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들 때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게 된다. 두 곡 모두 좋지만 특히 1번의 경우 전곡을 들으면 슬픔마저 감미롭게 느껴진다. 함석헌 기념관에서 ‘간디와의 대화‘의 저자인 김진 목사님의 ‘함석헌과 간디‘ 강의(14시 - 16시)를 듣고 틈을 내 교보에 들러 바르텔로미 마돌의 ‘처음 읽는 베르그송‘을 샀다.

이 책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일 때 또는 황량하고 스산할 때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던 책이다. 그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을 할 상황도 아니다.

난감함이 같은 레벨이어서는 아니고 다산은 유배지에서 어떤 음악과 시에 심취했을까, 란 궁금증이 든다. 음악은 모르겠고 시에 관해서라면 다산은 다른 사람의 것에 의존할 필요 없이 자신의 것을 음미하지 않았을까?

다산은 주역의 괘사로 다산초당에서 산림에 묻혀 사는 기쁨을 이야기했다.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상으로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사는 사람의 정(貞)함을 지니면 길(吉)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궁여지책이지만 아니 궁여지책이었던 다산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자고 나면 컨디션도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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