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읽는 법 -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
이종수 지음 / 유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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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미술사학자의 '옛 그림 읽는 법''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을 부제로 한다. 저자는 화가의 의도를 헤아리는 그림 독법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앞 부분에서 저자는 겸재 정선을 이야기한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진 분이다. 진경산수화는 산수화의 한 갈래이다.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풍속화 등이 있다. ()는 장르 전체를 의미하고 도()는 개별 작품을 의미한다. 중국 당나라의 미술사가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에 의하면 종병(宗炳)이란 사람은 자신의 늙음과 병고를 슬퍼하며 산수를 즐기고 싶으나 그곳으로 갈 수 없을 때 산수화를 감상하는 것으로 느낌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누워서 산수를 감상한다는 의미의 와유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진경산수화의 상대 개념은 정통 산수화, 관념 산수화 등이다. 상상 속의 경치를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 관념 산수화는 특정 지명에 얽매이면 안 되었다. 누구나 좋아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다.

 

진경산수화는 정선으로 인해 하나의 장르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정선 이전에도 진경을 그린 화가가 있었지만 정선에 이르러 하나의 장르로 완성된 것이다. 진짜 경치를, 그것도 한양에서 먼 금강산을 그려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그렸냐는 의문은 누구를 위해 그렸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60 페이지)

 

산수화를 즐기고 주문하는 이의 대부분은 사대부 남성이었다. 17세기 조선의 시인, 묵객 사이에는 산수 유람이 유행처럼 번졌다. 첫 손 꼽히는 유람지는 금강산이었다. 산수 유람이 먼저였는지 우리 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먼저였는지 단정짓기 어렵다.

 

정선 이전의 진짜 그림은 실경(實景)이라 했다. 정선의 진경이란 말에는 실경이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진경산수화에는 기록 이상의 의미 즉 감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정선은 자신이 본 산수를 어떻게 더 멋지게 재현할지에 관심을 쏟았다. 단적으로 말해 정선은 실경산수화를 의뢰받았는데 진경산수화로 답한 것이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관념산수화가 그려지다가 실경산수화가 나타나고 실경산수화에 회화적인 멋을 더해 진경산수화가 되었다. 진경산수화가 등장한 이후에도 대세는 관념산수화였다. 정선도 만폭동을 그리기 전은 물론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이후에도 수많은 관념산수화를 그렸다. 감상하는 사람이 화가에게 기대한 것은 와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수화이지 실제의 장소를 그대로 옮겨낸 지형도는 아닐 것이다.(79 페이지)

 

'만폭동'은 소재가 꽤 촘촘하게 배치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실제 금강산에서 그린 그림이지만 화면 구도처럼 모두를 볼 수 있는 장소는 없다.(88 페이지) 정선(1676 - 1759)은 자신이 직접 본 각각의 실경을 하나의 화면에 불러들인 것이다.(89 페이지) 다시점 그림은 옛 사람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방식이었다.

 

정선은 진경다움을 살리면서 이상적인 산수의 아름다움을 함께 얻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실경으로서의 진경(眞景)에 머물지 않고 선경(仙境)으로서의 진경(眞境)이라는 평을 듣는다.(94 페이지)

 

일반적으로 풍경화는 다시점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화가를 중심에 두고 그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그림이 풍경화라면 자연을 중심에 두고 그 모습을 여러 시점으로 담아낸 그림이 산수화이다.(97 페이지) 동양의 산수화를 보고 원근법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장성을 중시하는 정도로 볼 때 진경산수화는 이전의 산수화에 비해 풍경화에 매우 가까운 그림이다.(98 페이지) '만폭동'은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모았다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전체 구도가 아주 자연스럽다.(99 페이지) 실경과 얼마나 닮았느냐가 진경산수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물음이 아닌 것처럼 이상적인 산수화에 가깝다고 해서 더 나은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화가가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가, 그것이 작품에 어떻게 구현되었는가가 관건이다.

 

정선은 과장과 생략에 능했다. 더 나은 화면을 위해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다.(100 페이지) 준법(皴法)의 준은 주름 준으로 준법은 산의 주름(굴곡이나 음영)을 그리는 법을 의미한다.(103 페이지) 준법은 실제 산수의 느낌을 잘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준법은 일종의 정형화된 양식이다.

 

정선에게는 변형하든 창조하든 조선 땅에 어울리는 새로운 화법이 필요했다. 산세에 어울리는 준법을 스스로 만들기, 이것이 선배 산수화가들이 정선에게 가르쳐 준 정신이었다. 정선은 실제와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갇히지 않고 화가로서 더 나은 그림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 나갔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준법을 만든 것이다.

 

정선은 자신의 겸재준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준법에 충실할 때 좋은 작품을 남겼다. 준법 사용은 화파 형성의 기준이 된다. 옛 그림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식이 축화(軸畵)이다.(161 페이지) 두루마리는 옆으로 긴 형식의 그림이고 축화는 위 아래로 긴 형태의 그림이다. 축은 궤() 또는 족()이라고도 불린다.(: 조릿대 족, : 길 궤)

 

화가의 이름과 그림 제목 등을 기록한 것을 관() 또는 관지(款識)라고 한다.(180 페이지) 여기에 인장까지 찍으면 낙관(落款)이라 한다. 삼재(三齋)와 삼원(三園)이 있다. 삼재는 세 명의 문인 화가로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고 삼원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이다.

 

동양화에서 인장 만큼이나 독특한 요소가 화제(畫題)이다. 제시(題詩)나 찬() 등이 있다.(190 페이지) 동양화라고 해서 처음부터 그림과 글이 하나의 화면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192 페이지) 그림을 그리면서 어울리는 시를 더하기도 했지만 시나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저자는 모른다면 볼 수 없겠지만 안다고 해서 모두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마지막 조각은 자신만의 감상으로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198 페이지) 감상의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선의 동시대 화가 조영석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조선 산수화의 개벽이라 했다. 반면 추사 김정희는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조선 그림을 망쳐놓았다고 거침없이 혹평했다.(199 페이지) 그림 평가는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20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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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8-01-3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