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처님 공부
김정아 / 문학아카데미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온 종일 백지 공책에 금강경을 베껴 쓸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온 종일 백팔배, 천팔십배, 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사경(寫經)을 한다거나, 기도(祈禱)를 한다거나, 참선수행을 하기 위한 어떤 것도 아니었다. 내 앞에 닥쳐온 고통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것 밖에 다른 어떤 선택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곳에는 원망이나 기원, 황홀경 같은 밖으로 향하는 기운을 내 안으로 돌이켜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덤벼들던 고통의 발톱을 따뜻하게 껴안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오로지 그냥 쓰는 일, 오로지 그냥 절하는 일, 오로지 그냥 앉아보는 일, 나의 부처님 공부는 그 자리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 없으리라 생각한다."

 

시인 김정아 님의 '나의 부처님 공부'의 서문격인 '독자를 위하여'란 제목의 글 가운데 일부이다. 불교방송 구성 작가로 일하며 쓴 글이다.('나의 부처님 공부'가 출간된 지 23년이 지났다. 작가의 근황이 궁금하다. 2003'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을 쓴 시나다 히로코 님의 근황을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한 이번 달 초의 일이 생각난다.)

 

제목이 인상적인 '나의 부처님 공부'는 불경의 주요 구절들을 일상의 일들로 쉽고 친절하게 풀어쓴 책이다. '독자를 위하여'의 일부이지만 꽤 긴 글을 인용한 것은 이 부분이 '나의 부처님 공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말씀도 유의미하지만 닥쳐온 고통 앞에서 작가가 취한 실존의 몸짓을 알 수 있는 글이고 시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온 종일 백지에 금강경을 베껴 쓰고 백팔배, 천팔십배를 하고 벽을 마주 보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사경도, 기도도, 참선수행도 아닌 것이었고 선택의 여지 없는 어떤 행동이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경이고 기도이고 참선이 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의미의 사경을 세속적으로는 필사(筆寫)라 할 수 있다. 필사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놀라울 정도로 문장력이 좋아진다고 한다.(해본 적이 없는 나는 확언하지 못한다.) 그럼 사경은 어떨까? 부처님에 대한 간절함이 커지는 한편 문장력도 좋아지지 않을까? 기도나 면벽 참선도 내가 말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종교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나의 부처님 공부'를 선뜻 산 것이다. 시간 날 때마다 펴보기 위해. 작가는 그런 무목적적 행위의 결과 놀랍게도 그런 행위에는 원망, 기원, 황홀경 등 밖으로 향하는 기운을 자신의 안으로 돌이켜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덤벼들던 고통의 발톱을 따뜻하게 껴안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고 말한다.

 

종교적이기보다 내 마음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나도 같은 유의 체험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냥 쓰고 절하고 앉는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부처님 공부는 그 자리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의 부처님 공부'의 구성은 동화 속 부처님 일화 한편, 살며 생각하며 한편, 경전 한 말씀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작가는 동화집을 낸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경전 속 한 말씀은 불경의 말씀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한편 어디서부터 읽어도 좋을 독립적인 글들이라는 특성이 있다. '별점'이란 글에서 작가가 인용한 말씀은 '전생담(前生譚)'의 한 구절이다. "행복은 별에 달린 것이 아니다. 별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 인용에 덧붙여 작가는 불교가 점을 봐주거나 운명론을 믿고 따르는 종교라는 인식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전혀 맞지 않는 일이라는 설명을 한다.

 

작가는 그렇게 점을 보거나 운명론에 빠지는 원인을 분석한다. 그것은 이 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지나간 일이 알고 싶으면 지금을 보고 앞으로 올 날이 알고 싶으면 지금을 보라는 부처님 말씀을 덧붙임으로써 깨어 있어야 할 당위를 깨닫도록 유도한다.(97 페이지)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은 지난 일의 거울이고 미래의 씨앗이다.

 

'별점'이란 글의 서두는 "지금은 그런 인식이 많이 사라졌지만..."란 글이다. 조심스러운 마음이 읽힌다. 나 역시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이란 전제를 한 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우울증 당사자들에게 호손의 주홍글자를 새긴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애욕에 물들고 분노에 떨고 어리석음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 과거인가, 현재인가, 미래인가"라는 보적경(寶積經)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 '괴로움과 맞서는 용기'라는 글은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즉 생각을 일으키기 전 깨끗한 우리의 본래 마음을 의미하는 본바탕 진심('선가귀감' 참고)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망상일 뿐 정진이 아니라는 말씀에 대한 글이기에 그렇다. 이는 금강경의 무주상(머물지 않는 마음)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작가는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를 돌아보는데 이는 스스로 자신을 포기했음을 의미하고 뒤돌아 본다는 말은 과거의 어느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 글에는 이런 부분도 있다. 괴로운 일이 생기면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야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순간적으로 괴로운 마음을 피해서 달아나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에서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산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의 결론이 압권이다. "사실 마음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 괴로움과 정면으로 맞서서 싸우기도 하고 악수도 하고 같이 뒹굴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괴로움은 실체가 없는 일이어서 정면으로 마주보기만 해도 그 힘이 약해져 결국 흔적없이 사라지고 맙니다."(115 페이지)

 

'날마다 좋은 날'이란 글도 의미심장하다. 이 글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못이 없으면 망치는 망치로서의 제일 큰 기능 하나를 잃는 것처럼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도 피아노 조율사가 있어야 빛나고 훌륭한 의사도 환자를 운반할 구급차 운전기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119 페이지)

 

작가는 아무리 자기 존재를 무가치하게 낮추려 해도 우리는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으며 단지 그 일을 떠나 다른 어떤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날마다 편안한 날, 날마다 좋은 날이 될 것이라 말한다. "오로지 그냥 쓰는 일, 오로지 그냥 절하는 일, 오로지 그냥 앉아보는 일"이란 작가의 모토가 생각난다.

 

'평등'이란 글은 파격적이다. '보문문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남녀는 모두 평등하다. 하늘과 땅, 천지가 낳은 것이 무엇이 다를 것인가" 작가에 의하면 부처님은 남자와 여자의 차별을 두지 않으며 다만 불성만을 가장 존귀하게 여긴다고 가르치셨다.(213 페이지)

 

살며 생각하며의 한편인 '마음의 힘을 기른다'도 작가의 지론을 잘 드러내는 글이다. 문학작품 읽기, 공연예술 감상하기, 사색, 자연과의 교감, 경건함에 대한 외경심, 참선과 명상, 아름다움에 대한 황홀감.. 등이 우리의 마음을 기르는 진정한 교재이며 영양식이라는 글을 인용하며 작가는 아침 저녁으로 모든 생각을 놓고 단 10분만이라도 앉아볼 것을 권한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공부이리라.

 

작가는 스승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스승인 부처님을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속가(俗家)에 사는 저희 또한 인류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을 만나 자신을 찾는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그 은혜로움이 한이 없고(219 페이지)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많은 인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믿고 의지한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새삼 깨우쳐 보게 된다(231 페이지)는 것이다. 시간 날 때 틈나는대로 힘들 때 찾아 읽을 책으로 '나의 부처님 공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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