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출간된 강판권 교수의 ‘회화나무와 선비문화’에서 실경(實景)산수라는 말을 만났다.

“정선의 작품에 등장하는 죽서루(竹西樓)는 그가 63세 때 그린 관동 지역의 실경산수 중 하나다.”(242 페이지)

지난 해 9월, 10월 해설에 쓰기 위해 산 책인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서재 한쪽에 꽂아두었다가 시간이 나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책이다.

요즘 정선의 그림과 관련해 논의가 꽤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정선의 그림은 모두 진경산수인가 아닌가이다.

즉 진경산수만 있는가, 아니면 진경산수도 있고 실경산수도 있는가이다.

동국대 김병헌 교수는 겸재 정선(鄭敾)은 진경산수를 창시한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김 교수는 ‘진경’인가 아닌가는 관람자의 주관적 판단에 달린 것으로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학술용어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이어서 했다.

문제(?)는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애매한 행동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정선의 그림을 보고 ‘동국진경(東國眞景)’이라는 찬사를 남긴 이후 이 용어가 학술용어로 굳어졌는데 실제로 표암은 강희언(姜熙彦)의 ‘인왕산도‘에 쓴 화찬에도 ‘동국진경’이라 했다는 점이다.(조선퍼브 12월 19일)

그런가 하면 한정희 교수는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2012년 5월 출간)에서 “한국과 일본의 실경산수화는 진경산수라 불리며, 중국과는 다른 한국과 일본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국수주의의 팽배와 더불어 그 의미가 부각되기도 했다.˝는 말을 했다.

실경산수를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린 그림, 진경산수를 실경을 중국풍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라 말하는 사람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의이다.

한정희 교수는 동아시아의 실경산수화는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등 중국 화보의 화풍을 보고 그 스타일을 익혀, 기억 속 여행지의 느낌을 재구성하는 것이었으며 바로 이 재구성의 과정에서 한·중·일 회화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틀어지게 됐다는 말을 했다.

참고로 이야기하면 ‘회화나무와 선비문화’의 저자 강판권 교수는 사학자, 김병헌 교수는 사학자,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의 저자 한정희 교수는 미술사학자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출간 당시 한정희 교수의 논의에 어떤 반응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이미 철지난 논의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리라..

한정희 교수의 책은 이미 출간 5년이 지났는데 당시 우리 문화풍토상 별 반응이 없었거나 있었다 해도 학술적인 또는 허심탄회한 반응이 오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정희 교수의 책은 도외시(度外視)하기에는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물론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자신만의 관점에 따라 새롭고 설득력 있게 보는 것이다.

나는 한정희 교수의 관점을 지지한다. 더욱 한정희 교수가 겸재 정선을 폄하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겸재의 그림이 진경산수화가 아니라는 논의가 겸재를 폄하하는 것인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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