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도강도강(都講盜講渡江)이란 말(김상봉, 도정일, 한홍구 등 지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27 페이지)을 들으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도강도강도강(都講盜講度江)이란 도(都)정일 교수의 강의를 몰래 듣고<盜講> 강을 건넌다는 말이다.(‘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27 페이지)

1980년대 초반 문학사상사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마르크스, 레닌, 알튀세르를 거침 없이 언급했으니 몰래 들었다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든 강을 건넌다는 말을 들으니 부처의 비유가 떠오른다. 부처의 설법 중 강을 건너는 것에 관한 비유가 있다.

붓다는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강을 건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세계로 나아갔음을 비유한다.학문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인식의 경지로 나아갔음을 의미한다.

내가 처음 접한 도정일 교수의 책은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이다. 1994년 나온 책이니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당시 책을 읽으며 설렜던 기억이 23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생생하다. 예리하고 깊으면서 넓기까지 한 안목이 빛나는 책이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이다.

'압구정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란 글이 대표적인데 문학적으로 상당히 세련된 데다가 비판이론의 세례를 받은 내공이 역력한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압구정을 자본주의 실천 30년 끝에 이룩한 계급문화의 천국,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모순이 남김 없이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는 모순의 디스토피아로 정의했다.(261 페이지)

망각은 즐거운 것일 수 있지만 거기 죽음이 있고 기억은 고통스러우나 거기에 즐거움이 있기에 인간의 서사문화가 지속되어 온 것이라는 진단(174 페이지)도 인상적이다. 가장 인상적이며 중요한 메시지는 상징제의에 관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상징제의는 현실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서 수행되는 전쟁, 현실적 영향이 없으므로 마음 놓고 몰입하는 싸움, 그러면서도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족감의 공급을 받으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전쟁을 종이 위에서 전개하는 대리전쟁이다.(284 페이지)

저자가 상징제의로 규정한 것은 보통의 독자들은 단 한 줄도 읽을 수 없는 용어와 개념으로 가득찬 비평이론서들이 활기를 띠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리고 관건은 현실과의 연결 고리(를 잃지 않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것이어도 현재의 우리에 어떤 유의미한 점도 주지 못한다면 상징제의(에 드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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