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에티카’ 해설서를 쓴 한 국문학 박사는 대학 2학년 시절 스피노자의 ‘에티카’ 번역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강영계 선생의 번역으로 나온 서광사판 ‘에티카’를 집에 사들고 와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쳐보았을 때의 참담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첫 문장부터 스피노자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에티카’에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자유로운 인간들만이 진정으로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4부 정리 71) 같은 구절은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만약 인간에게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등하다면 분명히 인간의 삶은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3부, 정리 2의 주석) 같은 말은 또 어떤가요? 철학자 시인 서동욱 교수는 ‘스피노자’란 시의 마지막 연에서 “글을 쓴다는 것/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기대 없이,/ 하도록 돼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란 말을 합니다.


스피노자는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기쁨에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에서 생겨나는 욕망보다 강하다”는 말을 했습니다.(‘에티카’ 4부, 정리 18) 스피노자의 말 가운데 "눈물 흘리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하라.“란 말을 페북 타임라인 전면에 게시한 분이 있습니다. 이를 보며 이런 글을 올리는 경우는 두 가지이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는 잘 실행하고 있어서 게시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잘 안 되기에 마음을 다잡기 위해 게시하는 경우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글을 게시하지 않았지만 게시한다면 분명 후자입니다. 오늘 스승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페북에 남기려다가 카톡 글로 대신했습니다. 슬픔 때문입니다. 이것만 봐도 제가 스피노자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하는 스피노자주의자 즉 사이비 스피노자주의자란 사실이 드러납니다. 다시 ‘스피노자’를 읽고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세상을 긍정하는 법을 가다듬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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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26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만 강영계 선생님 번역은 정말 어렵고 스피노자를 두렵게 만들어요ㅠ 전 지성개선론 두 부를 펴 놓고 한 3페이지 대조해 보고는 황태연 선생님 번역을 골랐습니다.

원문과의 싱크로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읽혀야 읽을 텐데요ㅠ 아쉬워요. 스티븐 내들러 책에 가끔 등장하는 스피노자 원문 구절의 번역은 좀 잘 읽히던데.....

벤투의스케치북 2016-09-2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 분의 번역은 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국문학 박사가 강 교수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려고 그런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령 있는 번역이었다 해도 준비 없이 에티카를 읽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말씀 하신 스티븐 내들러의 책 저도 즐겨 읽지요. 황태연 선생의 번역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평이 나온다 생각합니다. 서동욱 교수처럼 시를 쓰는 철학자가 또는 서동욱 교수가 번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