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幽明)을 달리했다는 바른 표현 대신 운명(運命)을 달리했다는 바르지 않은 표현을 한 신문 기사 밑에 삼가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는 댓글이 이어진 것을 보았다.

34세라는 너무 젊은 나이에 운명(殞命)한 한 연예인을 보며 나는 어떤 댓글도 달지 않았다.

명복이란 말이 낯설고 애매하게 느껴져 애도(哀悼)한다는 표현을 하는데 문득 그 표현이 상투적으로 느껴져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승의 밝은 세상[明]을 떠나 저승의 어두운 세상[幽]으로 떠나는 것 즉 유명을 달리하는 것은 현실을 접고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죽음을 구현(具顯; 어떤 내용을 구체적 사실로 나타나게 하는 것)하는 것이다.

존재의 일부였던 죽음이 전체가 된 것이다.

구현이란 말은 선승(禪僧)과 같은 삶을 살다가 간 프랑스의 시인, 사상가 조에 부스케(1897 - 1950)를 생각하게 한다.

조숙한 문학청년이었던 부스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척추 부상을 입고 죽을 때까지 삼십년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는 ˝나는 내 속에서 커가는 거대한 존재의 상처다. 또 내가 그의 실추를 구현하게 될 조금 더 큰 인간의 의식˝(‘달몰이‘ 19 페이지)이란 말을 했다.

이 말은 ˝내 상처는 나 이전에 존재했고 나는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태어났다˝(이정우 지음 ‘삶 죽음 운명‘ 111 페이지)는 출처 불명의 그의 다른 말을 이해하는 데 유용히다.

˝그대는 무엇을 구현하기 위해 사는가?˝ 부스케가 아니 내 안의 진정한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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