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나온 김정란 교수의 영혼의 역사와 전직 대학 강사 채효정 님의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2017년 627일 출간)를 함께 읽고 있다. 전자는 시 비평집이고 후자는 오늘날 위기에 처한 대학의 실상을 파헤친 사회과학서이다.

 

후자는 문제를 파헤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설득력 있고 래디컬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두 책은 다루는 대상도 다르고 스타일도 많이 다르다. 그런데 각기 본령은 아니지만 꽤 시사적인 공통의 주제라 할 만한 것이 눈에 띈다.

 

바로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오래 전 나는 언어에 대한 보르헤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글은 남고 말은 흐른다는 격언은 말이 하루살이처럼 덧없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에 비해 글이 항구적이며 죽어 있다는 의미인 것.

 

반면 말은 빠르고 가벼운 것. 플라톤의 말처럼 '빠르고 신성한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 말로 가르친 스승들이었다.”.. 보르헤스의 이 말은 글과 말의 차이를 논한 말이다.

 

그런데 전기한 두 책에서 나는 보르헤스의 말보다 더 현실적이며 유용한 구절을 만났다. “에피메테우스는 안전하고 깔끔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늘 틀릴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는 늘 어느 정도 무지하다. 그러나 그 무지가 사실은 문학이라는 기계를 작동시킨다..”(’영혼의 역사‘ 10 페이지)

 

프로메테우스는 어원을 통해 보면 먼저 말(생각)하는 사람이다.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말(생각)하는 사람이다. 둘은 신화에 나오는 형제이다. 김정란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좋은 비평가)는 말하고 있는 자신보다 침묵하고 있는 텍스트가 언제나 존재론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프로메테우스 뒤를 쫓아가는 에피메테우스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비어 있는 중심‘ 7 페이지)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프로메테우스 즉 먼저 말(생각)하는 사람은 시인, 소설가 등이고 에피메테우스 즉 나중에 말(생각)하는 사람은 시나 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비평가를 말한다.

 

채효정 님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프로페서(교수)는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이 책에서 저자는 교수가 수행하는 일의 중요도를 묻는다. 연구 강의 사회 실천의 순이 아니라 강의 연구 사회 실천이라는 것이 저자의 논지이다.

 

저자의 논지인 즉 연구자보다 교육자가 먼저라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플라톤을 말하며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예수, 석가, 공자..)을 이야기 한 것처럼 채효정 님은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이야기한다.

 

강의와 연구를 결국 같은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둘은 상당히 다르다. 강의록을 책으로 펴내는 것과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펴내는 것의 차이를 알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강의는 항상 소통적일 수 밖에 없지만 연구는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서 하는 것이기에 독백적이다.(13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홉스, 로크 등은 귀족의 가정 교사였던 바 말이 글이 되고 그것이 책이 된 것이다.

 

독일은 다르지만 대학 교수였던 칸트가 쓴 순수이성비판은 혼자 연구해서 쓴 책이 아니고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푸코의 책들도 대부분 강의록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하이데거도 마찬가지였다.(136 페이지)

 

아주 특수한(예외적인) 경우로 망명자 신세인 탓에 대학 도서관에 처박혀 외롭게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던 마르크스와 레닌이 있다.(135 페이지) 보르헤스가 말은 빠르고 가벼운 것. 플라톤의 말처럼 '빠르고 신성한 것'이라 말한 것처럼 채효정 님은 말이 항상 먼저 있는것이라 말한다.

 

김정란 교수의 비어 있는 중심도 좋지만 채효정 님의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는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사회과학도 이렇게 정교하고 치열한 만큼 재미 있고 현실적인 만큼 이상적일 줄 몰랐다.

 

효용이 다른 사상을 비교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나는 논어(論語)가 논언(論言)이 아닌 이유가 어()는 상대를 전제로 한 말이고 언()은 혼자 하는 말이기에 그렇다는 말을 기억한다. 이 해명은 채효정 님의 책에 비하면 많이 싱겁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어()는 강의나 교육, ()은 연구나 독서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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