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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어스 - 지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
페리스 제이버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12월
평점 :
'지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란 부제를 가진 '비커밍 어스'의 원제는 'Becoming Earth'다. 저자 페리스 제이버는 뉴욕 타임즈 객원기자다. 환경이 생명을 변화시키듯 생명도 환경을 변화시킨다(19 페이지)는 것이 책의 주요 메시지다. 오랜 통념과 반대로 지구의 역사 내내 생명은 그 위력이 빙하, 지진, 화산에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하기도 하는 거대한 지질학적 요인(21 페이지)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소련의 생물학자들이 깊은 지하의 미생물들을 염두에 두고 지질학적 미생물학이란 말을 사용했음을 언급한다.(48 페이지) 저자의 생각을 풀어서 비커밍 어스란 제목을 풀어 쓰면 지구와 생명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분석서라고 할 수 있다.
논쟁적이지만 지구 자체가 살아 있는 실체라는 개념은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생명은 스스로를 지탱하는 시스템으로 완전한 해체를 의미하는 최대치의 엔트로피를 향해 가차 없이 나아가는 우주 안에서도 자유에너지를 사용해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조직화를 유지한다.(29 페이지) 지구의 원소들로부터 생겨난 바위와 물, 대기를 쉼 없이 먹어치우고 변모시키고 다시 채우는 수많은 생물학적 실체들은 단순히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구의 연장선이다.(30 페이지) 책의 목차는 지구의 세 가지 구성 요소인 암석, 물, 대기의 세 가지 주요 권역인 암석권, 수권, 대기권으로 구성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지하 미생물들은 지표 위의 미생물들과 다르게 산소가 아니라 암석을 호흡한다.(44 페이지) 당연히 환경을 변모시키는 존재들이다. 저자에 의하면 처음 형성되었을 때 지구는 끓고 있는 액체 암석 덩어리였다.(44 페이지) 이 뜨거운 액체가 식어 지각이 되었다. 그리고 수증기, 이산화탄소, 질소, 메탄, 암모니아 등의 기체를 내뿜었을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코넬의 천체물리학자 토머스 골드는 지각 전체에 걸쳐 그 아래 물기가 스며든 구멍에 빛과 산소가 아니라 메탄, 수소, 금속으로 양분을 얻는 미생물 유기체가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했다.(49 페이지) 프린스턴 대학의 지질학자 툴리스 온스토트(Tullis Onstott)는 생명의 기원지에 대해 다윈의 따뜻한 작은 연못 대신(?) 따뜻한 작은 틈새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했다.(52 페이지)
저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석회암을 녹여서 만든 동굴이 아닌 미생물이 조각한 동굴에 대해 이야기한다.(59 페이지) 박테리아가 땅속에 매장된 기름을 먹고 내놓은 황화수소 기체가 지하수 속의 산소와 반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황산이 석회암을 부식시킨다.(59 페이지) 1장 지하의 존재론에는 암석을 분해해 그 안의 금속을 풀어놓는 미생물, 황화수소를 내놓아 자유롭게 떠다니는 금속과 결합해 새로운 고체 화합물을 형성하는 미생물, 분자들을 만들어 용해되는 금속들을 붙잡아 서로 결합시키는 미생물, 세포 안에 금속을 저장하는 미생물, 금속의 얇은 막을 형성해 점점 더 많은 금속을 끌어당기는 미생물 등 기이한 생명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 마디로 지구의 다양한 광물질을 벼려내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바위를 분해해 원소들을 재순환시키는 현상을 광화작용(mineralization)이라 한다.(61 페이지) 지구는 광물 다양성의 행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륙 자체도 부분적으로는 미생물이 수행하는 테라포밍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다.(62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대륙지각을 구성하는 화강암은 우주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반면 해양지각을 구성하는 현무암은 우주에 흔한 암석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생명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대륙의 확장은 훨씬 느렸을 것이라 말한다. 즉 지구는 지(地) 없는 구(球)였을 것이다.(64, 65 페이지) 과학은 있었을 법한 일들의 윤곽을 재정의한다.(67 페이지)
일반적으로 공진화는 종들 간의 상호작용이지만 다른 실체들 사이에서도 공진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살아 있는 생명체는 진화해나가면서 주변의 환경을 방대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80 페이지) 생명과 환경은 지속적으로 서로의, 그리고 지구 전체의 모양을 잡아간다.(81 페이지) 저자가 생명이 지구의 주요 지질학적 요인임을 인식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파악한 블라디미르 베르나츠키는 정통 지질학은 지구의 구조가 나뉠 수 없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파악되어야 할 부분들 사이의 조화로운 통합이라는 개념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저자에 의하면 “오랫동안 사람들이 늑대를 박멸하려 하면서 엘크 등 초식동물의 개체 수가 급증했고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 사시나무, 미루나무 등 천연 식생의 풍부함이 극적으로 줄었다. 안정적으로 토양을 지탱해주던 이 식물들의 뿌리가 없어지면서 강둑이 무너지고 토양이 침식되었다....“(91 페이지)
식물들의 뿌리가 토양을 지탱해준다는 점이 눈에 띈다. 뿌리가 토양을 지탱해준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식물의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단단했던 토양이 느슨해지면서 미생물과 균류가 서식하기 좋은 천국이 되는 것(127 페이지)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상적인 정원 토양은 부드럽고 색이 짙고 잘 바스러지는 것이라 말한다.(109 페이지) 지각의 암석은 물, 공기, 생명과 접하면 무언가 새로운 것, 무언가 다른 종류의 살아 있는 토양이 된다. 토양은 다양한 일원들과 함께 자기조절적이고 영속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는 살아 있는 시스템이다.(125 페이지) 이 말들을 생각하면 ‘화학 산업이 대지에서 돌을 빵으로 바꾸는 농민들을 도울 수 있다면 충분할 것‘(118 페이지)이란 표현이 와닿는다. 이는 질소 비료 만드는 법을 개발해 대기근의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했지만 질소를 이용한 폭탄 제조를 주도하기까지 해 전범이 된 과학자 프리츠 하버의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이들이 하버(와 카를 보슈)를 공기로 빵을 만든 과학자로 표현했는 데 비해 돌을 빵으로 바꾸는이란 표현이 말해진 것이다. 질소는 지구 대기의 78퍼센트를 차지하는 풍부한 기체이지만 생명체 대부분은 기체 형태의 질소를 활용하지 못한다. 대기 중의 질소 원자 두 개는 거의 가장 강력한 분자 결합을 하고 있어서 번개가 처야 그 결합을 깨뜨릴 수 있다.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은 대기 중의 질소를 깨뜨려 암모니아, 질산염, 아질산염 등 생물이 사용할 수 있는 분자로 바꿀 수 있는 효소를 진화시킨 유일한 존재다.(115 페이지) 저자는 전통적 지질학 이론은 동물을 영양의 소비자로서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동물은 생물량(바이오매스)으로는 식물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전체적으로 이동성과 역동성은 동물이 훨씬 더 크다고 설명한다.(93 페이지)
저자는 스텐포드대학교 지구과학자 조나단 페인의 말을 소개한다. 페인은 환경 변화에 직면해 생존에 더 유리한 특질을 가진 생물이 자연선택되는 과정을 이야기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포함되는 지구 시스템 안에서 안정화에 기여하는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생명체가 자연선택되는 과정과 더 큰 안정성과 복잡성을 가진 생태계가 자연선택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94 페이지) 1부의 마지막 장인 우주 속의 정원에 바위 이야기가 나온다. 40억년 전 지구에 초창기 대륙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바람과 열과 얼음이 천천히, 하지만 가차 없이 노출된 모든 바위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미생물들도 바위를 먹고 광물 원소를 추출하고 그 원소들을 새로운 화합물로 바꾸었으며 신진대사의 부산물과 분해된 세포의 형태로 토양에 탄소를 보탰다.(121 페이지)
절지류들이 산(酸)과 효소로 바위를 분해하고 굴을 파고 배설물과 죽은 잔해로 광물층을 풍부하게 함으로써 비옥하고 공기가 잘 통하는 토양의 형성을 촉진했다는 내용도 있다.(122 페이지) 플랑크톤은 떠돌아다니다/ 부유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플랑크토스에서 유래했다. 바다, 강, 호수, 습지, 간헐 온천, 연못, 웅덩이, 심지어는 빗물에도 사는 존재가 플랑크톤이다. 지구가 생기고 첫 5억년 정도 동안 막대한 폭우가 이제 막 생겨난 육지를 뒤덮었다. 지구는 소수의 화산섬을 제외하고는 초기 대양에 완전히 덮인, 진정으로 워터월드였다.(151 페이지) 짠 맛이 나지 않았으리라는 점 외에 원시 대양은 수많은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와 매우 달랐다.
대륙과 대기가 어느 정도는 생물학적 구성물이듯 대양의 결정적인 특질들도 그 안의 생명이 만들어낸 결과다. 전 지구적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참여자가 플랑크톤이다. 플랑크톤이 이상증식하면 적조(赤潮)가 발생하지만 적당량의 플랑크톤은 무해할뿐 아니라 중요한 조절자 역할을 한다. 죽은 플랑크톤이 깊은 바다에 가라앉으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어 각각의 화학 원소들로 분리된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세포내 질소와 인의 비율은 16대 1인데 대양 깊은 곳에 정확히 같은 비율의 질소 대 인의 분포가 형성되는 것이다. 화산에서 분출된 이산화탄소는 대기의 수증기와 결합해 탄산을 형성하고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진다. 약산성의 이 비는 지각을 녹인다.
이런 화학적 풍화작용으로 다양한 광물질, 염분, 그 외의 분자들이 생겨나 강물을 타고 바다로 흘러가 해양 생물의 양분이 된다. 어떤 시아노박테리아, 플랑크톤, 산호, 연체동물은 풍화작용에서 나온 칼슘, 중탄산이온을 사용해 껍데기, 방패, 골격, 암초를 만들고 퇴적되어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미생물 암석을 형성한다. 이러한 생명체들이 죽으면 탄소가 풍부한 잔해가 바닥에서 지층을 이루고 점점 짓눌려서 석회 퇴적층이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각 작용이 새로 융기하는 산맥과 분출하는 화산의 형태로 탄소를 다시 지표로 올려보낸다. 이렇게 해서 사이클이 완성된다.(162 페이지) 자연의 아이러니를 생명이란 키워드로 풀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해양의 표면에서 지속적으로 물에 녹는데 그러면 태양을 좋아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수면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면서 세포에 탄소를 저장한다. 동물성 플랑크톤과 미생물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어서 분해할 때 탄소의 상당 부분이 물의 얕은 곳으로 배출된다. 먹히지 않은 식물성 플랑크톤은 며칠이나 몇주 후 죽어 서로 부딪혀서, 그리고 동물성 플랑크톤의 배설물과 합쳐져서 작은 덩어리가 되어 가라앉는다. 심해에 이렇게 눈처럼 내린 탄소는 차갑고 밀도 높은 깊은 바다에 수천 년간 머문다. 이 영구적인 바다눈의 일부는 심해 생물의 먹이가 되지만 일부는 계속 가라앉아 대양저에서 배설물의 퇴적층을 형성해 수백만년 동안 단단한 돌의 형태로 탄소를 가둔다.(162 페이지)
얼핏 생각하면 얼음이 바다와 대륙 대부분을 덮으면 지구가 차가워질 것이라 생각할 법하지만 책에는 반대 이야기가 나온다. 얼음이 바다와 대륙 대부분을 덮으면 물의 순환이 사실상 멈추고 플랑크톤 등 바다 생물의 생산성이 떨어져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쌓이면서(이산화탄소를 가두지 못하여) 점점 지구가 더워진다.(163 페이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겠지만 아이러니는 아이러니다. 저자는 이 전체적 과정이 대체로 생명에 의해 조절되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지구에 생명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을 인용한다.
대양저(大洋底; ocean floor)의 60 퍼센트는 플랑크톤을 포함해 바다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바다눈이 되어 침전된 것이다. 퇴적층의 맨 위층은 고체와 액체가 섞여 있고 거품 같은 질감이다. 그보다 약 30~60센티미터 아래는 압력이 증가해 그 안의 물이 눌려서 빠져나오고 치약 같은 질감이 되어 더 압축되어 만들어진 단단한 돌이다. 그러다 지구 내부에서 녹거나 대륙판이 충돌하거나 바다가 낮아지면 지표로 다시 올라온다.(164 페이지) 본문에는 플랑크톤의 가치와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기자의 피라미드, 콜로세움, 노트르담 성당,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석회암으로 만든 인간의 장엄한 건축물은 해양 고생물의 비밀스러운 기념물이다. 돌로 변신하는 플랑크톤은 석회비늘편모류만이 아니다. 수백만 년 전 도구를 사용한 초창기 인류는 플린트암과 규질암의 장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암석과 달리 단단하고 날카로우면서 깨뜨리기도 좋다는 점이다. 그들은 규조류와 방사충의 압축된 겉껍질로 화살과 도끼를 만들었다. 석기가 우리 조상들의 식단, 문화, 기술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으므로 플랑크톤의 잔해가 인류 진화의 경로를 규정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플랑크톤은 지구 환경 변화를 관찰하는 데 가장 유용한 재료이며 자원 활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유공충, 방산충, 해파리, 코코리쏘포레 등이 모두 플랑크톤이다.) 화산 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분출되어 바다에 용해되면 바다가 산성화되는데 플랑크톤으로 형성된 석회석층이 용해되어 탄산염이온을 내놓으면 산성화가 어느 정도 상쇄된다.
석회석은 알칼리성인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는 탄산염 광물의 일종이다. 플랑크톤이 바다와 공기에 산소를 불어넣고 대양의 화학조성을 조율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 지구적 기후의 핵심적인 조절자가 되지 않았다면, 숲도, 초원도, 야생화도, 공룡도, 매머드도, 고래도 없었을 것이다.(173 페이지) 과학자들은 해양 식생을 수 세기간 연구해 왔지만 최근에서야 해양 식생이 지구 기후의 조절과 해양의 화학조성 조율에서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게 되었다.(181 페이지) 육지의 숲이 전 지구적 탄소 순환의 핵심 요소라는 것은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해양 식생의 중요성은 최근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183 페이지)
뿌리가 없고 하늘하늘한 몸체를 가진 맛있는 해초가 탄소를 그렇게 오랫동안 격리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과학자들이 해초가 대부분 빠르게 분해되거나 먹혀서 탄소를 대양과 대기로 다시 돌려보낸다고 가정했다. 대양과 연안 생태계에 저장되는 탄소를 블루 카본이라 한다. 해초와 인간은 오래전부터 가까운 관계였다. 고고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인류는 적어도 1만 4,000년전부터 식용과 의료용으로 해초를 수확했다. 생명과 환경의 공진화가 주제인 바 저자는 우리가 지구적 리듬의 암호를 조금씩 해독할 수 있게 되었으나 지구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파괴하고 리듬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붕괴가 시작될 때 자신 있게 개입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아직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203 페이지) 지질학적 기록이 보여주듯 이 세상의 생태계는 망각의 절벽 앞에 섰을 때조차도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6장 플라스틱 행성에서 저자는 현재 알 수 있는 한에서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이상하게도 실종 상태라 말한다. 플라스틱이 오염시키는 곳은 바다만이 아니다. 플라스틱이 지구에 가장 오래 흔적을 남길 곳은 바다일 것이고 또한 바다를 통해서일 것이다. 우리 종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자연이 이미 제공한 것의 변형이다. 플라스틱은 기본 분자를 재배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미생물, 균류, 기타 생명체가 이미 플라스틱을 소화하도록 진화했다는 증거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혹적인 사고의 흐름을 촉진한다. 우리의 살아 있는 지구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인간 사회에 유의미한 시간 단위 안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플라스틱을 먹는 효소 중 야생에 존재하는 것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효소에 비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속도가 훨씬 느리고 미생물이 바다나 땅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면 수백만년간 진화해온 더 익숙한 분해 과정과 달리 생태계에 꼭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근미래에는 플라스틱을 먹는 미생물이 더 많은 나노 플라스틱을 만들어서 유독한 첨가물을 환경에 내놓을지도 모르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도 더 많이 내놓게 될지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플라스틱 위기를 다루려면 일회용 플라스틱 제조를 극적으로 줄여야 하고 피할 수 없는 쓰레기에 대해서는 훨씬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 생태학적 관점에서는 한 개체의 죽음이나 해체가 결말이 아니라 전환이고 상실이 아니라 기회다.
위든 잎이든 고래든 고무 슬리퍼든, 지질학으로 생겼든 진화로 생겼든 공학으로 생겼든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물체는 라이프 사이클을 갖는다. 우리의 생이 너무 짧거나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아서 보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 세계에 우리가 들여온 모든 물질이 현 시스템 안에서 재순환되게 할 방법을 찾거나 모든 물질이 제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252 페이지) 7장 숨의 기포에서 저자는 다시 주제에 대해 논한다. 우리는 환경이 생명의 진화를 관장하며 다양한 형태의 생명을 창조한다고 보는 관점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5억년 전에 식물과 균류가 나타나 널리 퍼지면서 지구 육지의 표면을 바꾸어 주지 않았다면 아마존에 존재하는 우리가 아는 수만 종과 아직 알려지지 않는 수많은 종 모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265, 266 페이지)
지구의 영아기 시절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꼽자면 안정적인 대기의 형성을 들 수 있다. 충분한 대기압이 없었다면 지구 표면의 모든 액체는 금세 우주로 날아갔을 것이다. 어린 지구가 표면에 물을 계속 붙잡아두고 있지 못했다면 우리가 아는 대로의 생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생명이 없었다면 지구에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지 못했으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행성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은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물의 세 가지 가능한 상태(증기, 액체, 얼음)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며 물이 대기와 바다와 땅 사이를 계속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생명은 이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작용과 뗄 수 없이 긴밀하게 결합되었다.
대기 중으로 증발한 물은 0도가 되었다 해서 자동으로 얼지 않는다. 순수한 물은 영하 40도 정도까지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 얼려면 씨앗, 전문 용어로는 얼음 응결핵이 필요하다. 육지와 바다에 있는 수많은 박테리아, 조류(藻類), 지의류, 플랑크톤 등이 응결핵을 만드는 단백질을 형성한다. 강한 바람, 상승기류, 뇌우, 먼지 폭풍 등이 이 작은 생물들을 대기로 밀어올리면 이들은 몇 주 동안 하늘에 자리를 잡고서 비구름을 만들고 자신이 만들어낸 강우와 함께 지구 표면으로 돌아온다.(271 페이지) 얼음을 만드는 박테리아들 사이의 진화적 관계로 미루어볼 때 얼음 응결핵 단백질은 적어도 17억 5,000만년 전에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식물의 수생 조상들이 육지로 올라오기 한참 전이다. 모리스와 샌즈는 그때 이 단백질이 해로운 얼음 결정을 세포 밖에 격리함으로써 미생물들이 얼음장 같은 물과 빙하기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으리라 보고 있다.(273 페이지) 지구 역사의 상당 기간(아마도 20억년에서 35억년간) 지구는 전적으로 미생물만 있는 행성이었다. 서문(19 페이지)에 나오는 하늘의 강이란 표현이 본문(279 페이지)에 나온다. 숲에서 방출되는 모든 습기와 유기물질 부산물과 미생물이 하늘에 만들어놓는 강을 말한다. 당연히 숲이 파괴되면 비를 일으키는 능력도 상실될 것이다. 숲의 탄소 저장 능력도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280 페이지) 지구의 산소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각조각 들쭉날쭉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이는 서로 겹치는 수많은 지질학적, 생물학적 과정에 의해 거의 20억년이나 걸려 달성된 긴 혁명이었다.
산소가 풍부한 대기는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진화적 혁신이라 할 만한 광합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초기의 광합성은 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고 산소를 생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282 페이지) 생명과 환경은 피드백 고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서로를 변화시킨다.(287 페이지) 저자는 지구는 다른 모든 생태계의 합류점으로서 유기체적인 구조와 리듬과 자기조절 과정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아는 가장 큰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289 페이지) 저자는 생명이 곧 지구라 말한다. 우리는 혈액에 바다를 담고 있으며 암석의 골격을 키운다. 지구는 끓어오르고 솟아오르고 꽃을 피우는 암석이다.
지구는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공허 속을 맥동하고 숨 쉬고 진화하면서 날아가는, 별빛을 먹고 노래를 발산하는 암석이다. 식물은 지구의 표면과 대기를 근본적으로 변모시켰다. 시아노 박테리아가 내놓는 산소가 이미 성층권의 오존층을 형성하기 시작해 유해한 자외선으로부터 생명체들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육상 식물은 오존층이 더 두꺼워지게 해서 대대적으로 육지에 올라오고 있던 새로운 생명들을 보호했다. 육지가 초록 식물로 덮이면서 물의 순환이 대폭 가속화되었고 이는 암석의 풍화 속도를 높였다. 식물, 균류, 미생물은 뿌리로 암석을 쪼개고 산성으로 녹이고 유기물로 땅을 비옥하게 하면서 단단한 지각을 유연한 토양으로 만들었다.(302 페이지)
육상 식물은 지구의 장기적인 탄소 순환과 온도 조절 메커니즘에서도 핵심 요소가 되었다. 육상의 식물, 균류, 미생물이 함께 성장하고 활동하면서 비, 바람, 얼음만 작용할 때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빠르게 암석을 깨뜨렸고 이 과정은 탄소를 대기 중에서 끌어들였고 땅에 탄소를 파묻는 과정을 가속화 했다.(304 페이지) 지구과학자 클레어 벨처(Claire Belcher)는 대기 중 산소량이 16퍼센트 미만이면 화재가 지속되지 않으며 산소 농도가 23 퍼센트를 초과하면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5,500만년 동안 대기의 산소 농도는 안정적으로 21퍼센트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318 페이지) phosphorus는 어원적으로 별빛을 의미하는 단어로 인(燐)을 지칭한다.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에는 DNA와 세포막의 필수 요소인 인이 필요하지만 자연적으로 인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은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인은 암석에 갇혀 있다가 비, 얼음, 바람에 의해 점차 방출된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면 일반적으로 생명과 환경은 서로 지속성을 돕는 방향으로 관계와 리듬을 공진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목적론적인 과정은 없다. 그러한 지속성은 계획되거나 고안된 것이 아니다. 종의 진화를 규율하는 메커니즘과 별개의, 하지만 관련이 있는 물리적 과정의 불가피한 결과다.(320 페이지) 우리는 지속성이라는 현상을 지구 전체로도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작동하는 것은 지속성을 갖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지속성을 향해 가는 경향성이다. 필연이 아니라 경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고생대 석탄기에 양치식물 등이 죽어서 미생물에 완전히 분해되기 전에 바다 아래나 퇴적층에 묻혔다. 강력한 열과 압력을 받아 조성(造成)이 분자 수준에서 재배열된 뒤 토탄을 거쳐 석탄이 되었다. 중생대에 조류(藻類), 플랑크톤 등 해양 생물이 호수와 바다 바닥에서 극단적인 압력과 열을 받아 가스와 원유가 되었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모든 석탄 바구니가 임이고 문명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석탄은 휴대용 기후라는 말을 했다. 화석연료는 수억 년 동안 햇빛을 흡수한 수많은 죽은 생명체의 집합적 힘을 담은 가연성 있는 물질이다.(331 페이지)
인간은 현재 매년 화산 활동으로 방출되는 다 합한 것보다 60~120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332 페이지) 지구가 더워지면 대기가 수증기를 품고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 에너지 인프라의 개혁은 우리가 수행해야 할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일 중 하나다.(347 페이지) 저자는 현재로서 지구 기온 상승폭을 전(前) 산업 시대 대비 1.5도 이내로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작아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 기온 1.5도 상승은 북극 얼음이 100년마다 한 번씩 녹는 것을 의미하고, 2도 상승은 10년마다 한 번씩 녹는 것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 현재의 기후 위기는 지구 시스템의 한 가지 커다란 불균형에서 나온 결과이고 그 불균형은 전적으로 우리 종(種)이 만든 것이다. 지구는 복사평형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태양에서 받는 에너지와 우주로 다시 내보내는 에너지가 같은 상태를 말한다. 복사평형이 유지되면 지구 기온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353 페이지) 현대 생태학의 창시장 중 한 사람인 유진 오덤은 세포부터 살아 있는 모든 생태계까지 살아 있는 모든 실체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355 페이지)
저자는 가이아 가설을 조롱했듯 자연의 균형 개념을 전적으로 일축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가리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살아 있는 지구는 합리적으로 균형이라고 부를 만한 사례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의 균형은 엄격한 균형점이나 무제한의 회복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정확하며 고도로 통합적인, 살아 있는 것들 사이의 관계의 시스템이라 말한다.(357 페이지) 이것은 유연하고 계속해서 달라지는, 지속적인 조정의 상태다.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살아 있는 실체는 생명과 환경 사이의 상호적 진화에 의해 지탱되는, 매우 복잡한 균형을 잡는 행동의 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