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궁궐을 중심으로 한 조선사 공부의 실적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 달 시연 프로그램 가운데 건청궁(乾淸宮) 프로그램이 내 관심을 끈 것은 그 궁의 안채인 곤녕합(坤寧閤) 때문이다.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의 낭인(浪人)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곳이다. 곤녕이란 이름은 하늘은 맑고, 땅은 하나로 평안하다는 의미의 건청곤녕(乾淸坤寧)이라는 도덕경 구절에서 유래했다. 건청과 함께 보아야 완전한 이름인 것이다. 어떻든 이름은 상징적일 뿐 현실적 효용과는 무관하지만 명성황후의 경우는, 살해 자체도 자체려니와 이름과 정반대의 사건이란 점에서 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경복궁 속 별궁인 건청궁은 일반 살림집으로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기불이 켜진 곳이다. 고종이 거처했지만 살림집으로 지었기 때문에 단청(丹靑)을 하지 않았다. 이 곤녕합을 비롯 수많은 건물들로 구성된 경복(景福)궁 자체가 큰 복이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가졌다. 조선의 법궁(法宮)이었지만 임금들은 창덕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경복궁 자체가 치열한 권력 다툼이 부른 살인(형제간 살인, 삼촌이 조카를 죽인 살인)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명성황후 민씨가 살해된 곳도 경복궁이다.


일본은 광화문과 흥례문을 헐어버린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었다. 물론 경복궁만 훼철(毁撤)의 수모를 겪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복궁은 법궁이기에 훼철 역시 상징적이고 그런 만큼 충격의 폭이 넓다. 구본준 기자는 우리가 경복궁을 자금성을 비롯한 외국의 거대한 궁전에 비해 작다고 느끼는 이유는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훼철 때문이라 말한다.('세상에서 가장 큰 집' 158 페이지) 다른 궁궐들에 비해 경복궁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피의 역사와 훼철을 겪을 만큼 겪은 궁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내 오랜 추억이 서린 곳이자 세계문화 유산인 창덕궁에도 경복궁 못지 않은 애정을 느낀다.


경복궁 공부를 하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종묘(宗廟)이다.(아직 궁 공부가 미천하여 내게 창덕궁과 함께 떠올릴 건물은 없다.) 왕의 위패(位牌)를 모신 종묘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들 중 가장 긴 101미터를 자랑한다. 조선은 궁궐보다 종묘를 먼저 건설했다. 하지만 이 사실 때문에 종묘를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종묘는 처음 시조(始祖)에 해당하는 다섯 임금들만 모시려는 계획에 따라 지어졌지만 시조에 해당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훌륭한 임금들을 계속 모시다 보니 옆으로 계속 길이가 늘어나게 되었다.


모든 나라가 최고 건축물을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크고 길게 지었지만 조선의 종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이 성장한(늘어난/ 덧붙여 지어진) 유일한 사례이다. 당연히 왕조의 멸망과 함께 종묘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이미 죽은 건축 유형인 궁궐,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음으로써 왕조의 멸망을 증거하는 종묘... 좌묘우사(左廟右社: 곡식신과 토지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은 궁궐의 우측인 서쪽에 두고, 왕실의 사당에 해당하는 종묘는 궁궐의 좌측인 동쪽에 배치하는 방식)라고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좌궁우묘(左宮右廟)란 사상이 들어 있다. 적당한 시기에 종묘를 찾아 공부를 더욱 넓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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