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것들이 많은데 감상을 위한 소설을 읽는다. 김경해의 소설집 ‘드므‘란 책. 이런 의도로 소설을 읽는 것은 작년 7월 한강의 ‘흰‘ 이후 15개월만이다.

드므는 궁궐의 전각 한쪽에 불을 끄기 위해 설치한 가마솥 모양의 물동이이다. 하지만 그릇을 직접 보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술을 위한 그릇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화마(火魔)가 건물을 향해 날아들다가 드므 속 물에 비친 제 흉악한 얼굴을 보고 놀라 달아날 것이라 믿었다.

이런 정서는 월대란 말에도 나타난다. 궁궐의 주요 전각들을 떠받치는 섬돌인 월대는 월대(越臺)가 아닌 월대(月臺)이다. 달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대라는 뜻이다. 물론 얼마 높지 않은 월대에 올라선들 달과의 거리에는 별 차이가 없다.

‘드므‘는 전 수록작들이 궁궐 또는 박물관, 능 등의 소품들을 매개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독특한 작품집이다. 책을 어느 정도 읽고 보니 해설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순수 감상을 위한 책과 자료 차원의 책이 따로 있지는 않다. 궁궐이나 박물관, 능의 소품들을 작중 주인공들이 어떻게 오브제들로 삼을까, 하는 궁금증이 책을 계속 읽게 하는 힘이 된다.

감상을 위해 읽는 책에서 자료를 건질 수 있고 자료를 위해 읽는 책에서 즐길 거리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드므‘로부터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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