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 인류 고전 15권에 묻고 스스로 답하다
박병기 지음 / 인간사랑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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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는 칸트의 세 물음(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을 연상하게 하는 명제이다. 이 명제를 제목으로 한 박병기 교수의 책은 '인류 고전 15권에 묻고 스스로 답하다'란 부제를 가졌다.

 

저자는 '금강경', '수심결(修心訣)' 등의 책들은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의 관점으로, '꾸란', '니코마코스 윤리학', '윤리형이상학 정초' 등의 책들은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관계 맺기의 관점으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노자 '도덕경', '장자' 등의 책들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 관계맺기 등의 관점으로 분류했다.

 

고전 읽기는 삶으로부터의 거리두기의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고전과 가까워지려면 내 안의 보편적 지향 즉 삶의 의미 물음을 꺼내드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그 물음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삶과 무관해 보이지만 인간으로서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할 때 반드시 만나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만나고 있는 친근한 것이기도 하다고 결론짓는다.

 

세 챕터로 구성된 책의 각각이 관계맺기(자신과, 다른 사람 및 공동체와, 일상을 넘어 다른 존재와)이거니와 이 부분에서 생각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파스칼의 말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근원은 홀로 조용히 방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란 말이다. 조용히 방에 머무는 것은 자아 성찰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부끄러움, 욕망, 불안 등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관계 맺기에 실패하면 다른 사람 및 공동체, 더 나아가 다른 초월적 존재와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관계 맺기의 중요성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전이(轉移)라는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다.(자세한 설명 생략)

 

자기와의 바른 관계 맺기는 삼가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동체 및 다른 존재들을 헤아리고 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일반적인 독해와 저자 특유의 독해가 반영된 '우리는 어떤 삶을 만날 수 있을까'를 읽음으로써 훌륭한 인류의 고전들과 만나는 방법을 제시받게 된다.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게 제시받은 방법을 참고하며 해당 고전들을 또는 다른 고전들을 직접 읽어야 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된다. 저자는 '금강경'을 이야기하며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등 깨달음의 네 단계는 순차적으로 도달하는 것이기보다 어느 순간에 문득 도달하는 것으로 본다.(34 페이지)

 

'금강경'은 소유와 관련된 모든 상()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저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갖는 것을 상()을 세우는 것으로 본다. 수다원은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을 의미하거니와 저자는 수보리에게 보내는 부처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일상의 작은 깨침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바라보고자 노력하면서 그 노력을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을 향하는 친절과 미소와 실천으로 연결시켜갈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39 페이지.. ‘금강경은 부처와 수보리라는 제자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문득 깨침<돈오(頓悟)>과 지속적인 닦음<점수(漸修)>을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한 목우자(牧牛子) 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을 설명하며 저자는 깨침을 얻는 과정에서는 스승 즉 선지식과의 관계가, 닦음의 과정에서는 도반과의 관계맺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마음먹기는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49 페이지) 깨침은 마음먹기에 크게 의존하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저자의 통찰은 반가운 마음을 갖게 한다. 저자는 이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설명하며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이익이나 자리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윤리의 중요성을 제시한다.(60, 61 페이지)

 

나는 저자가 시민 윤리의 핵심을 의로움과 이익 사이의 균형 잡기로 풀이하는 것을 보며 공자가 말한 군자는 그 균형 잡기에 성공한 사람이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의로움과 이익 사이의 균형은 공자의 논어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제시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삶의 유형을 향락적인 삶, 정치적인 삶, 관조적인 삶으로 정의했다.(93 페이지) 이 챕터에서 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윤리는 대체로 부담스럽고 답답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한편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는.(95 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에게 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우정과 정의임을 강조한다.(‘니코마코스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에게 건넨 가르침을 모은 책이다.) 우정과 정의는 각자에게 맡겨지는 시민윤리를 넘어 필요한 공공의 영역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98 페이지)

 

저자는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에서 윤리에 관한 단 하나의 정의(定義)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통용되는 규범의 차원, 그것과 연계되면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마음 속 열망의 차원은 윤리라는 말이 사용되는 맥락에서 일관성 있게 관찰되는 두 차원이라 말한다.(103 페이지)

 

전자는 도덕(道德), 후자는 윤리(倫理)라 불리지만 엄격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맹자처럼 인간의 본성 속에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본능적 욕구와 희미(稀微)한 선의지가 함께 존재한다고 보았다.(106 페이지) 칸트가 말한 준칙(準則)은 주관적인 것, 가언명령(假言命令)이고 법칙은 당위적인 것, 정언명령(定言命令)이다.(107 페이지)

 

칸트의 정언명법은 실현 가능성을 회의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유한한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 물음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109 페이지)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고전은 시대적 한계와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갖는, 끊임없이 현재적 해석이 이루어져야 하는 텍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요소 요소에서 우리 현실과 연계시켜 고전을 설명하는 비근한 방법을 제시한다. 윤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마광수 교수 이야기를 하고 플라톤의 국가를 이야기하며 아비투스와 상징폭력을 이야기한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를 이야기한다. 법꾸라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저자는 도덕경편에서 노자의 부드러운 음성은 우리 일상 속에서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을 하고 있는 강함과 단단함의 허상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죽비(竹篦)라 말한다.(191, 192 페이지)

 

저자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이야기하며 한강(韓江)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고, 목우자(牧牛子)라 불린 지눌(知訥) 스님의 수심결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어릴 적 경험한 소 치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근취저신(近取諸身) 즉 가깝게는 자기 몸에서 진리를 찾는다는 주역 계사전의 구절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저자의 문제의식은 근취저신과 대대(待對)인 원취저물(遠取諸物) 즉 멀리는 만물에서 진리를 찾는 데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고전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하자고 말한다.(205 페이지) 필요한 것은 우리 일상에서 직면하는 철학적 물음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이다. 저자는 고전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읽으려 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문제 상황 즉 화두(話頭)와 만날 수 있는 구절이나 행간을 중심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207 페이지)

 

저자는 고전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노력이 시민이 지녀야 할 기본 자세 중 하나라 말한다. 이 부분에서 시민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채효정 저자에 의하면 국민은 정치적 존재가 아니고 시민은 정치적 존재이다.(‘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223 페이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일상의 도도한 흐름에 온전히 내맡기지 않는 거리 유지의 자세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금강경을 이야기하며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은 사람인 수다원을 말한 저자의 의도를 떠올리게 된다. 비판적 성찰의 자세, 지금 여기에 답을 찾고 먼 미래, 근원적인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치열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발심(發心)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고전 읽기에도 적용되는 덕목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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