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잃어버려 어쩔 수 없이 새 책을 구입해 반납했다. 돌아오는 길에 김현 평론가가 ‘행복한 책읽기’에서 건망증에 대해 한 말을 생각했다.
옛날에는 건망증이 심하다는 말을 잊음이 많았다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출처는 이태준(李泰俊) 전집이다.
아울러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한 말도 음미했다.
“A라는 책을 찾기 위해 먼저 A가 있는 장소를 지시하고 있는 B라는 책을 참조하고 B라는 책을 찾기 위해 먼저 C라는 책을 참조한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히.. 이 모험들 속에서 나는 나의 인생의 시간을 탕진하고 낭비했다..”는 말이다.
보르헤스가 말한 ’책‘이 문자 그대로의 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많지도 않은 서가에서 인용해야 할 것을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리곤 하는 사람이 나다.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는 칸트의 말을,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생각은 공허하고 계산을 거치지 않은 자료는 맹목이라는 말로 설명한 책도 내가 찾아 다닌 것들 중 하나이다.
결국 검색을 통해 만난 한 리뷰를 보고 그 책이 전대호의 ’철학은 뿔이다‘란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 리뷰는 내가 쓴 것이다. 꼼꼼하게 기록해두지 않아 벌어진 웃긴 일이다.
그래도 나는 주(主)인 내용에 비해 부(副)인 책 제목, 저자 이름 등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기억일 것이다. 생각과 자료 모두 결국은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