 - 작용하는 생성중인 실질이고, 사물이 아니라 행위이며 행위성의 응결이다. 바라드에게 몸은 물질적 담론적인 현상이다. 다른 모든 몸처럼 인간 신체는 내부 - 작용의 개방된 역동성을 통해 특정한 경계와 속성을 획득하는 현상이다.


인간은 자신이 참여하는 물질적 담론적 실천을 통해 내부- 작용하며 함께 구성되는 주체로서 나타난다. 여기서 인간 주체는 기구의 외부적 관찰자도, 기구의 작동에 개입하는 독립된 주체도 아니며 단순히 기술의 산출물도 아니다. 불가사리의 동족인 거미불가사리는 뇌도 없고 눈도 없지만 전체 골격이 하나의 커다란 눈을 형성하고 있는 동물이다. 거미불가사리의 골격계는 죽 늘어선 마이크로렌즈들, 표면 위에 정렬된 작은 방해석 수정 돔들로 구성되어 있다. 널리 퍼진 신경계의 일부로서 빛을 모으고 집중시키는 이것들은 일종의 합성 눈으로 기능한다. 


바라드는 거미불가사리의 시각 시스템이 육체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거미불가사리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눈이다. 그 자체가 시각화하는 기구이며 살아 숨쉬고 변형하는 광학 시스템이다. 거미불가사리는 몸이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미불가사리는 주변 환경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빛에 반응해 착색을 변화시킬 수 있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빠지면 신체 부분을 끊어버리고 다시 재생시킬 수 있다. 이는 육체가 세계 안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일부며, 사물이 아니라 수행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육체화는 세계 안에 구체적으로 위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역동적 구체화 속에서 세계의 일부가 되는 문제다. 아는 것은 인식론적인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아는 것은 세계에 대한 특정한 참여이고 존재론적인 수행이다. 우리에게도 아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얽혀 있는 물질적 실천이다. 아는 것은 직접적인 물질적 참여이며 세계의 일부로서 세계와 내부 - 작용하는 실천이다. 바라드에 의하면 기구는 특정한 물질적 담론적 실천이다. 기구는 중요한 차이들을 생산한다. 기구는 물질과 의미를 형성하고 현상을 생산하며 그 일부가 되는 경계 - 만들기 실천이다. 


기구는 세계의 물질적 형성/ 역동적인 재형성이다. 기구는 그 자체가 현상이다. 기구는 내재적 경계를 지니지 않고 개방된 실천이다. 기구는 세계 속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성과 공간성, 시간성을 재형성한다. 바라드는 몸 경계가 자명해 보이지만 본질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특정한 신체적 수행의 반복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우리가 어떤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우리가 보는 것은 빛과 어둠 사이의 선명한 경계가 아니라 일련의 빛과 어둠의 띠들 즉 회절 패턴이며 이는 물리광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한다. 


바라드는 도나 해러웨이가 표현했듯 만들어진 신체가 아닌 만들어지는 신체를 이야기한다. 바라드는 어떻게 신체가 세상 안에 자리 잡고 위치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신체가 세계와 함께 또는 세계의 일부로서 구성되는가 즉 세계 안의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존재인가를 논증한다. 바라드는 몸의 물질성에 집중하면서 물질 자체가 얽힘을 수반하며 얽힘이 물질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회절(diffraction)은 바라드가 사용하는 방법론적 접근 방식을 은유하는 중요한 물리적 현실이다. 회절에는 물리학적으로 심오한 암시가 담겨있다. 회절은 파동들이 겹칠 때 결합하고 파동들이 어떤 장애물들과 만날 때 휘어지고 퍼지는 방식과 관련된다. 연못에 던져진 돌이 일으키는 교란이 겹칠 경우 파동들이 서로 간섭한다고 말하고 창조된 패턴은 회절 패턴이라 한다. CD 표면 위의 무지개 효과는 회절 현상이다. 공작 깃털, 나비 날개 위 무지개빛도 회절 효과다. 고전물리학에 따르면 오직 파동만 회절 패턴을 만든다. 입자는 그렇지 않다. 


양자물리학은 어떤 상황 아래서는 물질도 회절 패턴을 만든다고 말한다. 단지 빛뿐 아니라 물질은 어떤 상황들에서는 입자 행동을 나타내고 다른 상황에서는 파동 행동을 나타낸다. 이를 파동 - 입자 이중성 역설이라 한다. 인식론과 방법론에서 반영(reflection)과 회절(differection)은 서로 대조되는 광학적 은유다. 해러웨이는 회절을 반영이라는 낡은 은유에의 대안으로 제안한다. 반영과 회절은 공히 광학적 현상이지만 반영은 반사하기와 동일성에 대한 것인 데 반해 회절은 차이의 패턴들에 주목한다. 


과학적 사실주의는 과학적 지식이 물리적 실재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믿는다. 사회적 구성주의자들은 지식을 자연보다는 문화의 반영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반영성은 세계를 멀리 떨어져서 본다. 반영성은 반복적인 모방일뿐이다. 반영적 방법론은 원본과 일치하는 복사물, 사물을 왜곡 없이 반영하는 언어를 믿는다. 회절적 방법론에서 내부와 외부의 절대적 분리는 없으며 주체와 객체는 미리 존재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부 - 작용을 통해 창발한다. 바라드에게 회절 패턴은 경계의 비본질적인 본성, 경계의 반복적인 재형성, 차이들의 얽힘을 의미한다. 


회절은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와 비유기체, 인식론과 존재론 사이의 본질적 분리가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현상이다. 회절은 경계의 확장성과 영속성의 한계를 표시한다. 회절은 사소한 차이들을 존중하는 방법론이다. 바라드에게는 시간과 공간도 현상이다. 시간과 공간은 내부 - 작용으로 생산된다. 우리는 우주의 물질적 생성의 행위자적 일부이므로 우리가 실행에 참여하는 절단이 중요하다. 바라드는 내부 - 작용이 언제나 특정한 배제를 수반하며, 배제는 결정론의 가능성을 저지해 열린 미래의 조건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내부 - 작용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반복적으로 재구성한다. 가능성들은 가만히 정지해 있지 않는다. 가능성들은 그 실현 속에서 좁혀지지 않으므로 지금은 배제되었지만 가능했을 수도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린다. 가능성들은 재구성되고 재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중간에서 만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우주와 교섭하고 우주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책임지는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바라드는 세계 자체가 매우 퀴어하다고 주장한다. 바라드는 만약 자연 그 자체가 퀴어라면 어떨까?라고 질문하면서 퀴어란 자연/ 문화 이분법을 포함해 정체성과 이분법에 대한 급진적인 문제 제기라고 논한다. 바라드에게 퀴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고정되지 않고 살아서 변화하는 유기체, 욕망하는 급진적인 개방성이라고 할 수 있다. 브루스 베이지밀은 우주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욱 퀴어하다는 진화생물학자 홀데인의 유명한 말로 시작하며 세계는 각양각색의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 생물들로 가득하다고 쓴다. 


번개도 퀴어하다. 번개가 치기 전 지상과 하늘 사이에서 흥미로운 소통, 일종의 더듬거리는 수다가 벌어진다. 하늘에서 스텝리더라는 최초의 몸짓이 뻗어져 나오면 땅은 스스로 위쪽을 향하는 신호로 반응한다. 하늘로부터의 스텝리더가 땅에서 10~100미터 안에 있을 때 땅은 이제 그곳에 거대한 과잉 전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땅 위의 어떤 사물들이 스텝리더를 향해 작은 흐름들을 내보냄으로써 응답한다. 바라드는 “이 하늘과 땅 사이 소통의 교환 속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알게 되기도 전에 이러한 상호 교환이 일어날까? 어떻게 알게 되기도 전에 이러한 상호 교환이 일어날까? 어떻게 땅은 자신의 미래 대화자를 향해 활동하게 될까? 송신자가 전송을 하는 순간에 아직 특정되지 않는 수신자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노랑가오리의 신경수용 세포 역시 역설적인 소통의 사례다. 노랑가오리의 신경수용기 세포는 신비로운 투시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메시지가 언제 자신들에게 보내질지 예측할 수 있다. 바라드는 원자보다 더 퀴어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원자의 본성과 정체성은 비결정성 자체다. 바라드는 모든 몸은 세계의 반복적 내부 - 작용을 통해서 물질화되며 물질성의 본질 자체가 얽힘이라고 본다. 바라드는 우리가 외부의 타자를 만짐으로써 타자와 맺는 관계성뿐 아니라 자기 몸을 스스로 만짐으로써 내부의 타자들 즉 우리 몸을 지나쳐간 수많은 다른 존재들에 대해 깨닫게 되는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라드에게 책임이란 응답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바라드는 페미니즘을 물리학에 가져오는 만큼 물리학에 페미니즘을 가져옴으로써 사회 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느끼고 욕망하고 경험하는 것은 인간 의식만의 고유 특성이나 능력이 아니라고 말하며 물질은 느끼고 대화하고 고통받고 욕망하고 갈망하며 기억한다는 견해가 페미니즘적 참여임을 강조한다. 바라드는 우리 존재가 물려받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질러 무수한 타자들과 관계 맺고 있으므로 타자에 대한 책임은 무한히 확장하고 도래할 진정한 정의를 향한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과 죽음은 둘이라고 하기도, 하나라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바라드는 양자 얽힘을 묘사하기에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너무 많으며 사이 개념이 새롭게 사유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시간과 장소, 존재의 경계들이 결정되더라도 고정된 것은 아니며 현존하지 않는 타자성일지라도 없어진 것은 아니며 언제나 되돌아오고 도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라드는 산타크루즈의 해변을 산책하며 “지금 여기에 다수가, 그 특수성 안에 무한성이 응축되어 있다. 각 모래알과 흙 한 줌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회절하고 얽혀 있다. 책임지는 것,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관통하는 시공간물질의 두터운 얽힘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라드는 양자장론에 따라 텅 빈 공간은 전혀 비어 있지 않으며 무(無)는 무한한 풍부함이라고 강조한다.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이 공간적 회절을 넘어서 시간적 회절의 가능성도 연다고 설명한다. 시간적 회절은 비결정성 원리의 결과로서 한 주어진 독립체는 다른 시간들의 중첩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입자가 비결정적으로 여러 번 가령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공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바라드는 모든 이론화는 정치적이며 물리학과 정치는 언제나 이미 서로를 통과해 나아간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과학은 중립적이지 않기에 어떤 양자물리학 통찰도 무비판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바라드는 자신의 양자물리학에 대한 행위적 실재론 해석 역시 정치적 물리학이라고 밝힌다. 바라드는 어떤 물리학인가, 누구의 물리학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바라드에게 시학이란 기존 표현 양식에 따라 측정된 어떤 표현불가능성에 직면할 때 표현을 향한 계속되는 열망과 관련이 있다. 바라드에 의하면 시위자들은 경찰과 직면할 때는 얼음처럼 단단해지고 도시의 협소한 거리를 통해 탈출할 때는 물처럼 유동적이 되고 갑작스러운 군중 시위를 위해서 이슬처럼 모이며 체포를 피하고 또 다른 날 싸우기 위해서 안개처럼 흩어진다.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독립체를 사이의 관계가 아닌 관계성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개인들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다르게 생각하려는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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