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전철역에 내려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귀찮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우산을 쓰고 계신 수녀님 한 분이 보였다. 버스는 기다린 지 한 5분쯤 되어 왔다. 수녀님 옆자리에 앉았다. 가장 안쪽 그러니까 끝자리였다. 버스는 군인들이 서서 우리의 시야를 가릴 만큼 좁고 낮았다.

 

'전곡 성당 소속이신가요?' 묻자 수녀님은 '옥계리 수도원 소속입니다'란 답을 하셨다. 옥계리(玉溪里)는 연천군 군남면의 한 마을이고 수녀원은 그곳의 한 풍경이다.

 

연천에서 일할 때 수녀원 앞 도로를 여러 차례 지나쳤던 기억, 그러나 태풍에 넘어간 나무를 치우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 본 한 차례의 오랜 기억이 있다. 40대 중반쯤 되셨을까? 수녀님은 내게 전곡 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으셨다.

 

전곡에서 옥계리 가는 버스를 타신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 전철역에 내려 전곡까지 가시는 것은 처음이라 하셨다. 20분 정도가 걸린다고 답했다.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옥계리행 버스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지가 수녀님의 관심의 전부였다.

 

정상적으로 가면 10분 정도가 남는 상황이었다. 터미널에 내려 3분 정도 연천쪽으로 걸어야 옥계리행 버스를 탈 수 있고. 목적지에서 일어서려 하자 수녀님은 누가 벨좀 눌러 주세요란 말을 하셨다. 정말 내 가까운 곳 좌우에 벨은 보이지 않았다.

 

수녀님께 정중히 고개 숙이는 인사를 했다. 수도자(修道者)에 대한 존경, 연민 등이 어우러진 인사였다. ‘수녀님은 제가 내리는 곳에서 두 정거장 더 가셔서 내리시면 됩니다.’란 말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수녀님의 말씀은 분명 친절이었다. 어머니의 마음씀 같은.

 

어머니께서 전곡 성당에 다니신다는 내 말 때문일까? 먼저 말 건 친절에 대한 보응일까? 진지하고 정성스런 내 표정과 말 때문일까? 사하촌(寺下村)이 있듯 수하촌(修下村)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조용미 시인은 사이프러스가 우뚝 서 있는 언덕과 돌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긴 벽 사이에서 풍경화의 소실점을 알려 주듯/ 수도사가 나타났다는 말을 했다.(‘매듭중에서) 나는 수녀님과 만들어낸 풍경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수녀님께서 내게 따뜻함을 전해 주시기 위해 나타나셨다고 해야 할까? 위대한 포기(great renunciation)란 말이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출가를 그렇게 표현한다.

 

수녀님은 어떤 것을 포기하시고 또는 포기하시기 위해 수도자가 되셨을까? 잃음(포기)을 다른 큰 얻음으로 환원해 볼 수 있을까? 오래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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