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를 계획하고 6개월 코스의 몇몇 프로그램을 생각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흐지부지 모두 놓쳐버렸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내 상황은 아직 영어에까지 관심을 둘 처지가 아닌 듯 하다.

의식은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 먹지만 무의식은 아직 그것을 허용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나는 여전히 인문, 특히 읽기와 관련된 강의에 관심이 많다.

읽기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역 독해’와 ‘옛 그림 읽기’ 수강 신청을 했다.

시도 그렇고 인문서도 그렇고 어려운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주역을 읽으면 기미(幾微: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나 상황의 되어 가는 형편)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또는 기미를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주역 독해 강의를 신청했다.

물론 아직 나는 주역의 이분법 즉 철학(哲學)인가 점(占)인가의 논의에 진입할 마음이 없다.

내가 주역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이야기거리를 얻기 위해서이다.

허수경 시인의 시집 ‘혼자 가는 먼집’을 소축(小畜: ☴☰: 손(巽)괘가 위에, 건(乾)괘가 아래에 위치)과 이(颐: ☶☳: 간(艮)괘가 위에, 진(震)괘가 아래에 위치) 괘로 풀어듯.(소축은 무엇인가 흘러 나가는 것을 경계할 것을 가르치는 괘, 이는 뜻하는 바를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없으니 묵묵히 은인자중 할 것을 가르치는 괘이다.)

올 초 소리 소문 없이 나온 한정희, 최경현의 ‘사상으로 읽는 동아시아의 미술’도 읽는다는 말이 들어간다.

작년 이즈음 타계한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벤투의 스케치북’란 책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했다.(15, 17, 20 페이지)

존 버거가 수행했던 일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소설가였고 평론가였고 미술(비평)가였다.

그는 불분명한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그리거나 읽고 썼다. 하지만 그림에 전혀 재능이 없는 나는 오직 읽고 쓰는 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주역도 독해하고 그림도 독해해야 한다. 보는 법을 배운다는 릴케의 말(‘말테의 수기‘에서)은 내게 와서 읽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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